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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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1992년 문화방송 공채 아나운서로 데뷔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오랫동안 진행하며 고운 목소리와 차분한 진행 솜씨로 폭넓은 청취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라디오 세대의 마지막 DJ'로 불린다.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해박함으로 진솔한 진행을 해 수많은 마니아성 애청자를 만들었다. <비디오산책>, <샘이 깊은 물>, <행복한 책읽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이후인 1992년에 MBC에 입사해 4개월만에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진행했는데, 기본 모토가 <최신의 영화 정보를 소개하지 않는다>일 정도로 주류 대중적인 영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다루었고, 당시 국내에선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영화들을 자주 소개하면서 영화 마니아팬들의 필수 감상 라디오 프로그램이 되었다.
당시 영화 관련 정보에 목말라하던 청취자들의 기대와 폭발적인 사랑에 부응하면서, 새벽 1시에 방송을 하는데도 큰 인기를 누렸다. 손석희 아나운서와 함께 유일하게 "노조 결성 거부 각서"에 서명을 거부하고, 강제 철거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내용을 오프닝 멘트로 방송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볼셰비키의 <인터내셔널>을 내보내기도 하는 등, 영화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사회 참여적인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다. MBC 노동조합 여성부장과 업무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방송 현실 개선에도 앞장 섰다.
1992년 11월 2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은 1995년 4월 1일에 팬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방송이 종료되었다. 이후 결혼과 함께 1998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하며, <한국의 영화마니아> 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2003년 10월 21일부터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다시 진행하게 되었으나 2004년 4월 26일에 종방되었고 이때도 팬들의 반대와 항의가 심해 기사화 되기도 했다.
2004년 7월 22일에 자동차 사고로 인해 같은 해 8월 4일 3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 출연
2.1. 라디오 [image]
2.2. TV [image]
3. 사진
4. 자료
-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podty, podbbang)에는 영화음악 방송이 대부분 업로드 되어 있다. 1992년에 시작한 방송이지만, 광고와 농담이 넘치는 요즘의 라디오 방송과는 결이 다른 품격이 있다.[5]
- 정성일 아카이브에 1995년 당시 인터뷰 글이 남아 있어 생전 모습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 1995년 3월 31일 마지막 방송 오프닝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구요
>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 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
>그대만이 떠나간 것이 아닙니다
>꽃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피는 길을 갑니다
>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영화 '흑인 올훼' 중에서 Manha De Carnaval, 카니발의 아침. 오늘 첫 곡으로 띄워 드렸습니다.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시인 구광본 시인의 시 중에서 한 귀절로 오늘 시작했는데요.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싯귀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반대네요. 제가 92년 가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꽃 지는 날 그대와 만났고요. 이제 봄이니까 꽃 피는 날 헤어지는 셈이 되었네요.
>
>오늘 여러분과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요. 사실 지난 2주일 동안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동안 소개해 드리지 못한 엽서, 사연들을 어떻게 다 정리해서 소개해 드릴 수는 없을까, 사실 그 동안 제가 엽서니 편지니 소개 못드린 것에 대해서 늘 죄송하게 생각한 것 아시죠? 그리고 또 MBC 레코드실에 올라가서 하루에 몇 십장씩 음반을 찾아오곤 했었는데요. 이곡도 들려 드리고 싶고 이곡도 들려 드리고 싶고 참 좋은 데, 끝나기 전에 더 좋은 곡을 한 곡이라도 들려 드리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는데, 참 그게 어떻게 보면 오만했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다음에도, 내일도 방송은 계속 되고요. 또 좋은 분이 좋은 곡을 들려 드릴테니까요.
>
>자, 다음 곡 띄워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청하신 곡인데요. 제가 방송을 맡은 후에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서 구해온 앨범이에요. 제가 갖고 있는 앨범인데 '천장지구' 중에서 비안드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짧은 순간의 사랑.
>
>음악-짧은 순간의 사랑 / 광고 / 음악 Midnight Blues 영화 '날이 새면 언제나' 삽입곡.
>
>오늘은 좀 느낌이 다른 곡으로 들어 봤습니다. 쟝끌로드 보렐리가 연주했는데요. 사실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으로 들려 드려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블루스를 좋아하게 만든 곡이었거든요. Midnight Blues. 그 뒤에 이곡을 들은 이후에 블루스, 소울, 재즈 이렇게 흑인음악에 모두 빠져들게 만든 그런 음악이었는데 아, 오늘 제가 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죠. 그런데 어떡하죠? 한 시간을 제 얘기로 사실 꾸몄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면서 그동안 여러분의 이야기만 들어 봤는데 제 영화들, 그러니까 제 인생에 남았던 사연 있는 영화들도 한 번쯤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은임의 내 인생의 영화 다섯 편, 오늘 소개해 드립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구요
>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 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
>그대만이 떠나간 것이 아닙니다
>꽃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피는 길을 갑니다
>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영화 '흑인 올훼' 중에서 Manha De Carnaval, 카니발의 아침. 오늘 첫 곡으로 띄워 드렸습니다.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시인 구광본 시인의 시 중에서 한 귀절로 오늘 시작했는데요.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싯귀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반대네요. 제가 92년 가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꽃 지는 날 그대와 만났고요. 이제 봄이니까 꽃 피는 날 헤어지는 셈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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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과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요. 사실 지난 2주일 동안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동안 소개해 드리지 못한 엽서, 사연들을 어떻게 다 정리해서 소개해 드릴 수는 없을까, 사실 그 동안 제가 엽서니 편지니 소개 못드린 것에 대해서 늘 죄송하게 생각한 것 아시죠? 그리고 또 MBC 레코드실에 올라가서 하루에 몇 십장씩 음반을 찾아오곤 했었는데요. 이곡도 들려 드리고 싶고 이곡도 들려 드리고 싶고 참 좋은 데, 끝나기 전에 더 좋은 곡을 한 곡이라도 들려 드리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는데, 참 그게 어떻게 보면 오만했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다음에도, 내일도 방송은 계속 되고요. 또 좋은 분이 좋은 곡을 들려 드릴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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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 곡 띄워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청하신 곡인데요. 제가 방송을 맡은 후에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서 구해온 앨범이에요. 제가 갖고 있는 앨범인데 '천장지구' 중에서 비안드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짧은 순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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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짧은 순간의 사랑 / 광고 / 음악 Midnight Blues 영화 '날이 새면 언제나' 삽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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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느낌이 다른 곡으로 들어 봤습니다. 쟝끌로드 보렐리가 연주했는데요. 사실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으로 들려 드려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블루스를 좋아하게 만든 곡이었거든요. Midnight Blues. 그 뒤에 이곡을 들은 이후에 블루스, 소울, 재즈 이렇게 흑인음악에 모두 빠져들게 만든 그런 음악이었는데 아, 오늘 제가 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죠. 그런데 어떡하죠? 한 시간을 제 얘기로 사실 꾸몄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면서 그동안 여러분의 이야기만 들어 봤는데 제 영화들, 그러니까 제 인생에 남았던 사연 있는 영화들도 한 번쯤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은임의 내 인생의 영화 다섯 편, 오늘 소개해 드립니다.
- 1995년 4월 1일 마지막 방송 클로징
>이제 마지막 인사를 정말 드려야겠네요. 이 FM 영화음악은 제가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정식으로, 그 전에 TV를 임시로 맡은 것도 있었지만 정식으로 맡은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 FM 영화음악이 처음이었어요. 그 때가 1992년 11월 2일이었는데 덜덜 떨면서 첫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래서 뭔가 특별한 날,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질 때라든지, 아주 예쁜 꽃을 봤을 때, 낮에 길거리에서 특별한 광경을 봤을 때, 책에서 멋진 글을 발견했을 때,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또 어떨 때는 마이크 앞에서 막 숨막힐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었어요 그래서 문득 이거 꼭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
>방송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바로 이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2년 반 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구요. 소중한 인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김창완씨의 노래, '마지막 인사'로 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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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뭔가 특별한 날,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질 때라든지, 아주 예쁜 꽃을 봤을 때, 낮에 길거리에서 특별한 광경을 봤을 때, 책에서 멋진 글을 발견했을 때,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또 어떨 때는 마이크 앞에서 막 숨막힐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었어요 그래서 문득 이거 꼭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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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바로 이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2년 반 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구요. 소중한 인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김창완씨의 노래, '마지막 인사'로 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2003년 10월 22일 <고공 크레인>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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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2004년 4월 26일 마지막 방송 오프닝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 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우리 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 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입니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래니 크래비츠, 'It Ain"t Over "Til It"s Over'.
- 2004년 초 미공개 인터뷰: 정든 님, 정은임
5. 사고
2004년 7월 22일 방송국으로 출근하던 중에 직접 운전하던 렉스턴 차량이 당시 서울 한강대교 남단 서울 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을 지나며 2차로에서 1차로로 차선 변경을 시도했는데, 이때 후륜(後輪)이 공사장 복공판(覆工板) 위로 살짝 올라가면서, 그대로 옆으로 넘어진 채 반대 차선으로 굴러갔다.
흔히 매스컴에서 말하는 전복이 아니라 전도 사고였다.[6] 여기까지만 해도 경상에 그칠 사고였으나, 맞은편에서 오던 스타렉스 차량이 옆으로 누워있던 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약 80km의 속도로 들이받는 2차 사고를 내었다. 이 결과로 그녀가 타고 있던 렉스턴 차량의 지붕이 내려 앉으며 뇌를 심하게 다치게 되었다.
이후 심각한 중상 때문에 수술 후에도 회복하지 못하고 중태에 빠졌고, 뇌부종이 갈수록 심해져 끝내 중증 뇌부종 연수마비(重症 腦浮腫 延髓痲痹)라는 사인(死因)으로 2004년 8월 4일 오후 6시 30분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다. 이 사건은 팬들과 <정.영.음.>을 사랑했던 수많은 애청자들에게 큰 충격과 비통함을 주었다.
8월 6일 MBC 사우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여의도 문화방송 본사 남문광장에서 입사 동기인 이재용 아나운서의 사회로 영결식이 진행되었고, 유족과 MBC 관계자 일동, 여의도 지역 주민, 영화음악 팬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녀가 생전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서 정은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역시 입사 동기인 김지은 아나운서가 조사를 낭독했고, 유족과 임직원의 헌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유족 대표의 감사 인사로 영결식을 마무리 했다. 묘소는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공원에 있다. 이 당시 영화음악의 애청자들이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종종 이곳을 찾아 추억에 잠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기타
> 그동안 제 앞으로 온 엽서나 편지들을 보면요, 종종 제 이름을 틀리게 쓰시는 분들이 있어요. 사실 제 이름이 발음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는 한 어른은요, 저를 정든님이라고 부르세요. 이게 훨씬 부르기도 편하고 정이 간다고요. 정말 어떤 경우엔 별명이 본명보다 더 멋있을때가 많죠. (중략)
>
> 1992년 11월 17일
FM 영화음악 오프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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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1월 17일
FM 영화음악 오프닝 중에서
- 생전의 애칭은 정든님이었다.
- 원래 직설적인 성격이고, 그다지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거나 편하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편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는데 방송국에 입사하기 전에 ‘아주 여러 군데’ 의 회사를 옮겨다녔다고 했다. 방송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에 입사했을 무렵에는 갈등이 많았단다. 하루는 누군가로부터 “정은임은 동그라미와 가위표만 있고 세모 네모가 없어” 라는 말을 듣고 고민에 빠져 선배언니를 붙잡고 물어봤단다. 그 언니의 말이 “세모 네모만 있고 가위표 동그라미는 모르는 사람들 보다는 괜찮은 거지” 였단다. 그 말에 용기를 얻고, 주위에 좋은 선배들을 보면서 열심히 버텨보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 리버 피닉스의 팬이며 1993년에 리버 피닉스가 세상을 떠나자, 이 사실을 전하면서 울먹인 적도 있었다. 2003년 10월 24일 방송에서는 <굿 윌 헌팅>의 엔딩곡으로 유명한 엘리엇 스미스의 자살 소식을 전하면서 연속해서 두 곡을 들려주며 그를 추모한 적이 있다.
- 정성일, 박찬욱 등 당시 유명했던 평론가들이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고정출연하여 영화와 영화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줄임말이 그리 유행하지 않던 시기였는데, 정.영.음.이라는 줄임말 표현을 정성일이 사용하면서 마니아들에게 널리 쓰이게 되었다. 박찬욱은 이후 당시 정.영.음.에 대해 "알던 사람들이 영화감독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상처받은 자존심과 열등감으로 약올라하며 견디던 나를 먹여살려줘서 너무나 고마웠던 프로그램" 이라고 했다. 특히 당시 박찬욱은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영화 데뷔를 하였으나 흥행에 실패하고, 영화 시나리오도 많이 썼지만 영화로 제작이 안 되었거나, 영화사의 요구로 다른 감독에게 연출권을 넘겨준 적도 있을 정도로 영화감독으로서 기회를 못 잡고 있던 힘든 시절이었다. 보통 게스트들이 출연해 말을 하면 DJ들은 대본을 보거나, 눈은 게스트를 보고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녀는 항상 게스트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한 몇 안되는 DJ였다고 회상했다.
- 영화에 조예가 깊은데다 진행을 잘하고, 마니아팬을 양산할만큼 큰 인기를 누리며 사랑을 받았던 방송이다 보니
프로그램의 초대 DJ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부터 있던 방송이었다. 1992년 11월 2일 MBC 가을 개편 때 조일수 아나운서의 후임으로 프로그램 진행을 이어받았다.
- 9호선 지하철 공사로 인해 울퉁불퉁하게 방치됐던 현장 도로가 사고의 원인으로 파악되어, 유족들이 서울시와 지하철 시공사, 고인의 사고 승용차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다.[시사다큐] 정은임 아나운서의 사고 장면과 사고 전말
- 정은임을 추모하는 일련의 행사와 모임들이 동료와 팬들 사이에서 있었고 지금도 간간히 조용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 인터뷰 중에서
- 취미: 영화 보기, 그림 그리기.
- 어린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어린 시절, 신화에 빠져 지냈다. 번역본이 각기 다른 그리스 로마 신화,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및 북유럽 신화 등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 최근 나를 울렸던 책 한권: 최근에는 '울릴만한' 책을 읽고 있지 않다. 일정 기간 관련서 대여섯 권을 한꺼번에 읽는 편인데, 요즈음에는 탈식민주의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몇 달 전에 읽은 책도 괜찮다면 김용택님이 엮은 "시가 내게로 왔다". 이성복, 신경림, 오규원, 박재삼, 조정권, 정호승, 고두현, 황동규 시인… 설익어 시퍼렇게 젊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 좋아하는 저자는?: 신영복 선생님. 우울할때 이 책을 읽어보세요. 조정권 시집 "산정묘지" 시인의 기백과 힘이 전류처럼 몸 속으로 들어올 것.
- 책에 얽힌 나만의 이야기: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아닌데 중학교 때 골방에서 아버지의 책들을 발견한 것. 책장이 누렇게 변하고 가격이 몇백 '환'으로 적혀있는 책들 속에서 젊은 날의 아버지가 적어두신 글들과 밑줄 그어진 부분들을 읽으며 마치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모파상과 생떽쥐베리는 아버지의 책으로 만났다.
[1] 1966년생.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2] 1999년생[3] 라디오 다시 듣기[4] 팬카페 <정은임을 사랑하는 사람들> 현재는 비공개 전환되었으나 가입을 원하면 카페지기에게 메일을 보낸다.[5] 정은임의 아버지가 정은임 추모사업회에 전달한 카세트 테이프를 한 애청자가 2004년부터 3년 반 동안 파일로 변환했고, 모바일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손쉽게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2010년 11월 팟캐스트에 또 다른 애청자가 올린 것이다. 1992년~1995년 방송분 658개와, 2003년~2004년 방송분 196개의 테잎에 녹음한 아버지와, 파일로 변환한 팬과, 팟캐스트에 올린 팬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6] 차량이 옆으로 넘어지는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