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에드몬즈

 

'''이름'''
'''제임스 패트릭 에드몬즈
(James Patrick Edmonds)'''
'''생년월일'''
1970년 6월 27일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신체'''
183cm, 92kg
'''포지션'''
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8년 드래프트 7라운드 (전체 169순위, CAL)
'''소속 구단'''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93~199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00~2007)'''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08)
시카고 컵스(2008)
밀워키 브루어스(2010)
신시내티 레즈(2010)
'''수상'''
'''4회 올스타 선정 (1995, 2000, 2003, 2005)
1회 월드시리즈 우승 (2006)
1회 실버슬러거 (2004)
8회 골드글러브 (1997, 1998, 2000~2005)'''
1. 개요
2. 경력
3. 여담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17시즌 동안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총 6구단에서 활약한 중견수.
애너하임 에인절스 시절에는 동시대 켄 그리피 주니어라는 벽에 가려서 아메리칸리그의 중견수 2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래도 'Human Highlight Reel'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수비와 장타력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한 이후에는 앤드루 존스와 함께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공수겸장 중견수로 올스타 선발출장 3차례를 달성하기도 했다.
통산 타출장 0.284/0.376/0.527 wRC+132 fWAR 64.5, 393홈런, 1199타점, 1949안타를 기록하였으며 올스타 4회, 실버 슬러거 1회, 골드 글러브 8회를 수상 하였다.

2. 경력


타격 재능도 분명히 매력적이었지만, Edmonds의 매력은 역시 고교시절부터 "True CF" 로 평가받던 그의 수비였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1988년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되었고, 1994시즌 중반부터 본격적인 빅리그 풀타임 중견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는 1993년 신인왕 팀 새먼과 1995년 신인왕 2위의 개럿 앤더슨이라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야수 트리오를 구축하며 에인절스에서도 중심타자로 활동했다. 풀타임 첫 시즌인 1995년 33홈런 107타점 .290/.352/.536 타출장을 기록하면서 호타준족 외야수의 등장을 알린 에드먼즈였지만, 이후 3시즌은 매년 잔부상에 시달리며 96,97년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하고 27,26,25홈런(98시즌)으로 약간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99년 당한 어깨부상으로 시즌 전반기를 날려먹은게 결정타였다.
마침 에인절스에는 1995년 전체 1위로 지명한 대린 어스태드[1]라는 중견수 유망주도 대기를 하고 있었고, 개럿 앤더슨도 원래는 중견수 수비도 준수했던 만큼 FA시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부상을 당해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짐 에드먼즈를 이 두 선수(특히 대린 어스태드)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2000년 시즌 개막 직전 에인절스에 부족한 선발 투수를 보강하기 위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선발투수였던 켄트 보텐필드와 2루수 애덤 케네디를 받고 짐 에드먼즈를 보낸다.
하지만, 짐 에드먼즈는 카디널스로 이적한 후 바로 마크 맥과이어 우산효과 버프까지 받아 42홈런 108타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거기다 하필 받아온 켄트 보텐필드가 폭망하면서 트레이드 잔혹사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고, 이후 에드먼즈는 카디널스와 재계약하며 2000년대 초반 카디널스의 주전 중견수이자 내셔널 리그를 대표하는 호타준족 중견수로 등극했다. 특히 2004년에는 스캇 롤렌, 알버트 푸홀스와 클린업을 이루며 '''클린업 트리오가 전부 OPS 10할을 넘기는''' 살인 타선[2]을 구축했다. 하지만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밤비노의 저주를 깨기 위해 벼르던 보스턴 레드삭스에 스윕패를 당했다.
그러나 2006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점으로 기량이 하락하였고 결국 여러 팀을 떠돌다가 2010년 종료 후 은퇴를 하였다. 선수 생활 마지막 해인 2010년에도 비록 86경기로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하였지만, 밀워키 브루어스, 신시내티 레즈 두팀에서 뛰면서 0.276/0.342/0.504의 비율스탯과 11홈런 23타점을 기록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뛰었다면 400홈런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팬들의 아쉬움을 받았다.
잔부상이나 팀 수뇌부와의 갈등 등으로 출장이 제한되는 등 커리어에 곡절이 있었기에 400홈런 2000안타도 채우지 못했을 정도로 누적이 매우 부족하했으며, 정상급 수비력을 갖춘 외야수치고는 아주 발이 빠르거나 도루가 많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골드글러브를 8회나 받을 정도로 좋은 수비력이 있었고 중견수 포지션에서는 보기 드문 장타력과 선구안을 두루 갖춘 타자였기에 세이버매트릭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재평가가 이뤄졌다.
다만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물을 먹은 대표적인 케이스. 통산 fWAR 64.5, bWAR 60.2를 기록하였는데,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첫 해 2.4% 득표율로 광탈했다. 통산 fWAR 65.0. bWAR 69.2인 토니 그윈이 첫 턴, 그것도 '''97%'''의 득표율로 통과된 것에 비하면 참 많이 저평가된 선수. 토니 그윈은 세이버메트릭스에선 상대적으로 평가가 떨어지는 클래식한 타자이긴 하나 3110안타라는 압도적인 누적 스탯에 명예의 전당 통계도 전부 만족시켰으며 샌디에이고 한팀에서만 뛰며 팀의 유이한 월드시리즈 진출에 모두 기여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좋은 이미지까지 내세울 점이 참 많았지만 에드몬즈는 일차적으로 누적이 너무 부족했다.
일단 국내에서 가장 자세하게 해당 선수를 소개한 Revisiting TLR ERA [16] Jim Edmonds의 일독을 추천한다,

3. 여담


  • 2020년 3월 28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의심 증상을 보이면서 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동시에 입원했다. 그리고 SNS에 "나는 내가 이런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버텨내지 못했다. 코로나19는 장난이 아니다. 부디 건강하라."라며 안부를 전했다. 4월 2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완치 소식을 전했다. #

[1] 이쪽도 올스타 2회, 골든글러브 3회의 실적을 갖춘 뛰어난 외야수 겸 1루수였다. 특히 2000년에는 .355/.409/.541 25홈런 28도루 100타점 121득점 240안타라는 뛰어난 성적을 냈는데, 이는 2017년 찰리 블랙몬이 104타점으로 넘어서기 전까지 순수 리드오프로서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100타점이자 최다 타점 시즌을 만들었다.[2] 여기에 유격수 에드거 렌테리아나 외야의 레지 샌더스,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대려온 래리 워커 등 파괴력을 갖춘 타자들이 즐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