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공주

 

''''''
<colbgcolor=white,#2d2f34> 천명부인(天明夫人)
'''시호'''
문정태후(文貞太后) / 문진태후(文眞太后)
'''별칭'''
천명공주(天明公主)
'''본관'''
경주 김씨(慶州 金氏)
'''성씨'''
김(金)
'''이름'''
천명(天明)
'''부왕'''
진평왕
'''모후'''
불명[1]
'''자매'''
선덕여왕
'''배우자'''
김용수
'''아들'''
태종 무열왕
'''생몰연도'''
580년대?[2] ~ ?
1. 개요
2. 화랑세기 내용
3. 대중 매체에서의 천명공주
3.1. 선덕여왕(드라마)의 등장인물
3.2. 서동요(드라마)의 천명공주
3.3. 대왕의 꿈의 천명공주


1. 개요


신라의 공주이자 추존 왕후. 진평왕의 딸이며 태종 무열왕의 어머니다. 선덕여왕의 자매이기도 한데, 누가 언니인지는 역사서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선덕여왕이 장녀로 나오지만,[3] 삼국유사에서는 출생 순서의 기록 없이 '진평왕의 딸'이라고 기술했으며,[4]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천명공주가 장녀고, 선덕여왕은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차녀로 서술했다.
이에 대해 천명이 언니다, 아니다 덕만이 언니다, 동복자매가 아니고 이복자매다 등등 각종 추론이 난무한다(...). 필사본 화랑세기는 그 진위성에 논란이 많기 때문에 보통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라 선덕여왕이 진평왕의 장녀이며 천명공주는 그녀의 여동생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만 천명공주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천명공주의 어머니가 후궁이었다면 출생 순서로는 천명공주가 장녀지만 법통상으로는 진평왕의 적녀로 왕위 계승권에서 우위를 가진 선덕여왕이 장녀로 인정받았을 수도 있다. 천명공주를 진평왕의 서녀로 보면, 천명공주의 유일한 적자인 태종 무열왕이 왕위 계승에서 이모한테 치이고 당이모한테도 치인 것 또한 설명된다. 그리고 선덕여왕이 장녀고 선화공주가 3녀라 치더라도 천명공주가 차녀라는 보장은 없다. 4녀 이하의 딸일 가능성도 있다.[5].
본인의 당숙이자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과 혼인하여 태종 무열왕을 낳았다. 아들 태종 무열왕이 즉위한 뒤 태후로 추봉되었다. 시호는 문정태후(文貞太后). 또는 문진(文眞)태후.[7].
정사에서는 '천명부인'으로 나오나, 화랑세기에 나오는 명칭인 '천명공주'가 더 유명하다. 다만 삼국유사의 선화'공주'도 그렇듯 화랑세기가 아니라도 신라에서 왕녀는 모두 공주라고 붙였으므로 천명공주라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천명부인' 칭호는 아들인 태종 무열왕이 즉위한 후 추봉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사에서는 태종 무열왕의 가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단 한 줄 등장하지만 선덕여왕의 자매라는 점에서 대중적 인지도는 나름 높은 편이다. 심지어 태종 무열왕천명공주의 아들이자 선덕여왕의 조카라는 인식이 김용춘의 아들이자 진지왕의 손자라는 인식보다 일반적으로 더 강할 정도.
특히 신라 중기를 다루는 사극에서는 거의 다 나온다. 보통 이 경우 화랑세기의 내용에 따라 천명이 장녀, 덕만이 차녀로 등장하고 3녀 선화의 존재는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진다.[8] 그리고, 정사, 야사, 민간 설화 그 어디에도 쌍둥이라는 말은 없다![9]

2. 화랑세기 내용


화랑세기에서는 천명공주가 장녀, 덕만공주(선덕여왕)이 차녀로 나온다. 진평왕마야부인 사이의 적장녀로서, 덕만공주의 친언니이며 승만부인이 낳은 늦둥이 왕자의 배다른 누나.
원래 용춘을 사모했는데 어머니에게 "용숙(龍叔)만한 남자가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용춘의 형인 용수[10]를 사랑한다고 착각해서(...) 용수와 결혼시켰다고 한다.
천명공주는 결혼한 이후에도 용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진평왕을 졸라 용춘의 직위를 올려주었다. 대인배 용수는 아내를 용춘에게 주려고 했으나 용춘이 거부했고, 그 뒤에도 늘 아프다는 핑계로 용춘이 천명공주를 모시라고 했다. 결국 용수가 죽은 뒤 천명공주는 용춘과 결혼했다.
이 때 성골 남자가 없어서 진평왕이 용춘을 왕위에 올리려고 천명공주에게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여 왕위를 포기했다. 그러나 훗날 그녀의 여동생이 아버지 진평왕을 졸라 용춘을 가로채고 왕으로 즉위한다. 후에 용춘은 선덕여왕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다는 것을 핑계로 물러나기를 청하고 선덕여왕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천명공주와 재결합한 뒤 평생 안락하게 살았다. 용춘과 만년까지 함께했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는 화랑세기 필사본의 이야기라 신뢰하기는 어렵다. 화랑세기에는 용수가 용춘의 형이라고 나오지만,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동일인물로 나온다.

3. 대중 매체에서의 천명공주



3.1. 선덕여왕(드라마)의 등장인물


천명공주(선덕여왕) 문서로.

3.2. 서동요(드라마)의 천명공주


배우 김수로의 아내인 이경화가 연기했다. 진평왕의 첫째 딸이자 선화공주의 언니로 등장한다. 선화공주를 다음 왕위를 사이에 둔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어 항상 견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선화공주와 서동 간의 스캔들이 터지자 뒤에서 귀족들을 조종하여 선화공주를 이적행위자로 몰아 폐위하고 내쫓는 역할을 주도한다. 이후 선화공주는 서동을 찾아 백제로 건너가 살았고, 후에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눈물에 못 이겨 선화를 다시 복권시켜 신라로 돌아오게 하지만...선화가 신라로 돌아온 후 서동이 백제 무왕이 되고, 나제 동맹을 다시 추신함과 동시에 선화공주에게 정식으로 청혼하려고 하자 선화의 권력이 더 커지는 것을 우려, 신라와의 동맹으로 세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 백제 귀족과 몰래 밀약을 맺어 이를 방해한다. 그러나 실패하게 되고, 결국 선화의 혼인을 지켜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냉혈한 모습으로 등장하나 혼인을 앞둔 선화가 기뻐하는 것을 지켜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보이는데 인간적인 정도 아주 없지는 않았던 듯.

3.3. 대왕의 꿈의 천명공주


담당 배우는 조경숙. 덕만공주의 언니이자, 김용춘의 아내, 그리고 김춘추의 어머니이다. 항상 남편인 용춘과 더불어 춘추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노심초사한다. 현재 며느리인 문희와 묘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중.
[1] 현재까지 후보군은 진평왕의 원비 마야부인과 계비 승만부인이지만 후궁 소생의 딸일 수도 있다.[2] 아버지 진평왕의 추정 생년과 아들 태종 무열왕의 생년에서 역산했다.[3] 단, 삼국사기 어디에서도 천명공주가 차녀라고 한 적은 없다. 삼국사기에는 천명공주의 어머니에 대해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선덕여왕이 장녀'라는 서술이 적장녀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4] 반면 서동 설화에 등장하는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3녀'라고 명확히 나온다.[5] 다만 선화공주의 경우 실재여부 논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평왕의 3녀라는 것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진평왕에게는 딸이 2명만 있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차녀가 된다.[6]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眞을 쓴다.[7] 현재까지 문정(文貞)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3년 1월에 공개된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삼국유사에는 문진(文眞)으로 표기되어 있다. 기사 다만 재위했던 왕 이외에, 시호에 眞을 사용한 예가 없다는 주장도 있어,[6] 이번에 공개된 판본과 관련한 학계의 앞으로의 연구결과가 주목된다. 일단 일반적으로는 '문정태후'가 시호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8] 물론 문학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덕만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는 과정에는 '야심만만한 진골 남자들' 외에도 '자신보다 계승권이 높은 손윗 자매'라는 장애물(?)이 있어야 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다. 그리고 선화의 존재가 말소되는 이유는 아마 족보가 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형제간에도 칼을 겨누던 시대라지만 장인사위가, 처형제부가, 이모조카가 전쟁을 하는 건 좀 뭐하니(...).[9] 물론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서는 "선덕왕은 진평왕의 장녀", "천명부인은 진평왕의 딸"이라는 것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제 쌍둥이였음에도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민간 설화에도 없는 걸 봐서 쌍둥이는 아닌 듯...[10] 당시 용수는 누구의 소생인지 밝혀지지 않은 천화공주와 결혼해서 유부남이었는데, 천명공주와 혼인하면서 헤어졌고, 이 천화공주는 훗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