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당
1. 개요
1945년, 여운형과 조선건국동맹,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출신 인물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중도좌익 성향의 정당.
2. 활동
1945년 말, 여운형을 주축으로 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미군정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우익에게 외면당하는 상태였다. 이에 여운형은 '''완전한 통일전선을 전개'''하고자 1945년 11월 12일 '조선인민당'을 창당했다. 이 정당은 건준이 정당으로 변모한 형태였기에, 강령이나 정치적 성향 및 정책은 광복 당시 건준의 그것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1][2]
조선인민당은 통일전선을 지향했기에, 좌익정당인 조선공산당에 비하면 정책이 온건한 편이었다. 물론 건준 후기에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기는 하는 등 연관이 있었지만, 여운형과 공산주의자들은 분명히 다른 노선이었고 또 서로 간의 정치적인 갈등도 존재했었다. 그래서 여운형은 자파 세력을 규합해서 조선인민당을 창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운형은 공산주의 세력과의 접촉은 계속해 나갔다.[3] 한편 조선인민당은 중도파와 우익에게도 손을 내밀어, 노동자와 농민뿐만 아니라 소시민과 자본가들과도 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45년 말부터 1946년까지 조선인민당은 통일전선의 기치를 들며 정치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조선인민당은 여운형 개인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운형 개인을 중심으로 세워진 정당이었기에 다른 정치세력과 비교했을 때, 지지하는 군중은 많을지라도 동원할 수 있는 군중은 적었다. 게다가 당원들과 지지층 중에는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조선공산당과 겹쳐지는 사람이 많았다.[4] '''분명 독자적인 정당이었지만 조선공산당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조선인민당은 조선공산당과는 서로 보완하는 파트너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1946년 중반이 되며 미소공동위원회가 파탄나자, 남한의 좌익세력들이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합당을 도모하면서 당내의 공산주의 세력이 대거로 빠져나가게 되며 당은 분열되고 말았다. 결국 여운형은 남은 세력들을 이끌고 다른 좌익정당의 합당 반대세력과 연합하여 사회노동당을 창당하게 된다.
[1] 여운형은 이 정당의 지향을 '3강(정치, 경제, 문화) 5륜(국민皆勞(개로 : 모두가 다 일함), 국민皆兵(개병 : 모두 병역을 행함), 상호信讓(신양 : 믿고 양보함), 공공단결, 일치단결)으로 규정했다.[2] 여담으로 이 당의 로고에는 태극 문양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는 보수우익에게도 호감을 주기 위함이었다. 웃긴건 그 로고가 조선인민공화국 국장이였다.[3] 당연한 것이 공산주의 세력도 통일전선 형성을 위해 끌여들여야 할 세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의 추종세력 중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있기도 하였다. 물론 조선공산당과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들도 적지 않았지만...[4]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여운형을 존경하고 흠모하지만, 사상은 공산주의인 식이었다. 여운형은 공산주의와 분명 관계는 있었으나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차라리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에 더 가까운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