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고등학교 야구부
1.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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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창단한 후, 창단 팀이 그렇듯이 초창기에는 상당히 고전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팀이 중흥기를 맞이하면서 성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괜찮은 투수들이 출현[3] 하면서 이뤄진 일인데, 정작 부천고 출신 투수들의 성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사례는 박장희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그들이 고교무대에서는 최고였지만, 그 뒤로는 그렇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4] 1993년 봉황대기 4강의 주역인 고호봉과 이기쁨이 그랬고(고호봉은 그래도 1차지명을 받고 프로로 들어가기라도 했지만 이기쁨은......), 1994년 팀의 에이스로 팀 유일의 메이저대회 결승 진출의 주역이자, 청소년 대표팀의 주축 투수였던 최동진 역시 고교 무대의 혹사 탓에 대학에서 기량이 떨어지면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신고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서 기회를 잡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5]
그리고 2000년 황금사자기에서 깜짝 4강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부천고는 긴 침묵에 들어갔다. 이는 신도시 개발로 인해 야탑고, 성남서고[7] 와 같은 신도시 지역 기반의 야구팀이 증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기도 예선이 치열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팀 전력도 약세를 그리면서[8] 더욱 고전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간간히 우수한 선수들이 출현하는 것을 보면, 계기만 있다면 팀이 다시 살아날 여지는 충분하다.
2015시즌이 끝난 후 이종호 감독이 SK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태평양과 한화에서 투수로 뛰었던 김민태 부천중 감독이 새로 감독을 맡았다.
2018시즌에 전국대회에서 맹활약을 하면서 전창민이 프로 스카우터의 눈길을 끌기 시작하였고,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의 1라운드 지명을 받으면서 2009년 장영석(키움 히어로즈)이후로는 9년만에 1라운더를 배출하였다. 2학년에는 kt wiz의 1차지명 후보인 홍원표도 팀을 이끌고 있다.
2. 출신선수[9]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다만 1994년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바 있다.[2]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3]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경기도 전체에 고등학교 야구 팀이 두 개 뿐(!)이었기 때문에 경기도 전체에서 야구하는 학생들이 모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993년에 입학한 윤ㅇㅇ 선수는 이천시(초등학교), 안산시(중학교)을 거쳐 부천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4] 이 당시에는 잘 하는 학생을 일부러 낙제시켜서 고등학교 무대에서 1년 더 뛰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5] 여담으로 최동진의 동기로 같은 세계 청소년대회 우승 멤버였던 강의권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는 뒤에 KBS N 스포츠의 PD가 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6] 고려대학교 야구부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성남서고, 안산공고 감독을 역임했다. 2019년 사망.[7] 2001년 대통령배 준우승, 2005년 황금사자기 준우승을 기록하며 신흥 강호로 떠올랐으나 2007년 말 홍상욱 감독[6] 이 서울고로 옮기고 몇몇 선수들이 뒤따라 전학하면서 전격적으로 팀을 해체했다.[8] 부천의 중학생 야구선수들이 인천, 경기 지역 고교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9]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10] 2013년 김상현에서 개명.[11] 2010년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9라운드에서 한화에 지명되었으나 강릉영동대를 1년 더 다닌 뒤 성균관대에 편입해 지명권이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