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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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北元
1368년 명나라의 주원장이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점령한 후 중원 정복을 완수함에 따라 원나라의 토곤 테무르 칸(원혜종)이 북쪽으로 옮기고 나서부터 1388년까지 지속된 나라로 주로 내몽골과 북만주가 중심이었으며 일시적으로 외몽골에 들어가 외몽골 동부지역과 부랴트까지도 장악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영락제의 북벌로 약체화되고 멸망해 사라졌다.
1388년 3대 천원제가 부이르 누르[1] 에서 남옥이 이끄는 명나라의 15만 대군에게 습격을 당하였고 결국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가 투울 강 근처에서 예수데르에 의해 살해당했다.
예수데르는 과거 원나라를 창건한 쿠빌라이 칸과 대칸위 경쟁을 벌였던 아리크부카의 후손으로, 124년만에 쿠빌라이 칸의 가문을 무너뜨리고 조리그투 칸으로 즉위함으로써 대칸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다.
중국식 원나라 천자, 즉 황제 지위는 본래 쿠빌라이 칸 대에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데르, 즉 조리그투 칸은 몽골의 대칸 지위는 이었지만 북원 황제위는 잇지 않았으므로 북원은 3대 천원제 대에 완전히 멸망했다.
북원 멸망 후 몽골은 차하르족, 할하족, 우량카이족을 중심으로 한 6부족 연맹 단위로 재편되었고, 이들 부족들이 서로 투닥거리고 통일되기도 하며 간간히 명나라를 침공해 경술의 변과 같은 사건을 일으켜서 위세를 떨치다가 청나라에 의해 내몽골이 정복당하고 차하르부가 갖던 몽골 제국의 대칸 자리도 청나라의 황제가 흡수하였다.
즉 북원은 천원제 대에 완전히 멸망했고, 이후 북원을 이루던 세력들은 스스로를 몽골이라고 부르며 불완전한 부족 연맹으로 머물렀으나, 이 문서는 청나라에 귀부할 때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2. 상세
1368년 혜종은 남쪽에서부터 급격히 세를 불려가면서 북진을 해온 명나라의 맹공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수도 대도를 빼앗긴 채 만리장성 이북의 상도로 도주했고, 곧 응창(應昌)에서 할거(割據)했다. 이로써 중원은 완전히 명나라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참고로 상도는 몽골이 전 중국을 완전히 차지하기 전에 원나라 수도였고, 통일 후에는 여름 피서 수도로 쓰던 도시다. 상도 유적 문서 참조.
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소종은 외몽골로 들어갔고 이후 1372년에 명의 원정군을 격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종과 코케 테무르 사후에 북원은 급격히 힘을 잃어 갔고, 중국 진출을 단념해야 했다. 원의 뒷배 역할을 착실히 해주던 만주의 군벌 나하추마저 명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자 북원의 세력은 더욱 쇠락할 수 밖에 없었고, 끝내 1388년 부이르 누르의 동북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명군에게 대패하였으며, 소종의 뒤를 이은 동생 천원제 테구스 테무르도 도주하던 중 도우라 강 기슭에서 아리크부카의 후손인 예수데르에 의해 피살당하면서 북원도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예수데르는 조리그투 칸으로 대칸을 이었으나 북원의 황제 지위는 본래 쿠빌라이 칸이 선포한 것이고 자신은 쿠빌라이 칸에게 권력 경쟁에서 밀려난 아리크부카 가문의 후손이었으므로 중원 황제의 칭호를 포기하고 몽골의 대칸 지위만 유지했다.
이후 몽골은 차하르족, 할하족, 우량카이족을 중심으로한 부족 연맹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쿠빌라이 칸 황통과 아리크부카 황통이 칸의 자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경쟁하다가 다얀 칸의 치세 이후 쿠빌라이 황통이 다시 칸의 자리를 차지한다.
명나라에서는 북원이 멸망해 몽골 부족 연맹으로 분리되자, '몽골'을 원래 호칭인 '몽고' 대신에 '달단(타타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명나라에서 부르던 명칭으로, 여전히 스스로는 '대원'이나 '몽골'이라고 불렀으며 만주에 사는 여진족(후의 만주족) 역시 이들을 '투메드 몽골' 내지는 "우브르 몽골"이라고 했다.
명나라에서 몽골을 타타르로 불렀던 것은 '''타타르'''가 '''야만인'''같은 멸칭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원래의 타타르족은 몽골족과 대대로 원수지간이었고 결국 칭기스 칸에 의해 멸족당하고 몽골족에 흡수되었는데 몽골에게 타타르란 용어는 바로 야만인 정도의 멸칭으로 사용되었다. 몽골이 중국을 정복하자 야만인이란 의미로 타타르란 말도 중국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명나라가 성립된 후 몽골을 경멸적인 용어로 '타타르'로 호칭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북방민족 전체를 비하하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게 되었다.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도 명나라에서는 타타르라고 불렀다.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에서 북방민족을 비하해서 불렀던 '''오랑캐'''란 말과 같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청나라에서는 달단이라는 명칭은 폐기되고, 한자 표기 역시 '달단'에서 '몽고(몽골)'로 되돌아갔다. 물론 여기서의 달단은 내몽골을 말하는 것으로 러시아의 타타르인과는 무관하며 현재 내몽골 자치구와 관련있다. 전자의 경우 주치의 후손이고 후자는 칭기즈 칸의 동생 카사르의 후손들이다.
줄곧 오이라트와 세력을 겨루었으며, 한 때 오이라트 출신인 후일 다이온타슨다이 칸이 되는 에센 타이시는 일시적으로 몽골의 제부족들을 제압하고 명나라를 상대로 토목의 변을 일으켜 명나라 황제를 사로잡는 등 당대에 큰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렇듯 분열하고 오이라트에 권력을 내주기도 하다가 몽골 부족을 재통일한 칸은 다얀 칸이다. 다얀이라는 이름도 한자 대원(大元)을 몽골어로 차음한 것이며 그의 아내인 만투하이는 현명한 왕비로 유명하며 몽골에서 존경받는다. 다얀 칸은 에센 타이시 때부터 정립되어가던 6대 부락을 6만호 체제로 재정비하고, 몽골 제국 부활의 토대를 닦아 나갔다. 다얀 칸의 손자 알탄 칸이 경술의 변을 일으키면서 명나라를 공격, 한때 허베이성과 산시성을 수복하는 등 예전의 기세를 많이 회복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알탄 칸때문에 대칸의 권력이 쇠퇴해 몽골 6부족은 다시 분열되었고, 17세기경 수십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주족의 청나라에 귀부하며 운명이 갈라졌다. 어차피 몽골인은 청나라를 중국이 아닌 만주인으로 봐서 가능했던 일이었고 훗날 청나라가 멸망하자 독립했다.
이후 만주족의 한(汗)이자 청나라 황제가 대대로 몽골의 칸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청 황제는 한족에게는 중국식 연호를 썼으나 만주족에게는 만주식 한호, 몽골인에게는 몽골식 칸호를 썼다. 한 예로 누르하치는 후금을 건국하면서 중국식 연호가 아니라 몽골식으로 "텡그린 술데투"라고 연호를 선포했으며. 홍타이지부터는 정식으로 칸호로 스스로 호칭했다. 청태종의 칸호는 "복다 카간"이다. 청나라는 공문서도 만주어, 몽골어, 중국어로 기록하는 등 3개 세계를 모두 정복한 정복 왕조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갔다. 이후의 역사는 청나라 문서 참고.
3. 의의
몽골 제국은 내/외몽골과 부랴티아의 부랴트인, 그리고 칼미크의 토르구트까지 모두가 전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몽골 제국이 무너진 이후 북원 시대에 몽골은 크게 둘로 양분된다. 일반적으로 몽골과 오이라트로 분리되었다고 하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쿠빌라이계에 충성하는 원(元)조 세력과 반 쿠빌라이계 동맹인 오이라트로 볼 수 있다.
기실 양 집단은 민족적 구성으로는 그렇게 크게 다른 것은 아닌데, 오이라트 역시 원 오이라트 부족에 케레이트와 나이만 등의 부족들이 연합한 부족 연합체적 성격을 지닌 집단이었다.
몽골인들의 경우에는 여러 개의 집단이 있었고 쉽사리 통일되지 않았으며 중간에는 오이라트 에센에게 권력을 내주기도 하는데 이것이 다얀 칸 때에 비로소 6개의 대부락으로 정리 된다, 이 6개의 대부락을 6투멘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 그 구성은 좌현이 차하르, 할하, 우량하이, 우현이 오르도스, 융셰부, 투메드이다. 후일 이들 중에서 차하르가 내몽골의 중심 부족이 되고 할하는 외몽골의 중심 부족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6부족 중 차하르 부족 등은 청나라에 복속되어 만몽 연합 제국 형태로 만주족 즉 여진족들과 호흡을 같이 하게 되고, 이러한 역사가 현대 내몽골의 정체성의 기원이 된다.
그리고 내몽골과 달리 오늘날 몽골국인 외몽골은 할하 부족 등이 전신이며 이러한 역사가 마찬가지로 현대 외몽골의 정체성의 기원이 된다. 그리고 이 외몽골에는 몽골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남부 부랴트인과 칼미크의 토르구트인도 포함되고 엉뚱하게 튀르크계인 투바도 포함된다.
4. 역대 지도자
4.1. 역대 황제
4.2. 북원 멸망이후의 몽골 대칸
조리그투 칸이 중국식 황제 칭호를 버린 후 역대 대칸 목록 글이다. 대체적으로 동몽골의 칸들은 재위 시절이 평탄하지 못한 편인데 개중에는 에센 타이시(다이온타슨다이칸)나 다얀 칸, 알탄 칸처럼 명나라를 위협했던 칸도 있었으나 대개 오이라트와 명나라에 시달리고 칸의 암살도 빈번했으며, 골육상쟁은 기본이었다. 다이온타슨다이 칸을 제외하고는 모두 몽골 제국의 황족 보르지긴씨가 대칸의 지위를 이어갔고 에제이 칸이 청나라의 태종 홍타이지에게 양위하며 만주족인 아이신기오로씨가 몽골 제국의 대칸의 자리를 이어 간다.
- 이후의 대칸 목록은 청나라 문서의 역대 황제 항목 및 몽골 제국/역대 대칸 문서 참고.
5. 기타
-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조선으로 유입된 북원 몽골인들의 후손에 관한 기록이 간간히 보인다. 명나라의 영향으로 달단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들은 조선에 자리를 잡고 버터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다고 한다. 버터를 수유라고 했으므로 이들이 머무르는 곳을 수유치라고 불렀다고. 그런데 수유치 주민은 병역이 면제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달단의 후예라고 주장하면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가구에 장정만 수십명에 이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수유치를 없애고 이들에게 버터를 만드는 일 말고 새로운 생업을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