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스본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George Osborne
보수당 소속의 영국 정치인이자 보수 언론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재무부 장관을 맡았으며, 현재는 타블로이드 일간지인 이브닝 스탠더드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2. 생애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스본 & 리틀(Osborne & Little)이라는 벽지 제작 회사를 설립한 귀족 출신[1]의 사업가이고, 어머니는 헝가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원래 이름은 기디온(Gideon)이었는데, 해당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13살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조지로 개명했다고 한다. 이 후 오스본은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현대사를 전공하였다. 옥스퍼드 대학의 상류층 클럽인 벌링던 클럽[2]에 가입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오스본은 영국의 대표적인 우파 성향 신문사인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입사하였다가, 얼마 후에 보수당 당직자로 일하게 되었다. 당직자로서 오스본은 당시 보수당의 대표를 맡고 있었던 윌리엄 헤이그를 보좌하였다. 뛰어난 문필력의 소유자였던 오스본은 헤이그의 연설문들을 주로 작성하였으며, 덕분에 오스본은 당 지도부의 인정을 받아 2001년 총선에 보수당 후보로 공천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당시 오스본은 30세의 나이로 2001년 총선 당선자들 중에 최연소였다. 이 후 오스본은 당시 당 내 소장파들의 리더 격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의 심복이 되었고, 캐머런이 보수당 대표로 당선된 2005년에 그림자 내각의 재무부 장관으로 영전된다.
2010년에 치러진 제55회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내각에 그대로 재무부 장관에 임명된다.[3] 당시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와 오스본 장관의 경제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감세, 규제완화 등 일련의 기업친화적인 경제정책들은 영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회복시켰으며, 이러한 경제 성과 덕분에 보수당은 제56회 영국 총선에서 단독 과반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 후 캐머런 2기 내각에서도 오스본은 재무부 장관으로 유임되었고, 추가로 선임 장관[4]에까지 임명되면서 명실상부한 캐머런 내각의 2인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5] 덕분에 오스본은 캐머런의 뒤를 이을 유력한 차기 총리 감으로까지 거론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오스본은 캐머런과 함께 잔류파의 핵심 인사로 활동하였고, 이 때문에 해당 국민투표에서 탈퇴로 결정되자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결국 오스본은 캐머런과 함께 각료직과 의원직에서 사퇴하면서,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이다. 현재는 테블로이드 일간지인 이브닝 스탠더드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차기 유럽은행총재에 지명됨에 따라 재무장관을 지낸 오스본이 IMF의 총재 후보에 올랐다.

3. 여담


프랜시스 호웰(Frances Howell)이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2명의 자녀를 두었다. 현재는 이혼한 상태이다.
[1] Sir Peter Osborne, 17th Baronet. 그가 사망하게 되면 오스본이 준남작 작위를 물려받아 18th Baronet이 될 것이다.[2] Bullingdon Club.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와 보리스 존슨 현 총리 또한 해당 클럽의 멤버였다.[3] 공교롭게도 오스본이 당직자 시절 모셨던 윌리엄 헤이그가 외무부 장관에 임명된다.[4] First Secretary of State[5] 1기 캐머런 내각은 보수당-자민당 연정이었기 때문에, 1기 내각의 공식적인 서열 2위는 자민당 대표 겸 부총리였던 닉 클레그이다. 보수당 각료들로 한정해도 1기 내각의 선임 장관은 윌리엄 헤이그였기 때문에 서열 3위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