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1975)

 

'''전준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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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0'''
'''2003'''
'''2004'''


'''2006 KBO 리그 승률왕'''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64번'''
결번

'''전준호(1994~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61번'''
팀 창단

'''전준호(1996)'''

결번
결번

'''전준호(1999~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61번'''
팀 창단

'''전준호(2008~2009)'''

노병오(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61번'''
황건주(2008~2009)

'''전준호(2010~2011)'''

최진호(2012~2013)


[image]
'''이름'''
전준호(田俊鎬)
'''생년월일'''
1975년 4월 10일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동산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태평양 돌핀스 고졸연고지명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94~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2008~2009)
SK 와이번스 (2010~2011)
1. 소개
2. 선수 경력
3. 은퇴 후


1. 소개


NC 다이노스의 코치 전준호와 동명의 야구선수. 역시 前 히어로즈 소속이며 이후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이쪽은 투수다.

2. 선수 경력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고 데뷔[1] 하였으며,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히어로즈에서 활동했다. 등번호는 61번.
아무래도 NC 코치 전준호 때문에 지명도에서 상당히 손해를 본다.
주로 선발과 불펜 등을 오가면서 전천후 투수로 꾸준히 활약해왔다. 기복이 무척 심하고 피홈런이 많은 커다란 단점을 지닌 선수다.
본격적으로 1군에 올라 온 1995시즌 막바지에 두 차례 강한 인상을 남겼다. 9월 13일 수원 삼성전에 선발로 등판해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리를 기록했고, 9월 22일 인천 LG전에서 다시 선발로 등판해 김재현에게 1회 선두타자 초구 홈런을 맞았으나 9회까지 추가 실점을 하지 않고 버티며 팀의 역전승에 디딤돌을 놓았다.
커리어 하이는 2006년. 시즌을 앞두고 체중감량에 성공하여 풀타임 선발로 규정이닝을 소화하며 좋은 방어율을 기록하였고, 당시 현대 타선이 좋았던 덕에 14승을 올리며 승률왕을 하였다.[2] 하지만 그 후 체중관리에 실패하며 다시 살이 급격히 찌면서 몰락한 대표적인 케이스이기도 하다. 살이 급격히 찐 2008년부터는 사실상 1군 선수라고 말하기 힘든 수준의 피칭을 보여주었다.
결국 2009년 시즌 종료 후 히어로즈로부터 방출당했고, 이후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입단 테스트를 거쳐 SK 와이번스에 입단하며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히어로즈에서 방출되기 직전 즈음 체중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김성근 감독이 살을 빼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외야수 전준호가 방출되고 며칠 후에 같이(…) 방출당했다. 근데 하필이면 NC 코치가 될 전준호하고 같이 SK 와이번스에서 뛰게 되었다. 역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2010년 9월 23일, 6이닝 무실점으로 2007년 9월 30일 이후 3년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2011년 11월 29일 SK에서 방출, 은퇴하였다.
여담으로 태평양 돌핀스의 마지막 경기 선발투수이자 마지막 패전투수다.

3. 은퇴 후


2012 시즌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의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그런데 4월 이후에 등장하지 않는걸 봐서는 짤렸거나 본인이 그만둔 듯.[3]이후 isportstv에서 넥센 편파중계 해설을 하다가 부천고 코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홍희정 칼럼
[1] 여담으로 태평양에 입단할 때는 포수로 입단했다. 이듬해 투수로 전향. 기사[2] 훨씬 잘 한장원삼이 12승밖에 못 한게 함정이지만...[3] MBC 스포츠 채널 항목에서도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