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현임 직위 및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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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대전 서구 을)'''
제18대
이재선

'''제19~21대
박범계'''

''현직''

'''대한민국 제68대 법무부 장관
박범계
朴範界 | Park Beom-gye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63년 4월 27일 (61세)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약목리[1]
'''거주지'''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본관'''
밀양 박씨[2]
'''현직'''
법무부장관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대전 서구을 지역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생활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장
'''재임기간'''
제68대 법무부 장관
2021년 1월 28일 ~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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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배우자'''
주미영
'''자녀'''
슬하 2남
'''학력'''
서울은천국민학교 (졸업)
영등포중학교 (졸업)
남강고등학교 (중퇴)[19]
고등학교 검정고시
연세대학교 (법학 / 학사)
한밭대학교 (경제학 / 학사)[20]
'''병역'''
육군 일병 소집해제
'''종교'''
개신교 (감리회)[21]
'''신체'''
163cm
'''소속 정당'''

'''지역구'''
대전 서구 을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9''', '''20''', '''21'''
'''소속 위원회'''
국방위원회
'''경력'''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전주지방법원 판사
대전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사법개혁추진위원회 간사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
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
민주당 법률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1. 개요
2. 생애
2.1. 초년기
2.2. 판사 시절
2.3. 정계 활동
2.3.1. 19대 국회
2.3.2. 20대 국회
2.3.3. 21대 국회
2.4.1. 장관 내정
2.4.2. 취임 이후
4. 여담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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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판사 출신 정치인이다. 제19·20·21대 국회의원이며 제68대 법무부장관이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지역구는 대전광역시 서구 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친노 - 친문으로 분류된다.

2. 생애



2.1. 초년기


1963년 4월 27일,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약목리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이었다. 아버지는 박범계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사고를 일으킨 후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박범계는 가족과 함께 일찍이 상경하여 서울 은천초등학교와 영등포중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반항아가 되었다고 한다. 남강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술과 담배를 하며 방황했고,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 폭력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2학년말인 1980년 2월, 집단 패싸움에 연루되어 징계를 받고 중퇴했다.[3] 박범계 본인은 서클 친구가 다른 서클 친구에게 맞고 와서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 그해 4월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얻었다.
보충역으로 군복무를 대신했다. 보충역 기간 동안 열심히 수험 공부를 하여 복무 기간 중인 1984년 학력고사에 응시하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했다. 1985년 1월 만기 전역했고, 그해 3월 연대 법대에 입학하였다. 대학교 시절에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과에서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2.2. 판사 시절


대학 졸업 후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 후(사법연수원 23기) 판사가 된다.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 잡지편집장이 되었다. 편집장으로서 연수생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선배 법조인’으로 선정된 '''노무현을 인터뷰'''하면서 그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1994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을 시작으로 대전지방법원,[4]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거치면서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진보적인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고, 관료화되는 법원의 분위기에 질려 법원내부게시판에 과감한 글들을 게시하여 법원 내부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하였다.

2.3. 정계 활동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재직중이던 2002년 10월, 정계 입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당시 386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던 김민석 전 의원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한 것.[5]
이 당시의 상황을 보면 4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의 지지율이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 문제로 떨어진데다, 6월의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고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여파로 대한축구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던 정몽준 무소속 의원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이어 2위로 올랐다.
그래서 새천년민주당 내부의 여러 중진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후단협)을 결성하여 자당의 노무현 후보에게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사실상의 사퇴를 요구했는데,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할 줄 알았던 김민석이 탈당하고 후단협이 단일 후보로 은근히 밀어주던 정몽준을 지지하자 전 386세대에 충격을 준 것. 박범계 역시 김민석의 탈당에 분노하여 천정배 새천년민주당 의원에게 노무현 후보 캠프 합류를 알린 뒤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2002년 박범계의 노무현 지지선언(오마이뉴스).
박범계의 사표를 수리한 대전지방법원장은 당선 가능성도 없는 후보를 돕기 위해 사직한다며 기막혀했다는데, 사실 대선 판세 자체가 이미 정몽준에게도 밀려 3위로 전락하여 소속당에서조차 거의 외면당하던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 잘 나가는 공직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무리 소신이라도 무모한 것으로 보는게 맞았다. 오죽하면 새천년민주당 중앙 선대위에서 일개 법무특보를 위해 환영식을 해줬을 정도. 선대위 회의 때 인사하는 모습
'''그러나 기적적으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 넓은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노무현이 당선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법원 역시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는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줄을 댈 사람이라고는 판사 출신 박범계뿐이었던지라 검사고 판사고 할 것 없이 박범계를 찾을 정도였다고. 그리하여 참여정부 초기에 민정제2비서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2004년의 제17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기반이 튼튼했던 구논회 전 대학학원장에 밀려 당내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논회가 암으로 작고하면서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당시 국민중심당 심대평의 당선을 위해 결국 출마를 포기하는 시련이 있었고[6] 이듬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3위로 낙선하였다(...). 그러나 낙선 이후에도 통합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으며 다음 선거를 준비하였다. 이 시기에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후 대전에 둥지를 튼 노 前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2.3.1. 19대 국회


결국 절치부심한 끝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지 8년 만인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43.62%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이때 깨알같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후일 코레일의 대표이사로 올라가 코레일 고속철도 자회사 설립 논란의 최전선에서 정부를 비호하는 새누리당 최연혜 후보도 꺾고 올라오게 된다.
초선치고 당시 이력이 화려한데, 국회 입성과 동시에 민주당 법률위원장,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 국회쇄신특별위원회 간사 등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국회 특위의 간사직은 최소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이 맡는 관례를 볼 때 박범계의 이력은 확실히 친노 주류의 모습을 띈다.
2014년 8월 18일에 임환수 국세청장 청문회 과정에서 송혜교의 탈세사실을 알고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송혜교의 탈세 내용이 드러났다. 처음 언급 당시 송혜교 팬 등 연예계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탈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은 사그라들었다.
이 시기,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원내 대변인을 역임하기도 해 초선으로서 맹활약을 보였다.

2.3.2. 20대 국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재선 후보와 다시 한 번 격돌하여 15% 이상의 격차(49.53%)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충청권의 대표적인 친노-친문계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비문계의 대표인 박영선하고도 나름 접점이 있다.
재선 의원으로 국회의 주요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원회 간사를 맡으면서 중진에 가까운 중량감을 보여줬고, 박주민, 고 노회찬 의원과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황제 보석을 최초로 폭로해 사법정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 당시 사법부의 비호로 유마무야됐던 태광그룹의 "황제 보석 사건"은 결국 2년 후인 2018년, 언론특종과 재수감으로 박범계의 선견지명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국정농단 특별조사위원회'의 간사를 역임했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신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차려졌는데, 박범계는 위원회의 정치행정분과위원장을 맡으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올랐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 출마설이 돌았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적합도 1위를 달렸으나 불출마 선언을 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이 격전지가 되었다.
당대표 출마를 위해 수석대변인직을 사퇴하였다. 박범계는 자신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모두 거친 적임자[7]임을 강조하며 자신이 당 대표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전당대회 직전 당대표 출마자들에게 해당되는 최종 3인에 대한 컷오프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컷오프는 이해찬, 김진표, 송영길이 통과했다.

2.3.3. 21대 국회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3선에 도전하였고, 57.5% 득표로 당선되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찰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창하면서 '조국 사태'와 '추-윤 사태'에 목소리를 내며 사실상 국회에서 추미애 법무장관의 측면지원을 톡톡히 했다. "자세를 똑바로 하라! 지금 피감기관 입장"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한 2020년 국정감사에서 박 의원이 "안타깝게도 윤 총장이 가진 정의감과 동정심에 의심을 갖게 됐다"고 하자, 윤 총장은 "선택적 의심 아니냐"며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지 않았느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
참고로 박범계와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이다.

2.4. 법무부장관



2.4.1. 장관 내정


2020년 12월 30일 추미애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장관에 내정되었다. 2번 연속으로 판사 출신이 장관이 되는 것이다. #
검찰과의 갈등 외에도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변호사시험 강행 논란 # 등 산적한 이슈가 많은 상황에서의 내정인 바, 직무 공백 없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관건인 상황이다.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은 서울고등검찰청에 꾸렸다.[8] 이와 관련해 박범계 후보자는 "여의도에는 민심(民心)이 있고, 서초동에는 법심(法心)이 있다. '민심에 부응하되 법심도 경청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검찰청에 사무실을 정했다"고 했다. 윤석열 총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준비해서 청문회장에서 말씀 드리겠다"고 했으며, 2021년 1월 예정된 검찰 인사에 대해서는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
또한 검찰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인 협조 관계가 돼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검찰개혁을 이루라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저에게 준 지침"이라고 하여 추미애 때 파탄이 난 검찰과의 관계 회복을 암시했다. 그리고 "고검에 사무실을 마련하게 된 이상 법조기자들께 이렇게 인사드리는 게 마땅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언론에 적대적이었던 조국추미애와는 대조적인 행보이다. 다만 서울고검이 추미애 아들의 항고 사건을 수사하는 상황인데[9] 서울고검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
그러나 금태섭 전 국회의원은 "자칫 추미애 장관 시즌2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든다"며 "지금 검찰개혁이라고 추진하는 방향들이 맞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다양한 견해를 반영해야 하는데, 박범계 후보자의 그동안 행적이나 발언을 보면 과연 공정한 시각으로 객관적인 검토를 할지 좀 의문이 든다"고 했다. #
2021년 1월 15일, '법심 경청' 차원에서 송광수 전 검찰총장과 만나 식사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송 전 총장은 박 후보자에게 "자꾸 수사하는 걸 방해하는 게 개혁이 아니다. 나름대로 여러 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왜 자꾸 다른 걸 하느냐"고 하였다. #
2021년 1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범계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윤 총장과의 친분으로 검찰개혁에 주저할 우려가 제기된다" 라고 지적하자, 이에 "일반적인 의미의 동기로서의 친분이면 모를까 특별하고 개별적인 친분이 있지 않다" 라고 일축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지난 2013년 자신의 SNS에서 윤석열을 "석열이 형"으로, 자신을 "범계 아우"로 칭했던 사실이 다시금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
박범계 후보자 본인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이용구 법무부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 질의 안건자체가 많았던지라 청문회가 저녁 11시 30분에야 마무리되었다. # 청문회 자체가 워낙 길어진데다가, 야당의 극심한 반대로 청문보고서 당일 채택이 무산되면서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박 후보자에 대한 청문 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
문 대통령의 재요청 이후 27일, 법사위가 다시 전체회의를 열고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제1야당 국민의힘에서 완강하게 반대하자 여당 상임위원들이 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 채택했다. # 2021년 1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하면서 28일부터 법무부장관으로 임기를 시작한다. #

2.4.2. 취임 이후


취임 이후 2월 2일, 윤석열 검찰총장과 만나 검찰 인사와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 받았는데 박 장관은 인사협의가 아니라 검찰 측의 의견을 청취한 것일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2월 5일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대담에서 한동훈 검사장의 일선 복귀를 거부했으며, 이성윤 중앙지검장에 대해서도 유임해야 한다며 영전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10] 이를 두고 한 부장검사는 박범계 장관의 보여주기식 정치적 퍼포먼스라며 검찰총장을 핫바지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2020년 2월 첫 정기 검찰인사를 윤석열 측에서 모르게 기습적으로 처리했다.[11] 이정수 서울남부지검 검사장과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 자리를 맞바꾸게 되었으며, 조종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김지용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춘천지검장으로 이동한 것 외에 변화는 없었다. 사실상 검찰총장의 의견을 패싱한 것. 상술하다시피 논란을 일으킨 이성윤 중앙지검 검사장은 유임됐고 좌천된 한동훈 검사장 또한 이동되지 않았다. 이로서 이성윤, 심재철 등 '추미애 사단'은 전체적으로 살아남았고 '박범계 사단'으로 갈아탔다. 단, 이번 인사에 대한 우려스런 시선과 달리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의 수사를 지휘하는 이두봉 대전지검 검사장은 그대로 유임되었다. # #
2021년 2월 17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차례 사의를 표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되었는데 그 발단이 검찰 고위급 간부 인사 과정에서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이견이 있었는데 박범계와 협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박범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직접 보고하고 발표를 강행한 게 결정타로 작용했고 이에 주변에 자존심이 상해 못살겠다라며 불만을 강하게 토로하였다. #
고위간부급(검사장) 인사에 이어 2월 22일에는 중간간부급 인사(차장검사, 부장검사)도 있었는데, 주요 수사팀 부서장들이 대부분 유임되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신현수 민정수석을 패싱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이를 진화하기 위해 검찰 의견을 반영했다는 평. 한편 반윤석열, 반검찰, 친정권 성향의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해 수사권을 부여했다. #

3. 논란




4. 여담


  • 1999년 2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삼례3인조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는데, 이때 이 사건의 1심에서 배석판사로 재직하며 이들을 유죄로 판결한 판사 중 한 명이다. 2016년 10월 28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고 2016년 11월 4일 검찰에서 항소 포기하여 최종 무죄 확정된 사건이다.(링크 삼례사건 참조) 결국 2017년 2월 14일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했다. #
  • 나경원미래통합당 의원과 정치적으로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로는 정계 입문 직전까지 현직 판사였고 둘째로는 2002년 대선 시기 정계에 입문했다. 나경원은 2002년 9월에 이회창을 돕기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박범계는 전술했다시피..... #
  • 2016년 12월 15일 열린 청문회에서 진행을 하던 도중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려 박뿜계, 박두꺼비 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제원 국조특위원이 김경숙이화여자대학교 신산업융합대학장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김경숙 증인이 교육부 감사 결과를 전면 부인하고 동문서답을 하자, 장제원 위원은 박범계 위원장 대리에게 김경숙 증인의 답변태도에 대해 주의를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김경숙 증인, 잠깐만요, 장제원 위원, 불만이 무엇이죠?"라고 한 뒤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12]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이후 "장제원 위원의 지적이 옳다"고 하면서 웃음을 터뜨린 것에 대해 사과했다. 웃음만 놓고 보면 욕을 먹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발언시간이 1초 남은 상황에서 "시간을 멈추어 달라"고 한 장제원 의원과 김경숙 증인의 발뺌 상황, 또 비슷한 상황이 겹친 우연 등 총체적 난국 때문에 갑자기 빵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론은 대체적으로 웃기다는 반응이다. 장제원 의원이 한 번도 아니고 이런 모습을 2번째로 보였으니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해도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담으로 썰전김경진 의원과 함께 출연했을 당시 김성태 의원이 말하길, "판사 출신으로 한 성격 하는 법조계 출신 의원이라 웬만하면 웃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지는 걸 보고 정말 희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마리텔에서 합성으로 사용되었다. 한 유투버는 이와 비트박스를 접목시켰다.
  • 이 계기로 급격히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가 된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13] 2016년 12월 22일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의 별명인 박뿜계를 직접 언급하였다.3분부터 또한 이후 민주당 팟캐스트 민주종편에서 1주일에 1번씩 본인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박뿜계 이미지로 가기로 한 건지, 초반에 1달간은 댓글창에 '뿜계형 뿜어주세요'가 많이 나오면 일부러 뿜기도 했으며, '뿜계형 손 흔들어주세요'라고 하면 손을 흔들고 해서 진행이 늦어지기도 했다. 의외로 신세대적 감각인지, 인기를 얻은 게 좋은 건지, 같이 진행하던 백혜련이나 다른 기자와 달리 댓글창에 나오는 글들을 잘 읽고 소통을 추구하던 편이고[14], 이후 라디오나 다른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도 과거의 한 성격하는 이미지를 버리고, 웃고 친근한 모습으로 정치와 관계된 법정 사태에 대해 법률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설명하곤 한다.
  • 서구 을 선거구에 비해서 대전광역시 전체에서는 지역기반이 약한 편이었다. 대전 태생도 아니고, 대전고등학교가 아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역대 민선 시장은 모두 대전 출신이고, 염홍철 前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은 모두 대전고 출신이다. 따라서 뒤늦게 한밭대학교편입학하는 등 지역기반을 다지기 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게다가 국정농단 청문회 스타로 거듭나면서 인지도가 매우 크게 상승하였다. 하지만 박범계 의원은 서구 을 지역이 선거구인 관계로 둔산신도시의 권익을 대표하는데 둔산신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을 선거구와 나머지 동네를 포괄하는 서구 갑 선거구는 같은 서구에 속하면서 서구 갑이 박병석 더민주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특성상 여러 지역 현안에서 원수 지간에 가까울 정도로 사사건건 충돌하는 사이로 서구 갑 지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박범계 의원 개인에 대한 지지는 떨떠름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자신의 진보/보수 정치색과는 무관하게 지역 내 현안에서 잦은 다툼이 벌어지기 때문. 서구 갑 지역이 박병석이 5선하는 동안 피로가 쌓여 있어 21대 총선 이후 박병석 의원의 거취에 따라[15] 언제든 스윙보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인지도가 크게 상승한 박범계 의원의 지역구 활동이 장기적으로 중요한 상황이다.
  • 사법시험 존치에 매우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고졸 출신도 사법시험은 자유롭게 볼 수 있었는데, 위 트위터에서 볼 수 있듯 현재 사법시험이 대학 자격을 요구하고 있으며, 때문에 노무현 같은 사례는 더 이상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이 35학점은 정규 대학이 아니라 하더라도 방송통신대학점은행제도 같은 것으로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사시 제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 비해서 법학계열 대졸자들이 유리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 정당 국민의당의 후보인 안철수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묻히는 경우가 많다. 네거티브 공세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박범계를 안습하게 만드는 건, 이 네거티브 공세가 묻히는 이유가 박범계의 네거티브가 거짓으로 밝혀지거나 상대 후보들이 대응을 잘해서 묻히는, 즉 박범계 본인이나 상대 후보의 대응 능력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불운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것도(안철수국민의당에게) 더 큰 악재가 터져서 정작 박범계가 주장한 네거티브 자체가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예로 4월 11일 박범계는 안철수의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의 행적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를 위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그런데 정작 이날 안철수유치원 설립 자제 발언 논란이 터지는 바람에 정작 포스코 이사 문제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다음으로 4월 16일에는 안랩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관련 논란을 비판하였는데, 정작 당일에 국민의당이 여론조사가 왜곡되었다며 조사 기관인 리얼미터를 고소하는 일이 벌어져서 역시 묻혀버렸다.
  • 2017년 10월 17일, 국회 법사위 국감위에서 권성동 법사위원장이랑 티격태격하면서 '당신(권성동)은 법사위원장 될 자격없다'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지어진 별명이 '박뿔계'...그것때문에 오신환이 자신을 향해서 '왜이렇게 소리지르냐'고 샤우팅까지 했다. 옆에 있던 박지원이 오신환에게 '자기도 소리지르면서' 라고 말한건 덤.
  • 판사 출신으로 여당공격수를 역할을 맡고 잇기 때문에 카메라에 타 의원들과 말싸움 벌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 진보 팟캐스트나 김어준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발언을 하다보면 은근히 전문용어(?)를 많이 쓴다. 야로, 쇼부, 사바사바 등등. 사실 원조 겐세이도 박범계다. #

  • 판사보다 정치인이 더 적성에 맞는다고 하였다. 점잖아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다혈질이다보니 정치인이 본인에게 더 맞으며 판사시절 사표낸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시 판사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 2018년 12월 31일 조국 민정수석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논란으로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서 의원들과 질문 공방을 하였다. 이 때 박범계는 조국과 임종석을 변호하면서 '야당이 무리하게 매도하고 있다, 근거도 없는 주장을 계속 꺼내는 것은 곤란하다'라며 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발언 막바지에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감정이 격앙되었는지 '좀 들으세요! 들어! 요!'라고 호통을 쳤다. 순간 반말이 튀어나올 뻔해서 급히 수습했는데 그 순간 옆자리에 있던 박경미 의원을 비롯한 장내 인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박범계 본인도 겨우 웃음을 참으면서 발언을 이어나갔다. 해당 장면
  • 2020년 1월 16일 주한 미국대사 해리 해리스 대사가 남북협력에 대해 미국과 상의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박범계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리스 대사가 "스스로 일본계라 칭하는 해리스 미국 대사의 무례 작렬"이라는 발언을 했다. # 한국에서는 이런 류의 발언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가 있으나 서구와 북미에서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이런 식의 발언을 명백한 인종혐오 발언으로 본다. CNN에서도 이에 대해 인종주의라고 비판하였다.
  • 2020년 3월 3일에 북한 노동당 제1부 부장 김여정이 저능하다는 표현을 써 가며 청와대를 원색적으로 맹비난한 담화에 대해 다시 읽어보니 청와대를 무척 신경 써 준 표현이라고 옹호하고 두둔하였다. # 위의 해리스 대사의 발언 때 보여 준 반응과는 상당히 다르다.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2 - 2003
정계 입문

2003 -2004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04 - 2007
입당

2007 - 2008
합당

2008
합당[16]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17]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8]

2015 -
당명 변경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 서 을

22,448 (26.41%)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46,908 (43.62%)'''
'''당선 (1위)'''
'''초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6,819 (49.53%)'''
'''재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70,708 (57.50%)'''
'''3선'''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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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둘러보기










[1] 인근의 심천리·단전리·길현리·구탄리·고당리·기호리·용당리·초강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2] 보승랑장공파 28세손 '範' 항렬이다. 박 의원의 고향인 영동군과 그 옆인 경상북도 김천시에는 밀양 박씨 보승랑장공파 집성촌이 여러 곳 있다. 그리고 박혁거세 64세손, 박원순 서울시장의 '''8대조'''뻘이 되지만 밀양 박씨는 각 파간 항렬 차이가 매우 크다.[3] 2009년 2월 남강고등학교 명예 졸업장을 수여받았다.[4] 2001년 소년부 시절 일명 '대덕고등학교 왕따 사건의 주도 학생이었던 해당 학교 졸업생들이 비슷한 내용을 다룬 드라마와 관련해 홈페이지에 왕따 학생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이유로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5] 21대 총선에서 김민석 의원이 2002년에 3회 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 지 18년 만에 의회복귀에 성공함에 따라 박범계 의원은 자신의 정계입문 계기를 제공한 김민석 의원과 '''한솥밥을 먹게 된다.''' 심지어 의원선수도 이제는 '''둘 다 3선으로 동급.''' [6]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가 어렵지만, 그 당시 열린우리당은 엄청나게 인기가 없어서 재보궐선거마다 참패하는 진기록(...)을 거듭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아무 접점이 없던 국민중심당을 돕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 한편 박범계 본인은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까지 고려했지만 10일간 칩거하면서 생각을 정리한 끝에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7] 입법부 - 국회의원, 행정부 -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 및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정치행정분과위원장, 사법부 - 판사.[8] 참고로 조국광화문 쪽에, 추미애목동 쪽에 사무실을 차렸다.[9] 일부 언론에서 재수사한다는 보도를 냈는데, 이에 대해 서울고검 측은 항고 사건을 수사 중이라며, 원점에서 직접 재수사할지 결정은 아직 안 났다고 밝혔다. #[10] 한동훈 검사장은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되었으나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수사팀에서 내부적으로 무혐의로 의견이 모아졌으나, 이성윤 중앙지검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제를 미루는 한편 여권의 입맛에 맞게 주요 사건들을 편파적으로 처리해 휘하 검사들의 신망을 잃은 상태이다.[11] 검찰인사가 휴일에 갑자기 처리된 것은 헌정 사상 전례가 드문 일이다.[12] 장제원이 "혼내주세요!!"라는 발언을 해서 웃었다는 말도 있으나 이후 장제원 의원실 해명에 의하면 그건 아닌 듯 하다. 속기록에도 없고 박범계의 사과발언에서도 해당언급이 없는 걸 보면, 그 발언은 없었던 모양.[13] 사실 박뿜계 사건 이전에는 청문회에서도 김성태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화내고 싸우며, 대답을 피하는 증인들에게 호통치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무서운 이미지였고, 전혀 웃지 않고 임했으며, 심지어 증인이 모르쇠로 일관해도 다른 의원들과 달리 비웃는 의미로라도 웃지 않았다. 그를 잘 모르던 일반인 네티즌들도 그의 이력을 찾아보고 '저 국회의원은 판사 출신이라더니 역시 무섭네'하는 반응이 주류였다. 박뿜계 사건은 정말 상상도 못할 반전이었던 것.[14] 심지어 반기문 얘기를 하다가 충청권의 지지 얘기가 나오자, 댓글창에 시청자 누군가가 '박범계 의원님도 충청도 사람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어설픈 충청도 사투리로 '맞아유, 저도 충청도에유'라고 답하기도 했다.[15]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을 제외하면 현재 6선인 이석현 다음가는 최다선이므로 다음 총선에서 당선 시 국회의장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함께 6선이 되는 원혜영과 경쟁해야 할 수 있다. 이종걸추미애도 다음 총선 당선 시 6선이고 민주당 강세 지역구라 생환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은 국회의장에게 요구되는 중재파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16] 민주당과 신설 합당[17]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8]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