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갑

 

曺奎甲
1904년 3월 27일 ~ 1994년 10월 3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창녕이다. 아버지 남강(南崗) 조정환(曺正煥)은 민국독립단의 자의부장(諮議部長)을 지내고,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 다물단을 조직하는 등 중국 동북 지방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숙부는 미국에서 이승만(李承晩),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활동했던 해산(海山) 조성환(曺誠煥)이다. 3남 6녀의 자녀를 두었다.
1904년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 분절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대대로 한학을 공부한 집안 내력으로 인해 경상남도 김해군 진례면의 시례강습소에서 한문을 배웠다. 하지만 나라가 일제에 강제 병합되는 망국의 설움을 겪으면서 일본의 힘을 몸소 느낀 조규갑은 신학문을 본격적으로 수학하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정경과를 수료하였다. 중국 베이징대학 동양학과에 재학하다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경상남도 창원군 구산면 면장과 진해어업조합장, 진해금융조합장, 창원군 농회 평의원 등을 지냈다.
8·15 해방 이후 조규갑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남도 창원지부 지부장 및 진해지부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김해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헌 의원 시절에는 무소속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국책연구회를 조직하였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조사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김해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종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 발표에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