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도금

 


大主刀金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

2. 생애


상주 호족 아자개의 딸인데 그녀의 이름이 전해 내려오는 건 일연삼국유사에 아자개가 4남 1녀를 두었다면서 그 이름을 소개한 덕이다. 하지만 이름만 나왔을 뿐,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하는 것이 없다.
925년에 조물성 전투가 끝나면서 고려후백제가 일시적으로 화친해서 고려에서는 왕건의 사촌동생인 왕신, 후백제에서는 진호를 인질로 보냈는데, 이 때 보낸 진호가 견훤의 외생(外甥)[1]이었고 견훤의 누이는 대주도금 한 명 뿐이기 때문에 진호가 대주도금의 아들이라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름에 포함된 글자 중 대주(大主)는 장공주를 뜻하는 칭호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이름은 '''도금(刀金)'''.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3.1. KBS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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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에서는 태조 왕건에서 등장했다. 배우는 박윤선으로, 1973년생에 1991년 KBS 14기 공채로 데뷔했다. 용의 눈물에서 정종의 비 정안왕후 김씨를 맡았다.[2][3] 아자개의 딸로 상당한 여걸이며, 강직하면서 무예도 출중하다. 첫 등장할 때도 능애가 '몇몇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라고 하는 걸 보면, 전투 경험도 제법 되는 모양. 어머니 남원부인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이복오빠인 견훤과 능애를 잘 따르고, 아자개와의 다툼에서 항상 이복 오빠들의 편이 되어 준다. 다만 남원부인은 "대주가 남복이 없다"고 탄식을 하는 묘사도 있다.[4]
극 중에서는 박술희와 로맨스가 많이 등장한다. 박술희는 조령을 넘어 정찰을 나왔는데, 대주가 이끄는 군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박술희는 대주와 대결을 벌이다가 첫 전투에서 큰 굴욕을 당해 왕건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당했음에도, 대주의 용맹함과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후 박술희는 아자개의 생일 축하사절로 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주 사벌주를 방문하였고, 계속 대주도금에게 연모의 정을 표현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박술희의 애정 공세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박술희에게 분노와 적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이미 내심 박술희를 인정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벌성주의 영애인데다 스스로를 백제제국의 장공주[5]로 여기고 있으니 웬놈이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으면 코웃음치고 무시하면 그만이었을 터, 박술희가 무력, 학식과 인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였기에 심지어 부모의 면전에서 억지로 언성을 높이고 칼을 뽑아 상을 내리쳐가면서까지 스스로를 다잡은 것. 사실 이는 박술희에게보다도 그런 박술희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는 자신에게 분노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적국의 장수와 연을 맺는다는 것은 스스로가 보기에 사벌성의 대장군인 아비와 백제국의 황제인 오라비의 불타는 반목에 기름을 붓는 패륜이었으며, 동시에 백제제국의 장공주로서도 조국에 대한 배신행위였으므로 박술희의 연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드높은 자존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아자개고려로 귀부한 후에는 마음의 갈등을 겪다가 가출[6]하여 비구니가 되는 바람에 결국 박술희와 맺어지지 못하였다. 어차피 당대에 젊은 여성이 계속 사가에서 독신으로 살기도 어렵거니와 혼인을 해도 신랑 후보가 박술희 장군 하나로 기정사실화된 터, 혼인해서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오라비에 대한 죄책감만 늘어날 터라...
계속해서 박술희를 물리치는 딸을 가리켜 견훤의 계모는 아자개에게 '''"쟤가 어떻게 보면 저 완산주에 있는 견훤이와 성질머리가 비슷한 데가 있어요!"'''하고 역성을 내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후 아자개의 고려 귀순 무렵부터는 무장 갑옷 대신 비단옷을 주로 입고 나와 그간 가려져 있었던 여성미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어른들의 결정은 결정이기 때문에 아자개고려로 귀순하는 데까지는 순순히 따라갔으나, 결국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글을 올리고 산으로 떠나간다. 그 글 속에서도 '박술희 장군은 참으로 대장부'라며 인간적인 정을 드러냈으며 나가는 길에 마주친 박술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소를 보여준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대주를 지켜보아 온 박술희 는 이 광경을 보고 감격과 보상의 눈시울을 적실 정도.
그 직후 대주의 글을 본 박술희는 대주가 떠났음을 알았고 미친 듯이 그 길을 따라 내달렸으나, 대주는 이미 말 타고 사라진 지 오래(...). 극 후반부에 박술희가 아자개를 다시 방문하였을 때, 대주의 소식을 슬쩍 묻자 아자개 부부는 표정이 씁쓸해지더니만 느닷없이 집안을 향해 "무상스님, 잠시만 나와 보십시오."라고 누군가를 불렀고, 집밖으로 나온 사람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속세에 내려온 비구니가 된 대주였다. 그 모습을 본 박술희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고, 대주는 짧게 인사만 하고 물러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서로가 연모하는 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이후에는 등장이 없다.[7]
같은 시기에 나온 <태조 왕건> 소설판에서는 대주도금이 결국 박술희와 맺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결혼 후 왕건이 박술희를 호출하여 대주도금이 대청마루에서 자던 박술희를 깨우자, 박술희가 급히 일어나다가 마당으로 굴러떨어지는 개그씬(...)이 등장. 때문에 이미 드라마 방영 초중반에 소설을 읽었던 팬들은 대주도금이 박술희와 결혼할 거라 철썩같이 믿으며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정작 대주도금이 한 순간에 출가해 버리자 그야말로 벙 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마 배우가 인순왕후로 출연한 여인천하의 촬영일정 문제였던 듯. 사실 역사적 고증을 따지면 맺어지지 못한 드라마판 전개가 맞기는 하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견훤도 이 박술희와 대주도금의 로맨스에 대해 알고 있다.[8][9] 그 증거로 견훤이 나중에 고려로 귀순해온 직후 연회에서 견훤이 박술희를 보고 '''"이쪽은 박술희 장군이지? 그래, 하마터면 내 매제(妹弟)가 될 뻔했었지?"'''라고 묻고, 박술희는 "예 상부어른. 그럴 뻔하였사옵니다. 하하하하!"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박술희가 비록 첫 대결시 방심했다지만, 드라마 전체에서도 무력으로 상위에 랭크되는 박술희와 일대일로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에서 대주의 무예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10] 다만 대주가 싸우는 장면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아쉬운 부분[11].
대주도금 역을 맡은 박윤선과 박술희 역을 맡은 김학철의 나이 차가 커서 박술희가 도둑놈 심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극중 왕건이 아역일 때부터 대주도금은 박윤선이 나와서 말 타고 다녔다...[12] 박술희가 왕건보다 나이가 적음을 감안[13]하면 설정상 연상연하 커플일지도...
실제로 장군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극중에서는 삼국유사에 '첫째가 견훤이고 둘째는 능애, 셋째가 용개, 넷째가 보개, 다섯째가 소개이며 딸은 대주도금이었는데 '''모두가 장군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소개했지만, 문제의(?) 삼국유사 원문은 ' 慈之第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尙父萱 二子將軍能哀 三子將軍龍蓋 四子寶蓋 五子將軍小蓋 一女大主刀金[14]' 라고 되어 있다. 즉, 원사료를 일부러 잘못 번역한 셈. 또 설령 '모두가 장군이었다' 라고 되어있다고 치더라도, 일개 호족의 딸은 물론 왕족 여성의 이름도 기록에 남지 않을 정도로 남녀를 차별하던 시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모두' 에 대주도금도 포함되는지는 의문이다.
[1] 현대어로는 생질(甥姪)이며, 누이의 자식을 뜻한다.[2] 사실 이 때문에 용의 눈물을 먼저 봤던 시청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 정안왕후 김씨는 정종과 더불어 시동생손아랫동서에게 치여 사는 유약한 이미지였는데, 같은 배우가 이번에는 담대한 여걸로 나오니...[3] 여인천하에서도 명종의 비 인순왕후 심씨를 맡았다. 다만 등장 자체가 마지막회다 보니 비중이 공기[4] 84화에서 박술희아자개에게 왕건과 충주 유씨의 혼례식에 참석할 것을 권하자 '또 간다?' 라고 하면서 빼꼼히 대주를 보더니 '아!! 누구는 한 번도 못 가고 있는데 3번씩이나 가!?'라고 한다.[5] 황제의 누이[6] 출가가 아니다. 정말로 몰래 집을 나가버렸다.[7] 그녀가 들어가게 된 의 이름은 '''도피안사'''라 한다. 굉장히 노린 듯한 작명(...). 물론 도피안사는 실제로 철원군에서 가장 유명한 절 중 하나다.[8] 사실 극 전반부에 아자개를 찾아갔다가 쫓겨난 능애가 견훤에게 고하는 장면이 있다. 박술희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묻는 견훤에게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는 자라 하옵니다...!' 하는 식으로 보고하는데, 보고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진지하기 이를 데가 없는데 진지한 투로 치는 대사가 저렇다는 게 개그 포인트. 참고로 박술희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능애의 저 대사는 실제 고려사에 나온 대목을 반영한 것이다.[9] 견훤이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견훤이 이러한 정황을 알 수도 있는 묘사가 한 번 나오긴 한다. 조물성 전투에서 왕건 일행이 백제군 진영에서 백제군과 연회를 즐길 때, 애술이 반쯤 농담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네가 대주 아가씨와 인연을 맺을 뻔했다는 소문이 우리 진중에 파다한데 사실인가!?"라고 물어본다. 애술이 박술희와 더 친해지고 싶은 의도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꺼낸 말일 수도 있지만 당시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여기던 고려군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박술희와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고려군 장수들은 울그락불그락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10] 박술희와 싸우기 전, 체면상 먼저 나아갈 수 없었던 박술희가 자신의 부장 둘을 앞서 내보내 대주에게 항복을 권하게끔 했다. 하지만 긴 말이 필요없다 여긴 대주는 단 2~3여 합만에 2명을 모두 베어버리고 뒤이어 나온 박술희와도 엇비슷하게 싸웠다. 이 때 박술희가 대주에게 "견훤의 누이라더니, 검을 쓰는 솜씨가 대단하다"라고 언급한다. 당시 대화나 정황을 봤을 때 더 오래 싸웠으면 박술희가 우위를 점할 수도 있었지만 매복지계를 준비해 놓았던 대주는 싸움을 중단하고 박술희를 유인한다.[11] 다만 검을 뽑는 장면은 한 번 더 나오는데, 아자개가 고려로 귀부할 즈음 이흔암이 왕건과 아자개의 목숨을 노리고 반란을 일으켜 아자개 일행을 기습하는 신. 이 때 대주도금은 '누가 내 아버님의 목숨을 노리느냐...!' 라며 검을 뽑고 반란군에게로 돌진하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던 박술희가 먼저 달려나가 철퇴로 반란군 놈들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날려버리고 그 모습을 본 유금필은 잘 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참고로 박술희는 극 초반에 본인의 입으로 '무쇠 철퇴를 애용한다' 라고 소개했지만 철퇴라는 게 다루기가 어려워서인지 극 중반 이후로는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 때에는 왠일인지 철퇴를 들고 있었다.[12] 다만 왕건과 견훤의 나이차가 10살임을 감안하면 나이차가 크다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대주도금은 견훤 다음가는 동생도 아니고 그 사이에 능애와 용개라는 오빠가 있다.[13]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애당초 의형제를 맺을 때, 유금필과 신숭겸, 박술희는 나이를 따져서 서열을 매겼지만 왕건은 인품이 훌륭하다는 이유로 나이 같은 걸 따지지 않고 큰형님으로 보시기로 했기 때문.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의 박술희는 언제 태어났는지를 알 수 없어, 왕건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불분명하다. 태조 왕건의 박술희 캐릭터 모티브가 된 장비도 유비와 관우보다 연하였다고만 추정할 수 있지 생년이 불분명하다. 하지만 박술희가 궁예의 호위무장이 된게 18세 때였다는 기록이 존재하고 궁예가 세력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굳힌게 894년이기에 이때를 기준으로 하면 왕건과 동갑이 되고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한 901년을 기준으로 하면 왕건보다 나이가 훨씬 적어지기에 박술희는 왕건보다 연하였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14] 한글로 번역하면 이렇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이고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이다. 5남 1녀를 두었는데, 그 장자가 바로 상보 훤이고, 둘째 아들은 장군 능애, 셋째 아들은 장군 용개, 넷째 아들은 보개, 다섯째 아들은 장군 소개이며, 딸은 대주도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