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네리안

 

'''Wagnerian'''
1. 개요
2. 상세
2.1. 그들의 모습
2.2. 바그너와 반유대주의
3. 저명한 바그네리안들
4. 바그네리안이었다가 안티가 된 사람들


1. 개요


① (형용사) 독일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관련 있거나 그가 쓴 음악, 음악 이론 또는 극음악 작곡 이론과 관련 있는

② (명사) '''바그너 숭배자 또는 지지자'''

― 옥스퍼드 영어 사전

열렬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빠'''들을 일컫는 말.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에서 클래식 업계의 가장 열렬한 빠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바그네리안 이전에도 '모차르티안'이라는 용어가 있었다고 하나 바그네리안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일종의 '신도'라는 느낌까지 갖는 낱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대 인물인 리스트도 리스토마니아라는 광적인 팬덤을 보유하였다.

2. 상세



2.1. 그들의 모습


물론 어느 예술가나 유명인이든 빠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바그네리안들은 그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는 평이 중론. 거의 종교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바그너의 악극을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가는 일을 바이로이트를 순례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빠들은 생가에 한번 방문할지언정 꼭 '''어느 특정 공연장'''에 가서 그들의 음악을 들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그네리안들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성지순례를 최고의 목표 중 하나로 삼는다.[1]
바그너 덕후가 되는건 결코 만만치 않다. 바그너의 악극은 기본 몇시간이 넘는 길이에 쉽게 들을수 있는 음악도 아니다. 니벨룽의 반지의 경우에는 4일에 걸쳐 무려 16시간이나 되는 길이를 자랑한다. 그 모든것을 이기고 바그너 악극에 빠져들어야 바그네리안이라 할만하다. 니벨룽의 반지가 한국에서 초연되었을 때 바그네리안들이 '''근처 분식집에서 먹을거리를 사와서''' 공연 중간 휴식시간에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바그너 덕후들은 지금 보면 후덜덜한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당대 음악가들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전 세계를 파멸로 끌고간 아돌프 히틀러도 열렬한 바그네리안이었다. 히틀러는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악극을 감상하면서 프랑코가 보낸 스페인 국민진영의 사절을 만나서 스페인 내전의 지원을 협의했을 정도니(...)

2.2. 바그너와 반유대주의


'바그너=반유대주의자' 딱지가 붙은 직접적인 계기는 바그너가 "음악 속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라는 글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바그너는 노골적인 반유대주의를 드러내며 음악계에서 유대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바그너가 이 글에서 공격하려고 했던 진짜 목표는 유태인 전체가 아니라 멘델스존마이어베어였다. 멘델스존은 '엄친아'라서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고, 마이어베어는 바그너와 음악적으로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마이어베어는 어려운 시기의 바그너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던 은인이었는데, 바그너는 출세한 후 소시적에 섭섭했던 몇몇 사소한 사안들을 가지고 마이어베어를 험하게 비난하고 다녔다. 마침 두 사람 다 유대인이라서 당시 반유대주의 정서를 업고 공격하기 딱 좋았다.
바그너의 가족들도 히틀러 지지자였다. 예를 들어 며느리 위니프레드 바그너는 히틀러와 친했다.
여기에 히틀러가 바그너 덕후였다는 사실까지 더해서 유대인들은 아직도 바그너라면 치를 떠는데,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아직까지 바그너 오페라 전막이 공연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이 연주된 일이 없다는 식으로 곧잘 와전되곤 하지만, 다니엘 바렌보임과 주빈 메타 등 유대인 지휘자들이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오페라 가운데 한 대목을 연주한 일이 있다. (그 뒷일은 상상에 맡긴다…;;)
사정이 이러니 바그너가 억울해할 괴담도 많은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낼 때 바그너 음악을 행진곡으로 연주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이런 주장은 어디에도 증거가 없다.)
  • 바그너 색깔론 떡밥 참고: #

3. 저명한 바그네리안들


  • 구스타프 말러[2]
  • 글렌 굴드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루트비히 2세(바이에른)
  • 마츠모토 레이지
  • 미시마 유키오
  • 미야자키 하야오
  •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즈 : 대영제국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이 공주님 덕택에 21세기에도 세계 각지에서 결혼식 신부 입장 때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이 BGM으로 쓰이게 되었다.
  • 살바도르 달리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 스테판 말라르메
  • 스기야마 코이치
  • 스티븐 호킹[3]
  • 슬라보예 지젝[4]
  • 아르투르 오네게르
  • 아르놀트 쇤베르크
  • 아돌프 히틀러
  • 알프레드 코르토
  • 앙겔라 메르켈[5]
  • 에른스트 쇼송
  • 안톤 브루크너
  • 오귀스트 르느와르
  • 조지 버나드 쇼
  • 존 윌리엄스
  •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 키르슈텐 플라그슈타트
  • 테오도르 헤르츨[6]
  • 페터 코르넬리우스
  • 프란츠 리스트
  •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9세 - 발퀴레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는데, 유튜브 댓글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호연이다.
  • J. R. R. 톨킨[7]
  • 한스 피츠너
  • 후고 볼프
이 중 말러와 브루크너는 훗날 바그네리안 못지 않은 팬덤을 확보했고 이에 말레리안, 브루크네리안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4. 바그네리안이었다가 안티가 된 사람들


  • 표트르 차이콥스키
  • 클로드 드뷔시[8]
  • 프리드리히 니체[9]
  • 한스 폰 뷜로 [10]
  •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1] 물론 이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이 바그너의 악극에 최적화된 구조를 자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2] 참고로 말러는 유대인이다. 다만 말러는 요하네스 브람스 등의 보수파의 음악관에도 긍정적이었다고 한다.[3] “바그너의 작품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음악의 아름다움과 힘을 충분히 감상하고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그너의 작품은〈니벨룽겐의 반지〉다. 나는 여러 메이커의 부속으로 조립된 스테레오 세트를 가지고 있다.”[4] 인터뷰에서 메가 바그네리안이라고 밝혔다. “I’m a mega Wagnerian“[5] 매 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참석한다.[6] 출처[7] <니벨룽의 반지>의 2부 발퀴레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바그너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8] 안티로 전향하면서, 바그너의 음악을 "새벽으로 오해받은 황혼"이라고 디스했다.[9] 그의 음악을 야만적이라고 평하거나 갖가지 이유를 동원해서 극딜을 박는다. 파르지팔이 기점인데, 그 전까지는 처녀작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를 극찬하는 등 바그너를 매우 높게 평가했었고 사적으로도 절친한 관계였으나 파르지팔을 관람한 뒤 바그너가 기독교적 가치관에 타락했다고 판단하면서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10] 바그너의 제자였으나 아내를 NTR당한 이후 바그너 안티가 되어 바그너의 대척점에 있던 요하네스 브람스와 친하게 지내면서 브람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홍보했다. 참고로 그 아내는 프란츠 리스트의 둘째 딸 코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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