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데텐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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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 1번 구역이 주데텐란트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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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체코의 민족 구성 지도. 붉게 칠해진 지역이 독일계이고 푸른 지역은 폴란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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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텐란트에서 사용하던 국기
'''주데텐란트(Sudetenland)'''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체코의 외곽 지역을 일컫는 역사적인 지명.
역사적으로 보헤미아의 일부였으나 독일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였다. 보헤미아 지역이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특히 30년 전쟁으로 이런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성립 당시에는 독일인이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하면서 숫적으로는 슬로바키아인까지 누르고 체코인의 뒤를 이은 제2민족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독일인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이 주데텐란트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망 이전에는 애초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자유로운 체제와 범민족적 정서 덕에 주데텐란트에 관한 큰 민족 갈등은 없었고 주데텐란트 지역이 보헤미아 다른 지역과 분리되었다는 정서도 없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망 후 이 지역의 독일인들은 오스트리아의 일부로서 잔류를 선포하였으나[2] 인정받지 못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가 되면서 전간기에서 히틀러까지 이어지는 민족 갈등이 본격적으로 촉발되었다.
전간기간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주데텐란트의 독일인들에 의해 수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연정을 통해 독일인들을 권력 집단의 주요 축으로 끌어들이면서 민족적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주데텐 독일인들과 체코인들 간 갈등은 존재하였고 서로간 불신은 존재하였으나 안정적인 경제와 전술한 독일계 정당들의 연정 참여와 큰 동화 노력같은건 없었기에 불신으로 그쳤다. 허나 1930년부터 갈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주데텐란트는 당시 체코의 다른 지역에 비해 공업화 비율이 높았고 경제에서 수출산업의 비율이 높았다. 그래서 체코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세계 대공황에 타격을 더 크게 받았다. 거기다 당시 주데텐란트에서의 동화 노력이 거세지며 체코어 교육과 체코어 사용이 의무화되자 독일인들의 불만은 점점 쌓이게 된다. 거기에다 1933년 독일 본국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과 이에 따른 체코 내 독일국가사회노동당의[3] 불법화와 더불어 주데텐 독일인들의 독일 귀속 요구가 빗발치게 된다.
그리하여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은 주데텐 독일당은 지속적으로 자치권 혹 독일로의 귀속을 요구하며 결국 1938년 주데텐 위기를 촉발시켰고 결국 뮌헨 협정으로 인해 나치 독일에 할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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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텐란트의 독일로의 귀속 이후 독일군이 주데텐란트에 입성하며 찍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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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텐란트의 독일 귀속에 관한 주민투표에서 사용되었던 주민투표지. 안슐루스때의 투표용지처럼 노골적으로 '예'가 강조된 것이 인상깊다.
하지만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망 후 체코슬로바키아에 환원되었고 독일계 주민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나뉘어 추방[4] 되며 주데텐란트라는 지명도 사라지게 된다.
이 사진에서 1번 구역이 주데텐란트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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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체코의 민족 구성 지도. 붉게 칠해진 지역이 독일계이고 푸른 지역은 폴란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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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텐란트에서 사용하던 국기
'''주데텐란트(Sudetenland)'''
1. 개요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체코의 외곽 지역을 일컫는 역사적인 지명.
2. 역사
역사적으로 보헤미아의 일부였으나 독일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였다. 보헤미아 지역이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특히 30년 전쟁으로 이런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성립 당시에는 독일인이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하면서 숫적으로는 슬로바키아인까지 누르고 체코인의 뒤를 이은 제2민족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독일인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이 주데텐란트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망 이전에는 애초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자유로운 체제와 범민족적 정서 덕에 주데텐란트에 관한 큰 민족 갈등은 없었고 주데텐란트 지역이 보헤미아 다른 지역과 분리되었다는 정서도 없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망 후 이 지역의 독일인들은 오스트리아의 일부로서 잔류를 선포하였으나[2] 인정받지 못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가 되면서 전간기에서 히틀러까지 이어지는 민족 갈등이 본격적으로 촉발되었다.
전간기간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주데텐란트의 독일인들에 의해 수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연정을 통해 독일인들을 권력 집단의 주요 축으로 끌어들이면서 민족적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주데텐 독일인들과 체코인들 간 갈등은 존재하였고 서로간 불신은 존재하였으나 안정적인 경제와 전술한 독일계 정당들의 연정 참여와 큰 동화 노력같은건 없었기에 불신으로 그쳤다. 허나 1930년부터 갈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주데텐란트는 당시 체코의 다른 지역에 비해 공업화 비율이 높았고 경제에서 수출산업의 비율이 높았다. 그래서 체코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세계 대공황에 타격을 더 크게 받았다. 거기다 당시 주데텐란트에서의 동화 노력이 거세지며 체코어 교육과 체코어 사용이 의무화되자 독일인들의 불만은 점점 쌓이게 된다. 거기에다 1933년 독일 본국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과 이에 따른 체코 내 독일국가사회노동당의[3] 불법화와 더불어 주데텐 독일인들의 독일 귀속 요구가 빗발치게 된다.
그리하여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은 주데텐 독일당은 지속적으로 자치권 혹 독일로의 귀속을 요구하며 결국 1938년 주데텐 위기를 촉발시켰고 결국 뮌헨 협정으로 인해 나치 독일에 할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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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텐란트의 독일로의 귀속 이후 독일군이 주데텐란트에 입성하며 찍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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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텐란트의 독일 귀속에 관한 주민투표에서 사용되었던 주민투표지. 안슐루스때의 투표용지처럼 노골적으로 '예'가 강조된 것이 인상깊다.
하지만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망 후 체코슬로바키아에 환원되었고 독일계 주민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나뉘어 추방[4] 되며 주데텐란트라는 지명도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