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효준
1. 개요
대한민국의 농구인.
2. 선수 시절
1955년에 태어나 명지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진학해 박한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웠고, 이후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하여 포워드로 활약하여 후배들인 신동찬과 안준호, 박인규, 임정명을 시작으로 김현준, 김진 등과 함께 뛰며 1984/85 농구대잔치에서 한번 트로피를 들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1987년부터 태평양화학 여자농구단 코치로서 데뷔해 김동욱과 신동파 감독을 보좌했고, 1991년 삼성전자 농구단으로 옮겨 은사 김인건 감독을 보좌하다가 1996년부터 진성호 감독의 후임으로 명지대학교 감독을 맡아 박재일을 발굴한 바 있고, 1999 팔마 유니버시아드 때 한국 대표팀 감독도 맡았다.
2000년에는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감독으로 KBL에 데뷔하여 약체의 코리아텐더 푸르미를 2001-2002 시즌에 26승을 올렸으나 KBL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모기업의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시즌 종료 후 물러났다. 그리하여 2002-2003 시즌은 삼성전자 시절 후배인 이상윤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경질 후 중국 CBA 팀 장쑤 난강 드래곤즈의 감독을 1년여 간 맡다가 2003/04 시즌 애니콜 프로농구 때 몇달 간 KBS SKY 스포츠 해설위원도 맡았으나, 2004년 1월 이충희 감독의 경질로 공석이 된 모교 고려대 농구부의 감독이 되었는데, 이는 농구부 역사상 최초의 공개모집 감독이었다. 취임 때부터 명가의 부활을 선언한 후 이민형과 노기석 두 코치의 보조를 받으며 전년도 하승진 등 스카우트 실패를 인정하며 학부모들을 설득했고, 오랜 팀 내부 갈등도 해소해 2007년 연고전 승리로 이끈 바 있다.
하지만 2007 시즌이 끝난 후 어느 학부모로부터 농구부 측이 자식의 스카우트 댓가로 4,000만원을 수수한 사실이 고발되면서 그는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타 학부모들로부터 총 1억원을 수수한 게 더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이것 때문인지 한승수 전 총장대리는 사표를 쓰지 말라느니, 이기수 총장은 사표를 쓰라느니 하며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 학교측이 사표를 종용했고, 2008년 2월 26일부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반면 진효준 본인은 2008년 9월 7일자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대학 스포츠계의 잘못된 풍토가 낳은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1심에서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원을 내라고 선고받았고, 이에 항소에 상고까지 했으나 2008년 12월 19일부로 대법원으로부터 원심이 확정됐다.
4. 퇴임 이후
위와 같은 문제점으로 지도자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야인의 길을 갔는데, KBL 유소년 캠프와 KBL OB 올스타 게임에서 근황이 보이기도 했다.
5. 관련 자료
6.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