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수)
[clearfix]
1. 개요
수나라의 마지막 황제. 시호는 공황제(恭皇帝). 휘는 양유(楊侑). 양제의 손자이자, 원덕태자 양소의 막내 아들이다.
2. 생애
607년 진왕(陳王)으로 책봉되었다가 후에 대왕(代王)으로 변경되었다. 양제가 고구려 원정에 출정할 때 수도 장안을 지켰다.
615년 양제의 진양 행차에 따라 태원 태수에 임명됐지만 곧 장안으로 돌아갔다. 617년 양제가 강도로 피난을 가자 계속 장안을 지키게 되었다. 하지만 본인이 어린애였고 장안은 방치 상태가 되었으며 양제가 피난간 곳에 관료들이 같이 가지도 않았으므로 사실상 중앙 정부는 활동을 정지되었다. 그렇다고 양제가 강도로 가기 전에 장안에 제대로 된 방어 대책도 세우지 않았으므로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도였던 만큼 성벽도 튼튼했는데 결국 제대로 지킬만한 인물이 없었으므로 11월 태원 유수 이연이 쳐들어와 장안을 함락시켰다. 장안에 입성한 이연은 양유를 황제로 옹립하고 대흥전에서 즉위시켰으며 멀리 있는 양광을 태상황으로 받들었으며 자신은 섭정을 맡아 실권을 잡았다. 하지만 말이 태상황이지, 사실상 양제를 폐위시킨 것으로 그는 양제의 지위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양유라는 카드를 사용하여 수나라 문무백관들에게 투항을 권유해 대권을 모두 자신의 손에서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연에게 굴복한 양유는 조서를 내려 이연에게 가월(假鉞)의 칭호를 하사하고 사지절(使持節) 겸 대도독내외제군사(大都督內外諸軍事) 및 대승상(大丞相), 당왕(唐王)에 봉하여 모든 권한을 넘겨 주었다.
618년 3월 양제가 우문화급에게 시해되고 5월에 그 소식이 장안에 이르자 6월 양유는 이연에게 선양했다. 이연은 당나라를 세워 황제로 즉위했으며 양유는 휴국공(酅国公)으로 강등되었고 이로써 수나라는 멸망했다.
619년 9월 양유는 당고조의 명령을 받은 이세민에 의해 살해되었다. 양유가 폐위당한 후 동도 낙양에서 왕세충에 의해 황제로 옹립된 양유의 이복형 양동이 있었지만 양유가 당 고조에게 선양한 것을 정통으로 보기 때문에 양동은 일반적으로 정통 황제로 보지 않는다.
3. 둘러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