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기갑여단

 




'''제20기갑여단'''
'''第20機甲旅團'''
'''The 20th Armored Brigade'''
[image]
''''''
'''창설일'''
<colbgcolor=#fff>2019년 11월 29일('''제20기갑여단''')
'''상징명칭'''
'''독수리부대'''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image] 제3군단
'''규모'''
여단
'''역할'''
3군단 기갑지원
'''여단장'''
[image] 준장 최장식(학군 30기)[1]
'''위치'''
강원도 홍천군

1. 개요
2. 상세
3. 예하부대
3.1. 여단직할대
3.2. 제37전차대대 번개
3.3. 제59전차대대 마루
3.4. 제130기계화보병대대 현무
3.5. 제53포병대대 백룡
4. 출신인물
4.2. 장교/부사관
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
5.2. 여단가
6. 사건사고
7. 여담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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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1기계화보병사단과 해체된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통합하는 과정에서 '''11사단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여단이 독립하여 창설된 대한민국 육군의 여섯 번째 독립 기갑여단으로, 한동안 기갑여단이 없었던 육군 제3군단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2. 상세


새롭게 제작된 여단마크는 상급부대인 제3군단 마크를 인용하여 태극마크 안에 기갑을 상징하는 궤도를 두른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여단본부 본청 입구 처마에 독수리 조형물까지 올려 빼박 독수리 여단의 네이밍 확정이다. 8사단과 26사단 통합 당시, 26사단 예하 73여단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8사단에 배속되면서 불무리 사단의 이름을 이어받아 불무리여단으로 불리고 있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20사단의 상징물도 이전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20사단의 부대마크를 계승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는데 대부분 20사단의 역사가 사장된 걸 아쉬워 하는 측면이 크다. 다만 역사적으로도 제20기갑여단의 모체인 '''제20보병연대'''가 20사단보다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존 부대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타당하며, 실제로 제20기갑여단의 입장에서도 부대의 역사와 전통이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소속 사단 조차도 아닌 타 사단의 역사를 강조하며 제20기갑여단의 뿌리가 되는 제20연대의 역사가 무시되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닌 만큼, 20사단을 언급하며 20여단의 상징에 왈가왈부 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20사단에서 살아남아 11사단으로 배속이전된 61여단이 결전의 이름을 이어받음으로써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상징명칭은 11사단 시절부터 "독수리 여단"이며 현재도 유지 중이다.
마크 디자인 자체는 대체로 호평이다.[2]
  • 참고로 제20기갑여단의 모체 제20연대의 역사는 건군기인 1946년 2월 15일 전남에서 창설된 조선경비대 제4연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순사건에 연루되어 20연대로 개칭,재편되고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제9, 13연대와 함께 신설 11사단에 배속되어 오랜 역사를 거친 끝에 2019년 독립여단으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3. 예하부대


제20기갑여단은 예하 2개 전차대대와 1개 기계화보병대대, 1개 포병대대 그리고 공병대와 방공대 등의 직할대로 편제되어 있다.

3.1. 여단직할대


  • 본부대
  • 기갑수색중대
  • 공병대[4]
  • 정보통신대
  • 정보중대
  • 화생방중대
  • 전투근무지원대대[5]
  • 방공대

3.2. 제37전차대대 번개


신막사이기 때문에 시설은 좋으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는 게 안습. 특히 체력측정을 볼 때 이 언덕의 오르막길이 엄청난 고비이다. 장비를 세워놓는 곳이 아스팔트라 먼지가 날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K1E1 전차를 주력으로 굴리고 있다.

3.3. 제59전차대대 마루


부대가 개편되면서 기존 36전차대대 대신 배치되었다.
11사단이 보병사단이었던 시절, 사단 직할 전차대대였으나 기계화사단화되면서 제13기계화보병여단으로 배속되었고, 11·20사단이 통합되기 전, 20기보여단으로 36전차와 맞교환되었다.
11사단에 잔류하는 13여단 소속이었음에도 굳이 20여단 36전차와 교대된 이후는 36전차에 있었던 차량호 때문이라는 후문. 다만 매봉산 훈련장 관리는 지속적으로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11사단 소속 중에는 구 막사를 사용하는 대대였고 부대 위치도 홍천 터미널과 버스로 30~40분 거리로 불편하기 때문에 병사 사이에서 별명은 11사단 유배지였다. 거기에 매봉산 훈련장 관리소대 순번이 되는 날엔 꼼짝없이 한 달간 훈련장에 갇혀있어야 되는.... 그래도 시설은 좀 더 나았다고.
막사에서 심심치 않게 쥐가 나오며 시설이 낙후돼있어 전입을 오고나서 막사 상태를 보고 충격을 받는 용사, 간부들이 굉장히 많다.

3.4. 제130기계화보병대대 현무


기계화보병대대로 여단본부와 붙어있다보니 가끔 위병소 닫혀있으면 여단위병소로 넘어가는 간부들도 있다.[6] 사격장이 부대 뒤쪽 걸어서 30분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다보니 개인화기 사격을 상당히 자주한다. 2012년도 중반에 신막사로 증축하였다.

3.5. 제53포병대대 백룡


20여단이 독립하면서 같이 딸려온 포병대대. 완전 구식까지는 아니지만 시설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간부들의 말에 따르면 BOQ는 절반 이상이 녹물이 나오는 수준. 2020년 현재 신 막사가 건설 중이며 2020년 후반~2021년 초반 완공 예정이다. 위치가 시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홍천강 너머에 있기 때문에 도보로 번화가나 터미널에 가기에는 약간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K55A1을 주력으로 굴린다.

11사단 시절 혼자만 떨어져있다보니 5대기 등이 포병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130기보대대와 순환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전차대대가 장비관리와 편제병력이 적어서 5대기를 뛰지 않기 때문에 순번이 너무 자주 돌아온다는 것... 물론 이는 다른 사단의 기보여단들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포병만큼은 원래 3~4개조 순환이었기 때문에... 사실 포병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단(연대) 예하 대대들이 1개 더 많은 것도 있지만 대대 예하 각 포대의 인원이 일반적인 보병중대보다 많이 적은 편인 데다 간부 숫자도 부족하다보니 각 개인 기준으로 5대기 순번은 2개 대대가 도는 나머지 기보여단 예하 대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런 상황에서 2개조이기 때문에 53대대 곡사포대는 죽어난다.[7]

4. 출신인물



4.1. 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여단장.
'''역대 제20기갑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최장식
준장
학군 30기[8]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



5.2. 여단가



6. 사건사고



7. 여담



[1] 영남대학교[2] 당시 전역을 목전에 둔 사병(병장)이 팔자에 없던 고생을 했다고 한다. [3] 전투근무지원대대와 더부살이하고 있다.[4] 2020년 5월까진 타군단 부대의 주둔지를 빌려 임시숙영시설을 설치해 약 6개월간 타부대에 기생하였지만, 신축 건물이 다 지어져 2020년 5월에 신축 건물로 이사를 했다.[3][5] 2020년에 신 막사를 건축했다.[6] 위병소 자체가 여단쪽이 넓고 들어가기도 좋다 그리고 130대대를 몰래 나가고 싶은 간부들은 여단 위병소로 몰래 나갔다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장갑차가 훈련을 나가도 넓은 여단 쪽 위병소로 출입한다.[7] 본부포대는 5대기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 행정이나 보급 위주의 업무를 하다보니 5대기를 하는 순간 업무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 실제로 55포병대대는 당시 대대장 지침으로 본부포대가 5대기를 한 덕에 정상적인 업무보다 땜빵질이 많아 상급부대 요청사항도 늦는 것은 예사고 특히 검열 때 제대로 박살이 났다.[8] 영남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