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그윈

 

'''토니 그윈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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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토니 그윈'''
헌액 연도
2007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7.61% (1회)

'''198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안드레 도슨
(몬트리올 엑스포스)
호세 크루즈
(휴스턴 애스트로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호세 크루즈
(휴스턴 애스트로스)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윌리 맥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데이브 파커
(신시내티 레즈)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윌리 맥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데이브 파커
(신시내티 레즈)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팀 레인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데이브 파커
(신시내티 레즈)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198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팀 레인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데이브 파커
(신시내티 레즈)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커크 깁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198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커크 깁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199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레니 딕스트라
(필라델피아 필리스)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모이세스 알루
(몬트리올 엑스포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단테 비솃
(콜로라도 로키스)
'''199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모이세스 알루
(몬트리올 엑스포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단테 비솃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게리 셰필드
(플로리다 말린스)
엘리스 버크스
(콜로라도 로키스)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게리 셰필드
(플로리다 말린스)
엘리스 버크스
(콜로라도 로키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그렉 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모이세스 알루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안드레 도슨
(몬트리올 엑스포스)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윌리 맥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윌리 맥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198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윌리 맥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198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0년 ~ 199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9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알 레이터
(뉴욕 메츠)



<colbgcolor=#041e42>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No.19'''
'''앤서니 케이시 "토니" 그윈 시니어
(Anthony Keith "Tony" Gwynn Sr.)
'''
'''출생'''
1960년 5월 9일
'''사망'''
2014년 6월 16일 (향년 54세)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신체'''
180cm, 102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1년 드래프트 3라운드 (SD)
'''소속 구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2~2001)'''
'''수상'''
'''NL 올스타 선정 15회 (1984~1987, 1989~1999)
골드글러브 5회 (1986~1987, 1989~1991)
실버슬러거 7회 (1984, 1986~1987, 1989, 1994~1995, 1997)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1999)
NL 타격왕 8회 (1984, 1987–1989, 1994~1997)'''
1. 개요
2. 선수생활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4. 은퇴 이후
5. 기타
6. 연도별 기록
7. 관련 문서


1. 개요


가끔 공의 회전을 읽어내는 타자들이 있습니다. 릴리스 포인트의 차이로 구종을 알아내는 타자들도 있고, 커브볼 특유의 손을 떠나는 순간의 떠오름을 포착하는 타자들도 있죠. 하지만 투수가 '''공의 속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 어떠한 타자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하는게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딱 한명, 그 좆같은 토니 그윈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Sometimes hitters can pick up differences in spin. They can identify pitches if there are different releases points or if a curveball starts with an upward hump as it leaves the pitcher’s hand. But '''if a pitcher can change speeds, every hitter is helpless''', limited by human vision. '''Except, for that fucking Tony Gwynn.'''

- 그렉 매덕스, 2014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1]

[2][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전 야구선수로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교타자이자 타격의 달인이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만 20년의 선수생활을 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1990년대부터 박찬호를 통해 메이저리그를 접한 한국 야구팬들의 기억 속엔 '육중한 생김새와 몸매에 비해, 타격 스타일은 똑딱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는데, 사실 살이 찐 건 30대가 지나서고 초창기(1980년대)에는 첫번째 짤처럼 날씬했다. 살이 찐 뒤로 발도 느려져서 도루수와 시도수 역시 급격히 줄었지만 20대 때는 빠른 발로도 유명했다.
통산 성적은 20시즌 동안 타율 '''.338''', 출루율 .388, 장타율 .459, OPS .847, 순장타율 .120, 3141안타, 135홈런, '''BB/K 1.82''', wRC+ 132, 1138타점, 1383득점, bWAR 69.2 fWAR 65.0을 기록했다.


2. 선수생활


'''영원한 3할 타자'''라는 별명이 있다. 1982년 데뷔 시즌 .289를 기록한 이후 15년 연속 규정 타석 3할을 넘겼으며,[4] 5년 연속 타율 '''.350''', 1994년 단축 시즌에는 테드 윌리엄스 이후 가장 4할에 근접한 .394의 기록을 남겼다.[5] 은퇴시즌 타율이 .324일 정도로 미국에서 타격의 달인은 바로 토니 그윈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약체라서 MVP,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점이 아쉽지만, 통산 8번의 타격 1위, 7번의 최다 안타를 기록, 데뷔시즌을 제외하고 출루율이 .35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는 그야말로 타격의 신. 통산 타율 .338로 현대 야구가 확립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선수 중에서는 테드 윌리엄스 다음의 순위를 차지한다.
90년대 말부터 메이저리그를 지켜본 팬들은 그윈이 '방망이만 잘 돌리는 후덕한 아저씨'로 생각하겠지만,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젊었던 시절에는 통산도루 319개에 달하는 빠른 발과[6] 타격의 정교함이 일품이었다. 홈런은 많지 않아도 적극적인 타격을 통해 볼넷 수는 딱히 많지 않지만, 삼진은 더더욱 적어서 한 시즌 20개도 안되는 삼진만 당하는 기록을 주전 출장 기준으로 8시즌이나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20시즌을 뛰면서 '''통산 삼진 갯수가 고작 434개, 연평균 22개이다.'''[7] 오죽하면 "그윈이 삼진을 당하면, 그윈 본인과, 코치들과, 그리고 공을 던진 투수까지도 놀랐다" 라고 농담삼아 말할 정도. 또한 폭넓게 안타를 치는 스프레이 히터타입이라 2루타를 많이 생산하는 공격적인 2번 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덕분에 3,000안타는 당연하다는 듯이 기록했고, '''1900년 이후 출생 타자들 중 가장 적은 경기수 만에 3,000안타에 도달'''한 대기록 또한 갖게 되었다.(2,284경기) 거기에 골드글러브 5회 수상에 빛나는 안정된 수비 또한 일품. 하지만 잔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한 30세를 넘김과 동시에 도루를 포기하고 몸을 불린 뒤 컨택트에 집중했다. 그래도 완전히 죽진 않아서 37세 시즌인 1997년까지 1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다.
80-90년대 타격의 상징은 아메리칸 리그의 웨이드 보그스, 그리고 내셔널리그의 그윈이었다. 보그스가 그윈보다 2살 위로 메이저 데뷔년도가 1982년으로 같고 은퇴한 나이도 만 41세로 같다. 타격왕 횟수는 보그스가 80년대에만 '''5회''' vs그윈이 80년대 4번, 90년대 4번해서 총 '''8회'''. 선구안이 뛰어난 보그스가 매시즌 많은 볼넷을 얻어내 출루율은 앞서며(보그스 .415 / 그윈 .388) 그윈은 적극적인 컨택을 통한 안타생산에(보그스 3010안타 / 그윈 3141안타) 집중한 타입. wRC+나 OPS+로 비교하면 토니 그윈이 둘다 132고 웨이드 보그스는 132/131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WAR은 f나 b나 보그스 쪽이 훨씬 높은데 이는 수비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여튼 웬만한 선수들도 잘 인정해주지 않는 배리 본즈미겔 카브레라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칭찬하면서 나도 하고는 싶었는데 내가 뛰던 때는 토니 그윈이 있어서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타격에 있어선 최고의 선수였다.
타격 감각도 뛰어났지만 토니 그윈을 '''타격의 달인'''으로 만든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와 연습이었다고 한다. 특히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로 임했던 선수였는데, 자신의 타격 내용을 복기해 보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팀 투수를 분석하는데 무척 꼼꼼했다고 한다. 파드리스 라커룸에는 그윈만을 위한 비디오실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그윈 페이지에는 별명으로 '''캡틴 비디오'''가 붙어있다.
선수 시절 말년에는 칼 립켄 주니어와 더불어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의 상징이었다. 짧은 역사에 그마저도 대부분을 약팀으로 보낸데다 스타 선수도 적었던 파드레스 팬들에게는 더욱 각별했던 존재.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던 2001년 올스타전에 비록 립켄처럼 인기 투표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감독 추천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칼 립켄 주니어와 같이 97.6%의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윈의 등번호는 당연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영구결번으로 처리되어 있고, 펫코 파크를 지나는 도로의 이름에도 "토니 그윈"이 들어가 있으며(토니 그윈 드라이브), 구장 앞에는 "Mr.Padre"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토니 그윈
57
155
279
54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Right Field (14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토니 그윈
69.2
41.3
55.2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72.7
42.9
57.8

4. 은퇴 이후


은퇴 후 모교인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감독직을 맡았다. 그가 길러낸 제자 중에 드래프트 1순위 1번 지명을 받은 괴물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있다. 그렇게 순탄하게 대학야구 감독직을 하다가 후두암에 걸렸다고 한다. 원인은 씹는담배. 무척 후회했다고 한다. '''흡연은 언젠가는 자기 몸을 망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
결국 2014년 4월 들어 세 번째로 암이 발병했는데 상태가 심해지면서 대학 감독직도 휴직을 신청했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6일 향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직접적 사인은 씹는 담배로 인해 발병한 침샘암이었다.
이렇게 그윈은 담배를 무조건 끊어야 한다는 교훈을 죽음으로 알린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말았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난 당일 메이저리그에서는 경기 전 추모가 있었다.
201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데릭 지터만 수십번 언급하고 토니 그윈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있다. MLB 측과 주관 방송사였던 FOX가 해명했지만 변명 취급 받고 있다.
2014년 올스타전에서 토니 그윈에 대한 항의가 빗발쳐서 그런 지 펫코 파크에서 열린 2016년 올스타전에서는 뒤늦게라도 토니 그윈을 많이 언급하면서 토니 그윈에 대한 업적을 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 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6년부터 내셔널리그 타격왕 타이틀을 '''토니 그윈 상'''이라고 명명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아메리칸리그도 동일하게 적용하며 로드 커류 상으로 명명.

5. 기타


학창 시절에 야구와 농구를 병행했다고 한다. 이미 고등학생 때 지역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손꼽혔고,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재학 시절에는 실제로 NBA 구단들이 그의 게임 리딩 능력을 눈여겨보며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실제로 1981년 NBA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클리퍼스가 그윈을 지명하기도 했다.[8]
아들인 토니 그윈 주니어는 2006년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밀워키 브루어스-샌디에이고-로스앤젤레스 다저스-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거치고 2015년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아버지에 한참 못 미치는 재능으로 마이너 오락가락하는 정도의 백업 외야수로 커리어를 보냈다. 2014년 부친상 때는 파드리스 뿐만 아니라 전 메이저리그에 걸쳐 추모 분위기가 있었던 덕에 복귀 타석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현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라디오 방송을 담당하면서 구단 주관 방송사인 FOX SPORTS San Diego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고 있다.

6.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82
SD
54
209
55
12
2
1
33
17
8
14
16
.289
.337
.389
.726
1.0
1983
86
334
94
12
2
1
34
37
7
23
21
.309
.355
.372
.726
1.4
1984
158
675
'''213'''
21
10
5
88
71
33
59
23
'''.351'''
.410
.444
.853
6.3
1985
154
671
197
29
5
6
90
46
14
45
33
.317
.364
.408
.773
4.2
1986
160
701
'''211'''
33
7
14
'''107'''
59
37
52
35
.329
.381
.467
.848
'''6.2'''
1987
157
680
'''218'''
36
'''13'''
7
119
54
56
82
35
'''.370'''
.447
.511
.958
'''7.4'''
1988
133
578
163
22
5
7
64
70
26
51
40
'''.313'''
.373
.415
.787
3.0
1989
158
679
'''203'''
27
7
4
82
62
40
56
30
'''.336'''
.389
.424
.813
2.4
1990
141
629
177
29
10
4
79
72
17
44
23
.309
.357
.415
.772
2.8
1991
134
569
168
27
11
4
69
62
8
34
19
.317
.355
.432
.787
5.1
1992
128
569
165
27
3
6
77
41
3
46
16
.317
.371
.415
.786
4.4
1993
122
534
175
41
3
7
70
59
14
36
19
.358
.398
.497
.895
3.3
1994
110
475
'''165'''
35
1
12
79
64
5
48
19
'''.394'''
'''.454'''
.568
1.022
4.0
1995
135
577
'''197'''
33
1
9
82
90
17
35
15
'''.368'''
.404
.484
.888
2.3
1996
116
498
159
27
2
3
67
50
11
39
17
'''.353'''
.400
.441
.842
3.0
1997
149
651
'''220'''
'''49'''
2
17
97
119
12
43
28
'''.372'''
.409
.547
.957
4.2
1998
127
505
148
35
0
16
65
69
3
35
18
.321
.364
.501
.865
1.2
1999
111
446
139
27
0
10
65
69
7
29
14
.338
.381
.477
.858
2.1
2000
36
140
41
12
0
1
17
17
0
9
4
.323
.364
.441
.805
0.2
2001
71
112
33
9
1
1
5
17
1
10
9
.324
.384
.461
.845
0.5
<color=#373a3c> '''MLB 통산'''
(20시즌)
'''2440'''
'''10232'''
'''3110'''
'''543'''
'''84'''
135
'''1383'''
'''1138'''
'''319'''
'''790'''
434
'''.338'''
.388
.459
.847
'''65.0'''

7. 관련 문서


[1] 토니 그윈은 애틀랜타 3인방 중 매덕스와 존 스몰츠에게 거의 저승사자급으로 강했다. 매덕스 상대로는 107 타석 타/출/장 .415 .476 .521 OPS '''.997'''에 '''단 한 번도 삼진을 허용한 적이 없으며''', 스몰츠 상대로는 75 타석 타/출/장 .444 .467 .694 OPS '''1.161'''의 상대전적을 기록(삼진은 하나 허용하긴 했다.). 다만 그윈이 글래빈페드로 상대로 3할 타율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강했다는 인식이 있는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글래빈을 상대로는 통산 105 타석 타/출/장 .303 .337 .404 OPS .741, 페드로 상대로 36타석 타/출/장 .314 .333 .343 OPS .676을 기록했는데 이는 글래빈 상대로 평범한 좌타자 수준의 성적, 페드로 상대로는 3/3/3 슬래시라인의 성적(…)을 거둔 것으로, 그윈의 통산 타격성적이 타/출/장 .338 .388 .459 OPS .847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글래빈과 페드로에게 매우 약했다고 보는 쪽이 옳다. 투수들의 입장에서 봐도, 글래빈의 좌타자 상대 통산 성적은 피안타율/피출루율/피장타율 .268 .340 .397 피OPS .737이고 페드로의 좌타자 상대 통산 성적은 피안타율/피출루율/피장타율 .233 .296 .375, 피OPS .671이므로 글래빈과 페드로에게 있어서 토니 그윈은 그냥 리그의 평균적인 좌타자였다는 이야기가 된다.[2] 의외의 사실 하나는, 그윈이 매덕스에게 저렇게 강했는데도 불구하고 매덕스 상대로 홈런을 단 하나도 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토니 그윈이 슬러거가 아니라 교타자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통산 OPS가 1에 근접할 정도로 극강이었던 상대에게 홈런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확실히 신기한 기록이긴 하다.[3] 그윈은 매덕스에게는 극강이었으나 랜디 존슨에게는 굉장히 약했다(…). 그윈과 존슨의 통산 상대기록은 18타수 2안타 0볼넷 '''5삼진''' 타/출/장 .111 .111 .167 OPS .278인데, 이는 토니 그윈 본인의 통산 타격성적은 물론이고 랜디 존슨의 좌타자 상태 통산 성적인 피안타율/피출루율/피장타율 .205 .276 .330 피OPS .606에도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다만 고작 18타석밖에 안 되는 표본이라 진지하게 따지기엔 너무 적긴 하다. 매덕스, 스몰츠, 글래빈 상대의 타석수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으니.. [4] 규정타석을 못 채운 시즌까지 포함하면 19년 연속이다. 이 분야 최고 기록은 데드볼 시대의 야구황제 타이 콥의 19년 연속 3할이다. 타이 콥은 규정타석을 못 채운 시즌까지 포함하면 23년 연속 3할을 기록했다.[5] 메이저리그 파업으로 인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가 4할에 거의 근접했을 때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394로 시즌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시즌을 끝까지 치렀으면 테드 윌리엄스 이후 4할 타자가 나왔을지도. 시즌이 마감하기 전 마지막 1달간 .450의 타율을 기록하며 한껏 페이스를 올리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6] 도루자는 125개로 통산 도루성공률은 0.718[7] 토니 그윈은 타율-출루율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BB/K가 저렇게 높은 것은 삼진을 거의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1997년에는 우투수를 상대로는 단 1개의 삼진을 당했다. 그 삼진을 잡아낸 선수가 바로 대런 드라이포트이다.[8] 단, 그윈이 야구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에 클리퍼스는 가장 마지막 라운드에서(10라운드 210순위) 그윈을 지명했으며 사실상 의례적 절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즘의 NBA 드래프트는 2라운드까지만 진행되지만 80년대에는 10라운드까지도 있었다. 물론 1,2 라운드 외의 지명선수들이 NBA에서 실제로 뛴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시카고 불스마이클 조던을 지명했던 1984년 드래프트 당시 10라운드에서 올림픽 육상 100m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칼 루이스를 지명했던 바 있다. 물론 칼 루이스 역시 당연하게도 불스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