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후

 


'''채(蔡)나라 18대 국군
영후
靈侯
'''
''''''
희(姬)
''''''
채(蔡)
''''''
반(般)
'''아버지'''
채경후(蔡景侯) 희고(姬固)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531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542년 ~ 기원전 531년
1. 개요
2. 생애
2.1. 한 여자를 두고 패륜이 일어나다
2.2. 즉위 후
2.3. 초 영왕에게 죽다
2.4. 채 영후의 사후 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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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채나라의 제18대 군주. 채경후의 아들. 채평후의 형.

2. 생애



2.1. 한 여자를 두고 패륜이 일어나다


아버지가 채 경후가 초나라에서 세자 반 즉 채 영후의 아내를 맞았는데, 그 며느리와 채 경후가 간통해버렸다. 이에 빡친 세자 반은 아버지 채 경후를 죽여버리고 그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채 영후다.

2.2. 즉위 후


채 영후 원년(기원전 542년), 아버지 채 영후의 시신을 안장했다.
채 영후 2년(기원전 541년) 정월, 채영후는 공자 귀생을 노(魯)나라의 숙손표(叔孫豹), 진(晉)나라조무(趙武), 제(齊)나라의 국약(國弱), 송(宋)나라의 상술(向戌), 진(陳)나라의 공자 초, 정나라의 한호 등과 옛 괵나라 땅에서 회맹했다. 그 이유는 송나라에서 맺은 우호를 다지기 위해서이다.
채 영후 5년(기원전 538년) 여름, 채 영후는 초(楚)나라, 진(陳)나라, 정나라와 신 땅에서 회맹했다. 겨울에 오나라를 치는데 참여해 제나라의 간신 경봉을 처치했다.
채 영후 6년(기원전 538년) 겨울, 채 영후는 다시 초나라, 진나라, 월나라와 함께 오나라를 쳤다.

2.3. 초 영왕에게 죽다


채 영후 12년(기원전 531년), 초영왕은 채 영후가 아버지 채 경후를 죽인 죄를 묻기 위해 잔치에 초대해 그가 꽐라가 된 틈을 타 숨겨 놓은 무사들에게 처치해버리게 했다. 그리고는 초 영왕이 공자 기질[1]을 불러 채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쳐서 멸한 뒤 공자 기질이 채공[2]이 되어 채나라를 관리하게 했다.

2.4. 채 영후의 사후 복국


3년 뒤 채공 공자 기질이 초 영왕을 죽이고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초평왕이다. 초 평왕은 채 영후의 아우인 공자 려(廬)를 채나라의 군주로 세우니 그가 바로 채 평후다.
[1] 훗날의 초평왕.[2] 채현의 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