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국시리즈
'''병살타 코스~ 2아웃! 3아웃!!! 현대 유니콘스~ 우승!! 98년, 2000년에 이어서 3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라서는 현대 유니콘스!'''
옵튜브로 중계했던 임용수 캐스터의 우승콜
1. 소개
페넌트레이스 1위팀 현대 유니콘스와 4위에서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전승으로 거쳐 올라온 SK 와이번스와의 맞대결.
현대 유니콘스가 4승 3패로 승리하면서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래 3년만에 다시 우승을 하면서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또한 김재박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우승을 이끌어낸다.
한국시리즈 MVP는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대활약을 한 정민태. 4승 가운데 무려 '''3승'''이나 차지했다. 특히 7차전은 허리'''부상에 불구하고 테이핑을 감으면서까지 등판'''해 완봉승을 거두었다.[1]
한편 SK 와이번스는 이번 한국 시리즈 준우승으로 1990년 삼성 라이온즈 이후 13년만에 전승준의 위업[2] 을 달성하게 된다. 2010년대 초반 기준으로 야구를 얼마 보지 않은 팬들은 'SK가 강팀으로 변모한 것은 김성근의 영향이다.'고 생각했는데, 강팀으로 변모하는데 밑바탕이 된데에는 사실 조범현 감독의 공도 크다. 리빌딩도 어느 정도 있었고.[3] 조범현 감독은 SK를 처음으로 맡았던 시즌에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놓는 위업을 달성하여 기대받게 된다. [4]
2. 엔트리
2.1. 현대 유니콘스
2.2. SK 와이번스
3. 경기 결과
3.1. 1차전
승리 투수 : 정민태
패전 투수 : 이승호
세이브 투수 : 조용준
심판 : 주심 /1루 /2루 /3루 /좌선 /우선
현대는 '''에이스''' 정민태를, SK는 좌완 이승호를 내세우면서 승부를 걸었다. 경기 초반 SK는 정민태 상대로 1회초 2사 1,2루와 3회초 1사 3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모두 득점에 실패했다. 반대로 이승호는 2회까지 삼진 4개를 잡으며 쾌투를 보였다. 그러나, '''찬스를 놓친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현대는 3회말 공격에서 전준호의 2루타로 선제점을 냈고, 이어 박종호의 강습 타구를 유격수 김민재가 놓친 것을 틈타 다시 한 점을 보탰다. 그리고 6회말에 SK 디아즈의 실책을 틈타 3점을 냈다. SK도 7회초 공격에서 박종호의 실책으로 기회를 잡은 후, 디아즈와 김민재의 적시타로 추격에 성공했지만 끝내 역전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어렵지만 간신히 현대는 수호신 조용준을 출격 시켜 SK를 누르고 시리즈 1승을 거둘 수 있었다.
3.2. 2차전
이날 시구는 가수 이효리가 했다.
승리 투수 : 제춘모
패전 투수 : 권준헌
세이브 투수 : 조웅천
심판 : 주심 /1루 /2루 /3루 /좌선 /우선
홈런 : 이호준 (2회 1점), 안재만 (대타 5회 2점) 이상 SK 이숭용 (2회 1점) 이상 현대
SK는 선발로 스미스를, 현대는 선발로 바워스를 내세웠다. 그러나 양팀의 외국인 선수들은 초전에 무너지면서 기대를 저버렸다. SK가 2회초에 이호준의 솔로 홈런으로 먼저 기선을 잡았지만, 현대는 이숭용의 솔로 홈런으로 바로 2회말에 동점을 만든 후, 브룸바와 김동수의 적시타로 가볍게 역전에 성공했다. 이대로 끌려가나 싶었던 경기는 SK가 5회초 공격에서 2사 1루에서 대타 안재만의 동점 2점 홈런이 터지면서 승부를 만회하는데 성공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SK는 2회부터 시즌 선발과 구원의 경험 있는 제춘모를 투입 결국, 호투 속에서 경기 분위기를 끌어가고 있었고, 반대로 현대는 아쉽게 동점을 내준 후, 끌려가는 추세였다. SK는 7회 1사 1,2루에서 김민재의 안타 때 홈을 파고 들었지만, 브룸바의 송구에 걸려 홈 아웃이 되면서 찬스를 놓쳤다. 하지만 8회초 공격에서 현대 불펜의 핵인 권준헌 상대로 김기태와 박경완이 잇따라 적시타를 치면서 결국 역전에 성공하며 시리즈를 타이로 만들었다.
제춘모는 2회 1사부터 나와 6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고, 조웅천은 세이브를 따내면서 팀 승리를 지켰다.[7]
3.3. 3차전
승리 투수 : 채병용
패전 투수 : 조용준
세이브 투수 : 조웅천
심판 : 주심 /1루 /2루 /3루 /좌선 /우선
홈런 : 이진영 (3회 2점) 이상 SK
10월 19일은 일요일이었는데, 어차피 인천과 수원이 이동거리도 없으니까 일요일에 경기하자고 해서 3연전이 되고 말았다. 현대는 선발로 김수경을 내세웠고, SK는 선발로 채병용을 내세웠다. 기선을 먼저 잡은 것은 현대였다. 1회초 공격에서 정성훈과 브룸바의 연속 적시타로 2점을 선취하는데 성공한 것. 그러나 3회말 공격에서 SK는 2사 1루에서 이진영의 우익수 깊숙한 동점 2점 홈런이 나오면서 승부를 간단히 원점으로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기세가 오른 SK는 2차전의 영웅 안재만이 4회말 공격에서 역전 2루타를 치면서 3:2로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다급해진 현대는 불펜을 조기 투입하면서 추가 실점을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1회 이후부터 SK 선발 채병용을 공략하지 못하면서 7회까지 끌려가기만 했다. 그러다가 채병용이 힘이 빠진 8회초 이숭용의 안타와 안재만의 실책을 묶어 만든 1사 1,3루의 찬스에서 정성훈의 동점 희생플라이로 균형을 맞췄다.
그러나 현대의 힘은 거기까지였다. SK는 현대의 수호신 조용준을 맞아 김민재의 3루타와 조원우의 안타로 가볍게 2점을 추가하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준PO와 PO에서 보여준 SK의 돌풍은 이제 태풍으로 현실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3.4. 4차전
승리 투수 : 정민태
패전 투수 : 김원형
심판 : 주심 /1루 /2루 /3루 /좌선 /우선
홈런 : 박종호 (1회 1점) 이상 현대
여기서 지면 벼랑 끝으로 몰리는 현대는 선발 정민태를 내세웠고, SK는 선발 후보인 김원형의 어깨가 정상이 아니라서 깜짝 카드로 김영수를 내세웠다. 1회초 현대가 2번 타자 박종호의 큼지막한 솔로 홈런으로 먼저 기선을 잡았지만, SK는 1회말 1사 만루 찬스를 잡은 후, 디아즈의 땅볼, 박종호가 무리하게 공을 잡으려다가 놓치면서 다시 한 점, 채종범의 적시타로 또 한 점을 내면서 단숨에 경기를 뒤집었다. 이대로면 SK가 유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SK의 투수진은 끝내 버티지 못했다.
SK가 2회말 2사 1,3루의 찬스를 놓친 후, 바로 현대는 3회초 공격에서 김영수를 두들겨서 1사 1,3루의 찬스를 잡은 후, 바뀐 투수 김원형 상대로 심정수와 이숭용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5회초 공격에서 다시 이숭용이 2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경기를 역전시켰다. 기세가 오른 현대는 7회초 브룸바의 1타점 2루타, 9회초에 전준호의 3타점 2루타로 승부를 완전히 결정지으면서 대승을 거두고 기세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정민태는 경기 초반 굉장히 흔들렸지만, 6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시리즈 2승째를 따냈다. 이 날의 수훈은 캡틴 이숭용이 그야말로 멱살을 잡고 캐리했다.
3.5. 5차전
승리 투수 : 김수경
패전 투수 : 이승호
심판 : 주심 /1루 /2루 /3루 /좌선 /우선
홈런 : 정경배 (5회 1점), 김기태 (9회 2점) 이상 SK
이날 시구는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이 시구를 하였고, 경기 전 식전 행사로 기마 경찰이 야구장 그라운드를 돌면서 한국시리즈를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만 말이 2루에 '''X을 싸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경기 내내 그 말이 싼 곳으로 공이 가면 타구가 묘하게 되면서 경기가 꼬였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SK였다.
3차전 현대가 김수경을 내세우면서 완파당하자 5차전에 다시 선발로 나간 김수경이 호투하면서 분위기를 끌어가는 가운데, SK는 1차전 선발 이승호가 다시 난조를 보이면서 경기를 어렵게 끌어갔다. 2회말 무사 1,2루에서 브룸바의 평범한 땅볼을 추운 날씨로 인해 옷을 껴입어서 몸이 둔해진 SK 2루수 디아즈[8] 가 공을 잡지 못하면서 어이없게 선제점을 내준 것에서부터 분위기가 묘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은 3회말에 나왔다. 2사 1루에서 정성훈의 3루타로 추가점을 낸 후, 이어진 만루 찬스에서 다시 타석에 등장한 브룸바가 친 타구는 평범한 2루수와 우익수 사이의 뜬 타구였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낙하 지점을 잡지 못한 SK의 수비수들은 그 타구를 3타점 2루타로 둔갑을 시켜줬고, 거기서 경기는 사실상 끝났다.
SK는 5회초 정경배의 솔로 홈런으로 추격했지만, 곧바로 5회말 현대가 박진만의 2타점 적시타로 달아나면서 승부를 사실상 끝내고 말았다.
3.6. 6차전
승리 투수 : 채병용
패전 투수 : 전준호
세이브 투수 : 조웅천
홈런 : 이진영 (3회 2점) 이상 SK
심판 : 주심 /1루 /2루 /3루 /좌선 /우선
1승만 추가하면 이길 수 있던 현대는 전준호를 선발로 내세웠고, SK는 3차전에서 호투한 채병용을 내세워 반격에 나섰다. 원래대로면 바워스가 나와야겠지만, 바워스는 어깨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상황이었다. 초반 SK는 현대가 1회초와 2회초 모두 주자가 나갔지만, 이를 잘 넘겼다. 그리고 3회말 공격에서 이진영의 2점 홈런이 나오면서 선제점을 냈다. 사실상 이 홈런이 결승타점 그 뒤로는 채병용의 쇼타임. 채병용은 8회 1아웃까지 4피안타 6탈삼진으로 현대의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분위기를 SK의 것으로 만들었다.
현대는 8회초 채병용과 바뀐 투수 이승호 상대로 1사 1,2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SK의 마무리 조웅천은 정성훈을 병살타로 잡으면서 위기를 넘겼고, 그렇게 SK는 시리즈를 최종전까지 몰고 갔다.
3.7. 7차전
승리 투수 : 정민태
패전 투수 : 김원형
심판 : 주심 /1루 /2루 /3루 /좌선 /우선
단 한 판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상황, 현대는 정민태를 내세웠고, SK는 4차전 중간에서 던진 김원형을 내세웠다. 경기 초반 팽팽하던 분위기는 4회말 브룸바의 적시타로 먼저 달아나면서 현대에게 조금 기울었다. 그리고 5회말 공격에서 현대는 2사 후, 6안타를 집중시키면서[10] 분위기를 완벽하게 현대의 것으로 만들었다. 연속 6안타가 나오는 동안 점수차는 0:1에서 0:5로 벌어졌고, 승부는 여기서 사실상 굳어졌다.
현대는 6회말 공격과 8회말 공격에서 한 점을 더 내면서 SK의 추격 의지를 완벽하게 봉쇄했다. 그리고 마운드에서는 정민태가 9이닝을 삼진 5개를 곁들이면서 피안타 2개로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었다. 허리 상태가 썩 좋지 않던 정민태는 테이핑을 하고 마운드에 올라 그야말로 절대적인 위력을 과시하면서 SK의 타선을 농락했다. 결국 시리즈 7차전 중요한 경기에서 완봉승을 따낸 정민태의 수훈으로 현대는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4. 우승반지
[image]
현대 유니콘스가 받은 첫 번째 한국 시리즈 우승 반지.[11]
5. 여담
- KBO 한국시리즈 역사상 처음이자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한 연고지를 이어서 쓴 팀끼리의 매치업이었다. 현대 유니콘스는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원년 시즌부터 1999년 시즌까지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이북5도 연고지를 유지했으나 2000년 돌연 서울특별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고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이후 쌍방울 선수단을 받아 재창단한 SK 와이번스는 2000년 시즌부터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12] 삼았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간의 호남 시리즈가 시행될 뻔 했으나, 현대가 극적인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면서 호남 팬들이 매우 아쉬워했었다. 참고로 영남시리즈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간의 경기가 있었다.
- SK가 진출하면서 모든 팀들이 한국시리즈에 최소 한 번씩 올라가게 되었다. 삼성과 두산은 1982년, LG와 KIA는 1983년, 롯데는 1984년, 한화는 1988년, 현대는 1994년. 이 기록은 2007년 현대가 해체되고 우리 히어로즈가 신규 창단되면서 무효가 됐다. 이후 8개 구단 체제에서 우리-서울-넥센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 7차전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7차전 당일날도 표가 남았고, 외야엔 빈 좌석이 많았다. 그 이전 해의 한국시리즈에서 6경기 전체가 매진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실패라 할 수 있다.[13] 구단 측에서는 관중이 적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는 경기장 외야에다 아예 대형 현수막으로 관중석의 절반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양팀 응원단장들은 상대팀의 관중들은 팬이 아니라 단체로 동원된 계열사 직원들이라면서 서로 격렬한 디스전을 연출하였다(…). 그래도 1차전~6차전 까지는 나름대로 관중은 어느 정도 끌었다. 7차전이 너무 결정적(…). 그래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KBO 한국시리즈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 이전 해의 한국시리즈와 그 다음 해의 한국시리즈가 명승부였던 탓에 이래저래 치인 비운의 한국시리즈이기도 하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연고지였던 인천광역시를 떠나 수원시에 눌러앉아 있어 관중 동원이 거의 바닥 수준이었고,[14] SK 와이번스는 창단한 지 만 4년째라서 아직 팬층이 두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전년도 월드컵 열기 등으로 프로야구의 인기가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그나마 이승엽의 56호 홈런 기록에만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인기가 없었던 두 팀은 조명을 거의 받지 못했다.[15]
- 2003년 당시 구단주였던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 등으로 현대그룹의 충격이 컸던지라 이 우승은 나름대로 큰 가치를 지녔다. 실제로 현대 구단은 1승 2패로 기세가 역전당한 4차전 때 문학야구장 3루 덕아웃 옆에 "故 정몽헌 구단주님 선수단에 힘을 주세요!" 라는 플래카드를 붙여놓기도 했다. 현대는 우승 확정일 이틀 후 정몽헌 회장의 묘소에 우승컵을 바쳤다.
- SK의 경우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행복한 2등이라는 광고를 내세웠고 짭짤하게 좀 먹히기도 했다. SK에게 냉랭했던 인천 팬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 계기가 된 시리즈이기도 했다.[16]
-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이후 SK와 넥센-키움 간의 '삼청태현'에 대한 계승[17] 을 두고 두 팀의 팬덤들이 대립할 때 넥센-키움 팬덤이 꺼내드는 마법의 카드 (?)이다. 이에 대해선 삼청태현 문서 참조.
- 동시기 배구계를 호령하던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도 12년 뒤 비슷한 상황을 맞았고, 한 때 1위를 달리며 재현하나 했지만 3위로 미끄러지며 플옵서 광탈한 게 함정. 자세한 건 황현주 문서 참조.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다만 이 당시의 테이핑 투혼이 정민태 본인에게는 독이 됐고 생각보다 빠른 시점에서 기량이 급전직하하게 된다. 실제로 정민태는 다음 시즌인 2004년 7승에 그쳤고 이후 1승도 올리지 못하다가 2008년 시즌 중에 은퇴한다.[2] 준PO 2연승(대 삼성 라이온즈), PO 3연승(대 KIA 타이거즈)으로 전력 소진없이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다.[3] 사실 리빌딩도 엄연히 따지자면 조범현 감독의 전임이었던 강병철 감독의 공이기도 했다. 플레이오프권까지 팀의 기반을 만든건 강병철 감독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조범현 감독도 기본 틀을 되도록 유지하고 무리하지 않는 차원에서 2003 시즌을 치렀다.[4] 그리고 그는 훗날 KIA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끌게 된다.[5] 시즌 중에 손목을 맞아 시즌 아웃이 되었지만, 가까스로 타석에는 들어섰다. 그러나 후유증으로 인해 많이 부진했다.[6] 후일 개명해서 이름이 신승현으로 바뀐다[7] SK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세이브 기록[8] 정규시즌에는 주로 1루수, 간혹 3루수로 출전하였는데 이 날의 2루수 출전은 그야말로 깜짝카드였고, 이 선택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9] 7차전이며,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앞서 평일에 열린 5,6차전보다 더 적은 관중이 입장할 정도로 최악의 흥행을 보인 시리즈임을 증명하였다.[10] 에디 디아즈가 적시에러를 범하기도 했다.[11] 구단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KBO에서 제작했다. 1998년, 2000년 우승 반지는 없다.[12] 연고지 목록에 경기도와 강원도가 빠진 것은 2000년부터 KBO 리그 연고지 제도가 광역 연고제에서 도시 연고제로 변화했기 때문이다.[13] 6차전 당일 대구구장은 만원이었다.[14] 당시 그래도 8팀 가운데 6위였다. 당시 롯데가 8888577이었기 때문에... 한화도 2002~2003년도 시즌 구단의 미비한 지원으로 관중 수가 바닥을 찍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당해년도 신남연 형님께서 한국을 떠났다.[15] 아닌 게 아니라 그 해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까지 이승엽의 홈런 레이스가 절정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정작 그 직후 열린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부터는 축제가 다 끝난 후의 차분한 분위기에 빈 자리도 많았다(…). 그 때문에 역대 최악의 한국시리즈라고 말하는 올드 팬들이 많다. 그냥 포스트 시즌 자체 관중몰이가 안되었다. 그나마 기아만 홈구장에서 잘했는데 하필 승자가 SK라서...[16] 하지만, 올드 SK팬 역시 최악의 한국시리즈라고 깠고 덤으로 현대를 더 욕했다. 허나 이건 변명거리인게 자기 팀도 잘했으면서 현대 탓을 돌리는건 문제가 있다.[17] 객관적으로는 두 팀 모두 삼청태의 후계라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두 팀 모두 전혀 정통성이 없다고 하기도 곤란하기 때문에 대립이 지속되는 것. 다만 정통성이 직접 문제가 될 경우 SK가 늘 밀린다. 하지만 SK 측의 주장은 'SK가 삼청태현의 후계자'라는 것이 아닌 '삼청태현의 후계자는 없다'이다. 당시 현대 야구단이 갖고 있던 빚을 떠안기 싫어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방법을 택한 히어로즈가 족보도 구매하지 않고 V4의 역사만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은 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