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제 부야디노비치
1. 개요
유고슬라비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67년에 알타이 SK 감독을 맡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조르제 부야디노비치는 스메데레보 인근의 콜라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삼촌이 자식이 없었던 터라 부야디노비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베오그라드에 있는 삼촌의 집에 입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삼촌의 집에서 고무공을 갖고 놀기를 즐겼고 삼촌은 그런 그의 축구 사랑에 큰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주로 축구를 하던 들판이 물에 잠기게 되면 부야디노비치는 칼레메그단으로 옮겨서 축구를 했는데 그 곳은 모래가 많은 땅이었던 터라 거기서 축구를 하면 팔꿈치나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리고 부야디노비치는 삼촌 덕에 BSK 베오그라드에서 축구 선수로 뛰게 되었다.
2.2. 선수 생활
부야디노비치가 입단할 무렵 BSK에는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와 같은 좋은 유소년 선수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부야디노비치 역시 기량이 날로 일취월장하였다. 20년대 말엽에는 유고슬라비아 사람들 역시 축구에 큰 관심을 보여서 축구 관중들도 늘어갔다.
득점왕을 2차례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던 부야디노비치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선수들이 서서히 돈을 받으면서 축구를 하였는데 부야디노비치는 국립 은행에서 일을 했다.
또한 부야디노비치는 신사적인 매너로 유명했었는데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딱 한 번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 경기가 바로 초대 월드컵 4강 우루과이전이었는데 부야디노비치는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고 두 번째 골까지 넣었지만 심판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골을 취소시켜버렸다. 그 때문인지 진이 빠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은 6대1로 대패하며 월드컵을 마감해야만 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부야디노비치는 주로 유스팀에서 감독을 맡았는데 친정팀 BSK에서도 감독을 맡았지만 오래 맡지는 못했다.
3. 뒷이야기
- 부야디노비치의 별명은 나는 축구선수[4] 였다. 이 별명은 선수 시절 막바지에 나온 것인데 부야디노비치는 선수 생활 동안 BSK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동시에 유고슬라비아 국립 은행에서 일을 했다. 처음에는 시합과 일을 동시에 잘 수행했었다.[5] 하지만 선수 생활 말기에는 그로 인해 시합에 빠지는 일이 잦았는데 팀이 원정 경기라도 갈라치면 그는 초기에는 아예 함께 가지 못했다가 나중에는 시합이 임박해서야 비행기를 타고 늦게 팀에 합류하곤 하였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비행기를 타고 늦게 나타나는 그를 보고 팀 동료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 꼼꼼한 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축구계에 있으면서 기록을 남겼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엄청난 양이 되었다고 한다.
4. 수상[6]
4.1. 클럽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 5회: 1930–31, 1932–33, 1934–35, 1935–36, 1938–39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준우승 3회: 1929, 1937-38, 1939-40
-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 1회: 1934
4.2. 개인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득점왕 2회: 1929, 19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