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면
1. 개요
경상남도 합천군의 면 적중면, 쌍책면, 율곡면, 대양면과 맞닿아 있다.
2. 역사
지리적으로는 합천 동부에 위치한 지름 4km의 원형 분지(초계분지) 내에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조사 결과 이 분지는 약 5만 년 전 운석 충돌로 형성된 크레이터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양면, 율곡면, 적중면, 쌍책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기능적으로는 동부지역의 교육, 문화, 교통생활의 중심지로서 시장 상권이 형성되고 주민들은 다씨족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경지정리율 98%에 전천 후 수리시설로 양질의 미곡종합단지 육성.
- 삼한시대 : 변한 초팔혜국
- 삼국시대 : 신라 파사왕 29년(AD 108년) 초팔혜현
- 통일시대 : 경덕왕 16년(AD 757년) 팔계현
- 고려시대 : 태조 23년(AD 940년) 초계현, 충숙왕(27대) 2년(AD 1339년) 초계군(11개면)
- 조선시대 : 초계군
- 일제강점기시대 : 초계면(AD 1914년)으로 택정, 양동면이 병합
3. 지명유래
3.1. 내동마을
교촌마을과 연결된 초계리 중심마을로 대부분의 초계면 행정기관이 이 마을에 위치해 있다. 옛이름은 “동밖” 또는 “동문촌”이었고 시장이 이곳에 있다. 합천이씨(陜川李氏)인 순생(順生)공이 합주(陜州)에서 이주(移住)하여 16대에 걸쳐 후손이 번창하고 있으며, 그리고 초계정씨(草溪鄭氏)인 학성(學性)공도 쌍백면 평구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3.2. 교촌마을
내동과 연결된 마을로 향교가 있으므로 예부터 교촌(校村)이라 불러왔으며 초계정씨와 합천이씨가 약 450년전부터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3.3. 중리마을
중리마을은 중동과 택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래 초계군 택정면 소재지로 면사무소가 있었으므로 택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동동 일부를 병합하여 중리라 하였다. 초계변씨인 효생공이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11대에 걸쳐 후손이 살고있으며 김해허씨인 맹장공도 의령군 용덕에서 이주, 7대에 걸쳐 후손이 살고 있다.
3.4. 대동마을
대동리는 못안(웃담), 한골, 대동등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래 초계군 택정면 지역으로서 큰골짜기가 되므로 한골 또는 대동동이라 하고 마을 앞에 못이 있으므로 못안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동리라 해서 합천군 초계면에 편입
- 못안(웃담) : 대동리의 중심마을로 초계면 소재지 서쪽 약 1km에 위치하며, 마을 전면에 가장 오래된 못(저수지)이 있어 못안이라 하였다하며 합천이씨, 충주석씨, 초계변씨, 김해김씨등이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한다. 한골이라는 별칭은 서쪽에 한골이란 골짜기가 있어 그 이름을 따서 대동마을 전체를 한골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지금 현재는 한가구도 거주하고 있지 않다. 진양정씨인 정주(鄭宙)공이 이주, 마을을 형성하여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리고 문화류씨인 류태정(柳台鼎)공도 쌍책면 성산리에서 이주하여 13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다. 현재는 합천이씨, 충주석씨, 초계변씨도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3.5. 택리마을
택리는 댁말이라고도 하며, 본래 초계군 택정면의 지역으로서 댁말또는 택리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동동과 양동면의 대평동 유하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택리라 하였다. 언양김씨인 계손공이 함양군 안의에서 480년전에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진양정씨 우철공께서 심었다는 360년된 은행나무가 동네앞에 있음
- 택리 : 언양김씨(彦陽金氏)인 계손(繼孫)공이 함양군(咸陽郡) 안의(安義)에서 480년 전에 이주(移住), 17대에 걸쳐 후손이 거주해 왔는데 현재는 25세대가 살고 있으며, 탐진안씨인(眈津安氏)인 기수(期壽)공도 앙진리(仰津里) 광암(廣岩)에서 이주(移住), 10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현재 거주지는 30여세대이다. 진양정씨(晋陽鄭氏)인 우철(宇喆)공도 의령(宜寧) 봉수에서 이주(移住)하여 9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다. 진양정씨 선조 우철공께서 심었다는 은행나무는 동네앞에 있으며, 수령 360년으로 여름철 마을 사람의 피서지로 만남의 장이 되고 있으며, 가을에 많은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 박곡(朴谷) : 밀양박씨인 효봉(曉峯) 현우(顯祐)공이 김해에서 이주(移住)하여 5대에 걸쳐 후손이 살고 있는데 박씨(朴氏)가 마을을 형성(刑成)하였다 하여 박곡(朴谷)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3.6. 각곡마을
각곡(角谷) : 마을 뒷산이름이 각곡산이므로 마을을 각곡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경주김씨인 수진(壽鎭)공이 함안, 청덕, 광암에서 이곳으로 이주(移住) 5대에 걸쳐 후손이 거주하며 마을을 형성(形成)하였다고 한다.
3.7. 대평마을
한들,양동,샛터,대평마을로 형성되며 본래 초계면 양동면 지역으로 큰들 가운데라는 뜻으로 한들 또는 대평이라고 하였는데 고려,조선때에는 현청의 소재지 였고 또한 양동면의 소재지 였으므로 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택정면 택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평리라 해서 합천군 초계면에 편입되었다.
- 대평 : 초계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km정도 떨어져있으며, 초계의 큰 평야 중앙지에 자리잡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셋터와 창말을 합쳐 대평리가 되었다.
- 샛터 : 샛터마을 동쪽 약 500m 지점에 옛날 초계군청 소재지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황폐화되자 이곳에 새로 터를 잡아 군청을 옮겨 새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샛터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 창말(蒼末) : 옛날 고관촌(古官村 )으로 약 400년전 임진왜란 때 란을 피해 의령군 신반에서 초계정씨(草溪鄭氏)인 사윤(士胤)공이 이주(移住)하여 후손들이 14대째 살고 있으며, 그 후 동래정씨(東來鄭氏)가 원당(元堂)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한다
3.8. 유하마을
본래 초계군 양동면의 지역으로서 유계아래쪽이 되므로 아래버들게 또는 유하라고 하였으며 광주노씨인 송천 극성의 후손이 대평마을에서 이주하여 후손이 번창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음. 유하마을은 광주노씨(光州盧氏)인 송천(松川 ) 극승(克升)의 후손이 대평(大坪) 마을에서 이주(移住), 후손이 번창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 김해김씨(金海金氏)인 일손(馹孫)공이 함안 군북에서 이주하여 4대에 걸쳐 후손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3.9. 유계마을
“웃버들게”라고도 하며 약 400년전 광주노씨인 매죽와 극성공이 적중면 황정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음.
3.10. 원당마을
* 행정 : 행정마을은 전설에 의하면 여양진씨(驪陽陣氏)가 먼저 이주(移住)하였다고 전해왔 으나 지금은 2호밖에 없고, 선산김씨(善山金氏)인 수영(秀嶸)공이 이주, 18대에 걸쳐 후손들이 거주하여 현재는 49여 세대가 살고 있으며, 동래정시는 원당에서 이주, 광주노씨는 대평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 하였다고 한다.원당리는 “ 행정”으로 본래 초계군 양동면의 지역으로서 원당못이 있으므로 원당리라 하였음. 1914년 행정구역 개편당시 원당, 행정, 새마를 원당리라 했으며 행정은 원당의 중심마을이며 선산 김씨가 대성으로 약 500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 원당 : 원당 마을은 동래 정씨인 익수공이 이주하여 12대에 걸쳐 후손들이 거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 새마 : 새로 생긴 마을로 밀양손시가 네 집살고 있고, 광주 노씨는 대평에서 이주했으며, 청송 심씨 (靑松沈氏)는 대양(大陽)에서 이주(移住)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3.11. 무릉마을
본래 초계군 양동면 지역으로서 지대가 높아 무릉으로 불리웠으며 합천 이씨인 원개공이 약400년 전 합천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함. 무릉마을은 합천 이씨(陜川李氏)인 원개(元凱)공이 약 400년 전 합주(陜州)에서 이주(移住)하여 14대에 걸쳐 후손들이 거주하며, 마을을 형성(刑成)하여 왔다고 한다.
3.12. 하남마을
하남마을은 하남, 당서마 등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무릉마을의 동쪽에 있는 마을로 물이 많이 나는 큰 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하남이라고 한다. 초계면 소재지에서 약 3.5km 지점에 있으며, 초계 변씨, 김해 김씨, 광주 노씨, 밀양 박씨, 합천 이씨 등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하남 : 하남 마을은 연안차씨(延安車氏)가 먼저 이주하였다고 하나 현재 2호만 거주하고 있고, 초계변씨(草溪卞氏)가 이주하여 11대에 걸쳐 살고 있으며, 김해김씨 등 각 성씨로 형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 당서마 : 옛날 마을 당산이 있는 당산 마을이 변해서 당서말이 된 것이라 하며, 문화류씨(文化柳氏)가 이웃 정곡(正谷)에서 이주하여 다섯 집이 살아왔는데 지금은 한 집만 남아 있다.
3.13. 정곡마을
본래 초계군 양동면지역으로 문화류씨인 태정공이 약450년전 쌍책면 성산에서 이주 마을을 형성.
- 정곡(正谷) : 정곡마을은 초계면 소재지에서 남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화류씨(文化柳氏)인 태정(台鼎)공이 약 450년 전 쌍책면 성산(城山)에서 이주, 13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 후 광주노씨인 월화당(月華堂) 극복(克復)공이 황정(黃井)에서 이주하여 12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다.
3.14. 병배마을
본래 초계면 양동면지역으로 문화류씨인 태정공의 후손이 병배마을에서 이주하여 살았으며 또 광주노씨인 매죽와 극성공의 후손 덕해공이 유계에서 이주하여 살면서 마을을 형성
- 병배(竝背) : 병배 마을은 문화류씨인 태정씨의 후손이 정곡마을에서 이주하여 12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또 광주 노씨인 매죽와(梅竹窩) 극성(克城)씨의 후손 덕해(德海)공이 유계(柳溪)에서 이주하여 9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3.15. 관평마을
귓돌, 구평, 관평마을로 형성되어 있고 본래 초계군 택정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거북처럼 생겼으므로 귓돌 또는 구평이 변해서 관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평동 일부를 병합하여 초계면에 편입
- 관평(官坪) : 관평 마을은 초계정씨인 정기식(鄭祺植)공이 이주하여 6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리고 초계변씨인 변법진(卞法畛)공도 이주하여 5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3.16. 장동마을
장동마을은 샛터웃땀이라고도 하며 새로생긴 마을로 새터 또는 웃땀이라고 부르고 있다.
- 장동(壯洞) : 장동(壯洞)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로 새터 또는 웃땀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위치는 초계면 소재지로부터 남쪽 약 1km지점에 있으며, 광주 노씨인 의일(儀日)공이 의령 궁유(宮柳)에서 이주, 10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 후 초계 정씨(草溪鄭氏)가 쌍책면 진정(眞定)에서 이주, 8대에 걸쳐 후손들이 거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3.17. 아막마을
아막리는 아막골,아막동으로 형성되었으며 본래 초계면 택정면의 지역으로 초계아전들이 살았으므로 아막골, 아막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아막리라해서 초계면에 편입
- 아막(衙幕) : 아막 마을은 김해 김씨(金海金氏)인 동구(東九)씨가 울산군 남산에서 1783년(정조 7년)에 적중면 명곡(赤中面 椧谷)의 마산촌(馬山村)에 이주하여 살다가, 1803년(순조 7년)에 이곳으로 옮겨 9대에 걸쳐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합천 이씨, 밀양 박씨, 진주 강씨와 함께 마을을 형성하여 왔다고 한다.
4. 특징
면소재지는 초계리이다. 이 면은 특히나 국내에서 2번째로 큰 초계평야가 있어 탁트인 풍광을 보여준다. 또한 적중과 근접하고 대구와 부산,마산가는 시외버스와 의령 봉수(신반)가는 시내버스가 다녀서 교통에는 문제가 없다.
5. 교육
초등학교 - 초계초등학교 (공립)
중학교 - 초계중학교 (공립)
고등학교 - 초계고등학교 (공립)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