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농구인)
* 농구 관련 인물(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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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서울 SK 나이츠, 구리 금호생명 레드윙스, 상명대학교를 지휘했던 농구 감독. 현재는 SPOTV의 농구 해설위원.
현역 시절에는 철저히 무명이었다. 명지초와 배재중을 졸업해 배재고 시절에도 무명이었고, 진학한 대학교는 성균관대학교였다. 성대 시절에도 무명이었지만, 그래도 성대에서 농구를 잘 했는지 성대 출신으로는 2번째로 실업 무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업 시절의 삼성전자는 워낙에 스타 집합소다 보니 존재감이 없는 후보 선수로 머무는 날이 많았다. 바로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서 군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갔다가, 여기서 무릎 연골을 다치면서 의병 전역과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아이스크림 냉장고 영업사원으로 취직해서 10년을 일했다.
그러다가 1996년 프로화를 앞두고 삼성전자가 농구단 프런트를 늘리는 과정에서 농구 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프런트로 발탁되어 삼성 썬더스의 운영팀장직을 맡아 농구판에 복귀했다. 4년을 운영 부장으로 있다가 코리아텐더 감독이자 삼성전자 팀의 선배였던 진효준 감독이 그를 코치로 영입하면서 프로농구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려운 팀 사정으로 인해 진효준 감독이 사임한 후 중국으로 떠났고, 이상윤 본인도 2001-2002 시즌 후 코리아텐더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었으나 모기업인 골드뱅크가 망하면서 팀이 어려워진 2002~03 시즌에 감독 대행으로 코리아텐더 구단이 다시 그를 불러들이면서 코치 없이 홀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실은 새로 감독을 임명할 돈도 없어서 이상윤에게 감독 자리가 돌아간 것. 계약 조건도 연봉이 아니라 월봉 600만원 계약이었다(...) 그리고 재정난 때문에 기대를 걸던 전형수를 현금 트레이드시키면서 누가 보더라도 6강 PO 탈락 1순위였던 팀을 맡았는데[1] , 놀랍게도 이 시즌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팀을 4강에 올려놓는 기적을 보여 줬다.
당시 코리아텐더는 KBL의 지원을 받으며 힘들게 시즌을 이어갔는데 에릭 이버츠, 안드레 페리, 황진원을 앞세워 무려 28승 26패 승률 5할 이상의 성적으로 정규리그 4위를 차지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서울 삼성 썬더스를 발라 버리며 4강 플레이오프까지 올랐지만, 김진 감독이 이끈 김승현-김병철-마르커스 힉스의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게 밀려 버렸다. 어쨌거나 이 해 코리아텐더의 돌풍은 프로농구 최대의 이슈이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몸값이 껑충 뛰면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잠실야구장에서 늘 비밀번호만 찍어대던 모 팀의 궤를 같이 하던 학생체육관을 홈으로 쓰는 모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코텐의 감독직을 당시 상무 농구단의 감독을 맡았던 추일승이 부임하게 된다. 코치로는 바로 직접 보좌한 삼성전사 시절 인연이 있었던 후배인 강양택 수석코치였다. 당연히 목표는 KBL 인기구단인 만큼 최소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결국 감독의 무덤의 첫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2]
SK 나이츠에서의 순탄치 않은 감독 생활 뒤에 잠시 Xports에서 해설가를 맡았다. 그러다가 여자농구 팀 구리 금호생명 레드윙스를 맡아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지만, 결국 신한은행을 넘지 못하며 우승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내고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MBC SPORTS+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다가 2012년 7월 6일 상명대학교 농구부의 감독을 맡아 현장에 복귀했다. 2012년 농구대잔치에서 상명대학교를 대학 리그 사상 첫 4강으로 이끌고, 2013년 한국대학농구리그에서 팀을 처음으로 6강에 올려놓으면서 오랜만에 지도력을 다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거친 선수들 중 포워드인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한 이현석가 있었지만 가드 정성우가 창원 LG 세이커스에 입단하여 2015-2016 신인왕을 거머쥐었으며, 이는 상명대학교 출신 선수 최초의 신인왕이다. 임기 마지막에는 전성환 선수가 모교 첫 로터피인 4순위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입단했다. 2018년에는 상명대를 사상 처음으로 대학농구리그 4강으로 이끌었다. 이후 학교 사정이 겹쳐 2019년을 끝으로 고승진 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고 퇴임을 하게 되었다.
지도자 커리어를 쌓으면서 틈틈이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SK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Xports의 해설위원을 2005년부터 두 시즌 동안 맡았고 금호생명에서 퇴단한 뒤에는 MBC SPORTS+에서 두 시즌 해설을 했다.
상명대학교 농구부 감독직을 맡는 동안에는 해설을 부업으로 했으며 2014-15 시즌 초기에는 SPOTV에서, 2016-17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는 IB SPORTS에서 프로농구 해설을 담당했다.
2019-20 시즌부터는 다시 SPOTV에서 해설을 맡고 있으며 2019년을 끝으로 상명대를 떠나게 되면서 이제는 해설이 주업이다.
선을 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비판과 격려를 적절히 섞는 밸런스로 팬들에게 호평을 받는 해설자다. 또한 극적인 상황에서는 캐스터와 함께 샤우팅을 하며 흥을 돋우는 역할도 한다. 풍부한 지도자 경력에서 나오는 농구 지식도 중간중간 섞어주는 등 해설의 질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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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서울 SK 나이츠, 구리 금호생명 레드윙스, 상명대학교를 지휘했던 농구 감독. 현재는 SPOTV의 농구 해설위원.
2. 선수 시절
현역 시절에는 철저히 무명이었다. 명지초와 배재중을 졸업해 배재고 시절에도 무명이었고, 진학한 대학교는 성균관대학교였다. 성대 시절에도 무명이었지만, 그래도 성대에서 농구를 잘 했는지 성대 출신으로는 2번째로 실업 무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업 시절의 삼성전자는 워낙에 스타 집합소다 보니 존재감이 없는 후보 선수로 머무는 날이 많았다. 바로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서 군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갔다가, 여기서 무릎 연골을 다치면서 의병 전역과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아이스크림 냉장고 영업사원으로 취직해서 10년을 일했다.
3. 지도자 시절
그러다가 1996년 프로화를 앞두고 삼성전자가 농구단 프런트를 늘리는 과정에서 농구 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프런트로 발탁되어 삼성 썬더스의 운영팀장직을 맡아 농구판에 복귀했다. 4년을 운영 부장으로 있다가 코리아텐더 감독이자 삼성전자 팀의 선배였던 진효준 감독이 그를 코치로 영입하면서 프로농구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려운 팀 사정으로 인해 진효준 감독이 사임한 후 중국으로 떠났고, 이상윤 본인도 2001-2002 시즌 후 코리아텐더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었으나 모기업인 골드뱅크가 망하면서 팀이 어려워진 2002~03 시즌에 감독 대행으로 코리아텐더 구단이 다시 그를 불러들이면서 코치 없이 홀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실은 새로 감독을 임명할 돈도 없어서 이상윤에게 감독 자리가 돌아간 것. 계약 조건도 연봉이 아니라 월봉 600만원 계약이었다(...) 그리고 재정난 때문에 기대를 걸던 전형수를 현금 트레이드시키면서 누가 보더라도 6강 PO 탈락 1순위였던 팀을 맡았는데[1] , 놀랍게도 이 시즌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팀을 4강에 올려놓는 기적을 보여 줬다.
당시 코리아텐더는 KBL의 지원을 받으며 힘들게 시즌을 이어갔는데 에릭 이버츠, 안드레 페리, 황진원을 앞세워 무려 28승 26패 승률 5할 이상의 성적으로 정규리그 4위를 차지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서울 삼성 썬더스를 발라 버리며 4강 플레이오프까지 올랐지만, 김진 감독이 이끈 김승현-김병철-마르커스 힉스의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게 밀려 버렸다. 어쨌거나 이 해 코리아텐더의 돌풍은 프로농구 최대의 이슈이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몸값이 껑충 뛰면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잠실야구장에서 늘 비밀번호만 찍어대던 모 팀의 궤를 같이 하던 학생체육관을 홈으로 쓰는 모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코텐의 감독직을 당시 상무 농구단의 감독을 맡았던 추일승이 부임하게 된다. 코치로는 바로 직접 보좌한 삼성전사 시절 인연이 있었던 후배인 강양택 수석코치였다. 당연히 목표는 KBL 인기구단인 만큼 최소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결국 감독의 무덤의 첫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2]
SK 나이츠에서의 순탄치 않은 감독 생활 뒤에 잠시 Xports에서 해설가를 맡았다. 그러다가 여자농구 팀 구리 금호생명 레드윙스를 맡아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지만, 결국 신한은행을 넘지 못하며 우승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내고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MBC SPORTS+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다가 2012년 7월 6일 상명대학교 농구부의 감독을 맡아 현장에 복귀했다. 2012년 농구대잔치에서 상명대학교를 대학 리그 사상 첫 4강으로 이끌고, 2013년 한국대학농구리그에서 팀을 처음으로 6강에 올려놓으면서 오랜만에 지도력을 다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거친 선수들 중 포워드인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한 이현석가 있었지만 가드 정성우가 창원 LG 세이커스에 입단하여 2015-2016 신인왕을 거머쥐었으며, 이는 상명대학교 출신 선수 최초의 신인왕이다. 임기 마지막에는 전성환 선수가 모교 첫 로터피인 4순위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입단했다. 2018년에는 상명대를 사상 처음으로 대학농구리그 4강으로 이끌었다. 이후 학교 사정이 겹쳐 2019년을 끝으로 고승진 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고 퇴임을 하게 되었다.
4. 해설위원
지도자 커리어를 쌓으면서 틈틈이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SK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Xports의 해설위원을 2005년부터 두 시즌 동안 맡았고 금호생명에서 퇴단한 뒤에는 MBC SPORTS+에서 두 시즌 해설을 했다.
상명대학교 농구부 감독직을 맡는 동안에는 해설을 부업으로 했으며 2014-15 시즌 초기에는 SPOTV에서, 2016-17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는 IB SPORTS에서 프로농구 해설을 담당했다.
2019-20 시즌부터는 다시 SPOTV에서 해설을 맡고 있으며 2019년을 끝으로 상명대를 떠나게 되면서 이제는 해설이 주업이다.
선을 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비판과 격려를 적절히 섞는 밸런스로 팬들에게 호평을 받는 해설자다. 또한 극적인 상황에서는 캐스터와 함께 샤우팅을 하며 흥을 돋우는 역할도 한다. 풍부한 지도자 경력에서 나오는 농구 지식도 중간중간 섞어주는 등 해설의 질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