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헷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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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991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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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019년'''
'''이름'''
제임스 앨런 헷필드
(James Alan Hetfield)
'''생년월일'''
1963년 8월 3일
'''국적'''
미국 [image]
'''출신지'''
캘리포니아
'''포지션'''
보컬, 기타,
1. 개요
2. 상세
3. 보컬
4. 연주 스타일
5. 작곡 및 작사
6. 사용 장비
6.1. 1~3집
6.1.1. 일렉트라
6.1.3. 잭슨
6.2. 4~5집
6.2.1. ESP
6.3. 6~7집
6.3.1. ESP
6.3.2. 켄 로렌스
6.4. 8집 이후
7. 기타


1. 개요


메탈리카의 보컬 겸 리듬 기타 담당. 1963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시골마을인 다우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트럭 운송회사 사장이었고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는 피아노를 배웠고 이후 작곡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양친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로 어린 시절은 대체로 크리스천 사이언스 커뮤니티 안에서 자라났고 성장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의 문신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문양이다. 제임스는 9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14살 때 그의 형에게 드럼을 배운 뒤 이후 기타를 다루게 되었다.
제임스의 어머니는 암에 걸렸는데도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종교적 신념으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고 제임스가 16살 때 죽게 되는데 이 사건은 그의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Mama Said', 'Dyers Eve', 'The God That Failed' 등은 제임스의 어머니의 소재로 다룬 곡이었고 특히 'Until It Sleeps'은 병으로 인한 고통을 다루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1996년 Load 투어 때 작고했다.

2. 상세


제임스는 '''Hit The Lights'''[1]등의 자작곡들을 들고 레더 참(Leather Charm), 옵세션(Obsession), 팬텀 로드(Phantom Lord) 등의 밴드를 결성해 보았지만 이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는 마침내 라스 울리히의 구인광고를 보고 메탈리카의 공동창립자가 된다. 다이아몬드 헤드, 모터헤드 등 NWOBHM의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으로, 데뷔 초 자작곡이 부족하던 인디 시절 이들의 곡을 많이 커버했었다.
메탈리카 멤버 전원이 그렇듯 엄청난 주당이었는데, 젊은 시절 내내 공연하고 밤새 술판을 벌이고 다음 날 떡이 돼서 다음 투어지에 도착해 술이 깨면 무대에 오르는 생활을 반복하곤 했다. 투어를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도 버스에서 내려 근처 슈퍼에 잠시 들러 맥주를 싹쓸이하거나, 밤새 술을 퍼먹고 다음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잠이 깨자마자 해장술을 찾는 등 둘째 가라면 서러울 술고래였다. 그나마 데이브 머스테인과 달리 술이나 약에 쩐 상태로 무대에 올라 추태를 부리거나 관객들과 주먹다짐하는 일만큼은 없었다.
취미활동 중 부상을 입어 공연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몇 번 있었다. 1986년 Damage Inc. 투어 중인 동년 6월 경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넘어져 손목이 부러진 적이 있으며, 이로 인해 존 마셜이 기타를 대신 쳐 줬다. 1987년 3월에 똑같은 사고를 겪어 SNL 출연이 무산되었으며, 제이슨 가입 기념 스튜디오 커버 앨범 Garage Days Re-Revisited의 녹음이 연기되었다. 2000년 6월에는 제트스키를 타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아예 무대에 서지를 못해 Korn, 슬립낫 등 다른 밴드 멤버들이 그 자리를 메워 주었다.[2]
1992년 8월 8일 몬트리올에서 공연 도중 좌측 반신에 2~3도 화상을 입는 큰 사고를 당했다. 기사시각효과를 위한 화염 장비가 제임스의 동선과 겹친 것이 문제였는데, 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수백 도 온도의 불길에 제임스는 머리카락이 일부 타고 좌측 안면과 왼팔, 왼손 등등에 심한 화상을 입는다. 이 때 장비하고 있던, "EET FUK" 문구로 유명한 MX220 익스플로러 기타가 불타 망가졌다. 제임스는 화상 직후 주저앉아 고통에 몸을 떨다 이송되었고, 다행히 피부 재건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사고로부터 15일 후 몬트리올을 재방문해 일찍이 헛걸음을 했던 팬들에게 보상공연을 했다. 하지만 흉터가 심하게 남아 이후 팔뚝부터 손끝까지 문신을 하게 된다. 참고로 이 공연에서 메탈리카가 한 시간 일찍 철수하고 갑작스레 올라온 건즈 앤 로지스는 잠시 공연을 하다 액슬 로즈가 '지금 이 세팅 맘에 안들어' 하며 집에 가버리는 돌발상황을 만든 탓에 공연이 완전 파토가 났으며, 이는 이 날 몬트리올에서 전설적인 폭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2001년 1월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가 돌연 탈퇴를 선언하면서 제임스는 크게 상심한다. (자세한 사항은 제이슨 뉴스테드 항목 참조) 또다시 멤버를 잃은 슬픔과 자신의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 결여, 알콜 및 약물 중독이 겹친 제임스는 앨범 작업을 속행할 수 없을 만큼 맛이 가고, 같은 해 여름 재활원에 입원한다. 약 1년간 재활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은 제임스는 퇴원 이후 8집 제작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남기며 자신이 재활원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그 후 밴드 멤버들간의 관계 재형성을 위해 고생한 과정들을 솔직하게 공개했다.[3] 그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필요하다면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 가장 솔직하고 바람직한 대인관계를 맺는 열쇠다"라는 인터뷰를 남기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밴드에 다시 합류해 8집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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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원을 나와 하루에 딱 네 시간만 음악작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가족과 빈둥빈둥 논 탓에 2002년부터 2004년 즈음까지 이렇게 살이 불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건강한 근육질 몸매로 여성 팬들을 휘어잡았던 헷필드가 이렇게 변한 것을 두고 많은 팬들이 대경실색했으며, 이 시기를 기억하는 팬들은 이 때를 회고하기를 카툰 시대(Cartoon Era)라고 부른다. 심슨가족에 나올법하게 생겼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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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투어를 돌 체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체중감량을 했으며, 중간중간 요요가 심하게 오긴 했지만 2011년쯤에는 아예 80년대 중반의 말라깽이 청년에 가까운 몸매를 완성했다. 밴드 결성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공개된 모습으로는 커크 해밋이 부럽지 않은 날씬한 몸으로 되돌아왔다. 이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을 위해 약간의 벌크업과 동시에 살을 조금 찌웠다. 목소리도 회복되어서 머리만 기르면 딱 왕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원형탈모가 찾아왔다. 2018년 9월쯤부터 다시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목소리가 어느정도 옛날처럼 돌아와서 "수염이 헷필드의 본체다."라는 등의 유튜브 댓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9월 28일 메탈리카는 10월에 있는 슬립낫과의 호주-뉴질랜드 공연 취소 소식을 알렸는데 제임스가 중독증세로 인한 치료를 다시 받기 위해서라고...

3. 보컬


결성 초기 제임스의 보컬 기량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가 즐겨 들었던 다이아몬드 헤드의 보컬 숀 해리스의 모창에 가까운 타입의 보컬리스트였고, 발성과 음역대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제임스가 보컬과 기타를 겸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 메탈리카는 아머드 세인트(Armored Saint)의 보컬리스트 존 부시에게 가입을 제안했는데, 부시가 거절함에 따라 제임스가 계속 보컬을 맡게 되었다.[4][5]
1~2집, 즉 결성 직후인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제임스의 보컬은 천천히 다듬어져 갔다. 초창기에는 자신이 녹음한 음역대를 제대로 짚어내지도 못해 적당한 비명으로 대체했으며 숨이 차면 대충 넘기고 부르기 좋은 부분만 신나게 부르는 '가라오케 메탈 밴드' 수준에 그쳤는데, 2집인 1984~1985년 기간에는 페스티벌의 낮시간대 라인업이나 선배 밴드의 오프닝에 걸맞는 보컬을 보이기 위해 좀 더 정확한 음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3집 시기에 이르러 인디 밴드의 색채를 벗기 시작한다. 1986년 3집 발매를 전후로, 특히 3집 투어를 기점으로 오늘날 흔히 말하는 제임스의 보컬의 전성기가 열린다. 1986년부터 1991년, 더 길게 잡으면 1993년경까지를 전성기로 잡는데, 이 시기 제임스는 생목으로 트윈기타의 디스토션을 잡아먹는 절정의 성량을 자랑하며 메탈 보컬의 아이콘이 된다. 이 시기를 찍은 프로캠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데, 수많은 팬캠과 1993년 라이브 앨범 <Live Shit: Binge & Purge>의 1989년 공연 파트를 통해 그의 전성기를 감상할 수 있다.
전성기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각각 3/4/5집에 해당한다. 3집 시기는 2집과 4집의 과도기로, 2집에 비해 자신의 음정을 정확히 통제할 수 있게 된 한편 여전히 어린 티가 나는 보컬과 슬슬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파워풀한 보컬의 사이 어딘가의 유니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4집 시기는 포효하는 사자같은 보컬을 마음껏 뽐내던 시기로, 3집으로부터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어린 티가 사라진다. 5집 시기는 무리로 인해 서서히 목이 탁해지는 경향을 보이나 밥 록과 함께 새로운 스타일의 곡들을 선보이며 소화 가능한 음역대를 크게 확장했고, 음정을 가장 정확히 짚을 수 있었으며, 팝 감각이 있는 멜로딕한 곡들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균형잡힌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때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는데, 다름아닌 성당 성가대로 활동 했다고 한다. 성가대에 가입하면서 소위 "아→아↗아↘아→"부터 시작해서 본인의 단점과 장점을 살리면서 계속 그 역량을 살리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 결과 환갑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기복이 없는 보컬 실력을 보여준다.

1991년 Harvester of Sorrow 라이브.
1994년, 제임스의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며 보컬 역량에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0년 5집 녹음 작업을 하면서 목을 풀지 않고 노래를 한 탓에 성대 결절[6]이 생겼는데, 이후 5집 Metallica(음반)의 대히트로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총 300회에 달하는 3개의 투어('Wherever We May Roam Tour', 'Guns N' Roses/Metallica Stadium Tour', 'Nowhere Else to Roam')를 소화하며 목에 큰 무리가 온다. 1992년 샌디에이고 라이브에서부터 이미 목소리가 탁해지기 시작하며 어떻게든 이전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쥐어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1993년에 이르면 1980년대의 맑은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진다. 결국 제임스는 1994년부터 창법을 바꿔 생목을 긁는 구간을 점차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호통치듯 질러대던 구간에서 좀 더 팝 감각이 있는 걸쭉한 고음을 뽑아내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이다.
1995년 차기작 Load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스탠다드 E키로 연주하던 모든 곡을 한 키 낮춰 Eb로 연주하기 시작하였다.[7] 마침 Load에 E키 수록곡이 없었기에 악기 교체의 귀찮음도 덜고 원키에서 음이탈이 잦아지기 시작한 제임스의 보컬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했다. Load, Reload 기간동안 제임스가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음역대는 꽤 낮아진 편으로, 스크리밍 계열의 기법을 접은 대신 묵직한 흉성을 선보이며 대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기간의 수록곡에도 많은 고음이 담겨 있으나, 라이브에서의 음정은 매우 불안한 편이었다. 제대로 노트를 찍고자 노력하지만 목이 따라가지 못해 괴성이 튀어나오곤 했다.
1998~1999년은 투어 기간을 줄여가며 목을 관리했고, 대형 프로젝트인 S&M(음반)을 추진하여 좋은 결실을 맺었다. 한편 이러한 단발성 공연과 달리 이어진 투어에서는 계속 성량이 줄고 목이 악화되어 제이슨 뉴스테드의 백업 보컬의 힘을 더 많이 빌리게 된다.
2002년 재활원을 거치며 2003년 다시 투어를 나선 제임스의 보컬은 극적으로 힘이 떨어져 제대로 소화하는 곡이 하나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목을 긁지도 못하고 고음을 뽑지도 못했다. 더이상 목에 아픈 곳은 없었으나 40대에 접어들며 젊은 시절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듯한 어정쩡한 라이브를 많이 했다.
2008년 9집 <Death Magnetic> 시기 제임스의 보컬은 이전에 비해 안정되어 악보대로 노트를 찍는 만큼의 기량은 되찾아냈다.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를 노린 무리한 작곡으로 음역대를 찍는 데에 급급하였을 뿐 제대로 힘을 실어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다. 2009년 한 해 94회의 라이브를 소화한 것을 마지막으로 메탈리카는 멤버들의 체력 안배와 삶의 질을 위해 투어 회수를 줄였고, 이후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최대 30회 선의 공연만을 소화하며 공연 하나하나에서의 라이브 퀄리티에 더욱 집중하였다. 그 결과 2011년, 늦게 잡으면 2013년 경부터는 중년의 나이에 걸맞는 노하우를 제대로 습득하여 강력하게 끓어오르는 저음과 초고음의 스크리밍을 모두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10집 <Hardwired... to Self-Destruct> 시기는 2002년 재활원을 퇴원한 이래로 가장 깔끔한 보컬을 선보이고 있다. 평생 한 번도 레코딩대로 소화해 본 적이 없던 <Ride the Lightning>, <Hit the Lights> 등의 옛 곡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신곡들은 현재 제임스의 보컬 음역대를 제대로 고려하고 쓰여져 라이브와 레코딩의 갭이 그리 크지 않다. 한편 젊은 시절 라이브에서 음정을 많이 말아먹어 봉인했던 The Outlaw Torn과 같은 곡들은 몇 번 시도했다가 다시 파묻는 등 예나 지금이나 어떤 부분에서는 참 한결같다.
2017년 2월 3일 코펜하겐의 로열 아레나에서 공연하던 도중 관객들에게 “지금 목소리가 완전 맛이 갔어요.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아요. 평생 해온 일을 갑자기 하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라 말하며 공연을 연기할지 여부를 진심으로 관객들에게 물었고, 관객들은 NO를 외치며 열화와 같은 거부의사를 보냈다. 제임스는 공연을 끝까지 해냈고, 주치의는 당분간 단 한 음도 노래하지 말라고 진단했다. 5일의 공연은 9월 2일로 미루어졌으며, 그 다음 공연인 7일 공연부터는 정상적으로 소화해냈다.

4. 연주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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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를 쥐는 그립이 독특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통 엄지와 검지만을 써 피크를 쥐는데, 제임스는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세 손가락으로 피크를 쥔다. 팔과 손목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두 손가락으로 하는 피킹보다 강하게 줄을 튕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제대로 힘주고 갈기면 그 이상의 소리가 난다. 하지만 이런 그립으로 메탈을 연습하면 줄 값이 감당이 안되니 주의. 남들이 1번 스트링만 줄창 갈고 나머지 줄을 녹이 슬어 소리가 변하기 전까지 잘만 쓰는 반면, 이런 그립으로 줄에 무리를 주면 일주일을 채 못가고 아무 줄이나 마구, 골고루 끊어진다.
기타리스트지만 스트랩을 아주 길게 뽑고 엉거주춤하게 기타를 치기 때문에 라이브에서의 기타솔로가 그리 특출난 편은 아니다. 실수는 거의 없지만 쳐야 할 노트가 그리 많지 않은 널널한 솔로를 짜서 공연한다. 곡들 중 제임스 솔로 파트도 꽤 있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기타 솔로라 하면 떠오르는 현란한 속도의 솔로잉은 거의 없고, 곡의 멜로디를 약간 변주한 감각적인 솔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헷필드의 기타 톤 특징상 메탈리카 사운드의 중심을 잡아야 하므로 솔로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커크의 기타 톤이 솔로잉에 더욱 적합해, 일부러 묵직한 제임스의 기타로 느낌을 살려야만 하는 곡이 아니라면 제임스가 배킹하고 커크가 솔로하는 쪽이 안정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편이다. 때문에 메가데스의 트윈기타와는 달리 리듬기타와 리드기타의 구분이 더 명확하다. 제임스 솔로로 가장 유명한 파트는 Nothing Else Matters의 마지막 솔로, Suicide and Redemption의 6분 지점에서 시작되는 솔로, Master of Puppets의 슬로우 파트 등이 있다. 보컬에 치중하느라 기타에 소홀했던 게 절대 아니다.
어릴적 형에게 배운 드럼을 까먹지 않고 간간히 쳤는지, 1992년 샌디에이고 공연에서 라스와 드럼 솔로 배틀을 벌일만큼 드럼 실력이 괜찮다. 라스만큼 빠르고 강하고 일정하게 두드리는 능력은 많이 부족하며 더블베이스를 잔뜩 밟으면서 다이내믹스가 불안정해져 배틀이 끝난 다음 라스가 "나만큼 빠르게 칠 수 있는건 내 아들밖에 없는데, 난 아들이 없거든? 야, 메탈리카가 언제부터 (빨리치기) 서커스단이 됐냐?"라고 일갈하긴 하지만, 드러머가 아닌 사람 치고는 리듬감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몇몇 부분에서는 제임스가 라스에 비빌만큼 괜찮게 쳤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라스 울리히는 밴드 내에서조차도 최고의 드러머가 아니라는 농담이 팬들 사이에 잘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지금 와서는 기량이 쇠퇴한 라스에 비하면 아직도 드럼을 잘 치는 편. 그래서인지 스튜디오 앨범에서 제임스가 드럼을 친다는 루머도 있었는데, 앨범을 몇번만 들어도 사실이 아니라는걸 알수 있다.

5. 작곡 및 작사


작곡 측면에서는 메탈 리프 공장장. 메탈리카는 멤버들이 각자 써낸 리프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모아 놓고 퍼즐 놀이를 하듯이 곡을 쓰는 약간 특이한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음반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제임스가 써낸 리프가 앨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다른 멤버가 써낸 리프가 확실하게 포함된 경우에는 크레딧에 그 멤버의 이름이 함께 올라가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곡을 구성하는 리프의 대다수는 제임스의 것이다. [8] 또한 오로지 제임스와 라스의 이름만이 크레딧에 오른 곡들은 커크의 기타 솔로 정도를 제외한 모든 파트가 제임스의 작품이다.[9]

6. 사용 장비


Gibson Flying VExplorer 타입의 기타를 매우 좋아한다. 가장 처음 구입한 기타는 깁슨 플라잉브이로 착각한 카피 브랜드 기타였고, 1984년 익스플로러를 두 대 구입하면서 익스플로러 덕후의 역사가 시작된다. 짝퉁 플라잉브이의 자리는 잭슨 킹 V가 대체하지만 오래 못 가 망가졌고, 이후 1996년 ESP에서 플라잉브이 타입의 기타를 제공하기까지 모든 곡을 익스플로러형 기타로만 쳤다.
1988년 ESP와의 엔도서 계약을 맺으면서 깁슨 익스플로러의 자리는 같은 형태인 ESP MX220들이 대체했다. MX220들은 이후 Load 투어를 맞이해 다양한 색상을 자랑하는 MX250으로 업그레이드되었으며, 이 시기 ESP에서 제공한 플라잉브이와 Les Paul, Fender, 그 외 여러 커스텀 기타들이 무대에 올랐다.
엔도서 계약[10]과 연식 문제로 1980~1990년대 사용하던 장비들은 녹음실에서 연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Electra Flying V(1980~), 잭슨 킹 V 커스텀 “Kill Bon Jovi”(1985~), 깁슨 1984 익스플로러 “So What”, “More Beer”(1987~), ESP MX-220 “EET FUK”, “So Fucking What”(1988~)등이 그러한데, Flying V와 킹 V 커스텀은 무대에서 파손된 후 사용하지 않던 것을 2008년 Death Magnetic 녹음을 위해 수리한 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Explorer “Rusty”(2003~), 1973 레스 폴(2000?~)도 녹음실에서 즐겨 쓰인다.
2011년부터 ESP 제공으로 기타 라인업을 다시 일신하였다. 익스플로러 계열의 기타로 연주하던 곡들은 ESP 스네이크바이트로, 플라잉브이 타입의 곡들은 ESP 벌처로, 레스 폴 계열의 기타로 연주할 곡들은 ESP 아이언 크로스, ESP 트럭스터 등을 주력으로 하여 공연하고 있다. 튜닝이 다른 St. Anger 음반의 곡들은 ESP 바이퍼 바리톤(2003~)를 즐겨 쓰며, 엔도저 계약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깁슨 기타들도 가끔 꺼내 든다.
픽업은 과거 EMG 81/60을 사용하였으며, 2009년 그의 시그니처 픽업인 EMG JH가 발매된 이후의 기타들에는 해당 픽업이 사용되고 있다.

6.1. 1~3집



6.1.1. 일렉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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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명
Electra Flying V
사용기간
1980~현재
픽업
Seymour Duncan 인베이더 험버커 2개(1980년대)
EMG 81/60(현재)
1980년도에 200달러를 주고 샀다는 소위 "짝퉁 기타". 인디 시절 투어는 이 기타로 다 돌다시피 했다. 저렴한 물건이어서인지 무대 안팎에서 여러 번 망가져 골치를 썩였는데, 1984년 무대에서 넥이 부러진 이후로는 수리를 포기하고 자택에 짱박아두었다. 이 기타는 먼 훗날 메탈리카가 초심을 다시 생각하게 된 2008년 9집 작업을 앞두고 전면 개수되었으며, 다시 현역이 되었다.

6.1.2. Gi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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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명
1968 Gibson SG 스탠다드
사용기간
1978~미상
픽업
미상
같이 스쿨밴드를 하던 친구에게 구입하여 메탈리카 결성 이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어머니인 신시아 헷필드(Cynthia Hetfield)가 이 기타를 살 돈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며, Hit the Lights 등 초기 자작곡은 이 기타로 쓰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 Electra Flying V로 완전히 대체되었으며, 아직 보유 중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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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명
1984 Gibson Explorer
사용기간
1984~현재
픽업
Gibson 더티핑거즈 496R/500T(1984~87)
EMG 81/60(1987~)
1984년 Electra Flying V를 포기하고 구입한 여러 장비 중 제임스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장비. 주로 쓴 기타에는 몸통 아래에 So What이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다. 제임스가 가장 좋아하던 기타 중 하나로, 2집과 4집은 거의 이 기타로 녹음했다.
제임스는 이 기타가 망가질 것에 대비해 백업용으로 쌍둥이 기타 하나를 더 마련하였으며, 그 기타에는 More Beer이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다. 브릿지 아래에 붙어있는 예거마이스터 술병 라벨 스티커가 인상적인 기타이나, 스튜디오 위주로 쓰여 So What에 비해 인지도는 높지 않다.

6.1.3.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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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명
킹 V 커스텀
사용기간
1985~1987, 2008~
픽업
EMG 81/60
3집 녹음과 투어의 메인이 된 기타. 투어 도중 망가졌는데, 익스플로러형 기타를 더 맘에 들어한 제임스는 이 기타를 수리하지 않기로 했고, 더이상 쓰이지 않다가 8집 제작을 위해 수리되어 현역으로 복귀. 특징으로 기타 머리에 Kill Bon Jovi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다. 당시 제임스는 본 조비와 언론 매체를 통해 으르렁거리던 사이로, 서로 귀만 아픈 음악이라느니 댄스가수라느니 까댔다.

6.2. 4~5집


1988년 ESP와의 엔도서 계약을 맺은 이후 ESP 비중이 매우 커졌다.

6.2.1. E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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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명
MX220
사용기간
1988~현재
픽업
EMG 81/60
제임스 헷필드의 상징과도 같은 기타 중 하나. 1987년 4집 녹음을 위해 구입한 첫 번째 익스플로러에는 EET FUK이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으며, 이 기타는 무대에서 활발하게 쓰여 제임스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넥 인레이에는 가운뎃손가락이 잔뜩 새겨져 있다.
쌍둥이 기타가 하나 더 있어서, 그 기타에는 So Fucking What이라는 낙서와 여러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 기타는 백업용으로, 녹음실과 연습실 위주로 사용되었다. 녹음실에서 찍은 메이킹 영상을 보면 이 기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같은 모델의 세 번째 기타도 있는데, 이 기타는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흰색으로 FUK EM UP이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 모델만 픽업이 EMG 60/81이다.
같은 모델의 더블 넥 기타도 보유하고 있었다. 어쿠스틱용 넥은 12현, 메탈용 넥은 6현 구성이다. 픽업은 다른 기타들과 마찬가지로 EMG 81/60이다. 이 기타는 1993~1994년 당시 Fade to Black 라이브용으로만 쓰였다. 1993년 멕시코시티(영상), 1994년 마이애미(영상) 등 해당 곡에 한해 몇 번 선보여졌다.

6.3. 6~7집



6.3.1. ESP


[image]
장비명
MX250
사용기간
1996~현재
픽업
EMG 81/60
엘크 두개골과 가시철조망이 새겨진 인상적인 검은 기타가 MX250의 대표적 모델이다. 6~7집 시기 공연용 기타로 가장 많이 쓰인 기타 중 하나이며,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기타의 바디 뒷면 상단에는 메탈리카의 표창 로고가 크게 그려져 있다.
1988년부터 애용하던 MX220에 비해 흑/백의 색상이 더욱 또렷하며, 헤드가 약간 다르게 생겨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검은색과 흰색 모델 역시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검은 모델의 지판에는 점차 늑대가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줄지어 새겨져 있다.
[image]
장비명
Flying V/JH-1
사용기간
1996~현재
픽업
EMG 81/60
서로 색이 다른 모델 두 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각각 적색과 녹색이다. 6집 활동 기간 라이브용으로만 사용하였다.
[image]
장비명
JH-2
사용기간
1998~현재
픽업
EMG 81/60
두 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7집 시기 다이아몬드 패턴 바디로 유명했던 그 기타이다.
[image]
장비명
Eclipse Custom/JH-3
사용기간
1998~현재
픽업
EMG 81/60
총 세 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Pour Re-Touring Me 투어에 주로 사용하였다.

6.3.2. 켄 로렌스


[image]
장비명
커스텀 기타
사용기간
1996~현재
픽업
EMG 81/60(1990년대)
EMG-JH(현재)
9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쓰이고 있는 기타. 두 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각각의 바디 패턴과 넥 인레이가 달라 구분할 수 있다. 더블 넥 버전도 하나 가지고 있다.

6.3.3. Fender


[image]
장비명
Telecaster '52 Reissue with B-Bender
사용기간
1997~현재
픽업
전용 픽업
Unforgiven II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에 사용되었다. 라이브 무대에서도 사용되었으나, 2018년 현재 이 곡이 연주된 게 딱 여섯 번이고, 종종 켄 로렌스로 대체되기도 했다.

6.3.4. Gibson


[image]
장비명
1963 SG/Les Paul 스탠다드
사용기간
1998~현재
픽업
알려지지 않음
Garage Inc. 음반 녹음과 Turn the page 뮤직비디오 촬영에 사용하였다. 구입한 기타는 아니고, 프로듀서 밥 락이 준 기타라고 한다. 이후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6.4. 8집 이후



6.4.1. Gibson


[image]
장비명
Explorer 커스텀
사용기간
2003~현재
픽업
EMG 81/60
구리구리한 무광택 익스플로러. 재활원을 나와 8집 작업을 하며 주문한 새 기타다. 새것임에도 매우 낡은 기타처럼 마감하여 Rust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8집 라이브에서 ESP LTD 바리톤 바이퍼를 사용하는 데 반해 레코딩과 스튜디오 리허설에서는 이 악기를 애용한 편이다.
[image]
장비명
1973 Les Paul 커스텀
사용기간
2000?~현재
픽업
EMG 81/60
8집 기간의 주력 기타 중 하나.

6.4.2. ESP


[image]
장비명
바이퍼 바리톤
사용기간
2003~현재
픽업
EMG 81/60
다운튜닝을 해야 하는 곡들(Frantic, Invisible Kid 등)에 사용했다. 8집 곡들이 거의 라이브 무대에 오르지 못했으나 Frantic은 자주 연주되었고, 해당 곡을 연주할 때 이 기타를 들고 나오곤 했다. 생김새가 영 달라 제임스가 평소 연주 자세와 다른 폼으로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image]
장비명
트럭스터
사용기간
2008~현재
픽업
EMG 81/60
St.Anger와 Death Magnetic 투어에 사용된 ESP Eclipse형 커스텀 기타가 원본으로, 투어 동안 페인팅이 벗겨지고 군데군데 까진 부분을 재현한 일종의 렐릭 모델이다. 회색과 검은색 두가지 모델이 있다.
[image]
장비명
아이언 크로스
사용기간
2008~현재
픽업
EMG JH
1973 레스 폴 커스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ESP Eclipse 파생형 모델. 9집 기간에 정말 많이 쓰였으며, 흑백반전형 모델도 하나 가지고 있다.
[image]
장비명
스네이크바이트
사용기간
2011~현재
픽업
EMG JH
제임스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하는 변형형 익스플로러. 라이브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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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명
벌처
사용기간
2016~현재
픽업
EMG JH
2016년부터 종종 라이브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그니처 기타. Flying V의 변형형이다.

7. 기타


메탈리카의 멤버들은 대체로 사생활에 대해서 발언이 없는 편이지만 제임스의 재활치료는 처음부터 공개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터뷰도 몇 번 있었으며, 자신의 파괴 충동이나 분노 성향을 억제하는데 성공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7년 제임스가 이에 관해 자세히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제임스는 투어를 돌며 몸에 밴 나쁜 행동과 습관들을 집에서 그대로 하다 결국 부인의 손에 쫓겨났다. 부인은 “상담사에게라도 가든가 해서 (그 나쁜 습관들을) 모두 정리하고 오라” 라고 말했다. 제임스는 쫓겨나 혼자 살며 가족과 밴드 등 자신의 세계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고[11]

, 결국 재활시설을 방문한다.

제임스는 상담사와 7주동안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해체하고 처음부터 다시 쌓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 자신이 겪어온 모든 좋고 나쁜 일을 털어놓고 상담하며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제임스는 긴 치료를 통해 알콜 및 기타 중독증세, 파괴 충동과 분노, 기타 나쁜 습관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퇴원하였다.#

이후 제임스는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부인 프란체스카를 “내 생명을 수도 없이 구해준 사람”, 자녀들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 준 사람들”로 부르며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 사건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제임스 헷필드는 알콜 중독을 완전히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알콜 중독과 폭력적 행동을 문제로 밴드에서 쫓겨났던 데이브 머스테인이 헷필드를 오지게 놀려먹는 등 여러가지로 본인이나 똑바로 하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라스 울리히오아시스노엘 갤러거를 좋아하는 것과는 반대로 제임스 본인은 오아시스를 매우 싫어한다. 비틀즈를 배끼기만 하는 창의성 없는 밴드라고.
오토바이를 매우 좋아하며, 클래식 카와 오토바이 수집에 열을 올린다. 주로 1920~50년대 핫 로드를 수집했으며, 자신의 클래식 카 컬렉션으로 모터쇼를 연 적도 있다. 1997년 <Reload> 음반의 수록곡 <Fuel>의 뮤직비디오에서 오토바이 매니아 인증을 제대로 했다. 최근엔 이와 관련된 인터뷰 영상도 올라왔다.
젊을 때부터 사냥이 취미이기도 하다. 1993년 라스 울리히는 멤버들의 취미를 두고 “커크는 집에서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고[12] 제임스는 불쌍한 동물들을 쏘러 다닌다”고 공개적으로 놀려먹은 적이 있다. 러시아까지 가서 곰 사냥을 했다. 미국의 슈퍼스타로서 사냥이 취미라는 점에 대해 동물보호주의자들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아왔는데, 예전부터 일관적으로 법을 지키며 한다면 괜찮지 않은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1997년 8월 17일 아내인 Francesca와 결혼한 후 1998년 딸 Cali, 2000년 아들 Castor, 2002년 딸 Marcella를 낳았다.
[image]
일명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메탈리카 하시는데예' 짤
왼쪽의 여자아이는 헷필드의 딸 마르셀라 헷필드이다. 어쿠스틱조차도 파워 스탠스로 쩍 벌리고 치는 모습이 압권이다. -
2016년 1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땄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공식적으로 사실이 아님을 제임스가 못박았다.
2019년 9월 27일, 또 다시 재활원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밴드 멤버들의 공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유는 Struggle and Addiction으로, 예전의 알콜 중독과 성격 파탄이 다시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라스 울리히의 언급에 따르면 이로 인해 다시 고통받은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예정에 남아있던 호주와 뉴질랜드 공연은 연기되었다.
최근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된 곡이랑 동일한 곡.[2] 이때 보컬은 제이슨과 다른 밴드 보컬들이 대신하였다.[3] 제임스도 제이슨의 활동에 제약을 너무 많은 제약을 걸고 비아냥대기하는 등 제이슨의 탈퇴에 일조하였지만 제이슨 잠적해버린 후 그나마 뉘우치는 모습은 보여주었다. 반면에 라스 울리히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으니 둘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4] 반면 제안을 받았던 존 부쉬는 후에 조이 벨라도나의 탈퇴로 인해 보컬 파트의 공백으로 엔스렉스의 보컬리스트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앤스랙스 팬들에게 밴드를 말아먹은 1등 공신으로 원망을 받게 된다.(...) 사실 좀 억울한 면도 있지만.[5] 존 부쉬가 메탈리카 30주년 공연에서 메탈리카의 the four horseman를 커버한 적이 있다. 평은 앤스랙스 곡 커버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6] B-Side로 수록되었으며 후일 Garage Inc.에 수록된 <So What>을 녹음하는 중에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원래 반음이 낮은 Load와 Reload, 키가 한참 더 낮은 Sad but True는 원키를 유지했다. Seek and Destroy는 아예 두 키를 내렸다가 2010년대 중반이 지나서 다시 한 키만 내린다.[8] 다만 Master of Puppets, Creeping Death, Enter Sandman, Battery 같은 곡들은 커크 해밋의 기여가 크다. 특히 one riff song이라 할 수 있는 Enter Sandman의 리프는 커크가 만들었다. [9] 다만 편곡에서 라스의 기여는 절대적이며, 메탈리카 전성기의 특징 중 하나인 드라마틱한 전개와 변박 역시 라스의 영향이 크다. One만 해도 제임스가 혼자 해 보다 잘 안되니 라스가 함께 완성한 것이다. 리프도 의외로 라스가 직접 쓴 것도 많으며, 제임스의 리프들도 라스가 드럼으로 리듬을 치며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10] 보통 인도스먼트를 맺을 경우 타사의 기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11] 아버지는 13세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16세 때 돌아가셨으며, 제임스의 가족은 해체되어 아버지가 다른 형과 살다 독립하였다.[12] 고전 만화/영화/호러 매니아이며, 관련 굿즈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