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코모 마이어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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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como Meyerbeer(1791. 9. 5. ~ 1864. 5. 2.)[1]
1. 개요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 독일과 프랑스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특히 프랑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거대한 규모와 낭만적이고 극적인 그랜드 오페라를 주로 작곡했으며 19세기 초중반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는 20세기 이후 점차 오페라 무대에서 멀어졌으며 마이어베어라는 이름도 바그너와 관련돼서만 종종 언급되는 수준으로 잊혀졌다. 다행히 20세기 후반부터 마이어베어의 음악성이 재평가를 받으면서 그의 오페라도 재발굴되었고, 현재 그의 대표작들은 이색 공연 수준을 넘어 전세계 가수와 오페라 악단의 중요한 레퍼토리로 인정받고 있다.
2. 생애
마이어베어는 1791년 독일 베를린 근교의 탄스도르프의 유대계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태어났을때 그의 이름은 야코브 리프만 베어(Jacob Liebmann Beer)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 재능을 일찍 펼쳤고, 7살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음악계에 데뷔했고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찍이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음악가가 작곡을 못한다면 남의 음악만 연주해야 한다는 거잖아! 너도! 나도!"라고 생각해 피아니스트의 길을 버리고 작곡법을 배워 작곡가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21세였던 1812년, 그의 첫 오페라인 '체프타의 맹세'를 뮌헨에서 초연하였고, 이후 오페라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병행한다. 이때 그의 오페라를 관람하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눈에 들어 그의 권유로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공부를 할 것을 권유받고, 조아키노 로시니를 비롯한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연구해봤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여 독일풍의 오페라로 다시 전향한다.
하지만 이 때 그의 이름인 '야코브'를 이탈리아식인 '자코모'로 창씨개명을 한다. 거기에 그의 증조부가 그의 성인 '베어' 앞에 자신의 중간 이름인 '마이어(Meyer)'를 붙이는 조건으로 그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긴다고 하자 포풍개명을 하여 '자코모 마이어베어'란 이름을 갖는다.
이후 1824년에 베네치아에서 상연했던 오페라 '이집트의 십자군'이 1825년 파리에서 큰 성공을 얻자, 파리에 아예 눌러앉는다. 그러나, 한동안 부친상, 결혼, 자식들의 요절등으로 인해 창작활동이 부진했다가 다시 1831년 그의 첫 그랜드 오페라인 '악마 로베르'의 대성공으로 재기, 이어 '위그노교도'(1836), '시칠리아의 진영'(1844),'예언자'(1849)를 연이어 발표하여 프랑스 오페라계의 거장으로 군림하였다.
마이어베어는 만년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1864년 파리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작곡을 하였으며, 그의 유작 '아프리카의 여인'은 다른 작곡가[2] 의 편집으로 1865년 파리에서 초연된다.
3. 작품의 특징과 평가
마이어베어의 작품은 오페라에 집중되어 있는데, 대다수의 그의 오페라는 '그랜드 오페라'로 거대한 스케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삼국을 아우르는 스타일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 그의 작품들은 '스케일만 컸지 속 빈 강정', '이도 저도 아닌 개성 없는 음악'이란 악평을 받았고, 그의 혈통 때문에 나치 치하에서는 연주가 아예 금지되기도 했었다. 다만, 현재들어 다시 그의 작품은 재평가 받고 있고, 오페라단에서도 간간이 상연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4. 바그너와의 관계
마이어베어와 리하르트 바그너는 스케일이 크고, 신화, 전설, 실제 역사를 소재로 극적인 오페라를 썼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마이어베어는 바그너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바그너 본인이 초기에는 마이어베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 것만 봐도 이 둘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초기에는''' 말이다. 이후 마이어베어가 죽자, 바그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대인 작품은 이땅에서 말살을 시켜야 한다', '마이어베어의 인기는 다 그의 언플덕이다'라는 레퍼토리로 마이어베어 비난에 앞장섰다.
그렇다면 자신을 후원해주었고, 자신이 큰 영향을 받기까지 했던 마이어베어를 바그너는 왜 비난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바그너가 마이어베어의 그늘 밑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바그너의 작품은 그와 비슷한 성격의 마이어베어의 작품에 항상 밀렸고, 이에 대한 바그너의 열폭으로 인해 바그너는 마이어베어의 안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그너의 초창기 오페라 '리엔치'는 한때 '마이어베어의 최고 걸작'이란 이름을 받았을 정도로 바그너는 마이어베어와 비교되었다고 한다. 지금 와서는 바그너가 훨씬 인지도도 높고 팬도 많지만.
5. 작품
5.1. 오페라
- 입다의 맹세(Jephtas Gelübde)
- 주인과 손님(Wirt und Gast)
- 브란덴부르크 문(Das Brandenburger Tor)
- 로밀다와 콘스탄자(Romilda e Costanza)
- 세미라미데(Semiramide riconosciuta)
- 레스부르고의 엠마(Emma di Resburgo)
- 안지오의 마르게리타(Margherita d'Anjou)
- 알만조르(L'Almanzore)
- 그라나다의 추방(L'esule di Granata)
- 이집트의 십자군(Il crociato in Egitto)
- 악마 로베르(Robert le diable): 그에게 그야말로 큰 성공을 가져다 준 오페라로, 당대의 여러 작곡가들이 이 곡의 선율을 바탕으로 편곡을 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 마이어베어의 친구이기도 했던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악마 로베르의 회상(Reminiscences de 'Robert le Diable', 1841년)을 꼽을 수 있다. 이 피아노곡은 1840년대 리스트가 한창 유럽을 돌며 연주여행을 하던 시기에 유럽 곳곳을 매료시킨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이 곡에 대한 오늘날의 열악한 인지도가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당시 청중들을 사로잡았던 곡.
- 위그노교도들(Les Huguenots)
- 슐레지엔의 진영(Ein Feldlager in Schlesien)
- 예언자(Le prophète): 이 오페라에 있는 '대관식 행진곡'은 따로 연주회용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행진곡 전집등에도 자주 수록되는 편. 중고등학교에 다닌다면 등교시간에 틀어주는 곡에 포함되기도 한다.
- 북극성(L'étoile du nord)
- 디노라(Dinorah ou Le pardon de Ploërmel)
- 아프리카인(L'Africaine)
5.2. 기타
5.2.1. 합창
- 오라토리오 '하느님과 자연'
- 칸타타 '티오린다의 사랑'
- 주기도문
- 시편91
5.2.2. 가곡
- 목자의 노래
5.2.3. 실내악
- 클라리넷 5중주 E플랫 장조
- 클라리넷 5중주를 위한 환상곡
5.2.4. 관현악&협주곡
- 쉴러 생일을 위한 축전 행진곡
- 두 개의 관현악을 위한 대관식 행진곡
- 런던을 위한 축전 서곡
- 발레 어부와 소 짜는 여자
- 교향곡 E플랫 장조
- 피아노협주곡
6. 여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이다보니 그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찾기 매우 힘들다. 관심있는 위키러들은 다음 서적, 웹사이트를 찾아보자.[3]
- '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 신동헌, 서울미디어, 67-74'
-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니시하라 미노루, 열대림, 14장 '바그너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중 <바그너와 마이어베어>'
- 영문 위키백과
- 마이어베어 팬클럽(영문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