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겐인
崇源院
(1573년 ~ 1626년)
일본 전국시대에서 에도 막부 초기의 인물.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실이다.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의 3녀. 언니로 요도도노, 죠코인이 있다.
스겐인은 사망 이후 받은 시호이며, 본명은 고우(江), 혹은 에요(江与)로 보통 오에요노카타(お江与の方)라고 불린다. 1573년 오미국 오다니성에서 태어났다. 출생연월일이 1573년이라는 것은 덴쇼 12년에 12살이었다는 기록에서 역산하여 추정한 것으로, 확실하지는 않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아기일 때로 보이는 1573년 9월 1일[1] 아자이 나가마사는 패망하고, 나가마사의 배려로 오이치와 고우를 포함한 3자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다만 이 기록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의심받고 있고, 고우는 이미 오다니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어쨌든 노부나가의 배려로 이세 우에노성으로 가서 노부나가의 동생 오다 노부카네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게 된다. 그러다가 1582년 6월 2일,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츠히데의 모반으로 죽음을 당하자 이후 노부나가의 후계를 놓고 한바탕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에서 어머니 오이치는 시바타 가츠이에와의 재혼을 선언하고, 3자매는 에치젠의 키타노쇼성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그러나 1583년, 시바타 가츠이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하고 키타노쇼성도 함락되자 오이치는 자결하고 만다. 이후 3자매는 히데요시에 의해 교토로 보내졌거나 혹은 아즈치로 보내졌다는 설도 있다.
이후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차남인 오다 노부카츠를 회유하려는 목적에서 노부카츠의 가신인 오와리의 오노 성주 사지 카즈나리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좀 불확실하다. 히데요시가 정략결혼을 명한 것이 아니라 오다 노부카츠가 사지 가문과의 화해를 위해서 고우를 시집보냈다는 설도 있고, 약혼만 했을 뿐 실제 결혼까지는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카즈나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왔다는 이유로 추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히데요시는 자신의 조카 하시바 히데카츠에게 고우를 시집보내게 되는데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하시바 히데카츠는 조선에 건너갔다가 거제도에서 병사하는 바람에 고우는 졸지에 과부가 되어버렸다. 히데카츠와의 사이에는 딸 사다코를 낳았다고 하는데, 사다코는 쿠죠 유키이에에게 시집갔다고 하며, 오사카 성 여름 공방전 이후에는 스겐인의 부탁을 받고 히데타다의 양녀가 되었다고 한다.
1595년, 고우는 이에야스의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재혼하게 된다. 본래 히데타다의 결혼 상대는 히데요시의 양녀이자 오다 노부카츠의 딸인 오히메였지만 오히메가 죽는 바람에 이 혼사는 물건너 가게 되었고 대신 고우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히데타다와의 결혼은 세 번째 결혼으로, 이에 반해 히데타다는 2번째 결혼이었기 때문에 신혼 때는 사이가 약간 서먹서먹했다는 말도 있다.
1597년에 히데타다의 딸인 센히메를 낳았고, 아들 도쿠가와 이에미츠와 도쿠가와 타다나가를 낳아 2남 5녀를 두었다. 후에 고미즈노오 덴노의 중궁이 되어 메이쇼 덴노를 낳은 마사코도 그녀의 딸. 파란만장했던 전반의 삶과는 달리 후반의 삶은 쇼군의 생모로서 안정된 삶을 살게된다. 실제로도 차기 쇼군을 낳은 유일한 정실 부인이라고. 다만 그녀는 장남 이에미츠를 싫어하고 차남 타다나가를 편애해 타다나가를 차기 쇼군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2]
어머니 오이치와 마찬가지로 대가 센 여자였다고 한다(게다가 남편 히데타다보다 6살 연상). 히데타다가 공처가라서 남편과의 사이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아들인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이 영향으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3]
1626년 에도성 니시노마루에서 사망해 화장되어 묻혔는데, 2차대전 이후 스즈키 타카노리 등이 조조사의 도쿠가와가 묘소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묘도 발굴되었다. 화장된 뼈가 발견되었는데, 뼈의 골격등으로 미루어 보면 상당히 몸집이 작고 가녀린 미녀였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고.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PK에서 특전무장으로 등장.
2011년 NHK의 대하드라마 고우 ~공주들의 전국~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다. 고우 역에 우에노 주리가 캐스팅 되었다.[4]
오오쿠-제 1장에서도 나온다.
(1573년 ~ 1626년)
1. 설명
일본 전국시대에서 에도 막부 초기의 인물.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실이다.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의 3녀. 언니로 요도도노, 죠코인이 있다.
스겐인은 사망 이후 받은 시호이며, 본명은 고우(江), 혹은 에요(江与)로 보통 오에요노카타(お江与の方)라고 불린다. 1573년 오미국 오다니성에서 태어났다. 출생연월일이 1573년이라는 것은 덴쇼 12년에 12살이었다는 기록에서 역산하여 추정한 것으로, 확실하지는 않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아기일 때로 보이는 1573년 9월 1일[1] 아자이 나가마사는 패망하고, 나가마사의 배려로 오이치와 고우를 포함한 3자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다만 이 기록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의심받고 있고, 고우는 이미 오다니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어쨌든 노부나가의 배려로 이세 우에노성으로 가서 노부나가의 동생 오다 노부카네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게 된다. 그러다가 1582년 6월 2일,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츠히데의 모반으로 죽음을 당하자 이후 노부나가의 후계를 놓고 한바탕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에서 어머니 오이치는 시바타 가츠이에와의 재혼을 선언하고, 3자매는 에치젠의 키타노쇼성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그러나 1583년, 시바타 가츠이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하고 키타노쇼성도 함락되자 오이치는 자결하고 만다. 이후 3자매는 히데요시에 의해 교토로 보내졌거나 혹은 아즈치로 보내졌다는 설도 있다.
이후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차남인 오다 노부카츠를 회유하려는 목적에서 노부카츠의 가신인 오와리의 오노 성주 사지 카즈나리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좀 불확실하다. 히데요시가 정략결혼을 명한 것이 아니라 오다 노부카츠가 사지 가문과의 화해를 위해서 고우를 시집보냈다는 설도 있고, 약혼만 했을 뿐 실제 결혼까지는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카즈나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왔다는 이유로 추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히데요시는 자신의 조카 하시바 히데카츠에게 고우를 시집보내게 되는데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하시바 히데카츠는 조선에 건너갔다가 거제도에서 병사하는 바람에 고우는 졸지에 과부가 되어버렸다. 히데카츠와의 사이에는 딸 사다코를 낳았다고 하는데, 사다코는 쿠죠 유키이에에게 시집갔다고 하며, 오사카 성 여름 공방전 이후에는 스겐인의 부탁을 받고 히데타다의 양녀가 되었다고 한다.
1595년, 고우는 이에야스의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재혼하게 된다. 본래 히데타다의 결혼 상대는 히데요시의 양녀이자 오다 노부카츠의 딸인 오히메였지만 오히메가 죽는 바람에 이 혼사는 물건너 가게 되었고 대신 고우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히데타다와의 결혼은 세 번째 결혼으로, 이에 반해 히데타다는 2번째 결혼이었기 때문에 신혼 때는 사이가 약간 서먹서먹했다는 말도 있다.
1597년에 히데타다의 딸인 센히메를 낳았고, 아들 도쿠가와 이에미츠와 도쿠가와 타다나가를 낳아 2남 5녀를 두었다. 후에 고미즈노오 덴노의 중궁이 되어 메이쇼 덴노를 낳은 마사코도 그녀의 딸. 파란만장했던 전반의 삶과는 달리 후반의 삶은 쇼군의 생모로서 안정된 삶을 살게된다. 실제로도 차기 쇼군을 낳은 유일한 정실 부인이라고. 다만 그녀는 장남 이에미츠를 싫어하고 차남 타다나가를 편애해 타다나가를 차기 쇼군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2]
어머니 오이치와 마찬가지로 대가 센 여자였다고 한다(게다가 남편 히데타다보다 6살 연상). 히데타다가 공처가라서 남편과의 사이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아들인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이 영향으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3]
1626년 에도성 니시노마루에서 사망해 화장되어 묻혔는데, 2차대전 이후 스즈키 타카노리 등이 조조사의 도쿠가와가 묘소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묘도 발굴되었다. 화장된 뼈가 발견되었는데, 뼈의 골격등으로 미루어 보면 상당히 몸집이 작고 가녀린 미녀였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고.
2. 대중 매체에서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PK에서 특전무장으로 등장.
2011년 NHK의 대하드라마 고우 ~공주들의 전국~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다. 고우 역에 우에노 주리가 캐스팅 되었다.[4]
오오쿠-제 1장에서도 나온다.
[1] 양력으로는 9월 26일[2] 주로 여러 작품에서 나오는 설로는 이에미츠가 좀더 익숙하고 편한 상대인 유모 오후쿠를 친모인 자신보다 더 잘따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3] 물론 그와 별개로 아들은 얻었기 때문에 후사를 얻는 데에는 성공했다. 명문가 정실이 아닌 낮은 신분의 첩에게서 얻은 것을 보면 어머니가 보여준 명문가 여성 특유의 높은 자존심과 강한 자기주장에 질렸던 모양이다. 이는 조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유사한 점이다.[4] 배경이 임진왜란 때인데, 그 때 조선 쪽 배우들의 복장을 KBS 측에서 제공해주었고, 임진왜란을 다룰때 불멸의 이순신 해전씬을 편집하여 내보냈다. 그 답례로 NHK는 국내 사극인 징비록에서 일본 쪽 후스마에 및 세트장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