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1. 개요
- 라틴어: Cum dilectione hominum et odio vitiorum.
- 영어: Hate the sin, not the sinner. / With love for mankind and hatred of sins.[1]
특히 죄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는 기독교와 연관이 깊은 말이기도 하다. 용서는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도 많이 강조되는 요소 중 하나다. 죄가 있는 사람들도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식으로 단순히 생각해서 풀이하곤 하는데, 실제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대상을 맞닥뜨리게 되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죄와 사람을 분리시켜서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나, 사람의 견해에 따라 철학적, 종교적인 이유로 의미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에 사용함에 따라 논란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이러한 관용의 이유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존재 자체가 죄인으로 태어났고, 항상 알게 모르고 많은 죄를 지어왔으므로,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증오를 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다.
2. 어려움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와 달리 범죄자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유족이나 대규모 절도 및 폭행에 의해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범죄자 때문에 얻은 아픔과 괴로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이기고 범죄자를 용서하기 힘들다. 아픔과 슬픔을 극복하고 범죄자들을 용서하는 피해자도 물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미울 때도 있습니다.'''
'''죄를 지은게 사람인데 사람을 어떻게 안 미워할수가 있겠습니까'''
2.1. 그리스도교에서의 해석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이 문장이 그리스도교의 교부에게서 나온 명제인 만큼,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 내에서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적용이 있어왔다. 현재 교파나 교인 개인에 따라 여러 해석이 있으나,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해석을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시며, 불의를 심판하신다. 만약 누군가가 불의하다면 틀림 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에 대한 심판을 굳이 바랄 필요도 없고 그것을 위해 기도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인간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저절로 올 것이다. 절대자를 신앙하는 그리스도인 입장에서는 악행은 결국 미련한 짓이다. 따라서 죄인의 일시적인 형통에 부러워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악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를 병들고 악하게 만드는) 증오심과 복수심으로부터 담담히 우리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그의 죄를 미워하되 죄인 자체를 미워할 필요 없이 단지 정의와 진리를 구하면 된다. 속히 벌하실지, 더 적절한 시기에 벌하실지는 절대자의 몫이다. 또한, 우리는 이웃의 죄인 여부보다는 그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주님의 형상대로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믿음'의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절대자의 뜻이 다음 마태오 복음서의 구절과 같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18장 12-13절 중
3. 교화한 사람들을 향해
죄를 저지르는 것이 사람이긴 하지만, 이 말이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전해오는 것은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는 것도 사람에게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에서는, 끝까지 죄의 길만 택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죄를 뉘우치고 고치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사람을 살해하거나 범하는 것, 혹은 금품을 갈취하는 것만이 죄는 아니다.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는 것도 법에 명시된 죄고,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것 또한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을 뿐이지[3] 저작권자에게 합당한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 죄가 맞다. 게다가 이것들 이상으로 사람들이 많이 저지르는 게 '''죄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돌아봤더니 죄였던 일'''이다. 결국 세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가 없다.
사람이 죄만 짓고 살았다면 세상은 진즉에 멸망했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죄를 뉘우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줄 법한 곤궁한 상황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옳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이 죄를 뉘우치는 것뿐 아니라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의지 또한 같이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지금까지도 역사 시간에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고, 죄인을 용서한 사람을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그 죄를 지은 사람이 뉘우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일은 고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뉘우치지 않고 또 죄를 저질렀다?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또 치르게 하고, 다시 뉘우칠 기회를 주면 된다. 한결같이 죄만 저지르는, 이미 반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르는 악인이다? 어차피 미래에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그냥 지은 죄에 대한 대가만 꼬박꼬박 치르게 하고 뒤의 일은 묻지 않는 것이 낫다.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용서할 수가 없다? 그 죄의 경중을 가리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저지른 죄를 그냥 묵살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며, 한 번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을 영원히 매도해버리는 것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사고가 일어나면 사고의 책임자를 묻어버릴 생각으로 과거를 파헤치는 것은 이것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놀랍게도 이것이 맞다고 증언하는 학술적 연구 결과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팃포탯 문서를 참조.
[1] 보통은 간결한 전자의 표현이 많이 쓰인다. 후자는 위의 라틴어 구절을 직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죄를 미워하라"라는 뉘앙스에 가깝다.[2] 첫번째 문단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최신종을 다룬 회차의 엔딩 코멘트, 두번째 문단은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 오구탁으로 출연하여 언급한 내용이다.[3] 토렌트처럼 업로드가 수반된다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다운로드만 받고 업로드는 하지 않을 때 잡아내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