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제사)

 

紙榜.
1. 개요
2. 지방 쓰는 법
2.1. 예시
3. 지방 작성 기준
4. 기독교 신앙에서의 지방


1. 개요



신위(神位, 죽은 이를 표상한 물건. 초상화나 위패 등등)의 하나로서, 1회용 신주쯤 된다. 본격적인 신위인 신주나 위패는 원래 나무로 만들고, 평소에는 사당에 모셔야 하는데, 대부분의 가정으로서는 사당의 건설/유지가 쉽지 않으므로 제사 전에 만들어 쓰는 1회용 신위인 지방이 흔히 사용되었다. 제사 직전에 사자의 이름,관직 등을 종이에 적어 제작하고, 제사 후에 태워버린다.[1] 중국의 송,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워드프로그램으로 작성후 출력해서 코팅해 보관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 지방 쓰는 법


현(顯)은 존경의 의미로 지방의 첫글자로 붙는데 아랫사람한테는 쓰지 않는다.
고(考)는 돌아가신 아버지, 비(妣)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의미하며, 할아버지/할머니의 경우 조고/조비, 그 위로 올라갈수록 증조, 고조식으로 칭호가 붙게 된다.
학생(學生)은 특별한 관직이 없는 경우[2]를 말하므로 관직에 있던 경우는 관직명을 적을 수 있다. 학생 대신 처사(處士)라고도 쓰며, 18세 미만에 죽은 자는 수재(秀才)나 수사(秀士) 라고 쓴다. 부군(府君)은 자신의 윗사람인 경우에 사용하며 아랫사람한테는 직접 이름을 쓴다. 여성 쪽은 유인(孺人)이라 쓰고 본관 성씨를 이어 쓰는데 사실 유인(孺人)은 조선시절 외명부의 종9품에 해당하는 명칭이었지만 그냥 벼슬없는 사람들도 함께 사용하는 단어.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학생부군신위'는 영화 제목으로도 쓰인 적도 있는데, 벼슬하지 못한 보통의 남성을 의미한다.
학생이나 부군이 관직 안한 사람이 대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만일 대상이 사무관(5급) 이상 직급의 공직생활을 한 적이 있을 경우, '학생부군신위'가 아닌 '(직급명) 부군신위'를 쓸 수 있다. 5급 이상의 공무원이라면 '관(官)'(관료)이라 부를 수 있는, 조선시대로 치면 과거(대과) 급제 이후에 해당하는 직급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인 듯 하다[3]. 공무원/직급 참조. 이런 경우 작고하신 분의 처의 작위는 무엇으로 적어야 할지 의문점을 가질수 있을텐데 이런 경우 유인이 아닌, 부인이라고 적으면 되고, 또 남편은 고위공무원이 아닌데, 아내는 고위공직을 역임했다면 지방을 쓸때 아내쪽은 해당되는 직위를 기재하면 되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남편은 "학생부군신위"로 적으면 된다.
그런데 사실 9급 서기보도 관직은 관직이니 지방이나 위패에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대한제국 멸망과 제사의 보편화로 인해 예법 체계가 무너지고 조선시대보다 공무원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긴 관행으로 보인다.

2.1. 예시


지방작성법의 예시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1> 현顯
고高
조祖
고考
학學
생生
부府
군君
신神
위位
<^|1> 현顯
고高
조祖
비妣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신神
위位
<^|1> 현顯
증曾
조祖
고考
학學
생生
부府
군君
신神
위位
<^|1> 현顯
증曾
조祖
비妣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신神
위位
<^|1> 현顯
조祖
고考
학學
생生
부府
군君
신神
위位
<^|1> 현顯
조祖
비妣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신神
위位
<^|1> 현顯
고考
학學
생生
부府
군君
신神
위位
<^|1> 현顯
비妣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신神
위位
ㆍ'''필수사항''': 안동김安東金을 반드시 고인본관성씨로 바꾸어 넣을 것
ㆍ선택사항: 학생學生, 유인孺人 자리에 고인의 관직명을 넣을 수 있다.

남편
아내
형 내외
동생 내외
아들 내외
<^|1> 현顯
벽辟
학學
생生
부府
군君
신神
위位
<^|1> 망亡
실室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신神
위位
<^|1> 현顯
형兄
학學
생生
부府
군君
신神
위位
<^|1> 현顯
형兄
수嫂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신神
위位
<^|1> 망亡
제弟
학學
생生


신神
위位
<^|1> 망亡
제弟
수嫂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신神
위位
<^|1> 망亡
자子
수秀
재才


지之
령靈
<^|1> 망亡
부婦
유孺
인人
안安
동東
김金

씨氏
지之
령靈
ㆍ'''필수사항''': ①안동김安東金을 반드시 고인본관성씨로 바꾸어 넣을 것.
     ② 이름을 반드시 고인의 이름(성씨 제외)으로 바꾸어 넣을 것.
ㆍ선택사항: ①학생學生, 유인孺人 자리에 고인의 관직명을 넣을 수 있다.
     ② 망亡 대신 고故로도 쓸 수 있다.


3. 지방 작성 기준


지방은 '''제사 주재자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명목상의) 제주와 망자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작성하여야 하며, 원칙적으로는 '''장자-장손이 직계 계통을 중심으로 하여 제사가 계승'''되어야 한다. 예법상 망자의 장남을 제외한 동생들은 결혼과 동시에 파를 달리하여 분가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간혹 장남이 어린 조카를 남겨두고 죽고 없다면 망자의 차남이 제사를 지내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망자의 제주는 망자의 장손이며 차남은 조카의 '''대행자'''일 뿐이다. 근데 그 장손도 없으면 예법을 엄격히 해석했을 때 동생들은 이미 결혼으로 인하여 파를 달리했기 때문에 부가(父家)의 대(代)는 끊긴 것으로 봐야 한다. 옛날에는 이런 경우 동생의 아들 중 하나를 장남의 양자로 들여 장손이 되게 하였다.[4] 동생들의 후손들은 그들 부모까지만 제사만 지내면 되는 것이지 조부모에 대한 제사를 지내야 할 의무는 없고 단순한 예와 도리를 지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대상이 변화함에 따라 이런 경우 차남의 후손이 지내는 것을 용인해 주는 것이다.
망자에게 딸밖에 없는 상황에서 작고한 경우 딸이 제사를 지내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제주는 딸이 미혼인 경우 딸이, 딸이 기혼인 경우 딸은 출가외인이므로 처(妻)가 되어야 한다. 처(妻)가 죽으면 그 일가의 대(代)는 끊긴 것으로 보고 원칙상 제사를 안지내야 하지만 시대상이 변화함에 따라 이런 경우 지방에다가 망자의 처(妻)를 기준으로 지방을 작성해야 하고 성씨가 다른 외손자와 사위는 제사를 참관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지 주관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사 또한 시부모와 합설하여 지내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도리가 아니며 명절 같은 경우에도 시부모 차례를 먼저 올리고 철상한 다음 친정 부모의 차례를 모시는 순서로 해야 한다. 후술한 예와 어찌보면 같다고 볼수 있는데 친정 부모의 제사는 당대에서 끝을 맺어야 한다. 만약 후대에 계승할 경우 나의 자녀 입장에서는 외조부모와 본가 조상들의 기일을 다 챙겨야 하는 셈이 되는거고 손자代에 이르러서는 진외증조부모가 되는 셈인데 진외가 어르신의 경우 친족간의 지칭되는 호칭도 거의 사어가 되버린 실정이다. 위키러 가운데에서 이러한 경우가 있다면 외가 조상에 대한 불효라고 생각하지 말고 과연 어느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잘 숙고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자신의 형제자매가 자녀없이 죽은 경우 1순위 제주는 자신의 부모님, 2차적인 제주는 자신의 형제자매 중 제일 연장자가 되어 제주를 기준으로 지방을 작성해야 하고 후대에 제사를 계승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라고 할 수 있으나 이런 경우 후손들의 고충이 클 것이니 당대에서 끝을 내거나 집안 내외 식구와 잘 상의해보고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손아래형제의 경우 집안마다 다르지만 후술할 자녀의 예를 따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자녀가 죽거나 하는 등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손아래친족의 제사는 지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애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어 제사를 지내는 경우 '''당대에서 끝을 맺어야 할 것'''[5]이고 이 경우 부모를 포함한 손위사람은 절을 하지 말아야 하고 약식으로 간단하게 묵념식 등으로 제사를 지내야 할 것이다.
망자의 배우자도 사망한 경우 지방에는 두 분을 같이 적는데[6] 남편 되는 이를 왼쪽에 적고 부인된 이를 오른쪽에 적어야 한다. 이혼한 경우에는 이미 작고하신 분의 입장에서는 남남이 된것이니 상관없지만 사별 등의 사유가 있어 재혼한 경우 혼인 순서대로 제일 왼쪽부터 남좌여우의 법칙에 따라 망자-본처-후처 순으로 적으면 될 것이다.
한자만 고집하는 경우를 볼수 있는데 한글로 적어도 예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참고바란다.

4. 기독교 신앙에서의 지방


기독교에서는 교리상 제사에 관해 엄격한 정의와 규율이 따르게 되는데, 핵심이 바로 이 지방 때문이다. 여기에 '''신'''위('''神'''位)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고 절을 하는 것이 '''우상숭배'''가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는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아예 지방과 제사가 금지된다.
천주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위'나 '신' 글자가 들어간 지방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조상 이름)의 '신위', 또는 '신'이라는 글자 없이 그냥 이름만 쓴 신주, 지방은 우상숭배가 아닌 '조상에 대한 공경'으로 유연하게 해석해 주어 괜찮다고 본다. 이 원칙은 1939년 조상제사 허가 이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이 신주(지방) 문제는 조선 후기 많은 피를 뿌린 박해들의 원인 중 하나였다. 교황청에 지금 정도의 유연성만 있었어도 충분히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당시에는 교황청에서 조상제사에서 가톨릭 기준의 미신적 종교성을 구별해내기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제사 금지령도 무슨 교황청에서 제사를 알자마자 우상숭배로 단정지으면서 불호령처럼 내려진 것이 아니라 70여년에 달하는 매우 긴 신학논쟁과 검토를 거친 후 신중하게 내려진 판단이었다.
이후 200여년이 지나, 현대에 접어들어 동아시아권에서 조상제사가 "인간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또는 "반드시 유교식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된다" 식의 관념이 희석되고, 조상숭배적 문화보다 그저 문화적 정체성 정도로 중요성이 낮아져가는 시기인 20세기 초중반(1939년)에 신위 글자나 여타 우상숭배 요소가 있는 행위를 피한다는 조건 아래 조상제사 금지령이 풀렸다.[7] 자세한 사항은 제사/종교별 입장 문서의 천주교 항목을 참조하자.
상기했듯이, 조상제사가 조건부로 허용되는 지금에도 지방을 쓰더라도 신, 또는 신위(神位)가 아닌 '''존위(尊位)'''로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니면 그냥 이름만 쓰거나, 또는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등으로 쓰기도 하며 아니면 조상신에게 바치는 제문을 빼고 기도로 대체한다. 이 규정이 천주교 계열 내에서 중요한 원칙이나 천주교의 금식재, 금육재와 더불어 이걸 알고 실천하는 신자가 적다는 점이 현대 동아시아 가톨릭교회의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또 교구 일선의 사제들이나 수도자들도 이 문제로 신자들을 특별히 가르치거나 제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제기되기도 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교리 외적인 부분에서 다소 유연해지고 각 국가와 민족의 전통 등을 존중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
그러나 대한민국의 기독교신자 다수는 집안에서 하던대로 지방을 쓰고 제사를 드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가족 구성원 전원이 같은 신앙을 가진 경우,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가톨릭 집안이라면 천주교식 제사 등을 지내기 때문에 별 문제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 유교적 제사를 유지하려는 집안 어르신들과 갈등(집안별로 이것이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다)을 빚는 것에 부담을 가지기 때문이다.


[1] 가끔씩 지방에 불을 붙이고 손에 올려서 툭툭 쳐서 끄는 등의불쇼(?)를 하기도 한다.[2] 사실 학생이라는 것은 성균관이나 향교의 학생이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17세기 정도 되면 살아있으면 전부 유학幼學이라고 자처하고 죽었으면 전부 학생이라고 부르는 시대가 된다(生稱幼學, 死稱學生). 이 때문에 관직을 하지 않았다면 학생이 된다. 군역 피하기 위해서라도 향교에는 양반이라면 대부분 등록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김장생만 해도 ''''죽은 다음에는 학생이라고 안 부르면 달리 부를 명칭이 없다''''고 GG 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뒤에 언급되는 처사는 '벼슬하지 않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이니까, 그냥 벼슬 안한 양반이라는 의미로 봐도 된다.[3] 그런데 조선시대 대과 급제해도 5급에 해당하는 직위는 안 줬다. 대과 장원급제를 해야 정6품이고, 일반적으로 보면 중앙부처 7급 공무원 정도로 시작한다.[4] 근래 들어서도 LG 구본무 회장의 장남이 사망함에 따라 동생의 아들을 굳이 법적인 입양의 절차를 거쳐 장손의 지위를 부여해 가통을 승계하게 한 사례가 있다[5] 부모보다 먼저 죽은 불효를 후세에 계승(?)하게 할 수는 없다는 의미가 있다[6] 부부는 일심동체, 한몸이라는 의미가 있다[7] 참고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제사가 완전 허용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인 비오11세~비오 12세 시기에 금지령이 풀린 것이며, 완전허용도 아닌 조건부 허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