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코인

 

常高院
(1570년 ~ 1633년 9월 30일)
1. 개요
2. 생애
3.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15~17세기 동아시아의 혼란기와 에도 막부 성립이에미츠의 정치를 지켜본 여성. 언니 요도도노, 동생 스겐인이 있다. 아자이 3자매 중 오래 살던 여성. 죠코인은 법명이다.
교고쿠 씨(京極氏)의 당주인 교고쿠 다카츠구(京極高次)의 정실이다. 본명은 아자이 하쓰(浅井 初)이다. 하쓰(初)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아명은 오나베(御鐺) 또는 오나(於那)이다.

2. 생애


아버지는 오미 국(近江国) 오다니 성(小谷城)의 성주인 아자이 나가마사이며, 어머니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이다. 언니인 차차(茶々, 요도도노), 동생 에요(江与, 스겐인)이다. 더불어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에게는 백모(伯母)이다.
성격은 스겐인과 비슷해서, 야사에서는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어떻게 하면 마누라와 다툼을 피할 수 있나 해서 그녀의 남편인 교코쿠 다카츠구의 예를 들어서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 사례라는 것은 야샤에서 히데타다 본인이 아내 스겐인 몰래 오시즈(お靜)이라는 시녀와 바람을 피웠는데, 거기에서 난 자식이 호시나 마사유키이다. 교코쿠 다카츠구도 히데타다와 마찬가지로 역시 바람 피웠다가 나중에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게 바로 교코쿠 다다타카였다. 교코쿠 다카츠구의 정실인 하츠가 그 사실을 알고, 스겐인 앞에서 울면서 아이를 죽이는 동시에 다카츠구와 이혼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엿듣고 하츠를 설득하게 된다. 이에야스는 다카츠구의 가신을 은밀히 불러서 이에야스의 경험을 살려서 은밀히 키울 것을 다카츠구에게 말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결국 이에야스의 말대로 다카츠구는 정실이 화를 가라앉기까지 가신에게 은밀히 키우라고 했다고 한다.
동생 에요와 도쿠가와 히데타다 사이의 4녀인 하츠히메(初姫, 후에 코안인(興安院))가 양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히데타다가 입양 승인해준 것. 호시나 마사유키 존재를 스겐인 모르게 철저히 숨긴 것도 앞에서 말한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남편인 교코쿠 다카츠구가 죽자 남편의 유언에 따라 에도에 인사차 드리고 오사카 성에 요도도노, 센히메,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같이 살게 된다.
1615년 도요토미 가문이 오사카 성 여름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에게 패배, 센히메와 같이 오사카 성을 나가게 된다.
남편 다카츠구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어, 다카쓰구의 여동생과 우지이에 유키히로(氏家行広) 사이의 딸인 고나(古奈), 다카츠구와 측실 사이에서 태어난 다다타카(忠高, 생모는 야마다 씨(山田氏)), 다카마사(高政, 생모는 오구라 씨(小倉氏)), 이 외 1명 등을 양자, 양녀로 삼아 이들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후계자인 다다타카와 혼인시켰으나 둘 사이에서도 자녀는 없었다. 게다가 하츠히메와 다다타가와 부부 관계는 안 좋았다. 하츠히메가 임종 직전인데 남편이라는 것은 저잣거리에서 스모 경기 보고 있고, 임종이라도 보라고 가신들이 설득하지만 무시한다. 아내는 그 충격으로 죽고 그 소문이 황도(皇都)였던 교토와 쇼군의 거점이었던 에도성까지 퍼지자 황실은 몰론이고 공가에서는 쑥덕거리고, 오고쇼 히데타다와 쇼군 이메미츠가 불 같이 화를 냈지만 막부를 섬긴 가문이라 은거(隱居)하도록 하게 된다.[1]
후일 1633년 9월에 에도성 교고쿠 저택에서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카스가노 츠보네, 센히메 등이 그녀의 임종을 지켜보며 사망한다. 사망한 나이는 64세이며, 쇼군에게 유언을 남겨 막부가 죠코지에 있는 남편 교고쿠 다카츠구와 같이 봉안되게 된다. 막부가 특별히 조정에 부탁한 내린 시호는 죠코인덴에이쇼다이진(常高院殿松巖榮昌大姉)이다.

3. 대중 매체에서


[image]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1] 영지 몰수 생각까지 했지만, 섬긴 공로와 가스가노 츠보네(오후쿠) 체면과 죠코인이 오고우의 언니라는 점을 고려한 탓도 있다. 하지만 죠코인이 죽고 나서 1634년에 전봉(영지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