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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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당인.
2. 생애
1968년 9월 26일, 전남 나주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북 군산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목수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억울함을 당하자 정의로운 신문기자가 되리란 꿈을 품었다고 한다. 군산문화초등학교, 군산동중학교, 군산중앙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합격, 광주의 진실을 알고 정부의 언론탄압과 보도지침에 절망하여 학생운동권이 되었다. 이후 독재정권을 상대로 투쟁하며 3번의 감옥생활을 하였으며 신혼여행을 마치고 오자마자 경찰에 구속되기도 하였다. 1991년에 고려대 총학생회장 및 전대협 5기 조국통일위원장 직무대행을 각각 지냈고, 1994년부터 한총련 정책실장을 맡으며 최정남 등의 방북을 주도했다.
이후 그는 북한 현실에 절망해[1] 전향을 결심했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과거를 되새기며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뛰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광우병 파동에서 왜곡이 발생하는 현실에 분노, 공정언론시민연대를 조성 편파적인 방송에 싸웠다고 회상한다. 이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되었고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2] 의 사연을 알게 되어 그들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후 이를 항의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700리 길을 도보로 임진각까지 걸었었다.
동생은 영화감독 최공재씨 이다.
3. 논란
3.1. 시대정신 단체 후원금 내역 논란
과거 최홍재 본인도 소속되었던 어버이연합 어용시위 논란에서 관제데모 지시 의혹을 받고 있는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이 과거 몸담았던 뉴라이트 성향의 단체 시대정신에 출처모를 후원금 21억원이 지난 7년동안 입금된것으로 인하여 본인도 구설수에 올라갔다.
시민단체 시대정신의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회계 내역을 살펴보면, 7년간 21억 2819만 원의 후원금이 들어왔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수입의 93%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시대정신 측은 국세청에 신고한 정상적인 기부금이라면서 후원자가 원치 않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로인해 어디서 후원을 받았길래 후원자공개조차도 꺼리는 것이냐고 의혹이 깊어졌다. 그밖에 시대정신은 지난 8년간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받은 국고 보조금도 3억 원에 이른다.
해당 의혹을 제기한 박범계 의원은 이날 <JTBC>와의 인터뷰에서 “시대정신이 창단된 뒤로 이명박 정부에서 지원을 하다가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도에 한 해 동안 지원이 끊겼는데 그런데 시대정신의 핵심인물인 최홍재(당시 행정관 신분)과 지금 문제되는 지금 허현준 행정관이 차례대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갔다”고 하며 의혹을 제기하였다.
3.2. MBC 민영화 논란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MBC 민영화와 관련, "이 논의는 피하기는 좀 어렵다. 논의를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 이런 문제는 아니고 논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왜냐하면 공영방송법이 곧 제정이 될 거 같고, 두 번째는 이제 코바코가 위헌결정이 났기 때문에 민영 미디어렙으로 갈 텐데 MBC는 이게 공영이냐 민영 미디어렙이냐 이제 당장 올해 하반기에 걸린단 말이다"라며 향후 민영화 논의를 본격화할 것임을 분명히 하여 이에 반발하는 측에게 비판을 받았다. #
3.3. 세월호 점령군 문자 발송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당원에게 "세월호 점령군에게, 은평에 온 지 3주 밖에 안 되는 후보에게 우리의 은평을 맡길 수는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경쟁 상대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벌였는데 유세 현장에서도 "은평구와 국회를 세월호 점령군에게 내줄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발언을 본인이 직접하였다.
당시 세월호 변호사로 불리며 진상 규명 현장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박주민 후보의 이력을 '점령군'이라 폄하한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국민 마음 속에 해소 되지 않은 아픔으로 남은 세월호 2주기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새누리당 최홍재 후보가 우리당 박주민 후보를 '세월호 점령군'이라며 비판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세월호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망언자가 한 명 더 추가 되었다" "만일 국회에 들어가더라도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피해자와 국민의 바람을 폄훼하고 방해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그 피해자 가족들을 능욕한 데 지금 즉시 사죄하라"라면서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때 최홍재 본인은 야권의 선거구 단일화를 비판하고 최홍재 자신을 향한 투표를 독려하는 '금식 유세'에 돌입하기도 하였다.
4. 20대 국회의원 선거
은평갑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처음에는 기존 현역 중진 이미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교체를 해야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였기에 최홍재 후보의 무난한 당선을 예상되었던 상황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최홍재 43.5% vs 더민주 이미경 35.0%이라서 지지율은 오차범위에 약간 벗어났지만 은평갑 지역구의 국회의원 교체 필요 의견수렴도는 교체여론 51.8%, 유지여론은 33.1% 이였다.
하지만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 기존의 5선 의원인 이미경 의원을 컷오프 하고 지역기반이 전무한 정치신인인 박주민 후보를 공천하면서 상황이 크게 변화였다. 실제로 이에 위기감을 느낀 최홍재 후보측에서는 박주민 후보를 겨냥, 새누리당 당원들에게 세월호 점령군 문자를 보내기도 하였다.
결국 최홍재 후보는 40.88%를 기록한 반면 현 박주민 의원이 54.9%를 기록하며 무려 두자리 숫자나 차이가 나며 크게 패하고 말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합류하였으며, 바른미래당으로 신설합당한 현재 은평구 갑 지역위원장과 산하 정책연구소인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을 겸임하였다. 현재는 당 직책을 내려놓고 평당원으로 지내고 있다.
5. 선거 이력
[1] 최홍재가 북한에 보낸 운동권 후배들은 범청학련 해외본부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베를린과 생각이 비슷하나, 북한하곤 안 맞는 경우가 있었다.[2] 독일에서 간호사로 활동하다 유학생 오길남을 만나 결혼해 두 딸을 낳았으며 1985년 작곡가 윤이상의 월북 권유를 받은 남편 오길남을 따라 월북하였으나 이후 1986년 북한체제의 실상을 뒤늦게 깨닫은 오길남 박사가 독일 유학생 포섭 지령을 받고 독일로 가던 중 혼자 탈북하면서 남겨진 신숙자는 두 딸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인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이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는 이들이 자유를 뺏기고 강제로 구금되어 있다고 판단하여 공식 입장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