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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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소속의 투수. 現 키움 히어로즈 코치. 키움 히어로즈에서 전력분석원과 2군 투수코치를 맡았었다.
2. 선수 경력
청주기공 출신 선수로 고교 시절에는 투타를 병행했다. 원래 신인 지명 때는 유격수로 지명받았지만 2001년 봉황대기에서 투수로 역투를 거듭하며 팀을 신주영, 박정규, 연경흠과 함께 결승에 진출시켰고, 결승전에서 구리인창고를 맞아 9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으면서 2실점으로 완투하고, 타석에서는 2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대회 최다 타점까지 기록하며 팀을 정상에 올려 놓고, 선수 본인은 MVP의 영광을 안았다. 당연히 삼성 입장에서는 내야수로 생각했던 선수가 갑자기 고교 무대의 손꼽히는 투수가 되버렸으니 계탔다고 생각한 상황이었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활동하며 삼성의 유망주로 손꼽혔다. 데뷔 첫 해부터 1군 엔트리에 들며 몇 차례 기회를 받았고, 시즌 막판이었던 2002년 9월 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1] 루키 시즌인 2002년 1군 18경기에 등판하여 3승 2홀드를 기록했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계투로 여러 번 등판했다. 특히 페넌트레이스 도중 최고구속 152km/h를 찍었고, 이듬해 2003년 전지훈련 때는 양일환 투수코치가 선발투수 후보 중 한 명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막상 정규시즌 시작 후에는 그리 많이 등판하지 못했고, 2003 시즌 종료 후 삼성이 2루수 박종호를 FA로 영입하면서 그 보상 선수로 선택돼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했다.[2]
앞서 팔꿈치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현대 유니콘스 이적 이후에도 제 몫을 못하면서 성장이 정체되어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다. 1군 무대에도 거의 나서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추억 속의 유망주로 전락한 것. 2007년 1승 1패 방어율 8.44를 기록한 것이 노병오의 마지막 1군이었다.
2007 시즌 종료 후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다. 2008년에는 38경기에 등판해 5승 8패 4세이브 2홀드 7.3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2009년에는 25경기에 등판해 9승 5패 세이브 5.3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제대 후 합류한 넥센 히어로즈에서 1군에 오르지 못해 결국 2011 시즌 종료와 함께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3. 은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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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와 함께 넥센에서 2군 매니저로 프런트 생활을 시작해 계속 프런트로 근무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노병오 외에도 여러 명의 현대 출신들이 일하고 있는데 설종진, 김민범, 장정석[3] 이 그러한 케이스다.
2013년 12월 8일에 결혼을 하여, 유부남이 되었다.
2015 시즌에는 전력분석원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4. 지도자시절
4.1. 키움 히어로즈 2군 코치
2019년 고양 히어로즈의 투수코치로 현장으로 복귀했다.
4.2. 롯데 자이언츠 1군 코치
시즌 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임명된 허문회를 따라 1군 메인투수코치로 롯데로 이적했다.
선수시절 스타플레이어하고는 거리가 있기도 했지만 현장경험이 많지 않은 투수 코치라 그동안 롯데는 나름 주형광, 김원형, 염종석 등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선수들과는 상반되는 부분이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투수들의 볼넷 줄이기가 최대 목표이고 선수들의 심리 상태나 가능성이 있는 투수들을 상대로 캠프 때 보완할 예정이다.
용병 투수의 성적을 제외한 '토종 선수 기준'의 팀기록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선 목표였던 9이닝당 볼넷은 전년에 비해 상당히 개선되며 소기의 목표는 이루었다. 평균자책점도 5.07에서 4.98로 줄어들긴 했지만 그 폭이 0.09밖에 되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으나, 2019년에 4.18이었던 리그 평균자책점이 2020년 4.78로 급등한 것을 감안하고 생각하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직관적으로 '팀 토종 평균 자책점 - 리그 평균 자책점'은 2019년 -0.89에서 2020년 -0.20으로 0.69나 개선 된 것이다.
이는 용병투수가 팀의 상위로테이션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 KBO에서 용병을 제외한 팀 토종 평균 자책점이 용병을 포함한 리그 평균 자책점에 그만큼 근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수 교체면에서 조웅천 코치와 함깨 타자 출신에 타격 관련 코치직을 주로 경험한 허문회 감독의 조문역이 되었을 것이라 예상된다.선발 투수의 경우 스트레일리를 필두로 소화이닝이 6위로 중위권, QS도 59회로 NC와 함깨 3공동 3위를 기록하며 어느정도의 수준을 유지하였고, 선발 투수에서 구원 투수로 교체 한 이후 구원이 승리를 날린 횟수는 11회로 리그에서 두산 다음으로 적었으나 팀 타선이 상대팀 선발을 상대로 9이닝당 4.81점냈는데 이는 5.06인 리그 선발 9이닝당 평균 실점보다 낮은 득점력을 보여주었고, 상대팀 구원투수를 상대로 9이닝당 6.06점을 내며 리그 평균 구원 투수 9이닝당 평균 실점 5.49를 웃도는 성적을 기록했으므로 선발투수보단 구원투수를 공략하는 팀에 가까웠다. 즉 선발 투수가 나와있 때 승리 조건을 체우기보다 구원투수전으로 넘어갔을 때 점수를 내 이기는 팀이었다.
그러므로 구원투수가 승리를 날린 경우가 큰 의미를 가지진 않는데, 따라서 구원투수의 블론 세이브와 블론 홀드를 합친 결과를 보면 SK와 함께 리그에서 2번째로 많은 팀이었다. 이는 구원진의 운용에서 특정 선수에 지나치게 의존도가 높아 몇명의 선수가 기세가 꺾인 것이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즌내내 보직을 정하고, 해당 보직에서 기용하며 지켜보고, 수정하고, 다시 수정된 보직에서 기용하며 지켜보고를 반복하였는데 기용하며 지켜보는 과정에서 기세가 꺾인 선수가 승리조로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무너진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으로 이 부분에서 적지 않은 팬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이 야수 출신의 감독의 성향인지 조언하는 투수 코치들의 조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총평하자면 불펜 싸움, 특히 1점차 승부에서의 불펜 교체 측면에서는 아직 역량을 알 수 없다고 할 만 하긴 하지만, 대신 투수 육성 측면에서는 비록 스트레일리의 영향이 크긴 했지만 어쨌든 2017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하위권이었던 팀 투수 WAR을 스탯티즈 기준으로 리그 2위까지 끌어올린 측면에서(거기다 그만큼 다른 외국인 선수인 샘슨은 WAR에서 거의 기여를 못 했다.) 대체로 성공적인 1군 투수코치 데뷔였다고 할 만했다. 이런 점을 인정받은 것인지 1년만에 다시 코치로서의 친정 팀인 키움으로 부름을 받아 소속을 바꾸게 되었다.
4.3. 키움 히어로즈 2기
1년만에 히어로즈로 복귀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참고로 이 날 거둔 승리는 이후 16년간 삼성 구단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고졸신인 선발승이었다가 2018년 3월 28일 양창섭이 광주 KIA전에서 선발승을 거두며 16년 만에 경신되었다.[2] 공교롭게도 2020 시즌 코칭스탭으로 같은 팀이 된다.[3] 전 키움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프로 생활은 현대에서 시작했지만 최익성과의 트레이드로 KIA 타이거즈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