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전국시대)

 



趙姬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중국 전국시대의 인물. 진시황의 생모로, '''최초의 황태후'''다.
본래 조나라의 상인인 여불위가 데리고 있던 첩으로, 외모가 아름답고 춤을 잘 추었다.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던 진(秦)나라의 왕족 자초와 여불위가 연을 맺으면서 자초의 처가 된다. 자초가 조나라를 탈출하고 진나라의 왕위를 이어 장양왕으로 즉위하면서 왕후가 되고 4년 후 장양왕이 병으로 사망하여 아들 정(政)이 진왕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태후가 된다.
그 태생은 확실하지 않으나, 비천한 출생은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불위열전에서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할 당시에 볼모로 잡혀있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진 자초가 여불위의 도움을 받아 달아났는데, 그때에 조희와 그 아들은 달아나지 못했으나 그녀가 부잣집 딸이었기 때문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진시황은 훗날 천하를 통일하고 몸소 조나라 한단으로 순행할 당시에 외가에 불만을 품고 있던 무리들을 모두 죽여버렸다고 하였다. 이처럼 나름 돈도 있고 그 가문에 대해 불만을 품은 무리들이 제법 있는 집안이었다면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상당히 부유하고 힘있는 가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참고로 조희가 조나라에 있었을 때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가졌고 아들 정(政)이 실은 여불위의 자식이라는 설이 있다.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하면서 여불위열전에 이와 관련된 일화를 실어 놓았다.[1] 그런데 여불위열전에는 또한 조희가 부잣집의 딸이라고 기록하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부잣집의 딸이 일개 상인의 첩이나 무희 노릇을 할 리가 없으므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딸도 딸 나름이다. 조희가 부자집 정실의 딸인지 후처의 딸인지 알 수 없으며 당시 여불위를 일개 상인따위?로 추측하는것도 무리가 있는 부분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아들이 즉위할 당시에, 조태후는 아직 나이가 젊었던 것으로 보인다.[2] 혈기 왕성한 나이에 남편을 잃은 탓인지는 모르나 남자를 지나치게 밝혔었다고 한다. 이때 섭정으로서 국정을 좌우한 여불위는 간혹 조희와 통정했지만, 뒷감당이 힘들어지자 노애, 통칭 노대란 자를 환관으로 위장시켜 붙여주고 점괘를 조작한 후에 별궁인 옹성으로 보냈다고 한다. 역사서와 야사의 기록에 따르면, 노애는 성기에 수레바퀴를 끼우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라서 장안의 부녀자가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조희와 노애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둘씩이나 태어나자, 열후로 봉해진 노애는 옛 수도 옹 땅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진왕은 성장하면서 둘의 관계를 눈치챘지만 묵인했다고 하는데, 노애는 자기 자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진왕 정(政)에게 발각돼 노애와 그 아이들은 모두 죽게 된다. 이후 여불위는 승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결국 자결하게 되며 진왕 정은 본격적으로 정권을 장악하여 친정을 시작한다. 조희는 태후의 자리에 있었기에 참형은 면하였지만 죽을 때까지 별궁에 유폐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얼마 지난 후에 신하들의 중재로 겨우 모자가 화해하며 조용히 지내다 죽음을 맞는다.[3]
사마천의 《사기》, 《전국책》 등 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모든 사서나 창작물에서 '''성욕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음녀'''라는 기믹이 거의 굳어 있다(…). 노애와의 일화 때문에 그런 듯.

2. 미디어 믹스



2.1. 킹덤(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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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에서는 17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성우는 츠보이 코노미.
위의 기믹답게 굉장히 음란하게 묘사된다.[4] 남근이 없는 환관조차 그녀가 포도와 비슷한 과일을 빨아먹는 모습을 보고는 침을 삼키며 성욕을 느낄 정도. 뛰어난 것은 외모만이 아니라 다양한 술수로 정의 진영에 혼란을 줬다. 처음에는 가짜 옥새를 만들어 진시황의 관심을 끌고 여불위에게 맞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나, 사실 이는 과거 자신과 연인 사이였던 여불위의 관심을 얻기 위한 술책이었고, 이후에는 틈이 날 때마다 여불위와 검열삭제를 즐긴다.[5] 여불위와는 오래된 악연으로 여불위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조희를 배신했다. 이후 조나라에 방치되었고 진나라에 원한을 품고있는 조나라인들에 의해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이 시간들은 조희를 완전히 망가뜨려놓는데, 친아들인 정에 대한 모성도 잃을 정도.
이후에는 노애와 거하게 만리장성을 쌓았고 노애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서 태원 일대에 노애의 나라라는 뜻의 '애국'을 세우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키며, 막대한 자금과 조고의 책략에 따라 건국 준비를 진행하던 도중에 여불위가 찾아온다. 여불위에게 이젠 조금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원망을 토해내지만, 여불위가 "그래도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자(406화) 혼란을 느낀다.
초나라의 지령을 받은 호력이 진나라 내부 분열을 위해 움직이는 본심을 숨기고 대신들을 매수해 거병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아들 두 명을 인질로 잡으면서 조희의 사생아 둘을 인질로 잡아 함양을 기습하거나 태후(조희), 노애, 두 사람 사이의 자식의 목을 보내면 된다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자 결국 정의 가관의식(성인식)에 맞춰 거병하기로 하고 함양에 입성, 정과 대면한다. 그 사이, 조희가 가짜 옥새로 위조한 명령서의 도움으로 애국 군대는 함곡관을 통과.
그러나 성인식의 분위기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긴장된 모습이라곤 없이 흥겨움뿐인 것을 보고는 진나라 조정은 자신의 사생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 자신이 여불위의 계략에 빠져 섣부른 짓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다만, 그녀 또한 여불위의 예상을 깨기 위해 원래 병력보다 많은 3만의 대군[6]을 보낸 터라서 거기에 모든 걸 걸기로 한다.
그리고 결국 역사대로 애국 반란은 진압되고 노애가 거열형에 처해지게 되자 대놓고 자신이 주동자라고 외치며 제발 아이들만은 살려달라고 절까지 하면서 애원하지만 반란의 불씨는 남길 수 없다는 정의 대답에 분노하여 정을 죽이려 하다가 향에게 대성일갈을 듣는다. 이후 탑에 유폐된 모습으로 다시 한번 등장한다(437화).[7] 조나라와의 흑양 공방전과 진왕 - 제왕의 회담이 끝난 이후 여불위의 실각과 함께 태후가 함양으로 돌아왔다는 짤막한 설명이 나온다(496화).

2.2.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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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무장으로 등장. 병종은 군악대계고 성우는 장예나이다. 성능면에서 평가는 좋지 않은 편. 조희는 나오는데 노애는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1] 이전 버전에는 조희가 12개월 뒤 출생했다는 것이 여불위열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이는 오역이다. 실제 사기에는 "姫自匿有身, 至大期時, 生子政." 이라고 적혀있다. 해석하자면 大期(대기,출산의 때 다른 말로 만삭)에 이르러(至) 아들 정(子政)을 낳았다(生).[2] 20세 정도에 아들을 낳았다고 가정하더라도 30대 초중반의 나이이다. 과거엔 출생시기가 더 빨랐던 것을 감안하면 아직 20대였을 가능성도 있다.[3] 진왕 정은 이 사건 때문에 조 태후한테 오만 정이 떨어져서 오히려 할머니인 화양태후(안국군의 아내이자 자초가 장양왕이 될 수 있도록 도왔던 그분)와 매우 돈독한 사이였다고.[4] 딱히 19금도 아니고 서비스신도 없는 데다가 등장인물의 9할 이상이 남캐인 만화에서 가장 상의탈의를 많이 한 캐릭터이기도 하다.[5] 이게 어느 정도냐면, 간통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여불위가 안 찾아오자 직접 밤에 찾아가 여불위를 한순간 식은 땀을 흘리게 할 정도.[6] 본래 병력 1만에, 과거 진나라에 합병당해 원한을 품고 있던 융적의 군대 1만, 사정을 모르고 가짜 옥새에 속아서 징발된 1만의 잡병이 추가되었다.[7] 이때 정이 찾아와 노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따로 외딴 시골에 숨어 살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그토록 비뚤어졌던 관계이지만 최후에 나름 배려해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