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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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0k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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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2.1. 러시아 지배 이전
2.3. 현대
3. 지리
4. 정치
5. 인구
6. 종교
7. 언어
8. 기타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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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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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어
Нохчийн Республика (Нохчийчоь)
노흐친 레스푸블리카 (노흐치최)
인구시어
Нохчий мохк (Нохчиче)
노흐치 모흐크 (노흐치체)
러시아어
Чече́н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Чечня́)
체첸스카야 레스푸블리카 (체치냐)
아바르어
Чачан Республика (Чачан)
차찬 레스푸블리카 (차찬)
오세트어
Цӕцӕны Республикӕ (Цӕцӕн)
차차너 레스푸블리카 (차찬)
다르기어
Мичихичла Республика (Мичихич)
미치히칠라 레스푸블리카 (미치히치)
쿠미크어
Мычыгъыш Жумгьурият (Мычыгъыш)
므츠그시 줌후리야트 (므츠그시)
조지아어
ჩეჩნეთის რესპუბლიკა (ჩეჩნეთი)
체치네티스 레스푸블리카 (체치네티)
영어
Chechen Republic (Chechnya)
체친 리퍼블릭 (체치니아)

러시아북캅카스에 위치한 체첸인 주도의 자치공화국.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1991년 성립되었다. 수도는 그로즈니이다.

2. 역사



2.1. 러시아 지배 이전


이슬람화 되기 이전의 체첸인들은 자신의 역사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고학상의 유적으로 오래전부터 동북캅카스에 살았던 것이 증명되었다. 체첸인과 인구시인의 선조라고 여겨지는 나흐 민족에 대한 기록은 7세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16세기 말엽부터 동쪽 다게스탄으로부터 이슬람이 유입되어 점차 퍼져나갔다. 한편, 같은 무렵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정치적 통일을 추진하며 국가 형성을 행하던 러시아는 17세기 말까지 전시베리아를 병합하였고, 18세기에는 남하를 개시, 발트해 연안, 흑해 연안, 카자흐 초원, 만주 동북부 등을 점차 병합했다. 또한 캅카스 지배의 거점으로서 북캅카스 중앙부의 테레크 주의 강변의 블라디캅카스(현재의 북오세티야 공화국)을 건설, 테레크 주 동쪽에 사는 체첸-인구시인의 정복을 추진했다. 이처럼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두에 걸쳐, 러시아 제국에 의해 일어난 캅카스의 지배를 둘러싼 전쟁사를 캅카스 전쟁이라 부른다.

2.2. 제정 러시아


러시아는 1801년 이란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동조지아를 병합, 남캅카스까지 세력을 뻗었다. 이리하여 1828년까지 오스만 제국령의 아자리야(조지아 남서부 지역) 지역을 제외한 캅카스의 거의 전역이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왔지만, 그중에서 체첸인을 필두로 한 다게스탄과 체첸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에 격렬히 저항했다. 이들은 이맘 샤밀의 지휘 하에 1859년까지 격렬하게 항쟁하지만 결국 굴복. 단 잔당들은 몇 년간 더 저항했으며 이후에도 러시아가 혼란스러워지면 바로 봉기를 일으켰다.
체첸인은 18세기 전반까지 이슬람 수니파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어, 이슬람신비주의(수피즘)의 지도자들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체첸이나 다게스탄 민족들은 이러한 이슬람신비주의교단의 조직력과 결속에 의지하여 러시아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왔다.

2.3. 현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내전에서 승리한 볼셰비키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하였다. 1918년 소련은 독일 제국한테 제1차 세계 대전 항복을 하면서(다시말하지만 소련이 독일한테 항복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1918년 3월 캅카스 일대는 동맹국오스만 제국의 관할로 넘어간다. 이 때 체첸 역시 오스만 제국한테 넘어갔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동맹국 전반의 패전으로 마무리되면서, 체첸 일대는 권력 공백 상태를 맞게 됐다. 오스만 제국이 캅카스 일대의 지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공백 상태를 맞은 체첸은 적백내전에서 백군에 가담했다. 그러나 1921년 적백내전에서 적군이 승리함에 따라 체첸은 결국 소련 소속으로 바뀌었다.
소련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민족자치 방침에 따라 1924년 체첸 자치주, 인구시 자치주를 설립, 1934년에는 병합하여 체첸-인구시 자치주로, 1936년에는 체첸-인구시 자치공화국으로 승격하였다.
그 후 정권을 쥔 이오시프 스탈린은 민족공화국에 의한 연방제를 전제로 한 레닌주의 대신, 민족자치공화국을 중앙정부의 집권적 통제 하에 두는 스탈린주의를 취했기 때문에, 민족자치의 실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몇 차례 체첸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지만 이때마다 스탈린은 일단 달래서 적당히 봉기를 수습한 이후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봉기 지휘부를 제거하는 수법으로 체첸 지역을 통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는 소련에 침투한 나치 독일군의 일부가 북서캅카스에 도달하였는데, 스탈린 정권은 체첸인을 포함한 반러시아적 민족이 독일군과 연합하여 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독소전이 발발할 무렵 일부 체첸인들이 무장 게릴라 활동에 돌입하기도 했다. 독일군 침투 후 1944년 2월, 스탈린은 체첸-인구시인의 대독일 협력을 의심하여, 체첸-인구시인 50만 명을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로 추방했다.
1953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정권을 취득, 1956년 스탈린 비판을 개시하였다. 스탈린이 행한 체첸-인구시인 민족 추방도 비판 대상이 되어 1957년 두 민족은 체첸으로의 복귀와 체첸-인구시 자치공화국의 재건을 인정받았다. 1957년 1월 9일, 체첸-인구시 ASSR의 원복
소련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 연방과의 대대적인 분쟁인 체첸 전쟁이 발발하였다. 1991년에는 분리독립주의 성향의 조하르 두다예프(Джохар Дудаев)[1]을 중심으로 미승인국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이 수립되기도 하였다. 제2차 체첸 전쟁의 종전(2000년) 이후인 2003년아흐마트 카디로프(Ахмат Кадыров)[2]가 러시아 연방에 귀속한 현 체첸 공화국의 초대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오늘날의 체첸 공화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종전 이후에도 체첸계 분리주의 세력은 잔존하였다. 이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카우카즈 이슬람 토후국을 표방하기도 하였으나, 지도자들과 대원들 대부분이 러시아군의 토벌로 사살당하고 남은 세력이 해외로 도주하여 2015년 말에 ISIL에 가담하면서 사실상 소멸되었다.

3.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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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카스피해로 둘러싸인 북캅카스 지방에 속하고, 캅카스 산맥의 북쪽 기슭과 평야에 펼쳐져있다. 국토의 동쪽과 북동쪽은 다게스탄 공화국과 면하고, 서쪽은 인구셰티야 공화국과 북오세티야 공화국, 남쪽은 조지아와 접한다. 면적은 17,300km².

4. 정치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선거 때마다 95%를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인다. 현재의 체첸 대통령이 람잔 카디로프고, 그가 푸틴의 최측근임을 고려하면 대략 답이 나올 것이다. 람잔의 아버지이던 아흐마트 카디로프도 친러파였다가[3] 2004년에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다. 이러다보니 람잔과 구 이치케리야 체첸(현 카우카즈 이슬람 토후국) 측은 물과 기름 사이.
하지만 람잔 카디로프가 저지르는 부정부패 및 인권유린은 굉장히 심각한데다 카디로프의 체첸 공화국 정부도 이치케리야 체첸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를 여전히 버리지 않고 시행하며 성차별이 심한데다 성소수자 강제 수용소가 람잔 정권 치하 체첸에서 생겨났으니 말 다했다. 물론 푸틴도 카디로프의 행태가 러시아 정부의 정책을 대놓고 어기는 월권임을 알지만, 복잡한 체첸 문제와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체첸 공화국 안에서 자의로 움직인 러시아 장교를 해고시켰을 정도로 푸틴 역시 그가 선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묵인하는 편이다.[4]
다만 체첸 정부와 체첸인들이 푸틴과 러시아 연방을 지지한다는 것이 러시아인을 좋아한다는 소리까지는 결코 아닌지라(...) 람잔 카디로프가 한 말 중에는 "나는 16살때 러시아인을 처음으로 죽였다(первого русского он убил в 16 лет)." 같은 소리도 있다. 참고로 그 아버지 아흐마트 카디로프가 한 말은 "우리 체첸인은 1명마다 150명의 러시아인들을 죽여야 전쟁이 끝날 것이다!(Каждый чеченец должен убить 150 русских, и тогда война в Чечне прекратится!)"였을 정도로 체첸인들한테서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
그래도 시리아에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 중 전사한 알렉산더 프로코렌코의 이름을 딴 거리가 수도 그로즈니에 생긴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으니 러시아인에 대한 감정은 다소 복잡한 듯.
2020년 개헌 국민투표에서 개헌 찬성율이 97%로 가장 높은 지역이다.

5. 인구


1989년 행해진 체첸/잉구시 공화국의 통계에서는, 체첸인이 956,879명, 잉구시인이 237,438명, 러시아인이 269,000명을 차지했다. 그 후 서부가 잉구시 공화국으로 분립했기 때문에 잉구시인 인구가 대폭으로 감소했고, 내전과 사회 불안으로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국내에서 퇴거했다. 2010년 체첸 공화국에 남은 러시아인은 약 24,000명이다.

6. 종교


대부분의 체첸인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동다게스탄에서 전해진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다. 대부분이 테레크 카자크군이었던 체첸 내부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다. 수도 그로즈니에는 현재 러시아 정교회 교회 하나가 남아있다.
과거 체첸 분리주의자들 중 와하브파에 물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영향으로 한동안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성행한 적이 있었으나, 람잔 카디로프가 체첸의 전통 이슬람으로의 회귀라는 모토를 내세워서 이를 척결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척결된것은 전혀 아니라서 체첸 자치정부는 체첸식 샤리아 율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여 비판을 받는다. 특히 2015년에 샤를리 엡도에서 무함마드 풍자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카디로프 수반과 자치정부가 지원했다.# 거기에다 성차별도 심한데 아무리 체첸 고유의 수피즘이 중동 같은 동네의 정통적인 꼴통 이슬람과는 다르다고는 하지만 샤리아라는 이름이 어디 안 가듯이 여성들의 복장 규장 및 단속은 물론이고 복장이 불량하거나 히잡 미착용자는 온갖 불이익을 가하거나 정부에서 비호한다. 더 심한 것은 IS 반군을 막겠다며 이혼한 부부를 강제로 재결합시키는 프로그램까지 시행하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그나마 체첸은 여성들의 숨이 아예 턱 막힐 정도인 중동보다는 낫다.[5]
사진(Фотосушка в Грозном (20 новых фото + репортаж) ) 수도인 그로즈니 기준이긴 하지만 중동과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히잡 관련해서. 중동 여성들처럼 꽁꽁 싸매기도 하지만 저렇게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정도(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보이도록 뒤로 묶거나, 정수리 부분만 가리고 머리카락의 대부분을 드러내는 수준)로 때우는 모습도 눈에 띈다.
러시아의 다른 지역 및 이슬람권처럼 체첸에서도 성소수자의 입지가 나쁘다. 2017년에는 카디로프의 주도하에 게이 수용소라는 곳을 설치하고 강제구금했다는 기사가 올라와 서방권 및 러시아 성소수자들이 항의했다.# 2017년 4월에는 동성애 남성 100여 명이 체포되고 최소 3명이 살해되었다.# 2019년초부터 체첸 공화국은 성소수자 탄압을 재개하면서 2명이 고문으로 숨지고 40여 명이 구금되었다.#
그리고 2018년 1월 9일에 체첸에서 현지인권운동가가 마약소지혐의로 체포되자 서방측은 석방을 촉구했다.#

7. 언어


체첸의 공용어는 북동캅카스어족에 속하는 체첸어이다. 또한 러시아어도 사용된다.

8. 기타


세계전쟁에선 완전한 독립국으로 나온다.
비공식적으로 120년 넘게 사신 코쿠 이스탐불로바 할머니가 체첸 출신이다.

9. 관련 문서



[1] 체첸어 표기는 '두다게란 조우하르(ДудагӀеран ЖовхӀар)'.[2] 체첸어 표기는 '카디르게란 아흐마드해지(КъадиргӀеран Ахьмад-Хьаьж)'.[3] 원래는 반러파였으나 1999년 체첸의 다게스탄 침공을 계기로 전향했다.[4] 무엇보다 3차 체첸 전쟁을 우려하는것도 있다. 2번에 걸친 체첸 전쟁만 해도 체첸인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러시아군도 전사자가 무려 1만명이 넘게 나왔을 정도로 피해가 상당했다. 푸틴과 러시아 정부도 카디로프의 행동이 월권행위이지만 그가 도를 넘어설 정도가 아닌 이상 함부로 처벌하면 반란이 일어날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체첸에서는 반러 감정과 분리주의가 그대로 있기에 반란이 언제든지 일어나고도 남을수 있다.[5] 러시아는 세속국가에다 샤밀 바샤에프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시달렸던 나머지 이슬람 극단주의에 치를 떠는 정도가 미국과 유럽 못지 않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으려고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강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중동식이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