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광물)
1. 개요
朱沙(주사). 영어로는 Cinnabar라고 하며, 단주(丹朱), 경면주사(鏡面朱砂), 단사(丹砂), 진사(辰砂) 라고도 지칭한다.
광물의 일종으로 한약재나 안료로도 쓰인다. 황화수은(HgS)의 결정으로 천연에서는 수은을 일부 포함한 상태로 발견된다.
중진안신제로 각종 정신질환에 사용되었으며, 특히 방방 뜨는 계열(조증) 치료에 사용되었다. 주사의 약효가 발현하는 기전은 현대 과학으로는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광증에 걸린 사람에게 주사로 그린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게 하니 광증이 가라앉는 것을 보고 그 약효를 발견했다고. 효과는 아무튼 발군. 한의학 정신안정약의 상당수는 이 약재를 빼놓으면 효과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2. 추출
주사의 성분인 황화수은은 물에 대한 불용성 화합물이지만, 수은 화합물 자체가 맹독물이라서 반드시 수비[1] 해서 쓴다. 실제로 그 과정도 매우 까다롭다. 이 과정에서 섞여있던 수은은 분리된다.
여기서 주사를 수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위 링크글에 나오는 것처럼 정성들여 해놓고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가 없다'''. 때문에 과거의 한의학 서적에도 되도록이면 정말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말아야 할 약재로 기록했으며, 오늘날에는 사실상 거의 안 쓰는 것이 대세로 되어가고 있고 사용하더라도 수비를 철저하게 해서 소량 사용하는 정도다. 특히 절대로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 것'''. 워낙 위험한 약재라 약사가 사용하건 한의사가 사용하건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다. 효과는 주사보다 우월하면서도 부작용은 훨씬 덜한 안전한 현대 의학 약물이 산더미처럼 나와있는 요즘에, 간질이나 조증 증상에 아직도 이런 전근대적 약재를 용감하게 처방하는 한의사가 있다면 정신이 나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의사 면허제도의 특성상 그런 짓을 말릴수도 처벌할수도 없다. 한때 중국에서 수입된 안궁우황환이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주사를 이용해 붉은색으로 글씨나 그림을 그리면 악귀를 쫓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 예로부터 부적을 만드는 데 벽사용도로 많이 썼다. 냄새에 민감한 동물이나 곤충이 주사의 냄새를 기피하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에 그런 믿음이 생겼으리라고 추측한다. 이 경우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황화수은인 은주(銀朱, 일명 수화주水花硃)나 영사(靈砂. 일명 이기사二氣砂/금정영사金鼎靈砂)라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둘 다 인공 황화수은이지만 재료의 순도가 높은 걸로 만들어 질이 좋은 게 영사고 반대로 재료의 순도가 낮아 질도 낮은 게 은주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면 절대로 불을 써서 수비해서는 안 된다. 고온에서는 황화수은이 분해되어 유리된 상태의 수은이 녹아 나오기 때문이다.
3. 용도
중국 위나라, 진(통일왕조), 남북조시대에는 마약의 일종이었던 오석산의 다섯 가지 재료에도 들어갔다. 광물성 재료들을 뜨거운 술에 넣고 먹었으니 수은을 포함해 온갖 유해 성분들이 녹아든 술을 마셨다. 결국 마약에 중금속을 술에 타서 마신 셈이다.
또한 도장 찍을 때 사용하는 인주의 주 재료이다. 전통적인 인주는 쑥 잎 뒷면의 솜털과 피마자유, 주사를 섞어 만든다. 물론 만들기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현대에는 작품 낙관용 인주를 제외하곤 적당히 종이 펄프 같은 것에 빨간 안료를 섞거나 스펀지에 염료를 적시는 것으로 대체한다.
안료로도 쓰였는데 이 때의 이름은 버밀리온(vermilion)으로, 진한 다홍색을 낼 때에 동서양 가리지 않고 널리 썼다. 물론 지금 시중에 팔리는 버밀리온 물감들은 주사 대신 다른 재료로 만든다. 납이나 카드뮴이 함유된 물감들은 현재도 흔하게 팔지만 수은은 그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더 커서인지 비소를 함유한 "파리스 그린"과 마찬가지로 다른 재료를 써서 비슷하게 색을 낸 안료로만 유통된다. 이를 휴(Hue)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안료로서의 주사의 위치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천연 채취에만 의존하지 않고 옛날부터 인공적으로 합성해 쓰기도 했는데 방법을 아래에 소개한다. '''따라하지 말자'''. 각종 황화합물이나 수은화합물로 오염이 될 수 있기에 건강상 안전상 보장은 못한다.
일단 수은과 황가루를 준비한다. 이 둘을 한데 넣고 잘 섞어주면 회색 가루가 된다. 이것은 아직 반응하기 전의 형태이며, 반응시키기 위해선 용기에 넣고 가열해 흘러나오는 증기를 냉각시키면 붉은 황화수은이 완성되는 식이다. 물론 수은은 맹독성 중금속이며, 가열할 때 흘러나오는 기체는 독가스 그 자체이므로[2] 제조 도중 많은 화가와 물감 상인들이 중독되어 제 명에 살지 못했다.
주사로 그린 그림은 오랜 세월에 거쳐 검게 변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것은 주사의 성분인 알파-황화수은이 다소 불안정해 더 안정한 검정색 베타-황화수은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년 된 그림들을 보면 붉은색 안료로 칠한 부분이 적갈색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램브란트의 '야경(야간 순찰대)'이라는 작품이 이 안료의 영향 때문에 본래는 낮의 장면을 그렸지만 점차 어두워지면서 야간의 장면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
4. 기타
사자성어 근주자적의 '주'도 이 광물을 말한다.
보석의 나라에서 의인화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당신을 기다리는 여우에서 먹으면 주마등을 보는 물질로 등장한다.
쌍갑포차에서 인간으로 환생한다고 일종의 걸어다니는 부적인 동시에 양기의 결정체라고 알려질 정도로 그 경명수자의 환생체는... 해당 문서 참고.
[1] 水飛. 물을 이용해서 특정 물질을 거르는 방법. 곱게 갈아서 체에 받쳐 내리고 그걸 물에 녹인 뒤 수면에 둥둥 뜬 것을 종이로 빨아내서 건져내고 남은 물을 증발시키는 등의 공정을 거치는 고된 작업이다. 게다가 주사는 '''유리 수은이 남아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 지겨운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2] 황산의 원료가 되는 아황산가스는 물론이고 기화된 수은도 섞여있으니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