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래시(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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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마크인 파마 머리와 탑햇

'''Half Man, Half Beast, The man called Slash''' [1]

1. 소개
2. 생애
3. 건즈 앤 로지스 이후
3.1. 스네이크핏
3.2. 벨벳 리볼버
3.3. 솔로
3.4. 내한 공연
4. 건즈 앤 로지스 재합류
5. 참여 음반 목록
5.1. 건즈 앤 로지스
5.2. 스네이크핏
5.3. 벨벳 리볼버
5.4. 솔로
6. 음악
6.1. 연주
6.2. 음반
7. 악기
8. 여담


1. 소개


'''Slash'''
1965년 7월 23일 출생, 잉글랜드 런던 햄프스티드 출신의 기타리스트이다. 건즈 앤 로지스[2]벨벳 리볼버[3]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하다. 본명은 사울 허드슨(Saul Hudson).

2. 생애


햄프스티드에서 태어나, 스토크온트렌트에서 생활했다.
그의 가족은 슬래시가 5세가 되었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 앤젤레스으로 이사한다. [4] 그의 어머니는 패션 디자이너로 데이빗 보위 등의 의상을 담당했고, 그의 아버지는 디자이너로 닐 영, 조니 미첼등의 앨범 자켓을 작업했다.
1974년에는 부모의 이혼으로 그는 어머니와 살기를 선택하였다. 어머니가 출장을 떠날 때 마다 스토크온트렌트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종종 살았는데 슬래시란 별명은 이 시기에 얻었다고 한다. 가끔은 어머니가 일하는 장소에 따라가 영화/음악 스타들을 만나기도 했다. 실제로 10대 시절 마이클 솅커 그룹의 뮤직비디오에 출현하기도 했다. [5] 슬래시의 색깔은 영국 속의 흑인, 미국 속의 영국인, 예술가인 부모님 그리고 이혼, 영국과 미국에서의 생활 등의 아래서 형성되었다.
1979년에 '''스티븐 애들러'''를 만나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스티븐 애들러'''가 기타를 쳤기 때문에 슬래시는 베이스를 배우기로 한다. 하지만 음악 선생님이 크림과 레드 제플린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저게 내가 해야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 BMX 챔피언이던 슬래시는 자전거를 버리고 기타를 12시간씩 치기 시작한다.
1981년에는 'Tidus Sloan'라는 밴드를 했었고, 1983년에 드디어 모터헤드의 노래 Road Crew에서 이름을 딴 '로드 크루'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친구 '''스티븐 애들러'''를 드럼으로 영입하고, 신문 광고를 통해 '''더프 맥케이건'''을 영입한다. 이때 Rocket Queen의 주요 뼈대를 작곡했다. 다만, 보컬을 구하지 못하여 밴드는 해산한다.
1982년에는 '런던'이라는 밴드에서 리듬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그 '''액슬 로즈'''와 '''이지 스트래들린'''의 '헐리웃 로즈'는 기타리스트와 드러머를 구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스티븐 애들러'''와 슬래시가 들어갔으나, 몇개월 후 밴드는 깨진다. 졸지에 무직 신세가 된 슬래시는 리드 기타를 구하는 '포이즌'의 오디션을 보게 된다. 당시 '포이즌'은 LA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 중 하나로 완성된 곡도 많은 준비된 밴드였다. 오디션에 슬래시는 최종 3인까지 남게 되었으나, 결국 CC데빌에 밀려 탈락. 그 다음 해인 1986년 '포이즌'은 바로 데뷔하고 빌보드 200의 3위까지 오르게 된다. [6] [7] 그 사이 액슬 로즈와 이지 스트래들린의 '헐리웃 로즈'는 트레이시 건즈의 'L.A. GUNS'와 결합하여 'GUNS N' ROSES'가 되었다. 하지만 곧 액슬 로즈와 이지 스트래들린만 남게 된다. [8] 그들은 '''더프 맥케이건''', 슬래시, 스티븐 애들러를 영입한다.
1985년 9월, '''건즈 앤 로지스'''에 합류한 슬래시는 '헬'과 함께한 시간을 뒤로하고 1987년에 데뷔 했고, 록과 팝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다. '포이즌' 오디션 탈락이 신의 한수.
1987년부터 1993년까지 건즈와 5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액슬 로즈와의 대립, 음악성의 문제, 멤버 교체 불만 등으로 1996년 탈퇴한다.

3. 건즈 앤 로지스 이후



3.1. 스네이크핏


건즈 탈퇴 1년 전인 1995년에 첫 솔로 커리어 'Slash's Snakepit'이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1995년에 첫번째 앨범 'It's Five O'Clock Somewhere'을 발매했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묵직한 서던록 사운드와 경쾌한 하드록 사운드의 조합이 일품이다. 보컬은 Sextus 밴드의 Eric Dover라는 사람이다. 그런지 풍 보컬이다.
1996 ~ 1998년에는 '슬래시의 블루스볼'이라는 프로젝트 활동을 한다. 앨범 녹음은 하지 않았다.
2000년에는 두번째 앨범 'Ain't Life Grand'을 발매했다. 1집에 비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블루스, 하드 록은 물론, 그런지, 재즈, 레게 등 다양한 조합을 추구한 앨범. 1집과 슬래시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교체되었다. 보컬로는 로드 잭슨이라는 흑인 멤버로 슬래시와 함께한 보컬 중 가장 묵직한 소리를 들려준다.
2001년에 내한 공연이 예정되었었으나, 취소되었다.
스네이크핏은 2002년까지 활동하였다.

3.2. 벨벳 리볼버


2003년에 건즈 앤 로지스의 옛 동료 더프 맥케이건, 맷 소럼, 스톤 템플 파일럿츠의 보컬리스트 스캇 웨일랜드 그리고 슬래시의 동창 데이브 커쉬너로 결성되었다.
2004년에 첫 앨범 Contraband. 2007년, 두번째 앨범 Libertad를 발매하였다.
2008년에 스캇 웨일랜드의 탈퇴로 활동이 중지되었다.

3.3. 솔로


2010년 3월 데뷔 23년 만에 첫번째 솔로 앨범 'Slash'를 발매했는데 거물 뮤지션들이 녹음에 다수 참여했다. 액슬 로즈를 제외한 건즈 1집의 라인업 -더프 맥케이건, 스티븐 애들러, 이지 스트래들린- 멤버들과 퍼기(블랙 아이드 피스), 앨리스 쿠퍼, 키드 락, 이나바 코시(B'z), 레미 킬미스터(호크윈드, 모터헤드), 오지 오스본, 이기 팝, 데이브 그롤(너바나, 푸 파이터즈), 플리(레드 핫 칠리 페퍼스), 크리스 코넬(사운드가든, 오디오슬레이브, 마일즈 케네디(얼터 브릿지) 등 이다.
2012년 5월에 두번째 솔로 앨범인 'Apocalyptic Love'를 발매하였다. 여러 뮤지션이 참여한 첫번째 솔로 앨범과 달리, 마일즈 케네디만 메인 보컬을 전담하였다. 'Apocalyptic Love'앨범의 여러 곡들과, 동명 타이틀 곡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여전히 S급 리프 메이커라는 수식어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9월 세번째 솔로앨범인 'World On Fire'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두번째 솔로앨범인 'Apocalyptic Love'와 마찬가지로 마일즈 케네디가 보컬을 전담하였다.
2018년 9월 네번째 앨범이 발매되었다. 새 앨범명은 'Living The Dream'이다. 기존의 슬래시 스타일과 딱히 다르지 않으며 하드록과 그런지가 적절히 섞인 대중성있는 리프와 멜로디. 여전히 마일즈 케네디가 참여했다. 그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가창력도 여전하다.

3.4. 내한 공연


2011년 3월 20일에 첫번째 내한 공연을 마쳤다. (featuring. myles kennedy) 평소에 잘 하지 않는 백보컬을 스스로 하며 매우 즐기는 것을 보여주고 트위터에도 호평. 특선 BBQ치킨 요리도 맛있었다고 전했다.
2013년 5월 9일에 두번째 내한 공연을 마쳤다. (featuring. myles kennedy) 공연 중에 웃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여러 종류의 피크를 뿌려가며 즐겁게 공연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일스 케네디의 대량 피크 투척. 월드 투어로 바빴던건지 트위터에 별 이야기는 안했지만, 살기가 넘치는 관중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실은 이 당시 북한의 도발로 우리나라에 대한 세계여론이 부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남한에 내한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같이 오기로 한 데프톤즈는 스케줄을 취소하였다. [9]
2019년 1월 13일에 세번째 내한 공연을 마쳤다. (featuring. myles kennedy) 2018년의 새 앨범 투어로 과거 GN’R노래나 Snakepit시절 노래를 자제하고 비교적 최근 노래로 세트 리스트를 구성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이번 서울 공연에서 청중들의 다소 아쉬운 반응이 들렸다.
공연 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들러 공룡뼈를 구경했다. 슬래쉬는 평소에 공룡이나 호러캐릭터들을 통해 음악적 영감을 받는다고 하였다.

4. 건즈 앤 로지스 재합류


건즈 앤 로지스는 보컬이자 리더격이였던 액슬 로즈와의 나머지 맴버들간의 불화가 극도로 가열된 끝에 1990년대 중반이 되갈 즈음 액슬 로즈와 디지 리드를 뺀 나머지 맴버들의 탈퇴로 사실상 공중분해 되었다.
이후 액슬 로즈가 소송에서 이기며 건즈 앤 로지스의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다른 맴버들을 영입해 뉴 건즈 앤 로지스를 활동했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게다가 액슬 로즈와 슬래시의 사이는 극도로 안 좋아 만나면 가만 안두겠다는 말이 나올만큼 험악했고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다면 재결성은 없을거라는 둥.. 슬래시는 암적인 존재라는 둥...),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건즈 앤 로지스가 헌액될 때도 원년 맴버들은 다 모였지만, '''액슬 로즈'''는 끝내 참석을 거부하였다.[후에]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 건즈 앤 로지스의 부활을 바라는 팬들은 언젠가는 기적이 일어날거라는 희망을 품었는데...
2016년 초에 액슬 로즈, 슬래시, 더프 맥케이건이 극적으로 화해를 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리고 드디어 더프 맥케이건, 슬래시, 액슬 로즈가 뭉쳐서 건즈 앤 로지스가 부활한다. Coachella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출격하였다. 공연당시 영상. 이후엔 전미 스타디움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12월에 재결합 이후 북미 투어를 돌고 남미 투어를 돌고 있다. 드러머 스티븐 애들러나 맷 소럼은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스티븐 애들러는 몇몇 공연에서 한두 곡 연주를 하러 나온 적이 있다) 투어 이름은 "Not in This Lifetime Tour." 과거 액슬 로즈가 건스 앤 로지스의 재결합을 언제 다시 볼 수 있냐는 질문에 'Not in this lifetime.' 이라고 답한 일화에서 유래한 듯.

5. 참여 음반 목록



5.1. 건즈 앤 로지스



5.2. 스네이크핏


  • It's Five O'Clock Somewhere (1995)
  • Ain't Life Grand (2000)

5.3. 벨벳 리볼버


  • Contraband (2004)
  • Libertad (2007)

5.4. 솔로


  • Slash (2010)
  • Apocalyptic Love (2012)
  • World On Fire (2014)
  • Living The Dream (2018)
솔로밴드의 정식 명칭은 'Slash Featuring Myles Kennedy And Conspirators' 이다.
멤버구성은 리드기타 Slash, 보컬 Myles Kennedy, 베이스 Todd 'Dammit' Kerns, 드러머 Brent Fitz, 리듬기타 Frank Sidoris로 구성되어있다.

6. 음악



6.1. 연주


기술적으로 새로운 부분은 없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필링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애드리브에 뛰어나다. 선배인 마이클 솅커의 영향을 받았다.[10] 기본적으로는 블루스에 기반한 정통파 록 기타리스트이며, (특히1980년대 건즈 시절) 라이브를 보면 틀릴 듯 말 듯 불안한 솔로를 보여줄 때가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곡들을 썼고 위대한 멜로디들을 만들어냈다.
건스 앤 로지스에 그의 후임으로 들어왔던 버킷헤드가 외계인급 테크닉을 갖춘 'Top Guitar Shredder'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가끔 테크닉을 가지고 슬래시를 폄하하는 자들이 [11] 있는데, 고음으로 보컬의 질이 결정되는게 아니 듯 테크닉만으로 평가하는 건 지양하자. 같은 리프를 연주하더라도 연주자에 따라서 차이가 확실하게 구분되는 기타리스트들이 있는데 슬래시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특유의 톤과 블루지한 연주로 리프 한 소절로도 슬래시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애초에 다양한 특징과 연주 방식이 만무하는 록 기타리스트의 세계에서, 서로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버킷헤드는 독특한 화성 진행과, 메시앙 등의 현대 클래식에서 대표적으로 많이 보이는 '조의 불분명함'을 이용한 연주 등 아방가르드 및 인더스트리얼 계열에 적합한 기교에 능하고 [12], 슬래시는 리프 메이킹에 있어서 최고 중 한명으로 꼽힌다. Welcome to the Jungle이나 Sweet child O' Mine의 리프는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블랙 사바스의 Paranoid, Iron Man 못지 않게 유명하고, 기타를 잡는다면 한번쯤은 듣게 되고 치게 된다. 연주 역시 1970년대 하드록블루스록의 풍미가 느껴지면서, 고루한 테크닉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없는 신선함 역시 지닌다. 즉, 흔해빠진 펜타토닉 솔로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멜로디의 유려한 진행에 있다.
평소 연습 부족인지, 라이브 때 레코딩에 꽤나 못 미치는 서툰 연주를 보여줄 때가 많다는 건 사실이다. 이것도 반만 맞는 것은 건즈시절 라이브가 워낙 유명한데, 그때 기준으로는 사실이고 지금에서는 서툴다기보단 삑사리가 종종 나는 편. 정교한 플레이어는 아니다. 사실 이런 논란에는 음향도 한 몫 하는데, 일부 라이브들에서 EQ 조절에 실패하기라도 한건지 날카로운 드라이브 톤에 어울리지 않는, 미들을 과도하게 많이 올린 펑퍼짐한 사운드를 낼 때가 많다. [13] 원래도 톤 컨셉이 미들을 강조하는 편이긴 한데, 너무 과해서 기름진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잭 와일드도 인터뷰에서 슬래시를 가리켜 "그리고 슬래시가 나왔지. 슬래시가 뭐 특별한 거라도 했나? 그냥 나와서 블루지한 솔로를 연주했을 뿐이야. 그런데 사람들이 환장했지."라며 기타 플레이는 테크닉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임을 역설한 바 있다. [14]
현재 예전에 비해 연주 스타일이 다소 변화했다. 2010년도 전후로 바뀐 감이 있는데 예전과 달리 그 무거운 레스폴로 현란한 속주도 즐겨한다. 보컬과 달리 악기는 꾸준히 다루면 실력이 향상 되는 이유인지 테크닉적인 면이 많이 늘었다. (보컬보다 덜 할뿐 당연히 연주자도 늙으면 체력과 민첩함이 떨어지므로 한계가 있다) 물론 테크닉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1980년대 뮤지션들이 새로운 테크닉 연마에 게으르고 연습 부족으로 라이브가 형편 없어지는데, 슬래시는 오히려 반대라는 점이 놀랍다.

6.2. 음반


건즈 앤 로지스에서 결국 곡을 잘 만들고 이끌어 낸 것은 슬래시가 아니라 이지 스트래들린이었다. 슬래시는 여기에 끝내주는 리프와 솔로를 얹어냈고, 그래서 건즈 앤 로지스를 떠난 이후의 슬래시는 예전만큼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다. [15] 냉정하게 말해서 테크닉은 A급 세션이 되기도 힘들고, 톤은 굉장히 올드하다. 더해서 건즈 이후의 행보에 이름값에 비해 보여준게 너무 부실했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다만 슬래시의 솔로 이후 행보는 상당히 나아지는 편이고, 음악성을 단지 '상업성'의 논리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자신의 타이틀격 밴드를 떠난데다가 음악도 많이 달라졌는데 당연히 올드 팬들의 실망 역시 따를 것이다. 그래도 충분히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편이다. 그나마 새로운 음악을 팬들에게 꾸준히 선보인다는 점에서 현 건즈 앤 로지스보다 낫다고 볼 수도 있다. 마일스 케네디와의 투어도 하면서, 2집 낸 지 1년만에 3집을 내는 등, 나이는 들었어도 활동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또 담배, 술, 마약도 끊으면서 라이브 때 컨디션은 어느 때 보다도 좋다. 건즈 앤 로지스가 멤버 교체로 원성을 사고 액슬 로즈의 급 노화 [16] 로 라이브가 부실해진 것에 비하면 오히려 승승장구라고 볼 수도…

사실 지금 솔로 활동에서 보여주는 음악은 전성기 때 건즈 앤 로지스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헤비메탈에 근간을 둔다는 점은 여전히 건즈의 영향이 느껴지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 얼터너티브 록의 성향이 곡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기량에서 묻어나는 특유의 올드한 블루스나 원초적인 하드록 냄새는, 흔히 아이돌 타이틀을 내세우는 양산형 얼터 밴드들과는 차별화가 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일부 건즈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음악 성향이 변화하는 것은, 한없이 성장하는 음악가의 인생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응원을 해주자. [17]
액슬 로즈와 슬래시의 비교라면, 클래식 건즈의 해체 이후 현재 (2019년) 까지 액슬 로즈는 Chinese Democracy 1장, 슬래시는 스네이크핏 2장, 벨벳 리볼버 2장, 솔로앨범 4장을 발매했다. 여기서 Chinese Democracy 1장이 슬래시의 8장의 앨범을 압도하는가 하면 그것도 의문이다. 당장 벨벳 리볼버만해도 그래미에서 '베스트 하드락 퍼포먼스'를 수상했기 때문에.
슬래시라는 록뮤지션/기타리스트 자체의 행보라면, 현재의 록 역사에 손에 꼽히는 기타리스트로서의 슬래시가 1993년 이후, 26년의 넘는 활동 중 보여준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해 볼수도 있을것이다. 그럼 1993년부터 슬래시보다 종합적으로 뛰어난 기타리스트는 누가 얼마나 있었는가? 슬래시 탓보다는 그냥 록씬이 무너지고, 기타히어로가 나오질 않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슬래시가 리스트 밖의 기타리스트 인 것은 아니지만, 터무니 없이 고평가되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슬래시가 어쩌면 운이 좋았다 라고 할 수도, 아니면 슬래시가 성실했다 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팬들은 슬래시의 프로듀싱 능력에 의문을 가지며, 슬래시를 프리마돈나 스타일의 보컬리스트가 곁에 있어야만 완성되는 타입의 기타리스트이자 뮤지션으로 평한다. 이러한 슬래시의 한계는 건즈 시절부터 벨벳 리볼버, 솔로 앨범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앨범 내 곡들 간 퀄리티 편차가 커 밀도 높은 명반은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게 부정적인 팬들의 평가다. 따라서 이들 중 대다수는 액슬 로즈와 슬래시의 조합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7. 악기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 씬 리지의 게리 무어,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잭 와일드와 같이 Gibson Les Paul하면 딱 떠오르는 인물로 깁슨 레스폴 모델을 애용한다.
그 이외로 사용하는 악기는 B.C. Rich의 모킹버드 [18] 와 깁슨 ES-335를 사용하는 외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19] [20] 몇십 년 간 Gibson Les Paul만을 사용한 대표적인 레스폴 애용자로서, 현재는 깁슨 및 Epiphone에 그의 시그니쳐 모델이 나와 있다. [21] 여담이지만, 가왕 조용필이 이 모델의 소유자이다. 1998 ~ 1999년 콘서트와 방송에서 이 시그니쳐로 기타 연주를 했고, 지금도 보유 중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시그니쳐 모델이 다 그렇듯이 가격은 꽤나 고가이다. Gibson에서 출시한 Appetite for Destruction 모델은 8000달러를 호가했다. 현재 단종돼서 해외 중고 사이트에서 가끔 볼 수 있는데, 가격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평범한 레스폴 유저라면 슬래시 시그니쳐 픽업을 따로 사서 쓰는게 가격 대 성능비가 낫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2012년 3월 11일에 방영된 탑기어 UK 시즌18 7번째 에피소드의 'Star in a Reasonably Priced Car' 코너에 출연하였다. MC인 제레미 클락슨과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현재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Aston Martin V12 vantage'라고 답했다. 참고로 탑기어 트랙에서의 랩 타입은 1분 49초 1 (w). 특히 엔딩 부분에서 탑기어의 공식 테마곡인 'Jessica' [22] 를 직접 연주하며 시즌 18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주었다.

8. 여담


  • 10대 시절에는 마이클 솅커를 카피하고 잭슨과 비씨리치 같은 메탈기타를 주로 쓰는 성향을 보였다. 건즈 앤 로지스 이후로 슬래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블루스적 색채를 띄기 시작한다. 슬래시의 멜로디 라인은 미국적인 블루스와 거리가 있는데, 영국에서 보낸 10대 시절에 들었던 글램록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특유의 톤 역시 믹 론슨이나 믹 랄프스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 말로는 존경하는 인물로 언급된 기타리스트는 조 페리, 지미 페이지, 믹 타일러, 로리 갤러거, 지미 헨드릭스 등이다. [23]
  • 그는 혼혈로 아버지가 백인, 어머니가 흑인이다.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남동생 Albion Hudson이 있다. 동생은 슬래시와 달리 혼혈 느낌이 나지 않는 흑인, 외탁이다.
  • 뽀글머리에 탑 햇이 특징이다. 티렉스마크 볼란을 오마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24]
  • 내성적인 성격이며, 탑 햇에 선글라스, 장발 곱슬머리 등의 패션은 자신의 성격을 가리기 위한 용도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 1987년 '제트보이'의 베이시스트인 토드 크루가 슬래시의 호텔에서 헤로인 과다로 사망한 사건이 있다. 슬래시가 토드 크루에게 마약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사망 당시 현장에 없었다고 한다. 뒤늦게 발견하여 응급처리를 하고 911에 신고했다고. 하지만 모든 사건이 그렇듯 다른 제트보이의 멤버는 의혹을 갖고 있다.
  • 건즈 앤 로지즈를 탈퇴한 후에도 인기는 여전하여, 한때 마이클 잭슨과 함께 투어를 돌기도 했다. [25] 공연 뿐 아니라 스티브 루카서에디 밴 헤일런처럼 레코딩에도 참여했다. [26]
  • 건즈 앤 로지즈의 명곡인 Sweet Child O' Mine, November Rain 등도 언제나 록 사상 기타솔로가 멋있는 곡 투표에서 항상 상위에 랭크인 되곤 한다. 특히 November Rain 뮤비에서 교회에서 나와 연주하는 기타 솔로 씬은 안티들도 인정하는 간지 폭풍 씬. [27] November Rain과 같은 액슬 로즈의 대서사시 Estranged에서도 슬래시의 기타솔로는 진가를 발휘한다. [28] [29]
  • 쫀득한 톤과 탁월한 그루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삘 충만한 연주와 애드립, 특유의 한껏 내린 레스폴을 치는 포즈가 인상적이다. 유명 록 음악 잡지에서 멋진 기타리스트 투표에 단골로 1위을 가져갔다. [30] [31] [32]
  • 2015년 아내와 이혼했다. 판결은 74억원 지급 및 생활비 매 월 1억 원, 양육비 매달 4000만 원 그리고 2036년까지 수익의 1.8%를 받는 조건이다. 그나마 20억 상당의 기타 컬렉션은 슬래시가 가진다.
  • 2017년도부터 액슬 로즈의 첫 부인인 Erin Everly의 룸메이트였던 Meegan Hodges와 연인 관계를 갖고 있다. 슬래시와 Meegan은 1980년대부터 알던 사이이며 잠깐 연인 관계 였다가 거진 30년만의 재결합인 것. 그녀도 유명 음악 PD인 Mark Knight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력이 있다.
  • 슬하 2남이 있다. 장남 London Emilio Hudson (2002년 생), 차남 Cash Anthony Hudson (2005년 생). 장남인 런던 허드슨은 드러머로 뮤지션의 길을 걷는 중이다.
  • 운동 신경이 좋다. 무대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하거나, 계단에서 BMX를 탄다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있다.[33][34]
  • 애완동물로 을 키운다. 이 뱀은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본인이 뱀띠이다.
  • 2001년, 급성 심부전 등의 건강 이상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으며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쓰러져서 심정지까지 왔었지만 다행히 회복하고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심장에 제세동기를 이식한 뒤로 술과 마약을 끊었고, 어머니가 폐암으로 사망한 이후 담배도 끊었다. 젊은 시절 보여준 담배 물고 솔로잉을 하는 슬래시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는 셈.[35]
  • 그의 인스타그램은 야짤과 혐짤, 동료 뮤지션 및 유명 인사에 대한 생일 축하와 추모 등으로 가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슬래쉬는 인스타그램은 본인의 자위용도라며 밝혔다.


[1] 건즈 앤 로지스 초창기 시절. 공연 중 '''액슬 로즈'''가 슬래시를 소개하며.[2] 후술하겠지만, 20년도 넘게 건즈의 멤버가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3] 2012년 이후에는 활동이 없으니 사실 상 해체[4] 의외로 미국 국적은 30대에 들어선 이후인 1996년에 취득했다.[5] #[6] 만일 슬래시가 오디션에 성공했다면 '포이즌'의 데뷔 앨범 자켓에서 곱게 메이크업 한 슬래시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7] 이 일화를 가지고 동시대에 LA 클럽씬에서 활동하던 JETBOY의 멤버 빌리는 슬래시가 항상 포이즌 류의 글램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그 싫어하는 사람이 립스틱 바르고 '포이즌'에 오디션을 보냐며 모순 덩어리라고 비난했다. 슬래시는 훗날 회상하길 "'포이즌'은 싫었지만 성공하고 싶은 야심이 있었기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라고 말했다.[8] 트레이시 건즈는 건즈 앤 로지스를 탈퇴한 뒤 다시 'L.A. GUNS'를 결성한다.[9] 데프톤즈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멤버의 죽음을 앞둔 터였기도 해서…[후에] 액슬이 회고하면서 말하기로는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참석하려고 준비를 하면서 옛 동료들에게 이를 알리던 도중, 스티븐 애들러에게 슬래시도 참석한다는 말을 듣자 마자 참석을 거부해버렸다고...[10] 마이클 솅커 역시 기술적인 특별한 면은 없지만, 자신의 필링과 스타일 및 애드리브에 뛰어나서, 앨범보단 무대 위에서 더 돋보였던 인물이다.[11] 대표적으로 잉베이 말름스틴 같은 기타리스트들.[12] 증4도 등의, 화성적으로 불안한 음도를 계속 쌓는다던지.[13] 두 번째 내한때도 좁고 밀폐된 공간 때문인지 기타 사운드는 시원찮았다.[14] 1994년 즈음에 슬래시가 술에 취해 잭 와일드의 기타를 부숴서 잭이 "그 녀석 보면 죽여버릴 거야!" 라는 발언을 한 것을 근거로 둘 사이가 험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슬래시 솔로 앨범 투어에 잭이 초대되어 블루스 잼을 하기도 했고 설령 사이가 험악했다 하더라도 그 사건도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15] 물론 벨벳 리볼버 1집은 건즈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기록했다. 다만 2집은…[16] 인터넷에 Axl Rose disaster로 검색해 보면 말그대로 재앙에 가까운 라이브를 볼 수 있다.[17] 그래도 공연에서는 올드 건즈 곡들이 꽤나 셋 리스트에 들어있는 편이다. 특히 sweet child o' mine이나 마지막의 paradise city는 거의 빠지지 않는 편.[18] X JAPANhide가 자주 썼던 페르난데스(버니)의 시그네춰 모델(MG 시리즈)의 오리지널 모델이기도 하다.[19] 트레몰로 암을 이용한 주법을 위한 듯 하다.[20] 사실 슬래시는 건즈 초기에 레스폴을 처음 연주하기 전에는 JacksonB.C. Rich의 모델을 메인으로 연주했다.[21] 깁슨과 에피폰을 합쳐서 10종이 넘는 시그니쳐가 발매되었다.[22]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본래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곡이다.[23] https://musicfeeds.com.au/news/slash-names-his-12-best-guitarists-of-all-time/[24] 머틀리 크루의 믹 마스도 쓰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대 미국 메탈씬의 유행으로 보기도 한다지만, 유행이라고 하기에 믹 마스는 1980년대 1990년대에 모자를 쓰지 않았다.[25]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에서도 무대에 올랐다.[26] 그 중 하나가 끝부분에 몰핑 기법이 들어간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은 Black or White이다. 사실 Black Or White에서 앞부분 인트로만 슬래시가 치고 나머지는 다른 기타리스트가 쳤다. 원래 배킹까지 다 쳤는데 마이클 잭슨이 맘에 들지 않아서 인트로만 쓰고 나머지는 폐기처리 했다고. 그 대신 Give in to Me에선 모든 기타 파트를 슬래시가 맡았으며 뮤직비디오까지 함께 출연하였다. 싱글 컷 되진 않았지만 전성기 슬래시의 엄청난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는 노래.[27] 뮤비에서 뿐 아니라 라이브에서도 피아노에 항상 올라간다.[28] 솔로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하지만 비디오에서의 물에 잔뜩 젖은 슬래시란...[29] 앨범 부클릿에 액슬 로즈가 감사를 적어 넣은 솔로이다.[30] 이것 또한 마이클 솅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이클 솅커 역시 무대 위에선 특유의 리듬감과 즉흥 애드립으로 앨범 버전 보다 라이브 버전이 더 귀가 즐겁다.[31] 긴 팔 다리를 이용한 특유의 간지폭풍 포즈 (탑햇에 선글라스 쓰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담배 한대 꼬나 문 다음 기타가 무릎까지 올 정도로 스트랩을 내리고 양 다리를 벌린 연주 자세)는 그야말로 '레스폴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나이'라고 할 수 있다.[32] 사실 이 자세가 연주하기에는 엄청 불편한 포즈라, 설령 삑사리가 나더라도 이해 해주자. 대신 간지에는 플러스 아닌가? 하지만 삑사리도 지난 세기 이야기로, 최근엔 잘 안낸다.[33] 상술하였지만 슬래시는 기타리스트가 되기 이전에 상당한 BMX실력자 였다. 선수생활 까지 했던 것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34] 다만 현재 60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동 신경이 좋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 없다.[35] 더프 맥케이건이나 스티븐 애들러처럼, GNR의 오리지널 라인업의 멤버들은 하나 둘씩 마약이나 알콜중독에 시달렸고, 한번 쯤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다행인 점은 죽기 직전까지 가서야 모두 근절했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있다. 그 친구들은 1987년 LA에서 머틀리 크루의 니키 식스가 똑같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진짜 2분동안 사망선고를 받았을때 믹 마스와 함께 니키가 실린 구급차에 탔던 멤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