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형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및 감독.
2. 선수 경력
1972년 2월에 당대 명센터로 활약했던 부친 이경우 씨가 고혈압으로 숨을 거두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런 아픔을 딛고 용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용산고등학교 농구부 시절 허재, 한만성 등과 3인방으로 활약하며 용산고를 전국 최강자로 이끌었고, 1984년 서울에서 열린 FIBA Asia U-19 결승에서 중국을 물리치고 우승할때 주전 센터였다.[2]
고려대학교 시절엔 허-동-택 트리오와 한기범 등이 있던 중앙대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졸업 후인 1988년 김동광 감독이 이끌던 기업은행 농구단(현 부산 kt 소닉붐)에 입단하였다. 당시 실업팀 센터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단신이었음에도 기업은행의 골밑을 잘 지키면서 내외곽을 넘나들며 활약했고, 기업은행을 농구대잔치 4강으로 이끌며 입단 첫해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3] 이후 대학세가 득세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에도 최철권, 장일, 김상식 등과 함께 기업은행을 꾸준히 농구대잔치 8강권으로 유지시키는등 활약했고, 1990년에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0 스페인 세계선수권 및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출전하기도 했다.
KBL이 출범하면서 팀이 광주 나산 플라망스로 바뀌면서도 계속 선수로 활동하여, 1997년 KBL 원년시즌에는 32세의 나이로 주전 파워 포워드로 뛰며 11.5득점-3.2리바-1.5어시-1.8스틸의 스탯을 기록하였고, 에릭 이버츠, 김상식, 김현국 등과 함께 광주 나산 플라망스를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이듬해 1997-98 시즌에는 아도니스 조던, 브라이언 브루소를 외국인 선수로 맞아 역시 주전 4번으로 뛰면서 11.8득점-3.0리바-1.0어시-1.0스틸의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으나,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이 합류한 대전 현대 다이냇과 신생팀으로 양희승, 박재헌, 박규현이 입단한 창원 LG 세이커스에 비해 별다른 전력보강이 없었던 탓에 아쉽게 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광주 나산 플라망스의 모기업 나산그룹이 IMF 구제금융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1998~1999 시즌 플레잉 코치로 뛴 것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인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수원/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지도자로서 첫 출발을 하게 되었다.
기업은행 시절 은사이신 김동광 감독님을 보좌하는 코치로 활약을 시작하게 된다. 현역 시절에 해내지 못했던 2000-2001 KBL 통합우승의 영광을 함께하게 된다. 당시 주축으로 주희정과 이규섭은 모교 후배였고 이외 문경은과 이창수 그리고 강혁을 지도했다.
이후 2006년 1월부터 2008년까지 모교인 고려대학교 농구부의 코치를 역임하면서 진효준 감독을 보좌하게 된다.
그리고 2010년, 사상 최악의 내홍을 겪던 고려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4]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팀을 급속히 추스르고, 2011년 입학한 이승현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재정비하여 고려대를 한국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 2년 연속 우승(2014, 2015)과 챔피언결정전 3년 연속 우승(2013~2015)으로 이끄는 그야말로 대반전을 보여주었다.
00년대 고려대 농구부의 대침체와 악순환을 10년대에서 끊으면서 00년대 대표 스타였던 김영환 이후 이승현으로 인해 무너졌던 고려대 농구부의 자존심을 되찾게 되었다.
당시 10년대 고려대 농구부 베스트 5는 다음과 같다.
PG 박재현 SG 이동엽 SF 문성곤 PF 이승현 C 이종현
이들은 고려대 농구부의 황금세대로 대다수 KBL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가드 라인의 박재현과 이동엽은 KBL에서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모교에서는 선전이다.
기존의 대학농구 감독들과는 다르게 작전타임 중 선수를 윽박지르거나 질책하는 모습(ex> 前 성균관대 감독 박성근)이 적고 심판에게 과도하게 항의(ex> 前 경희대 감독 최부영)하지 않는 등 신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2013년 대학농구리그 고려대 vs. 명지대 전에서 경기막판 고려대가 크게 리드한 상황에서 고려대 정희원이 속공상황에서 명지대 김지웅에게 하드파울을 당하자[5] 선수들보다도 먼저 코트에 난입하여 파울한 김지웅에게 달려드는[6] 불같은 면모도 보여주었다. 고려대의 스카웃이 너무 압도적이다.[7] 감독으로서 작전설계나 선수 육성 역량은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특히 가드와 포워드 유망주들의 기량이 정체된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이는 고려대 뿐만 아니라 빠른 농구를 하지 않는 일부 대학의 공통점이다.)
2015년 12월, 고려대 농구부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감독인 이민형은 직무정지 조치를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2015 농구대잔치 이후 2017년 시즌 초반까지 고려대 농구부는 강병수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되었다.
2017년 4월 24일, 검찰은 이민형 감독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고려대는 22일 후인 5월 16일, 직무 정지를 해제하며 이민형 감독의 복귀를 확정했다. 기사 같은 달 31일 대학농구리그 조선대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시즌을 마친 뒤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후임 감독으로는 前 청주 KB 스타즈 감독을 지냈던 서동철 감독 임명되었으나 부임한 지 2개월 만에 선배들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1학년 선수 5명의 숙소 이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를 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퇴 이후 1개월만에 부산 kt 소닉붐의 4대 감독으로 2012-2013 시즌 고양 오리온스 수석코치 시절 이후 5년만에 KBL에 돌아오게 된다.
이 사례는 고려대 농구부의 특징상 학부모 반발과 그리고 고참들 장악에서 이민형 감독의 능력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4. 여담
고려대 3년 후배 농구선수 김상식과는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민형의 부친이자 50~60년대 국가대표팀 센터 출신인 이경우 선수가 37세의 젋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경우 선수의 대표팀 동료였던 김영기가 이민형의 후견인을 자처, 이민형을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었고, 자연스럽게 김영기의 아들인 김상식과도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냈다. 이후 이민형과 김상식은 고려대 선후배로 만난 데 이어 실업팀도 같은 기업은행 팀을 선택, KBL 광주 나산 플라망스 시절까지 팀 동료로서 함께 하였다.
5. 관련 문서
[1] 2015년 12월 고려대 농구부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학교로부터 직무정지 통보를 받았다. 이때부터 2017년 무혐의 처분받아 감독직에 복귀하기 전까지 고려대 농구부는 강병수 코치 대행 체제로 운영됐다.[2] 이 우승으로 허재, 이민형, 김종석, 한만성 등은 병역특례를 받았다.[3] 사실 1988-89 농구대잔치 신인상은 허재가 타는게 맞았다. 입단 첫해 사실상 MVP나 다름없는 활약을 펼치며 기아산업팀을 농구대잔치 첫 우승으로 이끌었음에도 MVP는 팀선배 유재학이, 신인상은 이민형이 가져갔고, 허재 본인은 베스트 5(유재학-김현준-이충희-허재-김유택)에 이름을 올리는데 만족해야 했다.[4] 입학비리로 전임 진효준 감독이 짤리면서 임정명 감독(박한 감독 시절 코치)이 부임했는데, 이분에 대해 소개하자면 공개 연습경기 중 작전타임때 선수에게 불꽃 싸다구를 날릴 정도로 대단한(?) 양반이다. 결국 이 싸다구 동영상(?)이 퍼지면서 감독직에서 짤리고 신임감독으로 이충희를 임명했는데, 선수 학부모들 중 임정명 지지파와 이충희 지지파 간 싸움이 벌어지면서 한지붕 두감독 사태가 벌어졌고, 이 기간 동안 선수들도 각 파벌로 나뉘어 따로 훈련하는 등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이때 고려대에 스카웃되었던 선수들이 차재영, 양우섭, 하재필, 정창영, 유성호 등이다. 다들 고교시절 대단한 유망주였으나 대학시절 심각한 기량정체를 겪으며 KBL 드래프트에서 가치가 급락했다. 결국 두 감독은 모두 해임의 비극을 당하게 된다. 고려대 농구부는 이 와중에 은퇴한 지 얼마 안 됐던 비극의 창원 LG 세이커스 출신의 슈퍼스타였던 현주엽에게 감독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5] 공중에 뜬 정희원을 김지웅이 밀어버렸고, 부상에서 갓 복귀한 정희원은 코트에 목부터 떨어졌다.[6] 김지웅을 밀치기는 했지만 직접 때리거나 하진 않았다. 분노로 가득차 눈이 반쯤 뒤집힌채 "야, 임마! 너 뭐야!! 어? 뭐야!!"라고 소리만 지른다.[7] 매년 청소년 대표팀 주전급 중 2~3명이 고려대로 갔다. 2011년 이승현, 2012년 이동엽-문성곤, 2013년 최성모-정희원-강상재-이종현, 2015년 장태빈-전현우-박준영, 2016년 박정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