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절(삼국지)
曹節
(? ~ 181년)
1. 개요
후한 말의 환관. 자는 한풍(漢豊). 형주 남양군 신야현 사람. 조파석의 형.
2. 정사
138년 조절은 소황문의 자리에 있으면서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대장군 양상의 아들 양기와 친해졌다. 이를 시기한 다른 환관들이 조등과 양상을 모함했다. 그러나 당시의 황제였던 순제는 이를 곧이 듣지 않아 화를 면했다. 167년 환제가 죽자 환사황후 두씨의 아버지인 두무가 황후에게 아뢰어 영제를 옹립했다. 당시 중상시였던 조절은 어린 영제를 있는 곳[1] 으로 가서 궁궐로 모셔 왔다. 168년에는 황제 옹립에 공을 세웠다 하여 장안향후가 되었다.
이후 조절은 환사황후에게 아첨하며 자신들을 따르는 자들에게 벼슬을 내리게 하였다. 이 때문에 두무와 진번은 같이 모의하여 조절을 비롯한 환관들을 제거하려 했다. 두 사람은 환사황후에게 환관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환사황후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며 이 과정에서 계획이 새어나가 조절과 왕보의 귀에 들어갔다. 이들은 영제에게 두무와 진번이 새 황제를 세우려 한다고 거짓으로 고한 다음 군사들을 보내 둘을 죽이고 가족과 그들의 세력을 제거했다. 이 사건 후 영제는 조절을 장락궁의 위위로 임명하고 육양후로 봉했다. 169년 당인 중 하나인 장검은 후람과 사이가 나빴는데 이 때문에 후람의 부하에게 역도들의 수괴라는 모함을 받았다. 당시 대장추였던 조절은 영제를 부추겨 이응을 포함한 당인 백여 명을 죽였다.
172년 교주에 귀양가 있던 환사황후의 어머니가 죽자 이를 안 환사황후도 얼마 가지 못해 병들어 죽었다. 조절은 환사황후를 황후가 아닌 귀인의 예로 장사지내려 했으나, 영제의 반발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환제의 묘소에 합장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여러 신하들이 영제를 설득했기 때문에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8년 6월 검은 기운이 온덕전에 떨어지고 7월에는 궁궐 정원에 푸른 무지개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흉조로 여겼다. 영제는 신하들에게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할 대책을 내놓게 했는데 이때 의랑 채옹이 올린 상소문이 영제를 감동시켰다. 영제가 잠시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조절이 그 내용을 훔쳐보았는 동료 환관인 중상시 정황을 경계하라는 부분을 보고 정황에게 알려주었다. 채옹에게 앙심을 품은 정황은 영제에게 모함하여 죽이려 했으나, 다른 중상시 여강이 채옹을 용서해 주길 청했기 때문에 귀양 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이 때 조절과 왕보의 위세가 절정에 달하여 일가친척들이 모두 벼슬을 받고 횡포를 일삼았다. 이들을 미워한 사예교위 양구는 이들을 제거할 기회만을 노렸다. 마침 환관들에게 아첨하던 태위 단경이 일식 때문에 스스로의 죄를 청하자 이를 구실삼아 왕보와 그 일당들을 죽였다. 양구는 조절까지 죽이려 했으나, 도리어 조절이 영제에게 양구를 모함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사예교위에서 물러나 위위가 되었다. 179년 사도 유합은 양구 등과 함께 조절을 제거하려 했으나, 계획이 새어나가 조절의 모함을 받고 모두 죽었다. 조절은 이후 181년 세상을 떠났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십상시 중 한 명으로 등장하며 대장군 하진이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것으로 나온다. 189년 십상시가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하진을 죽인 것에 반발한 장수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 때 조절은 장양, 단규 등과 함께 영사황후 하씨, 소제, 진류왕을 데리고 달아났는데 노식이 영사황후를 구했다. 장양과 조절은 달아나다가 형세가 좋지 않자 물에 뛰어 죽었다.
4. 미디어 믹스
드라마 영웅조조에서는 한자와 동일한 이유 때문인지 조조의 증조부인 조절과 동일인물로 나오는데, 이로 인해 제2차 당고의 금 때 환관들을 지휘해 두무를 죽이는데, 두무에게 죽기 전에 두무 휘하의 사람들은 살려준다고 속이고 두무가 죽은 후에 두무 휘하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다.
[1] 황제가 되기 전에는 해독정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