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회
[image]
[image]
베네딕토회 수사(남자 수도자)들.
[image]
베네딕토회 수녀(여자 수도자)들.
Ordo Sancti Benedicti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가 쓴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기독교의 수도회. 약칭 OSB. 사실 정확한 한국어 명칭은 베네딕'도'가 들어간다. 국내 한정으로 '베네딕토'를 한자로 음차하여 '분도'(芬道)라고도 하기 때문에, 베네딕토회를 '분도회'라고 하기도 한다. 연합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이 수도회는 정주 서원을 한다. 그리고 수도승이라고 불린다. 여자는 수녀승. 그러나 활동수녀회의 경우 베네딕토 규칙서를 사용하더라도 수녀승이 아닌 수녀라고 불린다. 기본적으로 베네딕토회는 정주와 봉쇄가 기본이지만 연합회의 성격에 따라 변화된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왜관수도원과 툿찡수도원이 속한 선교 베네딕토회라고 불리는 오틸리아 연합회가 그러하다. 올리베따노라고 불리우는 몬떼올리베또 성 마리아 연합회에 속한 수도원들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원래 성 베네딕토는 수도회를 따로 세운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고, "그냥 후세 수도자들은 이런 것들은 좀 지켜줬음 좋겠다."는 정도로 베네딕토 규칙서를 작성했다. 따라서 예수회나 프란치스코회 등 다른 수도회들과는 달리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아니라 여러 개별 수도원들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물론 이 개별 수도원들이 묶인 베네딕토회의 연합회가 이탈리아 로마에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위스 연방정부 같은 느낌. 베네딕토 규칙서만 따르면 베네딕토회라고 칭하는 수준의 아주 느슨한 구조라, 성공회에도 베네딕토회가 있다. 물론 연합회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
중세 서방교회에서 베네딕토회가 수도회의 모범이 되면서, 베네딕토회는 아니어도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들도 생겼다. 시토회[1] , 트라피스트회 등이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긴 해도 베네딕토회는 아닌' 수도회로서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아울러 경상북도 칠곡군의 왜관 대수도원장(아빠스 Abbas/ 영 Abbot/ 독 Abt)은 한국 가톨릭의 유일한 자치수도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그밖에 분도출판사 본사와 서울 분원이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지만, 의외로 인지도가 낮아 장충동에 수도원(분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이 수도회의 이름을 딴 술도 있다. 항목 참조.
한국전쟁 중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싣고 남쪽으로 내려온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제너드 라루 선장은, 전쟁 후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고, '마리노'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마리노 수사님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2001년 선종했다. 선종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마리노 수사님이 지내던 미국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경영난으로 폐쇄되려는 것을 한국 왜관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복구했다. 이 이야기는 소설가 공지영 마리아의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모티브 및 소재가 되기도 했다.[2]
[image]
경상북도 칠곡군의 오틸리아 성 베네딕도회 성 마오로-쁠라치도 대수도원 전경.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먼저 세계 선교(특히 동아시아)를 위해 1884년 독일 보이론(Beuron)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던 안드레아스 암라인(Andreas Amrhein) 신부에 의해 독일에서 창설된 성 베네딕도 오틸리아 연합회가 경성부 백동이라고 불리던 혜화동(현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는 숭신학교(사범학교), 숭공학교(기술학교) 등을 운영했다. 숭신학교는 2년 만에 폐교했고, 숭공학교가 그래도 10여 년 가까이 존속했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교구 분할 등의 이유로 베네딕도회는 1927년 서울에서 완전히 떠나 덕원-원산 지역으로 향했으며, 함경남도 덕원을 포함한 북부 지방과 간도에서 활동하였으나, 8.15 광복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일부 남쪽으로 옮겨왔다. 북한에 남아있던 수도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덕원에 있던 대수도원과 신학교 건물은 '원산농업대학'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6.25 전쟁 중에 불에 탄 대수도원은 없어졌다.
남자 수도회로는 현재 독일 성 베네딕도 오틸리아 연합회[3] 와 이탈리아 성 베네딕도 올리베따노 연합회[4] 두 곳이 국내에 진출해 있다.
여자 수도회도 두 회가 국내에 진출해 있는데, 하나는 부산광역시에 본원이 있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 수녀회, 하나는 대구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 있는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툿찡 분도회라고도 부름). 2곳 모두 병원을 운영하고, 군종교구 본당에 수도자를 파견한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모토가 있어, 모든 수도자들은 열외 없이 1가지 이상 노동에 종사한다.
여기서는 왜관 수도원의 노동들에 대해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출판사업인 분도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분도출판사의 노동 이외는 그야말로 육체노동이 대부분이다. 왜관 수도원 내부에 농장이 있어 농업을 맡은 수사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으며, 공방에서 미사나 기도에 쓰일 밀랍초, 성물 등을 제작하는 수사님들도 있다. 이처럼 직접 제작한 성물의 경우 가격이 비싸지만 품질은 우수하며, 분도출판사 유통망을 통해 성물도 같이 공급되고 있다.
아울러 왜관 수도원에 가구 공방도 존재하며, 성당에 쓰이는 가구도 직접 제작하며 유통한다. 제대에서부터 긴 의자[5] 등 성당에 쓰이는 모든 가구를 생산 중이다. 이 역시 굉장한 수준을 자랑한다.
또한 정통 독일식 수제 소시지인 분도소시지를 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 번만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다같이 칭송할 수준의 명품 수제 소시지이다. 유래는 1909년 독일에서 오신 독일인 수사님들이, 고향에서 먹던 소시지가 그리워 직접 소시지를 만들던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 전통 독일 방식으로 제작되는 수제이기에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먹어본 사람들에게는 평이 굉장히 좋다. 최근에는 일반 유통사에도 납품하고 있어, 네이버 페이 등지에서 관련 검색어로 검색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명동성당 앞 가톨릭회관 1층에서도 판매하니, 궁금한 사람은 구매해서 먹어보자.
다른 남녀 수도회들처럼, 베네딕토회도 성소자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수도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수도자가 되길 원하는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모임이다. 또한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에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름과 겨울에 '수도생활 체험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도원에 2박 3일~3박 4일간 머무르며 기도, 미사, 성무일도, 노동 등 수도원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남자 수도원이지만 여자 청년들도 참가가 가능하며,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참가할 수 있다. 실제로 개신교 신자들도 꽤 참가하는 듯.
[image]
베네딕토회 수사(남자 수도자)들.
[image]
베네딕토회 수녀(여자 수도자)들.
1. 개요
Ordo Sancti Benedicti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가 쓴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기독교의 수도회. 약칭 OSB. 사실 정확한 한국어 명칭은 베네딕'도'가 들어간다. 국내 한정으로 '베네딕토'를 한자로 음차하여 '분도'(芬道)라고도 하기 때문에, 베네딕토회를 '분도회'라고 하기도 한다. 연합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이 수도회는 정주 서원을 한다. 그리고 수도승이라고 불린다. 여자는 수녀승. 그러나 활동수녀회의 경우 베네딕토 규칙서를 사용하더라도 수녀승이 아닌 수녀라고 불린다. 기본적으로 베네딕토회는 정주와 봉쇄가 기본이지만 연합회의 성격에 따라 변화된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왜관수도원과 툿찡수도원이 속한 선교 베네딕토회라고 불리는 오틸리아 연합회가 그러하다. 올리베따노라고 불리우는 몬떼올리베또 성 마리아 연합회에 속한 수도원들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원래 성 베네딕토는 수도회를 따로 세운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고, "그냥 후세 수도자들은 이런 것들은 좀 지켜줬음 좋겠다."는 정도로 베네딕토 규칙서를 작성했다. 따라서 예수회나 프란치스코회 등 다른 수도회들과는 달리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아니라 여러 개별 수도원들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물론 이 개별 수도원들이 묶인 베네딕토회의 연합회가 이탈리아 로마에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위스 연방정부 같은 느낌. 베네딕토 규칙서만 따르면 베네딕토회라고 칭하는 수준의 아주 느슨한 구조라, 성공회에도 베네딕토회가 있다. 물론 연합회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
중세 서방교회에서 베네딕토회가 수도회의 모범이 되면서, 베네딕토회는 아니어도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들도 생겼다. 시토회[1] , 트라피스트회 등이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긴 해도 베네딕토회는 아닌' 수도회로서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아울러 경상북도 칠곡군의 왜관 대수도원장(아빠스 Abbas/ 영 Abbot/ 독 Abt)은 한국 가톨릭의 유일한 자치수도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그밖에 분도출판사 본사와 서울 분원이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지만, 의외로 인지도가 낮아 장충동에 수도원(분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이 수도회의 이름을 딴 술도 있다. 항목 참조.
한국전쟁 중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싣고 남쪽으로 내려온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제너드 라루 선장은, 전쟁 후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고, '마리노'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마리노 수사님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2001년 선종했다. 선종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마리노 수사님이 지내던 미국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경영난으로 폐쇄되려는 것을 한국 왜관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복구했다. 이 이야기는 소설가 공지영 마리아의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모티브 및 소재가 되기도 했다.[2]
2. 대한민국에서
[image]
경상북도 칠곡군의 오틸리아 성 베네딕도회 성 마오로-쁠라치도 대수도원 전경.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먼저 세계 선교(특히 동아시아)를 위해 1884년 독일 보이론(Beuron)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던 안드레아스 암라인(Andreas Amrhein) 신부에 의해 독일에서 창설된 성 베네딕도 오틸리아 연합회가 경성부 백동이라고 불리던 혜화동(현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는 숭신학교(사범학교), 숭공학교(기술학교) 등을 운영했다. 숭신학교는 2년 만에 폐교했고, 숭공학교가 그래도 10여 년 가까이 존속했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교구 분할 등의 이유로 베네딕도회는 1927년 서울에서 완전히 떠나 덕원-원산 지역으로 향했으며, 함경남도 덕원을 포함한 북부 지방과 간도에서 활동하였으나, 8.15 광복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일부 남쪽으로 옮겨왔다. 북한에 남아있던 수도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덕원에 있던 대수도원과 신학교 건물은 '원산농업대학'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6.25 전쟁 중에 불에 탄 대수도원은 없어졌다.
남자 수도회로는 현재 독일 성 베네딕도 오틸리아 연합회[3] 와 이탈리아 성 베네딕도 올리베따노 연합회[4] 두 곳이 국내에 진출해 있다.
여자 수도회도 두 회가 국내에 진출해 있는데, 하나는 부산광역시에 본원이 있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 수녀회, 하나는 대구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 있는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툿찡 분도회라고도 부름). 2곳 모두 병원을 운영하고, 군종교구 본당에 수도자를 파견한다.
- 오틸리아 성 베네딕도회 왜관 대수도원 - 공지영 마리아 작가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배경이 된 곳이다.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가 소속된 곳이다.
- 까말돌리(카말돌리) 수도회 - 로무알도 성인이 1012년 설립한, 최초의 은수 수도회. 1450년부터 천연재료로 약품, 화장품, 와인, 식료품 등을 만들어 보급하는 사도직을 했다.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를 설정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이 수도회 출신이기도 하다.# 2016년 한국에 진출했으며, 명동성당 앞 가톨릭회관 2층에 전통 약방을 열었다.# 화장품도 좋은 품질이지만 비싸다.
3. 기도하며 일하는 수도 활동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모토가 있어, 모든 수도자들은 열외 없이 1가지 이상 노동에 종사한다.
여기서는 왜관 수도원의 노동들에 대해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출판사업인 분도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분도출판사의 노동 이외는 그야말로 육체노동이 대부분이다. 왜관 수도원 내부에 농장이 있어 농업을 맡은 수사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으며, 공방에서 미사나 기도에 쓰일 밀랍초, 성물 등을 제작하는 수사님들도 있다. 이처럼 직접 제작한 성물의 경우 가격이 비싸지만 품질은 우수하며, 분도출판사 유통망을 통해 성물도 같이 공급되고 있다.
아울러 왜관 수도원에 가구 공방도 존재하며, 성당에 쓰이는 가구도 직접 제작하며 유통한다. 제대에서부터 긴 의자[5] 등 성당에 쓰이는 모든 가구를 생산 중이다. 이 역시 굉장한 수준을 자랑한다.
또한 정통 독일식 수제 소시지인 분도소시지를 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 번만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다같이 칭송할 수준의 명품 수제 소시지이다. 유래는 1909년 독일에서 오신 독일인 수사님들이, 고향에서 먹던 소시지가 그리워 직접 소시지를 만들던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 전통 독일 방식으로 제작되는 수제이기에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먹어본 사람들에게는 평이 굉장히 좋다. 최근에는 일반 유통사에도 납품하고 있어, 네이버 페이 등지에서 관련 검색어로 검색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명동성당 앞 가톨릭회관 1층에서도 판매하니, 궁금한 사람은 구매해서 먹어보자.
2017년 하반기부터 홈페이지가 오픈해 3만원 이상이면 택배로도 배달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수도 규율 아래 생산된 상품들이기에, 대부분 수제 혹은 정통 제조방식대로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값은 굉장히 비싸지만 맛과 품질은 반드시 보장되는 것이 특징이다.4. 수도생활 체험학교
다른 남녀 수도회들처럼, 베네딕토회도 성소자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수도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수도자가 되길 원하는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모임이다. 또한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에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름과 겨울에 '수도생활 체험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도원에 2박 3일~3박 4일간 머무르며 기도, 미사, 성무일도, 노동 등 수도원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남자 수도원이지만 여자 청년들도 참가가 가능하며,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참가할 수 있다. 실제로 개신교 신자들도 꽤 참가하는 듯.
5. 관련 문서
[1] 1,2,3,4,6으로 0부터 9999까지 표기 가능한 숫자를 발명하기도 했다.[2] 주인공 정 요한 신부의 할머니가 흥남 철수 때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 왔으며,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정 신부의 아버지가 태어났다. 훗날 정 요한은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수도사제가 되었고, 미국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복구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3] 경북 칠곡군의 성 마오로-쁠라치도 대수도원<왜관수도원>이 모원이다.[4] 경남 고성군의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대수도원이 모원이다.[5] 교회에 있는 신자들이 앉는 길다란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