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필
1. 개요
안동 장씨의 시조이며, 옥구 장씨, 인동 장씨, 단양 장씨의 도시조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장길(張吉)이라도고 부른다.
2. 상세
장정필은 당나라 시기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장군을 지냈던 장원(인물)의 아들로, 신라 진성여왕 4년에 신라로 망명왔다.[1]
이후 18세가 되던 해 다시 중국으로 가 과거를 준비했고 문과 장원을 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입산하여 제자를 양성하였다. 그는 중국 전역에 학술과 덕망이 뛰어나다며 소문이 나게 된다.
그의 나이가 24세가 되던 해, 그의 소문은 천자에게 까지 들어가고 이조상서에 올랐다.
하지만, 경순왕 4년에 다시 신라로 돌아와 안동 장씨의 시조가 되며, 안동에서 인재를 양성한다.
후백제를 상대로 서기 930년 고창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며 왕건에게 공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