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인
체첸어: Нохчийчоь(지역명)/Нохчий(민족명)
러시아어: Чечня́(지역명)/Чеченцы(민족명)
영어: Chechnya(지역명)/Chechen(민족명)
1. 개요
북동캅카스의 한 지역이자 이 지역에 전통적으로 거주해온 민족을 이르는 말.
이 민족이 전통적으로 거주해왔던 지역은 대부분 러시아의 영토인 체첸 공화국에 속해 있으며, 체첸 사태로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제국 땅이 된 이후부터 독립을 추구하여 서로 갈등해왔지만, 현재 체첸인들은 분쟁에 많이 지쳐있어 오히려 이젠 아무 국가든 좋으니 그냥 잘 살고 싶다는 여론이 높다고 한다. #
대개 러시아 밖에서는 체첸 지역을 위험한 곳으로 간주하는 편인데 론리플래닛 러시아편에서도 체첸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는 식으로 짧게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고, 대한민국 외교부도 다른 러시아 지역(경보 없음)과 달리 3단계 철수권고로 지정해두고 있다.
그나마 2012년경부터 푸틴이 특별히 신경써서 초토화된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수도 그로즈니에 화려한 야경과 고층빌딩들이 건설되고 치안도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 올림픽이 개최된 소치 등과 멀지 않으므로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옆동네인 인구셰티야 공화국과는 같은 민족과 문화를 공유하기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체첸인
체첸인의 자칭은 노흐치(Нохчий)이며, 체첸어를 사용한다. 대외적으로 불리는 '체첸'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러시아어로, 카바르다어 'Shashan'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 용어는 아랍어 문헌에서 처음 발견된다.
전체 인구는 200만인데 체첸 공화국을 포함한 러시아 내에 140만 명[1] 이 살고 나머지 60만 명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이슬람화되기 이전의 체첸인들은 자신의 역사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고학상의 유적으로 오래전부터 동북캅카스에 살았던 것이 증명되었다. 오늘날의 체첸과 인구시 두 민족은 모두 북동캅카스의 나흐족이 선조이며, 아랍어 사료에는 서기 8세기부터 등장하고 러시아 사료에서는 체첸이라는 이름으로 1692년부터 등장한다.
8세기경 노흐치족은 튀르크계 유목민 하자르와 이란계 유목민 알란족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하자르인과 알란인들이 몰락한 이후에는 이웃 조지아 왕국의 영향을 받아 동방 정교회가 널리 전파되었다. 10세기 무렵 셀주크 제국이 카프카스로 지배영역을 넓히면서 튀르크족이 정착하는 듯 했으나 조지아 왕국이 쿠만족 용병들을 고용해 셀주크 튀르크족을 카프카스에서 축출해내면서 토속 신앙에 기독교, 이슬람이 혼합된 문화를 가지며 살게 되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 시절에는 조지아 왕국이 무너지는 와중에 노흐치족 전체가 전멸할 뻔 했으며, 이때 민족 전체가 씨가 마를 뻔 했던 것을 계기로 고도로 군사화된 사회로 변화했다.
대부분의 체첸인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오스만 투르크와 다게스탄을 통해서 전해진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다. 그러나 체첸인들은 이슬람 율법보다는 녹찰라라고 부르는 체첸 씨족의 자체 율법을 따르는 편이다. 18세기 러시아가 캅카스 지역을 지배하려 하자 동부의 나흐족은 격렬히 저항한 반면, 서부 나흐족은 러시아에 굴복하여 러시아인들은 이 두 집단을 각각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두 집단의 거주지의 이름을 따서 동부의 나흐족을 '체첸', 서부의 나흐족을 '인구시'라 구별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체첸인들은 씨족 율법 녹찰라에 입각해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상무정신, 씨족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다. 러시아 제국에 대한 체첸의 저항은 무려 50년 동안 이어져 1861년에야 진압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체첸인들이 죽거나 난민이 되어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하면서 체첸인 인구가 급갑했다. 또한 씨족 구성원이 살해당하거나 모욕을 당하며 같은 씨족 구성원이 대신 피의 복수를 행하는 관습이 있는데[2] 피의 복수가 얽히고 설켜서 씨족 하나가 전멸당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고 한다. 1917년에도 피의 복수로 몇 개 마을이 전멸하는 사례가 있었다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간략하게나마 체첸인(그리고 같은 혈통인 잉구시인)의 사회 모습을 볼 수 있다. 험한 자연환경의 영향인지 사내 아이들에게 총기 조립&사격, 운전을 조기교육 시키는 모습도 보이고, 부족 단위로 돌아가는 사회상(중재 위원회를 통해 부족 간의 복수를 막는 모습, 사병을 가지고 러시아 정부에 협력하여 치안 임무를 맡는 가문 등)을 볼 수 있다.
체첸인들을 상징하는 동물은 늑대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늑대'에 비유하며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1991년 조하르 두다예프가 독립선언한 체첸 공화국의 국기는 달빛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외로운 늑대가 그려져있다. 또한 체첸 국가에는 "우리는 밤에 태어나, 어머니 늑대가 길러줬다."는 구절이 첫 번째로 나온다. 왜 모든 동물 중에서 늑대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자세한 설명을 남겼다.
이들의 대표적인 요리로는 힝갈라시(체첸어로는 Хингалаш)[3] 라는 전통요리가 있다.# 캅카스 등 서아시아 북부 일대, 러시아에서도 이 음식을 먹기도 한다고.힘의 상징은 사자와 독수리지만,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공격한다. 늑대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힘의 부족함을 대담성과 용기, 지혜로 극복한다. 싸움에서 패하면, 두려움에 떨지 않고 고통에 움츠러들지 않은 채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3. 관련 문서
- 체첸어
- 인구시 공화국: 언어와 민족이 유사한데 실제로 체첸인과 인구시인들도 서로를 형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 체첸 공화국: 러시아 내의 자치공화국으로 친러 정부가 들어서 있다.
-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였던 미승인국으로 체첸의 전통적인 수니파 계열 분리주의자들이 죄다 중동 쪽 이슬람 극단주의에 물든 인간들로 물갈이 됨으로써 사실상 소멸하였으며 국명도 캅카스 에미레이트로 바뀌었다. 체첸 독립을 중시하는 인사들은 현재 항복했거나 항복하지 않고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image]
우크라이나 내전이 발발하자 반러시아 성향의 이츠케리아 체첸 출신자들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편에서서 참전하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친러시아 성향의 체첸인들은 러시아군에 참전하였다.
우크라이나 내전이 발발하자 반러시아 성향의 이츠케리아 체첸 출신자들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편에서서 참전하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친러시아 성향의 체첸인들은 러시아군에 참전하였다.
- 체첸 사태: 러시아와 이츠케리아 체첸 사이의 전쟁. 러시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였지만 아직도 소규모의 반군들이 캅카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 람잔 카디로프 - 체첸 공화국의 대통령
- 조하르 두다예프 - 구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