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외인
"딸은 맹 출가외인(出嫁外人)이고 참 자식이 아이다 말이래."
「딸보다 나은 양며느리의 효성」
"이번 족보 등재가 종중 재산 등에서 여성의 권리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출가외인으로 배척했던 여자 후손들에게 소속감을 불어넣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일 뿐"
"너는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1. 개요
出(나갈 출) 嫁(시집갈 가)[1] 外(바깥 외) 人(사람 인)
"시집을 가면 그때부턴 남이다." 라는 한자성어로서, 과거 조선에서 부모가 딸을 떠나보내며 쓰던 말이다.
조선시대는 미망인/과부에게 자살을 권장하였으며, 과부 사망 시[2] 열녀가 된 것을 축하하여 열녀문을 세우는 시대인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상은 주로 양반층에서 강하게 일어났다. 그나마 외출이 가능하던 평민들과는 달리, 정조를 지켜야하는 양반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외출에 관해 엄격했었고, 친가방문에도 어려움이 있었기에 출가외인이 심화될 수 밖에 없었다.
2. 해석
문장의 직역만을 보면 매우 부정적인 성차별적 대사이다. 당시 예법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규제하던 유교사회의 영향이 드러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조선의 문화를 잘 모른 채 본 수박 겉핥기식 해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출가외인은 차별과 무시의 대사일 수도 있지만 '''우리들을 걱정하지 마라'''는 일종의 모진 말에 더 가깝다.
●체면과 예법에 따른 양반 여성의 외출제약
●당시 교통수단의 미비로 인한 시공간적 한계
●직설보단 은유적 화법을 지향하는 동양문화권의 영향
성리학이 강화된 17세기 이후, 조선의 양반여성들은 "집안사람"이란 개념하에 바깥활동과 관련된 브레이크가 많았고, 현실적으로 친가를 찾아뵙는 것도 법적인 제제가 있었다. 때문에 여성의 가족들은 딸이 가족을 그리워하며 괴로워 할까봐 그러지 말라며 출가외인을 말했다. '''"넌 이제 시댁으로 떠나니 우리는 서로 남이다. 그러니 넌 너희 식구에게 집중하고 우린 남이니까 신경쓰지 말거라"''' 즉 딸을 떠나보내며 본인의 역할에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이후 구한말, 신분제의 혼란 때문에 이 말이 민간으로 흘러들어가 쓰이게 된 것. 단, 친정 부모가 아닌 시부모가 쓸 경우는 뜻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3]
조선 후기의 기록을 보면 시집간 딸이 남편의 횡포를 못이겨 친가로 돌아오거나, 부모가 앞장서서 관아에 딸의 이혼에 대한 입장을 대변해 주거나, 심지어 딸이 파혼당하자 죄책감에 자살한 아버지도 있었으니 즉 '''진짜로 남이 된다는 건 헛소리.'''
이러한 말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또 어느 특정 계층에게만 쓰이던 말이었는지, 같은 상세한 출처는 알 수 없으나 한자성어에다가 은유적인 기법또한 포함되어있기에 사대부들 사이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3. 친정으로의 휴가
사대부 기혼 여성은 친부모의 집에 갈 수 있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 覲親 : 며느리가 명절, 친정부모 제사일 때 시부모에게 휴가를 낼 수 있는 날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물론 시부모가 100% 휴가를 허락해 준다는 보장은 없어서, 이 날은 특히 며느리가 시부모 비위를 잘 맞추어야한다.
- 마산만날제# : 추석을 앞뒤로 해서 시댁에서 며느리에게 친정의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하루 정도 외출을 허가해주는 날. 행사 이름은 딸과 친정부모가 만나는 장소였던 옛 마산 월영동의 '만날고개'에서 따온 것이다.
4. 현대
20세기 여자 이름에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항렬자를 넣는다는 것은 부정적이었다.[5] 호주제가 있던 시절, '여자는 결혼하면 호적 파인다'는 농담이 있었는데, 결혼 후 여성의 호적을 남편과 시댁 쪽에 올리기 때문이다. 유림들은 호주제 폐지되면 개족보 된다고 반대했었다.(유교가) 고집만 자꾸 부리면 안 됩니다. 퇴계 선생께서도 ′시종(時從: 시류에 따르다)′을 따라라. 세상을 사는 대로 따라야 한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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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 기준으로 부모~조부모까지의 사람들은 출가외인을 단순히 "딸을 넘긴다."의 개념으로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가끔 어르신들께서 이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사회변동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결혼할 때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보니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6]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도 쓰지 않지만, 그중에 뜻도 모르면서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실제 21세기 전까지만 해도 출가외인은 여러 사회적 악순환의 기초로 쓰였다. 특히 현대에선 역으로 여성이 더욱 대우받아야 한다는 인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남고여저 참조.
사실 출가외인 그 자체보다는, 남편이 부인에게는 출가외인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의 누이들에게는 출가외인을 적용하지 않아 부부간의 신뢰가 파탄나는 경우가 더 많다. 심지어 자식들마저 부친을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성격으로 여겨서, 부친을 존중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므로 양육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5. 관련 문서
[1] 家(집 가)와 뜻이 다르다[2] 타살인 경우도 있다.[3] 이러니저러니 해도, 글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시댁에 집중해라"라는 속뜻만큼은 공통적으로 언급하고있다.[4]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은 2002년 서원 최초로 사당의 위패에 절을 하는 ′알묘′를 여성에게도 허용했고, 2020년 우리나라 서원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초헌관을 맡았다.@ [5] 현재는 아들 이름에도 항렬자를 쓰길 꺼려한다. 핵가족화되면서 가문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6] 예를 들어 간혹 어르신들이 성숙한 아이에게 "부모 밑에서 자랐니? 할머니 밑에서 자랐니?" 라고 질문할 때가 있다. 이는 당시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보니 쓴 순수한 질문이지 패드립이 목적이 아니다. 다만 이는 상황에 따라 다른데, 부모 없는 고아인 것을 확인하기 위함도 있다. 고아 출신 남자는 결혼기피대상 2위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