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산
五石散
1. 개요
한약의 일종...이긴 한데, 지금은 위험하기 때문에 '''당연히''' 안 쓰는 약.
현행 대한민국 법률에서는 마약이 아니지만, 중추신경에 작용해 흥분 효과를 일으키는 등 인체에 작용하는 효과로 봐서는 마약 취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분상으로는 비소, 수은 등의 무기물이 주성분이라 현대적 의미의 마약보다는 약효를 억제한 독약에 가까워보인다.
재료가 다섯 가지 '''광물'''이라 오석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散)을 빼고 오석(五石)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散)은 가루약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식산(寒食散)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중국에서는 한석산(寒石散)으로 불린다.
오석산의 재료는 아래 표에 나오는 다섯 가지 광물인데, 기록마다 서로 달라서 정답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석유황(웅황) 빼고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그 웅황이 비소를 함유하고 있고, 저걸로도 모자라 기록상으론 '''황화수은'''이 주성분인 주사나 단사(丹沙)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양호해보이는 저 위의 구성은 청대 루쉰의 기록으로, 해당 언급에서도 저 조성으로 시작해 추가로 하안이 개량한 레시피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되어있다.
고대의 처방을 보면 주사, 자철광, 명반, 웅황, 공작석, 자석영(자수정)등도 기록되어있다. 주사는 적석지와 비슷한 색상을 가지면서 더 빨간 데다 일부 처방에서는 적석지 대신 들어가며, 웅황은 대개 빠지지 않고 나온다. 사실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만큼 주사가 핵심재료일 가능성이 크다. 웅황으로도 모자라 계관석을 언급하는 레시피도 있는데 이건 웅황과 같이 발견되는 사촌으로 마찬가지로 비소황화물이다.[2]
2. 역사
처방 자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모양으로, 상한론을 저술한 후한대의 장중경[3] 이 오석산에 의한 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위진남북조시대.
청담사상의 유행과 함께 번져나가 오석산을 뜨거운 술에 타 마시고 알콜 기운 + 마약 기운을 받아 헤롱헤롱한 상태로 놀면서 다니는 것이 당시 귀족층의 놀이였다. 그중에서는 무려 최음제 용도로 쓴 일도 많다고. 그래서인지 위진남북조시대의 지배층에는 막장이 많았다(…). 이는 삼국시대의 인물 하안이 오석산을 그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라고 칭찬한 탓(...)이다. 특히 오석산을 복용해 나이 먹고도 마치 어린 소녀의 피부를 가지고 되었다고 발언한 것이 결정적이다. 이 피부는 수은의 부작용으로 추정된다.
물론 당대에도 오석산의 부작용은 의사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황보밀, 소원방 등 유명한 의학자들이 오석산의 폐단을 지적하였으며, 당나라 손사막의 천금요방에서도 부작용을 언급하였고, 송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적으로 마약 취급을 받는다.
남북조시대 때는 대부분 남조에서 유행했으며 북조에서는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적었다. 그렇다고 아주 영향력이 없었던 건 아니라 북위의 개국황제 도무제는 원래 명군이었는데 말년의 의심병에 더해 결정적으로 오석산을 먹고 나서부터는 살짝 맛이 가버렸다. 그는 공신이나 대신을 함부로 죽이다가 결국 아들 탁발소에게 피살당하고 말았다.
2010년, 공주 공산성에서 백제에서도 오석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발굴되었다. 오석산이라는 문구는 추정이지만 그래도 정황상 유력한 해석이다. 90근이라고 하니 상당히 대량인데 흠좀무. 계백(드라마)에 고증 반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오석산 파는 얘기가 나온다.
놀랍게도 오석산에 대한 비극은 훗날 북송 시대에까지 이어지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소동파가 이 약을 극찬하는 바람에 이 극약의 수명이 더 연장되고 만다.
3. 특징
요약하자면 '''복합적인 중금속 중독'''을 유발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제대로 된 법제가 이루어졌을리도 없고, 그냥 온갖 유독성 화합물이 섞인 광물 종합선물세트를 몸에 들이붓는 격이다(...)
복용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피로가 싹 가신다고 하지만, 대단히 독성이 강해 반드시 행산이라 하여 계속 걸어다니면서 독기를 빼내야 한다. 당시에는 마약이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없었고 오히려 오래 복용할수록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다. 마약 복용 후에 극도로 흥분한 상태라 행산을 하면서도 얌전히 산책만 한 게 아니라 온갖 기행을 벌이며 돌아다녔다고(...).
또한 반드시 찬 물이나 음식을 먹거나 마셔야 하며 뜨거운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면 죽는다고 한다. 한식산(寒食散)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 기록에 이 행산을 하지 않아 죽은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다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뜨거운 물을 계속 뿌려대자 그만 죽어버렸다고 한다.
오석산을 복용하고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것 같은 걱정이 생기며, 장기간 오석산을 복용하면 피부가 민감해져 닳아 헤지기 쉬웠다. 약해진 피부 때문에 의복을 입거나 신발을 신기가 힘들었으며 크고 헐렁한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해 얼핏 보기에는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오석산은 비싸서 아무나 못 먹었기 때문에 오석산을 복용할 경제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일부러 헐렁한 옷을 다니고 산을 다니며 마치 오석산을 복용한 것처럼 가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오석산을 먹은척하며 등산하는 이들이 오석산을 수시로 복용한 부유층에 비해서 훨씬 건강한 생활을 했다는 점은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피부가 약해져서 까끌까끌한 새 옷은 피부에 상처를 입히기에 항상 헌 의복을 입고 다녔다고 하며, 의복을 세탁해 입는 것도 좋지 않아 세탁하지 않은 헌 의복을 입고 다녔다. 오석산을 복용하는 이들은 지저분하고 칠칠치 못 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었으며 이들의 피부에는 이가 들끓었다고 한다.[4] 왕희지도 말년에 오석산 재료를 캐기 위해 분주하게 다녔으며 그의 일곱째 아들 왕헌지는 결국 등이 썩어 끔찍하게 죽었다.
성분이 성분인 만큼 오석산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각종 중금속에 복합적으로 중독당해(...)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4. 미디어
본래 한방에서는 치병보다는 양생과 관련된 약재가 가치가 높은 편이고, 그 중에서도 광물 계통 약재는 특히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고대부터 대중문화 속에서 오석산은 말 그대로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삼국지 10부터는 '''약''' 아이템으로 등장해서 '''수명을 10년 늘려주는''' 효과가 존재한다(...). 삼국지 12에서는 가치가 가장 높지는 않지만 '''수명을 7년 늘려준다.''' 삼국지 13에서도 7을 늘려주는 것으로 동일. 여담으로 유저 이벤트 중에 이 오석산을 수명 연장약이 아닌 독약으로 만들어주는 이벤트가 있다. 내용인 즉 오석산에 중독되어 기억력이 흐려지고 공복감을 느끼다가 그대로 잠에 들고 사망하는 것인데 실제 마약으로 인한 증상, 사망 과정이 유사한 편.
판관 포청천에는 오석산에 중독된 지방 수령의 조카가 오석산 살 돈을 마련하려고 양가의 규수를 암살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당연히 이 조카는 조카를 감싸던 삼촌과 함께 작두로 골로 갔다(...). 그 외에도 칠협오의 계열 스핀오프에서 오석산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에피소드가 이따끔씩 나온다.
대군사 사마의를 비롯해 조조 사후 위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도 조상과 하안등, 1세대 위나라 공신들의 2세들이 이걸 흡입하고 노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사극(?) 천추태후에서는 성종과 목종이 오석산을 사용했다.
5. 기타
북한에는 오석산 화강석 광산이 존재한다. 물론 멀쩡한 광산일뿐 위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1] 석회동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지형지물이기도 하다.[2] 사족으로 이 계관석은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두루미의 벼슬을 뜻하는 '''학정홍(鶴頂紅)'''이라는 별칭이 있다. 무협물에서 지겹도록 공작담과 함께 나타나는 사골급 소재 맞다.[3] 그러나 한대라고는 해도 삼국시대 초~중기까지 활약했던 인물이다.[4] 오석산을 즐기는 당시의 귀족들은 몸의 이를 잡으며 담론하는 것을 풍류라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