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1. 개요
유고슬라비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는 1910년 베오그라드 근처의 크르니에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금속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는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군에 징집되어 전사#s-2하였다. 그로 인해 티르나니치는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고 축구에 빠졌다. 그리고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를 스카웃했던 라덴코 미트로비치에 의해 BSK 베오그라드에 입단하였다.
2.2. 선수 생활
티르나니치는 17살에 데뷔한 이후 모든 커리어를 BSK 베오그라드에서 보냈고 500경기를 넘게 뛰는 동안 5회의 우승을 맛보았다.
국가대표팀에는 총 50경기를 뛰면서 12골을 득점을 하였다. 데뷔는 1929년 10월에 루마니아를 상대로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2대1로 패하였다.
초대 월드컵에 참가한 그는 첫 경기였던 브라질과의 시합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기록하였다. 팀은 준결승에 진출하였지만 호스트 우루과이에 패하면서 유고슬라비아의 월드컵 여정은 막을 내렸다. 그 이후에 발칸 컵 등에 참여하면서 A매치 경력을 쌓았고 1940년 루마니아를 상대로 마지막 A매치를 치렀다.
2.3. 감독 생활
감독으로 그는 오랜 기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맡았다. 공동 감독 체제가 많았지만 그는 5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계를 이끄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올림픽과 유로 등에서 성과를 내었다. 아쉬운 것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여 당시 유고 선수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고 묻혔다는 것이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당대 BSK 베오그라드에서 무사와 함께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였다. 기술이 빼어났고 골 감각 또한 있는 당시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였고 무사와 함께 펼치는 콤비 플레이는 당시 유고슬라비아 축구계 최고의 공격 옵션이었다.
감독으로서의 스타일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고 기술보다는 체력을 더 중시하였다. 적절한 자유와 함께 헌신을 강조하였고 기술 훈련보다는 러닝과 용기를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선수의 멘탈에도 관심이 많은 감독이어서 축구 그 자체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정신적인 채움을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그로 인해 팀으로서 강한 유대감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였다.
피치 밖에서의 성격 역시 부드럽고 유머 감각이 있었으며 명랑한 성격이었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사랑하고 음악, 사회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4. 뒷이야기
- 50경기 12골, 그리고 11년간의 활동기간까지. 브라질의 축구 영웅 가린샤와 A매치 기록이 같다.
- 티르나니치가 브라질을 상대로 월드컵에서 올린 득점은 월드컵 역사상 최연소 득점 기록이었다. 브라질전에 출전했을 당시의 그의 나이는 19세 364일로 그 다음날이 그의 20번째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기록은 28년 후에 나타난 한 소년에 의해 깨졌고, 그 이후 월드컵 최연소 득점 기록의 주인은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 밀루틴 이브코비치 등과 같이 그 역시 사회주의 활동을 했었다. 이브코비치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1936년 올림픽을 보이콧한 운동선수 중 한 명이었다.
- 티르나니치의 어머니도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때에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5. 수상[9]
5.1. 클럽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 5회: 1930–31, 1932–33, 1934–35, 1935–36, 1938–39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준우승 4회: 1927, 1929, 1937-38, 1939-40
-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 1회: 1934
5.2. 감독
[1] 현재 국적으로 따지면 세르비아이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영어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BSK 이후 여러 팀을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 러시아 등의 위키에는 원 클럽 맨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를 따랐다.[4]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공동 감독 체제로 갔던 적이 꽤 많다. 하지만 모든 피파 공식 보고서에는 한명만 감독으로 올라가 있다.[5]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와 공동 감독.[6] 위키에서는 1955년부터 1958년을 제외한 1952년부터 1961년까지 공동 감독 체제였다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피파 공식 보고서에서는 1954년과 1958년 월드컵 모두 티르나니치 감독 체제로 되어있다.[7] 공동 감독 체제[8] 티르나니치는 BSK 베오그라드 원 클럽 맨이므로 팀 이름의 기입은 생략하였다.[9] 티르나니치는 BSK 베오그라드 원 클럽 맨이므로 팀 이름의 기입은 생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