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숙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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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남진, 수나라, 당나라의 인물로 자는 자총(子聰). 남북조시대 남진의 제4대 황제였던 진욱의 아들이다.
2. 생애
2.1. 진나라 시절
진숙달은 선제 진욱과 소용 원씨 사이에서 17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후주 진숙보의 이복동생이었다. 진숙달은 행동거지와 용모가 출중하였고, 뛰어난 학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10여살에는 즉흥적으로 시를 지을 수 있었다. 태건 14년(582년)에 의양왕(義陽王)으로 책봉되었으며, 인무장군(仁武將軍), 단양윤, 시중, 도관상서를 지냈다.
2.2. 수나라 시절
589년 수나라의 침공으로 진나라가 멸망하면서 남북조시대가 막을 내린다. 진숙달은 수나라에서 관직이 없었다가, 내사사인으로 임명되었고, 강군(絳郡) 통수로 임명되었다. 수나라 말 이연이 거병하고 강군에 다다르자, 진숙달은 성을 바쳐 이연에게 귀순하였다. 이연은 장안을 함락시키고 대왕 양통을 수나라의 황제 자리에 앉혔다. 진숙달은 이때 승상부(丞相府) 주부(主簿)로 제수되었고, 한동군공(漢東郡公)으로 책봉되었으며, 온대아와 함께 기밀문서를 관장하였다.
2.3. 당나라 시절
618년 이연에 양통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하니, 이가 당나라의 초대 황제인 고조이다. 진숙달은 당나라가 건국되고 황문시랑으로 임명되고 619년에 납언을 겸하였으며, 621년에 시중으로 임명되었다. 진숙달은 명변가로 상주할 때마다 조정의 관원들의 주목을 한눈에 받았으며, 장안을 거닐고 다니는 강남의 명사들을 다수 조정에 발탁하였다. 622년에는 작위가 강국공(江國公)으로 올라갔다.
고조 재위기인 626년 고조의 아들들인 이건성, 이원길과 이세민의 갈등이 점점 표면화되었다. 이건성과 이원길은 고조에게 이세민을 참소하여 고조가 이세민을 꾸짖으려고 했지만, 진숙달은 고조에게 간언하여 고조가 이내 그만두었다. 이후 같은 해에는 현무문의 변이 일어나면서 이건성과 이원길이 제거되었고 이세민이 다음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바로 당나라의 제2대 황제인 태종이다.
태종이 즉위한 이후 진숙달은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임명되었다가, 소우와 어전에서 싸운 일로 인해 면직되었다. 이때 진숙달은 면직되고 이윽고 모친상을 당하고 자신도 병에 걸렸다. 상기를 채운 진숙달은 수주(遂州) 도독으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인해 부임하지 못했다. 뒤에 진숙달은 예부상서로 임명되었는데, 태종은 과거 진숙달이 고조에게 한 간언을 칭찬하였다. 뒤에 진숙달은 집안 싸움에 얽혀 어사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태종은 진숙달의 명성을 아까워하며 그의 죄상을 떠벌리지는 않고 진숙달에게 한직을 내렸다.
진숙달은 이후 635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숙달이 사후에 받은 시호는 무(繆)였다가,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추증되었고, 시호가 충(忠)으로 고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