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왕후

 


'''조선 정안왕후 김씨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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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대 왕비
정안왕후 | 定安王后
'''
존호 · 휘호 · 시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1px"온명장의정안왕후
(溫明莊懿定安王后)
<colbgcolor=#bf1400> '''존호'''
순덕(順德)
'''휘호'''
온명장의(溫明莊懿)
'''시호'''
정안왕후(定安王后)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출생'''
1355년 1월 22일 (음력 1월 9일)
'''사망'''
1412년 8월 2일 (음력 6월 25일)
(향년 57세)
조선 한성부 인덕궁
'''능묘'''
후릉(厚陵)
'''재위'''
'''조선 왕세자빈'''
1398년 10월 6일에서 10월 10일 사이 ~ 1398년 10월 14일
(음력 1398년 8월 26일에서 9월 1일 사이 ~ 1398년 9월 5일)
'''조선 왕비'''
1398년 10월 14일 ~ 1400년 11월 28일
(음력 1398년 9월 5일 ~ 1400년 11월 13일)
(2년 1개월 14일 / 775일)

'''조선 왕대비'''
1400년 11월 28일 ~ 1412년 8월 2일
(음력 1400년 11월 13일 ~ 1412년 6월 25일)
(11년 8개월 3일 / 4,26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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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본관'''
경주(慶州)
'''봉작'''
덕빈(德嬪) → 덕비(德妃)
'''종교'''
불교
'''부모'''
부친 월성부원군 김천서
모친 삼한국대부인 담양 이씨
'''형제'''
3남 4녀 중 둘째[2]
'''부군'''
정종
'''자녀'''
없음

1. 개요
2.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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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제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이경)의 왕비. 이성계의 둘째며느리.
월성부원군에 봉해진 김천서의 딸이며 1398년 남편이 세자가 되면서 세자빈이 되고, 이어 국왕으로 즉위하자 덕비에 봉해졌다. 태종이 후궁을 들이는 짓을 하여 원경왕후와 부부싸움을 하자 애처가인 상왕 정종이 못마땅해하며 말하기를 "나는 아들이 없지만 젊은 날의 정으로 사는데 주상은 아들이 많지 않소, 왜 또 장가를 드려하오?" 라고[1] 동생인 태종에게 한 마디 하기도 했는데, 이 일이 정종이 태종에게 한 소리를 한 유일한 사례였다. 사실 태종 입장에서 보면 원경왕후와 금실이 좋으면 민씨 일가의 위세를 찌르고 세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였다. 아들들을 아끼는 태종은 척신과 외척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아내하고 간격을 벌린 이유도 있다. 애처가인 형 정종하고 대비되는 사항.
남편 정종이 시동생인 이방원에게 왕위를 양위하자 순덕왕태비(順德王太妃)라는 존호를 받았다. 야사에 따르면 정종에게 양위를 권한 건 정안왕후라고한다. 정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으며 58세의 나이에 천식으로 사망하였다.
정안왕후는 당대 부드러운 성격에 검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척들과도 무난하게 지냈는데, 여기에 남편 정종 역시 정직하고 바른 성격의 인물로 어찌 보면 이들 부부는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정안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정종의 7명의 후궁들에게서 난 17명의 아들과 8명의 옹주들에게도 잘 대해준 것으로 보인다.
능은 개성시에 있는 후릉이며, 정종과 나란히 묻혀있다. 때문에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찾아갈 방법이 없다.

2. 대중매체


1983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1부 추동궁 마마>: 배우 김해숙.
1996년~1998년 KBS1 <용의 눈물>: 배우 박윤선
그저 정종과 함께 불안정한 정국과 그로 인해 자신들에게 해가 닥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묘사가 대부분. 아무래도 시동생의 위용이 워낙 막강하다보니 왕비임에도 시동생 이방원은 물론 아랫동서 원경왕후 민씨에게도 찍소리 못하고 눌려지내며 산다. 오히려 정종이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자 그나마 안정을 찾고 평안하게 살다가 임종을 맞는다. 나중에 원경왕후는 남편에게 친정이 박살나고 왕비가 어떤 자리인지를 깨닫게 된 뒤, 정안왕후가 병으로 사망하자 그녀의 인품을 칭찬하면서 자신이 정안왕후에게 너무 심하게 행동했음을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참고로 박윤선은 1973년생으로, 아랫동서를 맡은 최명길보다 10살 이상 아래였다. 실제 정안왕후가 원경왕후보다 10살 연상이었음을 고려하면, 나이만 놓고 보자면 반대로 캐스팅이 된 셈(...). 그러나 박윤선이나 최명길의 연기력이 워낙 출중하기에 위화감이 전혀 없다.
한편 박윤선은 후속작 태조 왕건에서 아자개의 딸 대주도금 역을 맡는데, 본작과는 달리 강인한 여걸 역인지라 이미지의 갭이 엄청나다.

[1] 여기서 아들이 없다는건 '''정실 소생의 적자'''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종은 정안왕후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지만, 후궁들 사이에서 많은 서자와 서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