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레스티노 5세
1. 생애
본명은 피에트로(Pietro), 즉 '''베드로'''이며, 1294년 7월 5일 교황으로 즉위, 1294년 12월 13일 자진 사임하여 161일 동안 재임하였다. 1215년 나폴리 왕국령의 이세르니아(Isernia)에서 태어났으며, 베네딕토회 소속 수도자. 평범한 은수자(隱修者)로 독실한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는 술모나 근교의 모로네(Morrone) 산중에서 은거하는 삶을 살았는데, 당시 로마에서 오르시니 가문과 콜론나 가문간 심각한 갈등으로 27개월 동안이나 교황이 선출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의 압력, 나폴리 왕 카를로 2세(1285~1309)의 영향으로 별다른 정치적 배후가 없는 피에트로가 교황으로 선택되었다. 당시 피에트로는 이미 85살의 고령이었다.[1]
하필 첼레스티노 5세가 선택된 이유도 어이가 없는데, 라티노 추기경에게 '얼른 교황을 뽑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라티노 추기경은 다른 추기경들에게 명망 있는 은수사 피에트로가 자기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말하며 피에트로에게 표를 던졌다. 그 뒤 점차 피에트로에게 다른 추기경들이 표를 던져 결국 만장일치로 표가 모였다. 늙은 은수자가 순수한 마음으로 고위 성직자에게 독촉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졸지에 자기가 교황이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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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을 지닌 교황, 즉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위인에 대한 민중의 갈망에 나폴리 왕의 정치적 야심이 결합되어 피에트로는 교황직에 오를 수 있었지만, 80살이 되도록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수도했을 뿐 본격적인 교육을 받거나 학식을 쌓은 적이 없어, 당시 교회의 공식언어인 라틴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고, 우르바노 2세 이후 조직된 정교한 교회 관료제도를 통제하거나 다스릴 줄도 몰랐다.[2]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판단력이 결여된 교황은 노회한 추기경들의 말에 넘어가 우왕좌왕해 교황청의 노선은 혼란스러워졌다. 게다가 페루자에서 교황이 선출된 뒤, 교황이 로마로 가려 하자 정치적 후원자가 없는 교황의 후견인을 자처한 카를로 2세가 교황의 로마 정주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정치적으로는 카를로 2세의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었다. 은수사 시절 수도회의 장상으로 보여준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거대한 조직의 장으로서는 무능하고 지나치게 순진했다.
그러나 첼레스티노 5세는 그러한 자신의 단점을 잘 알았으며 교황이라는 직함에 대해서도 욕심이 없었다. 오히려 교황으로서의 직위가 고통이었으므로, 다른 추기경들에게 은밀히 교황좌에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으나, 그들은 이에 반대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는 당시의 저명한 교회법학자이자 추기경이며, 자신의 후임자가 될 베네데토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베네데토는 이미 선례가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는 교황직을 사임할 것이며, 사임하는 즉시 기존의 교황 선거에 대한 규정이 적용됨을 선언하는 칙서를 발표하고 1294년 12월 13일 즉위 5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사임하였다.
후임자로는 첼레스티노 5세가 의견을 구하기도 했던 베네데토 추기경이 당선되어, 보니파시오 8세라는 이름으로 즉위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는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으나 후임자 보니파시오 8세 때문에 그러지 못하였다. 보니파시오는 이 순진한 전임자가 다른 세력의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했다. 첼레스티노가 보니파시오의 눈을 피해 그리스로 달아나려던 찰나에 체포되어 1년 반 가까이 푸모네 성의 너비 4 m2짜리 좁은 독방에 감금되었고, 그곳에서 1296년 5월 19일 선종했다.[3]
첼레스티노 5세가 선종하고 20년 가까이 지난 뒤, 아비뇽 유수를 시작한 교황 클레멘스 5세는 1313년 첼레스티노 5세를 시성했다.
2. 탄생 800주년 기념
2009년, 첼레스티노 5세의 탄생 800주년을 기념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동년 8월 28일부터 다음해 8월 29일까지를 '첼레스티노의 해'로 지정했다. 같은 해, 라퀼라 지역에 지진이 발생했지만 첼레스티노 5세의 유해는 기적적으로 무사했다. 2010년 7월 4일, 첼레스티노 5세의 무덤이 있는 술모나 대성당을 찾은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팔리움을 첼레스티노 5세의 유리관 위에 올리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사실 사퇴하거나 사퇴당한 교황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베네딕토 16세 이전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사임한 교황은 첼레스티노 5세가 유일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첼레스티노 5세의 묘소에 참배할 때에도 사람이 사람인지라 '혹시..?'라며 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