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영(1868)
정순영은 1868년 2월 2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장안면 삼동(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3일 차희식, 차병혁, 차병한, 장제덕, 차인범, 장소진, 이영쇠 등과 함께 수원군 장안면 서포리 조암장터에서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여 2천여 명의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앞세워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그는 선두에 서서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파괴했다. 이에 백낙렬(白樂烈)이 제지하자, "덕수궁도 불타버렸는데 면사무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며 계속 파괴했다. 이후 인근의 쌍봉산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뒤, 다시 군중과 함께 우정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를 끄집어내어 불태우고, 투석으로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경 시위군중과 함께 몽둥이를 가지고 화수리(花.樹里) 경찰 주재소를 습격했다. 이때 일본인 순사 카와바타 토요타로우(川端豊太郞)가 도주하면서 권총을 발사해 시위군중 1명이 맞아 죽자, 그는 차희식, 정서송, 이순모(李順模), 장소진, 차인범, 차병한 등과 함께 추격하여 붙잡은 뒤 쳐 죽였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소요·살인·방화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수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4년 11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정순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