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캔트렐
Jerry Fulton Cantrell Jr. (1966.03.18 워싱턴 주 타코마 태생)
[image]
앨리스 인 체인스의 기타/백 보컬 담당. 1966년 3월 18일 생으로 앨리스 인 체인스의 모든 음악은 제리 캔트렐에 의해 쓰여졌으며, 솔로로도 활동한 바 있다.
컨트리 음악에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냈고 그러한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정서를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게다가 제리는 그 스스로를 반은 양키고 반은 레드넥이라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리의 호기심을 끈 것은 하드록이었고 10대 중반에 처음 기타를 구입한다. 하지만 17세가 되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악기를 연주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크게 영향을 받은 인물들로는 에이스 프렐리, 토니 아이오미, 앵거스 영, 에디 밴 헤일런을 꼽고 있다.
한편 고교 시절, 州 대항 경연 대회에 자주 참가하던 학교 합창단(choir)의 멤버였고 고학년 때에는 합창단 대표가 되었다. 당시에 대회에 나간 합창단은 국가를 불렀는데 가장 높은 점수를 얻어 우승하게 된다. 제리는 자신이 어두운 음악적 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바로 그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합창단은 14-15세기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아카펠라로 부르곤 했는데 그건 무서운 교회 음악이었다고... 그렇지만 제리의 합창단 교사와 연기 교사 두 사람이 제리가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동기 부여자였다고 한다. 훗날 Facelift 앨범이 골드를 인증받을 당시 제리는 두 선생님 모두에게 골드 레코드를 하나씩 보낸다. Facelift 앨범은 제리의 어머니인 Gloria Jean Cantrell 그리고 절친이었던 앤드류 우드에게 바쳐지는데, 제리가 7세이던 해에 제리의 부모는 이혼하게 되고 제리는 어머니와 살게 되지만 1987년 이른 나이에 Gloria 여사는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에는 약물 중독으로 앤드류 우드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앨리스 인 체인스의 음악적 정체성은 점차 뚜렷해지게 되고 Dirt 앨범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부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앨리스 인 체인스는 스타덤에 오른 이후에 삐걱대기 시작하고 계약대로 음반 발표 기한이 임박해짐에 따라 제리가 AIC의 다음 앨범을 위해 써 두었던 곡들은 어떤 식으로든 발표되어야 했다. 결국 제리 캔트렐은 솔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 것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활동 중에는 음악 외적인 것도 있었는데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톰 크루즈와 대화하는 씬이 있다.
- 정규앨범 -
* Boggy Depot (1998년)
* Degradation Trip (2002년 6월)
* Degradation Trip Volumes 1 & 2 [3] (2002년 11월)
G&L Rampage와 Gibson Les Paul, Mosrite를 쓰고 있다. 2009년에 G&L은 제리 캔트렐 시그너쳐 모델을 내놓았다.
[image]
시애틀 음악 씬에서 앨리스 인 체인스가 두각을 나타내게 된 건 제리의 헤비 메탈 친화 성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렇지만 제리의 음악적 범위는 솔로 데뷔 앨범에서 드러나듯 블루스와 컨트리의 요소까지 머금고 있다. 제리의 기타 플레잉은 타임 시그너쳐뿐 아니라 와우 페달을 독특하게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플레이는 속주와 같은 묘기적인 기교가 아닌 듣는 이의 감성을 내면에서부터 휘저어 각인시키는 블루스적인 필링 혹은 침잠하면서도 매혹적으로 스며드는 정서에 호소하는 성격의 것이다. 무엇보다 제리의 기타 사운드는 "지저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의 톤이라든지 형용하기 어려운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제리는 또 앞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학교 합창단 대표로서 주변의 인정을 받은 경험이 있어선지 보컬에도 나름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본래는 자신의 보컬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가 파트너인 레인 스테일리의 격려로 배킹 보컬을 맡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6년 7월 영국의 하드록/메탈 잡지 메탈 해머 (Metal Hammer)는 제리 캔트렐에게 리프 로드(Riff Lord)의 칭호를 수여한다. 슬래시, 제임스 헷필드, 지미 페이지 같은 아티스트들을 넘어 타이틀을 받았기 때문에 감격했다고 한다. 또한 기타 월드 (Guitar World)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100대 헤비 메탈 기타리스트(100 Greatest Heavy Metal Guitarists of all time)에서 38위로 랭크되고 최근에 기타 월드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대 기타리스트(10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에는 37위에 오르게 된다.
1. 개요
[image]
앨리스 인 체인스의 기타/백 보컬 담당. 1966년 3월 18일 생으로 앨리스 인 체인스의 모든 음악은 제리 캔트렐에 의해 쓰여졌으며, 솔로로도 활동한 바 있다.
2. 바이오그래피
컨트리 음악에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냈고 그러한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정서를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게다가 제리는 그 스스로를 반은 양키고 반은 레드넥이라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리의 호기심을 끈 것은 하드록이었고 10대 중반에 처음 기타를 구입한다. 하지만 17세가 되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악기를 연주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크게 영향을 받은 인물들로는 에이스 프렐리, 토니 아이오미, 앵거스 영, 에디 밴 헤일런을 꼽고 있다.
한편 고교 시절, 州 대항 경연 대회에 자주 참가하던 학교 합창단(choir)의 멤버였고 고학년 때에는 합창단 대표가 되었다. 당시에 대회에 나간 합창단은 국가를 불렀는데 가장 높은 점수를 얻어 우승하게 된다. 제리는 자신이 어두운 음악적 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바로 그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합창단은 14-15세기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아카펠라로 부르곤 했는데 그건 무서운 교회 음악이었다고... 그렇지만 제리의 합창단 교사와 연기 교사 두 사람이 제리가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동기 부여자였다고 한다. 훗날 Facelift 앨범이 골드를 인증받을 당시 제리는 두 선생님 모두에게 골드 레코드를 하나씩 보낸다. Facelift 앨범은 제리의 어머니인 Gloria Jean Cantrell 그리고 절친이었던 앤드류 우드에게 바쳐지는데, 제리가 7세이던 해에 제리의 부모는 이혼하게 되고 제리는 어머니와 살게 되지만 1987년 이른 나이에 Gloria 여사는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에는 약물 중독으로 앤드류 우드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앨리스 인 체인스의 음악적 정체성은 점차 뚜렷해지게 되고 Dirt 앨범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부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앨리스 인 체인스는 스타덤에 오른 이후에 삐걱대기 시작하고 계약대로 음반 발표 기한이 임박해짐에 따라 제리가 AIC의 다음 앨범을 위해 써 두었던 곡들은 어떤 식으로든 발표되어야 했다. 결국 제리 캔트렐은 솔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 것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활동 중에는 음악 외적인 것도 있었는데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톰 크루즈와 대화하는 씬이 있다.
3. 디스코그래피 [2]
- 정규앨범 -
* Boggy Depot (1998년)
* Degradation Trip (2002년 6월)
* Degradation Trip Volumes 1 & 2 [3] (2002년 11월)
4. 장비
G&L Rampage와 Gibson Les Paul, Mosrite를 쓰고 있다. 2009년에 G&L은 제리 캔트렐 시그너쳐 모델을 내놓았다.
[image]
5. 스타일
시애틀 음악 씬에서 앨리스 인 체인스가 두각을 나타내게 된 건 제리의 헤비 메탈 친화 성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렇지만 제리의 음악적 범위는 솔로 데뷔 앨범에서 드러나듯 블루스와 컨트리의 요소까지 머금고 있다. 제리의 기타 플레잉은 타임 시그너쳐뿐 아니라 와우 페달을 독특하게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플레이는 속주와 같은 묘기적인 기교가 아닌 듣는 이의 감성을 내면에서부터 휘저어 각인시키는 블루스적인 필링 혹은 침잠하면서도 매혹적으로 스며드는 정서에 호소하는 성격의 것이다. 무엇보다 제리의 기타 사운드는 "지저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의 톤이라든지 형용하기 어려운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제리는 또 앞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학교 합창단 대표로서 주변의 인정을 받은 경험이 있어선지 보컬에도 나름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본래는 자신의 보컬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가 파트너인 레인 스테일리의 격려로 배킹 보컬을 맡기 시작했다고 한다.
6. 공로의 인정 (Recognition)
2006년 7월 영국의 하드록/메탈 잡지 메탈 해머 (Metal Hammer)는 제리 캔트렐에게 리프 로드(Riff Lord)의 칭호를 수여한다. 슬래시, 제임스 헷필드, 지미 페이지 같은 아티스트들을 넘어 타이틀을 받았기 때문에 감격했다고 한다. 또한 기타 월드 (Guitar World)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100대 헤비 메탈 기타리스트(100 Greatest Heavy Metal Guitarists of all time)에서 38위로 랭크되고 최근에 기타 월드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대 기타리스트(10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에는 37위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