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신부)
1935년 11월 21일 ~ 2014년 6월 2일 (향년 79세)
이쪽은 鄭日祐로 배우 정일우와는 한자가 다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톨릭 신부로, 원래 이름은 존 빈센트 데일리(John Vincent Daly)이며 1998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세례명은 사도 요한. '빈민 사목의 대부'로도 불리는 인물이다.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후, 1963년 사목 실습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바실 프라이스 신부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에 파견되어 돌아왔다.[1]
정 신부는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서강대에서 강의하던 1972년 학생들이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이때 정 신부는 "대한아 슬퍼한다. 언론자유 시들어간다."고 쓴 피켓과 상복차림으로 명동에 갔다가 반정부 시위로 잡혀갔다. 경찰이 "왜 그랬냐?"고 물어보자 정 신부는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가 없고 죽어간다." 라고 답했다. 이에 경찰이 "아니요, 한국에는 얼마든지 언론자유가 있어요." 라고 말하자 '''"그럼 내가 왜 여기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이후 개발 논리에 밀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의 삶을 접한 뒤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들을 위한 사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제정구를 만나 일생의 동지가 되었다. 빈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의식 교육을 하고 판자촌 철거 반대 시위를 주도하면서 빈민의 '정신적 아버지'로 자리잡았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았다.
1998년 귀화한 뒤 충청북도 괴산군에 농촌 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농촌 사목에도 힘을 쏟았다.
정일우 신부는 1986년에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제정구 전 의원과 공동 수상했다.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이름 없이 남들을 돕다 2014년 6월 2일 선종하였다. [PBC뉴스] 정일우 신부 선종
정일우 신부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가 만들어져 2017년 10월 26일 개봉되었다. 감독은 송환으로 유명한 김동원 감독. 예전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타계후 어떻게 친구를 알릴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