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국회의원 선거
1. 개요
2012년 4월 11일에 시행한 제19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이다.
2. 배경
2.1. 여소야대를 노린 야권연대
야권은 MB정부 심판론을 내세우며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야5당 연대로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2011년 11월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 협정의 강행처리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당에 반대하는 민심이 거세지자 총선 승리를 다짐하며 여소야대를 노리게 된다. 그해 12월, 민주당은 원외 친노/시민 세력(시민통합당)과 민주통합당을 창당했으며,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 탈당파(새진보통합연대)는 2012년 1월 통합진보당을 결성했다. 범야권 정당이 5개 정당에서 2개 정도로 감소하면서 야권연대 및 후보 단일화는 활발해졌다. 결국 3월 19일, 야권연대 후보가 결정되었다. 주요 선출된 후보는 민주통합당의 인재근 후보[2] 와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공동대표 등이었다.
위기를 느낀 한나라당은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였으며, 2월을 기해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해 좌클릭 행보인 '경제민주화' 슬로건을 꺼내들었다. 새누리당의 친이계 의원들이 공천 반발로 탈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대부분 불출마로 끝났다.# 사실 친박계로 18대 총선에서 이미 공천보복을 당한 김무성[3] 이 복수심에 다시 친이계 의원들과 국민생각, 자유선진당까지 크게 뭉쳐서 3번으로 4~50여개 지역구에서 출마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마지막 순간에 실현이 어렵고 탈당이 소신과 어긋난다는 생각에 중단하였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야권으로서는 난감한 시나리오였다.
2.2. 선거구 획정
지루한 협상 끝에 여야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각각 1개의 선거구를 줄이고 경기도 파주시와 강원도 원주시를 분구하기로 결정하였다. 한편 2012년 7월 1일부로 출범할 광역자치단체인 세종특별자치시에 대한 선거도 치루어지는데,[4] 원래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자체적인 지역구 의원이 배분될 예정이었으나 역시 여야의 밥그릇 나눠갖기의 협상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지역구 의원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비례대표는 줄이지 않았으므로 전체 국회의원 의석수는 '''300석'''이 되었다.[5]
2.3. 부재자 투표
부재자 신고 기간은 3월 23일~3월 27일이고, 부재자 투표기간은 4월 5일~4월 6일이다. 부재자 투표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개방되었다. 부재자 투표소의 개소 시각에 대해서는 2012년 2월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지만, 일단 19대 총선에서는 기존 기준을 유지한 것이다. 한편 부재자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는 4월 11일에 서류를 들고 지정된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할 수 있었다.
2.4. 재외국민선거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으로 재외국민 선거권이 인정되어 치뤄진 선거'''이다. 다만 재외국민 선거는 '''비례대표제 선거에 한정'''되었다.[6] 재외국민 투표기간은 3월 28일~4월 2일이었다. 1967년과 1971년 대선과 총선에 재외국민 선거가 잠깐 시행되었던 적이 있지만 1972년 10월 유신으로 금지된 뒤 '''40년'''만에 재외국민 선거가 부활했다. 그 당시에는 우편 투표 방식이었지만 19대 총선에서는 재외 공관[7] 에 직접 가서 투표를 하도록 바뀌었다.
그러나 지역과 인구에 비해 투표소가 너무 적어서 문제다. 중국에는 각 공관마다 9곳, 미국 또한 12곳만 지정되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아주 적은 숫자이다. 중국 하얼빈에 사는 사람은 그 근처에 가장 가까운 투표소가 선양에 설치되므로 약 이틀은 잡고 투표를 하러 가야 한다.
수교국 공관에만 투표소가 지정된 것이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대만에는 타이베이에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가 있지만 대만과 한국은 수교국이 아니거니와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는 일종의 영사업무, 경제업무, 문화업무만 하는 곳이므로 공관으로 인정하지 않아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았다.[8] 그러므로 대만에 사는 한국교포나 유학생들은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까지 비행기타고 날아가서 투표해야 했다. 그 후, 문제가 된 법 조항은 여러차례 논의 끝에 2017년 3월부터 완전히 개선되어, 제19대 대통령 선거 시점부터는 타이베이 대표부에서도 재외투표가 가능하게 되었다.
3. 출구조사
정권 말 선거가 보통 그렇듯 선거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이 우세를 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올수록 야권내 잡음이나 김용민 막말 파문 등 민주당 쪽에 각종 악재가 터지면서,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은 민주통합당이 약간 우세하나 새누리당과 의석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편, 방송사들은 유난히도 안 맞던 기존 총선 출구조사의 개선을 위해 무려 '''75억''' 원을 들여 사상 최초로 246개 모든 지역구에 대해 출구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무려 총 13,000여명의 조사원, 감독관 500명을 투입했다. 각 지역구당 평균 50여명의 조사원과 2명의 감독관이 파견된 셈이었다.
선거일 당일 6시에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는 대체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거의 같은 의석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BS 민주통합당 128~150석, 새누리당 126~151석, KBS 양쪽 다 131~147석, MBC 민주통합당 128~148석, 새누리당 130~153석)[9] 그리고 이런 예측치에 새누리당은 '다소 아쉽다', 민주당은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라고 자평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 야권 단일화를 이뤄내면서 몇몇 지역에 통진당 몫의 후보를 내줬기 때문에 이대로만 간다면 사실상 범진보 승리를 이뤄낸다는 분위기였고, 새누리당도 당초 완패 예상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거금을 들인 출구조사가 이번에도 '''빗나갔다'''. 결과는 '''민주당이 예측 최소치 -1석, 새누리당은 최대치 +1석'''으로, 상당히 크게 빗나갔다. 출구조사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표본을 선정할때 반드시 투표소에서 나오는 사람 5명마다 1명을 지켜야 한다고 되어있었지만, 선거 당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이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출구조사 결과에 오차가 많았던 걸로 추측된다고 한다. 사실 비례대표에선 원내 정당만으로 치면 범진보 46.75%, 범보수 46.03%로 진보가 약간 더 표를 가져갔지만, 지역구에서 출구조사상 경합으로 나타난 '''접전지를 거의 모두 새누리당이 가져가며''' 결과가 반대가 되었고, 결국 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기 쉬운 임기 말 총선임에도 불구하고 여대야소 정국이 탄생한다.[10]
사실 정확도가 비교적 나쁘지 않은 기존 대선과 지방선거 출구조사와 달리, 적은 표본수를 지역구마다 일일이 조사해야 되는 총선 출구조사는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게 방송사들의 전통적 고질병이었다. 15, 16대 총선 출구조사는 여대야소를 예측했다가 여소야대로 나오는 등 다수당 예측마저 틀린 적이 있고, 17대와 18대 총선 출구조사는 다수당은 맞췄으나 의석수 예측이 빗나가서 예상범위에 간신히 걸치는 결과가 나왔다. 그 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15~18대 총선은 여당[11] 의석을 과잉 예측했고, 이번 총선은 야당 의석을 과잉 예측했다는 것 정도다.[12] 이렇게 출구조사가 번번히 틀리는 이유는 각종 선거마다 분석해야 되는 지역구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접전지에서 기존 예측과 갈리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총선은 특히 접전지가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합지가 아님에도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image] [image]
심지어 경합으로 표시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도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위에 나온 사진의 고양시 덕양구을이 그 예다. 대체로 여권 후보들은 출구조사에서 나온 지지율보다 2~3% 정도가 더 나왔고, 야권 후보들은 그 반대였다. 서울 서대문구 을의 경우 SBS에서는 접전 표시가 뜨지 않았지만, MBC에서는 경합이 표시되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믿고 나왔던 진보신당도 졸지에 again 역풍 2010(노회찬)을 실감하고 만다.
출구조사 예측대로라면 이들 지역은 새누리 1, 민주 13, 통진 2, 무소속 1으로 민주통합당이 140석(+ 친야 무소속 2석), 새누리당이 139석(친여 무소속 없음), 통진당 15석, 선진당 4석으로 야권 157, 여권 143의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와야 했다. 그러나 실제 17석의 결과는 새누리 14, 선진 1, 무소속 2[15] 으로 뒤바뀌면서, 최종결과는 새누리 152석(+ 친여 무소속 1석), 민주 127석(+ 친야 무소속 2석), 통진 13석, 선진 5석으로 여권 158, 야권 142의 여대야소로 결판났다.
야권(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은 서울에서 2/3정도의 의석인 32석을 가져가는 등 수도권에서 17대 총선과 거의 비슷한[16] 승리를 하였으나, 내용으로 보면 접전으로 분류된 상당수 지역에서 패배 또는 역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수도권(특히 서울)에서는 패했으나 텃밭인 영남권을 거의 석권하였고, 또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당초 예상보다 많이 선전했다. 사실상 선거 승패가 갈린 지역이다. 특히 강원도는 새누리당이 의석 9석을 전부 가져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의외로 19대 총선의 결과는 야권(개혁/민주/진보진영) 입장에서는 1990년 3당 합당이 이뤄진 이후 치뤄진 6번의 총선(~2012년) 중 2번째로 잘 나온 결과였다는 것이다.[17] 실제 후술되어있듯 비례투표에선 범진보가 앞섰으며, 지역구도 선거 막판 김용민 막말 파문 등으로 수도권에서만 최소 10석이 날라갔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야권 쪽에 악재가 잇따라 터진 것을 감안하면, 물론 실망한 지지층을 추스르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선전한 선거 결과라는 견해도 있었다.
3.1. 연령별 정당 득표율
- 20대 새누리당 27.4% 민주통합당 46.7% 통합진보당 13.1%
- 30대 새누리당 23.7% 민주통합당 46.8% 통합진보당 20.4%
- 40대 새누리당 33.0% 민주통합당 42.6% 통합진보당 15.6%
- 50대 새누리당 51.5% 민주통합당 33.5% 통합진보당 6.5%
- 60대이상 새누리당 61.8% 민주통합당 27.0% 통합진보당 (대략 2~3% 추정)
4. 결과
이 곳에는 투표/개표 수치만 기입하고 정당별 결과 분석과 지역별 결과 분석은 각 문단에서 서술한다.
4.1. 투표
4.2. 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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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지역구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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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구별 개표 결과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항목을 참고하십시오. 단, 새로 지역구가 신설된 세종특별자치시는 단일 선거구이기에 이 항목에 함께 쓰였다. 용인시 을의 위치와 용인시 병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다. 수지구가 용인시 병, 한선교 지역구인데 여기선 기흥구를 관할하는 것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4.4. 비례대표 선거 결과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비례대표 국회의원 항목을 참고하십시오.
나머지 7.22%의 지지를 나누어 받은 득표율 2% 이하의 군소 정당들은 전부 득표율 미달로 등록취소 되었다. 득표 순서대로 10번 기독자유민주당(1.20%), 16번 진보신당(1.13%), 20번 한나라당(0.85%), 6번 국민생각(0.73%) 등이었다. 2014년 1월, 헌법재판소가 "총선득표 2% 미만 소수정당 등록취소는 위헌"이란 판결을 내리면서[25] , 19대 총선은 2% 이하의 득표를 얻은 정당이 등록취소 된 마지막 선거가 되었다.
4.5. 세종특별자치시
5. 분석
5.1. 정당별
선거 결과 새누리당은 과반을 차지하며[29] 승리하였고 선거를 진두지휘한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는 대선 행보에 청신호가 켜졌다. 사실상 친이의 몰락과 숨죽여 살던 친박의 전면 등장이 확인된 선거. 사실 친이계는 선거는 승리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은 반응이었는데, 19대 총선에서 일단 1차 친이계 공천학살이 일어났고 그틈을 친박계가 대거 들어오며 새누리당에서 친이계의 힘이 많이 빠졌고, 이번 총선 결과로 MB 정부가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MB정부 심판론에만 기댄 채 여유롭게 과반을 낙관하다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사실상 패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대보다 많이 부진했는데, 실제 민주통합당은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패배를 인정하였다. 다만 전체 결과로만 놓고 보면 고작 81석에 그치며 참패한 18대 총선에 비하면 46석이 늘어난 127석을 확보했고, 여기에 야권연대한 통합진보당 의석을 합치면 140석이 되어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규모의 세력은 얻었다. 다만 여당 견제가 목표가 아니라 그 해 여당 되는 게 목표였기에 기대치엔 못미치는 수치였을 뿐.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로 늘어난 지역구 의석을 통해 결과적으론 13석으로 역대 최다 의석을 확보했으나, 진보진영 자체로는 국민참여당 출신 의원들을 빼고 나면 의석이 늘지 않았고, 당선 가능성이 점쳐지던 울산광역시와 창원시에선 근소한 차로 전멸하며 내실적으로는 크게 만족스럽진 않은 결과를 보였다. 정당 득표 역시 참여당계 지지성향 득표를 합쳐서도 17대 총선의 13%에 못 미쳤다. 게다가 총선 전의 관악을 야권단일후보 선출 부정경선 파문에 이어,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의 비리가 드러났고 여기에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의 문제까지 엮이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비당권파에서는 조사 결과를 들어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를 요구했으나, 당권파에서는 조사가 편향되었다고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했다. 자세한 내용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항목 참고. 결국 이후 진보정의당(정의당)으로 비당권파들이 탈당함에 따라 당은 둘로 쪼개졌다.
18대 총선에서 18석을 얻었던 자유선진당은 이 총선에서는 5석에 그치는 등 참패했다. 이에 따라 원래 대표였던 심대평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회창 전 대표 역시 탈당했다. 대신 이인제가 전면에 떠올라 당명 역시 선진통일당으로 바꾸는 등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실패하고 이후 새누리당과 합당하게 된다.
선거에서 암묵적으로 반새누리 투표를 호소했던, 당시 '안철수 현상'이란 큰 바람을 일으키며 대권주자로 주목받던 안철수 교수의 대선 출마 가능성도 높아졌는데, 실제 서울대학교 융합대학원 원장이었던 안철수는 이 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이후 새누리당을 막기 위해 자신이 대선 출마를 확고히 굳혔다고 회상하기도 했다.[30]
5.2. 지역별
5.2.1. 수도권
지역구 의석의 숫자로는 야권연대가 압도했다. 심지어 이것도 선거철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김용민 막말 파문 등의 야권발 악재로 인해 보수 진영이 득을 많이 본 결과였다. 그만큼 '''수도권에선 MB 정부 심판 및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고 볼 수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서울 은평 을에서 통합진보당 천호선을 누르고 이재오 후보를, 동작 을에서 정몽준을, 강서 을에서 민주당 김효석을 누르고 김성태 후보를 당선시킨 것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서울 여당 심판 바람에서 살아남으며 개인 역량을 확인했다. 특히 이재오와 김성태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기에 야권이 병크를 이렇게 저지르지 않았다면 당선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정청래(서울 마포 을), 최재성(경기 남양주 갑) 등 적지 않은 수의 핵심 친문 의원들이 당선되었다. 후신 더불어민주당에서 차례로 원내대표를 맡게 되는 이종걸(안양 만안), 우상호(서대문 갑), 우원식(노원 을) 후보도 이 때 당선된다.
통합진보당 지역구 7석 중 절반이 넘는 4석이 수도권에서 나왔는데 인지도가 높은 고양시 덕양구 심상정과 노원 병 노회찬 의원이 모두 당선되었다. 노회찬은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으나, 심상정의 경우 상대편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를 불과 '''170 표차''' 차이로 꺾어 이번 총선의 최소 득표차 당선자가 된다.
비례대표의 경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당은 새누리당이었으나 여(새누리+선진):야(민주+통진) 구도로 보면 야권이 근소하게 앞섰다. 서울 44.4:48.7, 경기 44.5:48.7, 인천 45.5:47.4를 기록했다. 전국 판세 여:야=46.0:46.7과 비교할 때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진보 계열이 의미 있게 선전을 하면서 반보수 표심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통합진보당의 득표율도 전국 득표율 10.3%를 웃도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5.2.2. 중부지방(충청/강원)
사실상 '''선거 승패를 가른 지역'''으로, 민주당은 참패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강원, 충청권에서 선전했으나, 정작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이 지역에서 다시 승기를 잡았다.
충청권의 경우 새누리당이 12석, 선진당이 3석, 민주당이 10석을 얻었다. 새누리당은 충북 의석을 다시 회복했고, 자유선진당 세가 강한 충남에서도 범여권 분열이 일어났지만 새누리 4석, 민주당 3석, 선진당 3석으로 승리하며 승기를 굳혔다. 반면 18대 총선에서 대전, 충남을 석권하는 리즈 시절을 누렸던 자유선진당은[37] 충북과 대전에서 지역구를 한 석도 얻지 못하고 충남 3석만을 유일한 지역구 의석으로 확보하며 크게 쪼그라들었다. 민주당은 대전과 충북에서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지만, 충북의 경우 저번 선거보다 되레 3석을 잃은 결과였고, 충남에서 얻은 3석 중 2석도[38] 새누리+선진당의 득표율이 더 높은 상태에서 당선된 것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겨야 했다.[39] 다만 행정구역이 처음으로 신설된 세종특별자치시의 1석은 민주당의 거물인 이해찬이 차지하면서 6선의 성공을 이루어냈다.[40]
정당 득표율의 경우 세종시에서만 민주당이 우세하고 나머지 충남, 충북, 대전의 경우 새누리>민주>선진>통진 순으로 득표를 하며 새누리당으로의 보수 표심 결집 + 범여권 분열 속에서도 뒷심이 밀리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런 분석엔 이견도 있는게, 선진당은 애초 충북에선 득표율이 고작 5%대로 큰 힘을 못발휘했고, 당시 당엔 민주당 성향의 인사들도 꽤 입당해있었을만큼 보수정당 이전에 지역정당으로의 정체성이 더 강한 정당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범여권이라고 보긴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었다.[41] 또 대전의 경우 새누리와 민주당이 0.6% 차이의 박빙을 이루었다.
강원도의 경우는 새누리당이 9석을 모두 석권하며 완승했다. 이는 야권의 전략이 전반적으로 PK와 수도권 공략에만 치중되어 이들 외 지역에선 자폭성 삽질 전략들이 남발되었기 때문도 컸다. 강원도 관련 공약으로 '평창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들고 나왔던 것이 대표적이다. 2011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확정 당시 강원도 분위기를 봤다면 이런 소린 쉽게 못했을 것이다. 공천도 엄한 사람 꽂아놔서 지역주민들의 표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정당 득표율에서도 범여권이 범야권을 10% 이상 따돌렸다. 그야말로 자만의 패배였다. 여담으로 지금은 친박의 얼굴마담 중 하나가 된 김진태도 이때 강원도 춘천에서 민주당 후보를 4% 격차로 이기고 당선된다.
한편, 이렇게 새누리당이 강원도를 석권하고 충북 지역 등지에서도 약진하면서 수도권과 호남, 제주 지역을 제외한 타지방에선 참패하는 한계를 드러낸 야권 일각에선 지방의 정보력이 딸리고 고령층이 많아 지방에서 야당이 패배한 것이라며 이른바 지방천민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심지어 강원도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농반진반으로 강원도 특산물 중 하나인 감자불매운동 등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이는 진보 지지층에서조차 개그코드로 쓰였을 뿐 실제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애초에 직전 총선인 18대 총선은 민주당계가 충북 1당, 강원 선전, 수도권 패배로 반대 비스무리한 결과가 나왔는데 이러면 논리 자체가 자가당착이 된다.
5.2.3. 호남/제주권
호남권에서는 으레 그래왔듯 민주-진보 계열 후보가 독점했다. 새누리 0석, 민주당 25석, 통진당 3석, 무소속 2석의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과 통진당의 대결에서는 민주당이 65~70%에 달하는 정당 지지율을 보이며 압승했다.[45] 하지만 통합진보당 역시 광주, 전북, 전남에서 고르게 지역구 1석씩을 챙기고 비례대표 득표율 14~18%를 올렸으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당선자 중 특이 인물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전력이 있는 통합진보당 김선동 후보가 순천시-곡성군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새누리당은 비록 낙마하긴 했지만 광주 서구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가 '''39.7%'''의 득표를 한 것이 고무적이었다.[46] 전북 비례대표에서 10% 가까운 득표를 한 것도 선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주도에서는 민주통합당이 우세를 보였다. 지역구 3석을 모두 석권했는데, 3인 모두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으로 당선된 후보들이 재선(혹은 3선)에 성공했다. 정당 득표율에선 더 야권 지지 성향이 잘 드러났는데, 호남권을 제외할 경우 민주통합당 자체 득표율이 새누리당보다 높은 유이한 곳이 되었다. 나머지 한곳은 세종시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또한 제주도에서 12.4%의 득표를 하면서 비례득표율에선 범야권이 범여권을 압도했다.
5.2.4. 영남권
호남과는 또 다른 의미로 으레 그래왔듯 보수 계열 후보가 대다수 지역에서 승리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일단 당시 TK는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큰 기대 안했듯 민주당도 큰 기대는 안했지만, 중부지방을 소홀히 하면서까지[51] 거의 올인 전략을 구사했던 PK에서까지 지역구 의석을 거의 얻지 못한 것은 야당 입장에서 심히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심판 바람을 타고 최소 낙동강 벨트만큼은 확실히 차지하길 희망했지만 낙동강 벨트로 볼 수 있는 8석[52] 에서도 5:3으로 새누리에게 밀렸으며, 이외의 지역구는 단 한 곳도 따내지 못했다.
다만 PK 한정으론 결과는 기대보다 못했지만, 내용면에선 민주당-진보정당의 졌잘싸도 연출되었다는 의견 역시 있었는데, 일단 높은 인지도로 인해 선거 초기부터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 예상된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부산 사상)[53] 과 조경태(부산 사하 을)[54] 후보는 예상대로 여유롭게 당선되었고, 경남 김해 갑 민홍철 민주당 후보도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또 김경수(김해 을), 김영춘(부산진 갑), 송인배(양산)[55] 후보 등은 5% 안팎의 차이로 낙선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수 텃밭 부울경에서 이정도 접전지를 만든 것은 야당의 지역주의 해소 노력이 어느정도 통한 것'''이라고 호평하는 이도 나왔으며, 또 창원시와 울산 북구 등에 출사표를 던진 통진당 후보들도 5~8% 차이로 새누리당 후보에 낙선하며 생각보다 격차를 좁혔다. 실제로 이때 PK에서 석패한 후보들 중 많은 수가 4년 후 재도전하여 설욕에 성공한다.
TK의 경우 야권은 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일부 TK 유권자들의 표를 기대하며 18대 총선보다 많은 후보를 내었지만 현실의 벽은 암울했다. 특히 노인들이 많은 경북 지역에선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 후보들이 한 자리 득표율을 기록한 곳도 수두룩했을 정도로 민주당이 영 인기가 없었다. 그나마 TK에서 민주당이 의미 있는 득표를 한 곳은 '대구 수성 갑' 지역으로, 52.2%로 당선된 새누리당 이한구 후보를 당시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가 40.4%를 얻어 선전했다.
'''정당 득표율에서도 PK와 TK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민주+통진당은 TK에서 21% 수준에 그친 반면 PK에서는 2배에 가까운 약 38%를 기록한다. 특히 통진당은 울산에서 무려 득표율 16%를 찍으며 PK 전체의 통진당 득표율을 수도권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5.3. 야권 패배 원인 분석
5.3.1. 김용민 막말 파문
- 나꼼수 열풍을 눈여겨본 민주통합당에서 당시 나꼼수 패널이었던 평론가 김용민을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인 노원구 갑에 전략공천했다. 그런데 선거 막판 김용민 후보가 8년 전 방송인 김구라와 함께 진행했던[56] 모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을 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해당 영상엔 (주로 보수 성향이 많은) 노인들이 시위하지 못하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없애자는 식의 노인 폄하발언과 함께 당시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일어난 반미(군) 열풍에 발맞추어 한국의 살인마 유영철을 미국에 보내 미국에 대해 테러를 감행하고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죽이자는 주장, 여자인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아예 강간하고 죽이자는 주장, 자유의 여신상엔 미사일을 날려가지고 항문에 꽂히도록 하자는 등의 막말들이 있어 큰 논란이 되었다. 한국 개신교 비하 발언도 했는데, 한국교회는 일종의 범죄 집단, 척결의 대상, 누가 정권을 잡아도 무너질 개신교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사건 초기만 하더라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3일 트위터에 "성누리당, 드디어 제게 네거티브를 했는데 실패! 네거티브를 하는 이유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실 겁니다. 격차가 1.4%로 급격하게 줄어드니, 노원에서 부는 정권교체 바람이 무섭죠?" "쫄리면 죽으시던가~"라고 패기롭게 받아넘겼으나,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결국 4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과문과 동영상#을 올렸다. 이외에도 사과한 사유가 아닌 다른 동영상들이 계속 올라오면서 곤욕을 치렀다. 다만 선거 이후 행보를 보면 김용민은 이런 언행을 한 것이 아닌 사과를 했단 것 자체를 자신의 흑역사로 여기고 있는듯 하며[57] , 당시 자신을 비판했던 민주당계 정치인에 대해서도 냉담[58] 내지는 좋게 말해서 꼬장을 부리는 수준[59] 의 언행을 이어가고 있다.
- 새누리당 뿐 아니라 녹색당에서도 김용민 후보에게 사퇴를 하라는 비판을 했다.[60] 새누리당의 공격이 계속되자, 민주통합당에서는 8년전 한나라당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대놓고 조롱하여 물의를 빚었던 연극 환생경제를 거론하며 맞불로 반격하기도 했다.
- 리얼미터의 조사에 의하면 총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슈로 김용민 막말 파문이 22.3%로 1위를 차지했다.# 정치 전문가 및 야권 관계자들은 여성·노인·개신교 등을 비하하는 김용민의 막말 파문으로 인해 민주당이 수도권의 주요 접전지는 물론, 충청·강원·영남 등에서 상당한 표심이 돌아섰다고 분석하였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말에 의하면 김용민의 막말파문이 터진 이후 민주당이 5~10% 앞서가던 곳들이 접전을 보이거나 역전되는 등 데이터상 충격이라고 할 정도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한다. 19대 총선에서 2,000표 차 이내로 승패가 갈린 지역구는 19곳인데 김용민 막말 파문이 이런 초박빙 지역들의 야권 단일후보에게 1~3%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며 결국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승리를 내주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막말 파문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3040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를 약화시켰고, 심지어 야권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61]
- 김용민 후보 자신도 노원구 갑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노근 후보에게 5.86%p차로 밀리며 낙선하였다. 한편, 이때 나꼼수 팬들 중 일부는 노원갑의 무효표가 6만 표가 넘게 나왔다고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권표가 무효표로 왜곡된 것이었고, 선관위가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원 기권표[62] 로 처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선관위 개표자료 등을 여러 번 봐온 사람이라면 이것이 별 근거없는 의혹이란 것을 알 것이다.
- 김용민 후보가 패배한 것을 두고 일부 팬들은 한동안 '이것은 선전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노근 당선자의 지역 연고[63] , 선거막판 막말논란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가 40%대 득표율로 선점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비판자들은 서울 동북부에서 유일하게 당시 새누리당이 승리한 지역구가 노원갑[64] 이므로 참패라는 평가도 있었다. 참고로 4년 뒤인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이노근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2000여표차로 패하며 노원구 갑 선거구를 내주게 되는데[65] 이때 김용민은 '막말 선배 김용민'이라며 이노근에게 낙선 축하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2017년엔 잠시나마 자유한국당에도 입당했다.# 물론 입당 사실이 알려진 그 날 저녁 바로 출당당했다.
5.3.2. 결집한 여당과 사분오열 민주당=군소정당의 표 나눠먹기
새누리당은 이 선거에서 박근혜에게 당권을 몰아주어 정권 심판론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쉬운 MB 정부의 친이 세력을 과감히 잘라냈고, 당시 양극화에 따른 대중들의 분노 속에 보수정당임에도 경제는 좌클릭하는 일명 경제민주화 공약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중도층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66] 공천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김무성이 직접 나서서 낙천자들을 설득시켰다.
민주당의 경우, 2011년 12월 손학규 대표는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위해 친노와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시민통합당과의 통합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천천히 합치자고 주장했던 박지원은 손학규에 대한 지지를 접어버렸고, 둘의 통합을 추진하고자 모은 임시 전국대의원 대회에서는 멱살잡이와 욕설이 이어지는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여당과 비교해 야권의 암울한 앞날을 보여주는 불길한 사건이었다. 허나 어찌저찌해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은 합쳐져 민주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한명숙 대표도 선출했다. 하지만 그렇게 출발한 민주통합당은 동교동계와 친노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뒤엉켜 막장 계파싸움이 여전했고, 한명숙은 이들을 묶어나갈 정치력이 없었다. 때문에 공천심사 과정에서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잠시 사퇴하기도 하는 등 당 후보를 내세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다 공천 과정에서 낙천된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은 탈당 후 정통민주당을 만들게 되는데,[67] 문젠 여기서 나온 후보들이 박빙지역 5곳(사실은 기사에 누락된 경기도 광주시 포함 6곳)에서 표를 갉아먹어 야권연대 후보들을 떨어뜨리고 새누리당이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 때문에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 자세한 건 정통민주당 항목 참고. 19대 총선에서 정통민주당의 표를 야권후보가 흡수했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야권이 승리했을 지역을 분석해보면, 서울 은평구 을, 서울 서대문구 을, 경기 의정부시 을, 경기 평택시 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갑, 경기 광주시 이렇게 6석으로 야권엔 뼈아픈 지점이 되었다. 다만, 개별 출마자 및 지지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해볼때 이들 표가 민주통합당이나 통진당으로 마냥 갔을 표라고 무조건 확신하긴 애매한 점도 있긴 하다.
진보신당 역시 독자 행보로 여전한 위력(?)을 과시했다. 고양시 덕양을은 대표적인 경우이며, 특히 울산과 창원시 성산구[68] 에서 통합진보당과 표 분열을 일으켜 그 결과 경남권에서 진보정당 의석이 아예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리고 비례득표도 1%대 밖에 못받아 당이 해산되고, 이후 노동당으로 재창당되었다.
한편, 보수쪽에서도 군소정당이 나타나긴 했는데, 원조 친박이었다가 박근혜에 학을 떼고 탈당한 전여옥과 그녀를 끌어들인 박세일 등이 뭉쳐 창당한 보수계 군소정당 국민생각이 그것. 허나 국민생각은 인천광역시 남동구을의 이원복(먼나라 이웃나라 작가와 동명이인)이 새누리당 후보를 1명 낙선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외엔 성과가 전무해 망했다.
5.3.3. 통합진보당과의 연대 논란 및 차별화 실패
사실 민주당이 사분오열되긴 했어도, 그나마 군소세력이 나간 형태로 끝났다면 (과반은 몰라도) 제1당까지는 노려볼만도 했을 것이다. 허나 통합진보당과의 지리한 단일화 싸움이 결국 승부를 결정지었다.
통합진보당은 우리는 짜장면만 먹고 살 수 있지만 민주당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라고 협박(?)하며 20개가 넘는 지역구를 달라고 하였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전국에 후보를 다 내서 민주당 후보를 떨어트려 버리겠다는 공갈포를 날리기도 했다. 이에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여러차례 만나 담판을 하고 결국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에게 13개 지역구를 양보하며 협상을 맺기는 하였으나, 선거 결과 실효성이 적었다는 평가 역시 받았다. 오히려 NL 성향의 인사들이 섞여 있는[69] 당시 통합진보당과의 연대에 적지 않은 중도층 유권자들이 등을 돌려 손해를 봤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던 중도층 표심의 상당수가 민주당에 희망을 걸었지만, 야권내에서도 종북 관련해 논쟁의 대상이 된 바 있는 NL계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 당시 민주당에 실망한 상당수 중도층은 다시 좌클릭 행보를 보이던 새누리당으로 갔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지역구 협상 뿐만 아니라 정책에서도 통합진보당과 별다른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당의 강령에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정신 계승, 2008년 촛불시위의 정신을 계승, 재벌과 대기업의 근본적 개혁, 원자력 발전소 정책 재검토, 종합편성채널 원점 재검토 등 나름 파격적인 내용을 넣어 통합진보당보다도 좌경화된 것 아니냐는 보수 진영의 색깔론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다만 네거티브성도 다분한게, 애초에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전문'이 없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두 정당의 성향을 1:1로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6. 제19대 국회의원 목록
제19대 국회의원 항목 참조.
7. 화젯거리
7.1. 여성당대표, 여성사무총장 시대
한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여당과 제1야당, 양당의 대표가 여성이었다. 새누리당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통합당엔 한명숙 대표가 각 정당의 대표 자리로 있었다.[70] 또한 제2야당이 된 통합진보당 또한 심상정, 이정희 같은 여성 정치인들이 공동대표로 자리했다.
뿐만 아니라 19대 총선은 양당의 총선 사령탑들도 전부 여성들이 맡았다. 새누리당은 이혜훈 의원(사무부총장)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고, 민주통합당에서는 박선숙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았다. 박영선, 추미애 의원 등 영향력있고 유명한 여성 정치인들이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활약했다.
또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전체 의원 수 300명 중에 '''47명(15.7%)의 역대 최고로 많은 여성 의원을 배출'''해냈다. 이 기록은 바로 다음 총선에서 51명을 배출하여 깨진다.
7.2. 지역구도의 완화
지역주의의 약화를 보여준 것도 19대 총선의 특징이었다. 새누리당은 호남권(광주 서구, 전주 완산구), 민주통합당은 PK를 비롯한 대구 수성구, 강남권 등지에서 선전했다.[71]
우선, 대구광역시 수성구갑의 김부겸 후보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이정현 후보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현재 지역구를 버리고 상대 텃밭(대구, 광주)에 출마했다.[72] 이들은 선거 결과 모두 낙선하긴 했으나 나름대로 의미있는 득표율을 보이며 선전했다. 그고 김부겸은 다음 총선에서 당선되었으며, 이정현은 재보궐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순천 곡성에서 당선에 성공했다.
김부겸 후보는 득표율 40.4%(대구의 민주통합당 정당득표율 약 16%), 이정현 후보는 득표율 39.7%(광주의 새누리당 정당득표율 약 5.5%)를 기록했다. 특히 김부겸 후보는 출구조사까지 경합으로 나오는 접전을 이뤘다. 광주 서구의 경우에는 야권 연대로 민주당 후보가 아닌 통진당의 오병윤 후보가 나온 덕분에 이정현 후보가 더 득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으나, 어찌됐든 각각 자신의 소속정당보다 약 3배, 7배 높은 득표를 하며 성과를 거뒀다. 또 상대적으로 묻힌 경향은 있지만, 이들 외에도 전북 전주시 완산구 을의 정운천 후보가 새누리당 소속으로 35.79%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얻으며 선전했다.[73]
PK 지역도 18대 총선보다 여권 후보와 야권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부산에 출마한 민주당 문성근, 김영춘, 김정길, 최인호 후보들이 낙선하긴 했지만 새누리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며 선전했고, 거제에서는 진보신당의 김한주 후보가 분투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참고로 거제에서 당선된 것은 새누리당 후보가 아닌 보수 성향의 무소속 김한표 후보였다(이후 새누리당 입당). 특히, 김영춘 후보가 나온 부산진구 갑 선거구도 무소속 정근 후보[74] 가 나오면서 접전이 된 지역이었으나 결국 낙선하며 표 분열의 효과를 누리진 못했다.
강남권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가 선전했는데, 강남구 을에 나온 정동영 후보가 무려 39.2%를 득표했으며, 송파구 을의 천정배 후보는 무려 46.0%를 득표했다. 인지도 높은 거물 후보라는 점이 득표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75][76]
7.3. 선거구 관련
- 경기도의 여주시-양평군-가평군이나 경상북도의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의 경우 남북거리가 100km정도나 된다.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은 동서거리가 무려 130km에 달한다. 도서 지역까지 넓혀보면 인천광역시 중-동-옹진(190km)이나 경북 포항남-울릉(독도까지 270km)의 동서거리는 이보다 더 길다.
- 가장 많은 후보가 등록된 지역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로, 10명이 후보 등록을 했다. 또한 종로구는 정당 후보도 가장 많은 8명이 등록했다. 후보 등록자 수 2위는 전남 여수시 갑이 9명이고, 정당 후보 등록자수 2위는 충청남도 당진시로 7명이다. 반면 무소속 후보가 가장 많이 등록한 지역구는 광주광역시 동구와 경남 창원시 진해구로, 각각 6명이 등록했다. 무소속 후보 등록자수 2위는 전남 여수시 갑과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으로 각각 5명이다.
7.4. 인물 관련
- 청와대에서 새누리당의 이봉화 씨의 공천에 압력을 넣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쌀 직불금 등의 문제로 공천이 취소되었다.#
- 포항시 남구, 울릉군에 출마한 새누리당 김형태 후보가 자신의 제수씨를 성추행 했다는 의혹이 일어 파문이 일었다. 애초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린 사람이 바로 그 제수씨였는데, 무소속 정장식 의원 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년전 김형태가 아들의 장학금 문제로 서울에서 만나자고 해 갔는데 여의도 부근 오피스텔에서 성폭행 당할 뻔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형태 후보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했다.# 4월10일에는 피해자와 김형태 후보간에 대화를 나눴던 녹취록이 공개되어 당선되더라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는데...연이어 고인이 된 동생의 사망보상금까지 빼돌렸다는 의혹이 터졌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치권 수준의 이슈몰이까진 안되어 어찌어찌 당선되긴 했지만, 이후 문제가 불거지며 이래저래 따가운 눈초리를 받다 결국 새누리당에서 출당 조치되었고, 이후 무소속으로 지내다 공직선거법위반으로 2013년 7월 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4월 9일 충남 서산시에서 지원유세를 벌이던 중 60대 남성에게 목덜미를 공격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한 이 남성은 계란으로 한명숙 대표를 공격하려 했다가 경찰에 제압당했다.# 다음날 4월 10일에 송파을 천정배 후보 지원유세 중 또다시 계란이 투척되었으나 2m 옆에 떨어져 다행히도 맞지는 않았다고 한다.
- 민주통합당의 박영선 최고위원과 새누리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이 사퇴를 선언했다.기사1기사2
- 신설된 선거구인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는 새누리당의 신진 후보, 민주통합당의 이해찬 후보, 자유선진당의 심대평 후보의 출마로 판이 커졌다.기사
- 해적기지 발언으로 논란에 올랐던 통합진보당의 청년비례대표후보가 탈락했다.#
- 부산 사하구 갑에 출마한 새누리당의 문대성 후보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기사1에 따르면 문대성 후보가 2007년 8월 국민대 대학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인 '12주간 PNF운동이 태권도 선수들의 유연성과 등속성 각근력에 미치는 영향'은 동년 2월 명지대 대학원에 김모씨가 제출한 '태권도 선수의 웨이트 트레이닝과 PNF 훈련이 등속성 각근력, 무산소성 능력 및 혈중 스트레스 요인에 미치는 영향'과 상당부분 일치하며, 심지어 일부 오타까지도 똑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문대성 후보는 이론적 배경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점은 인정하나 표절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77] 한편 문 후보가 석사학위 논문 또한 표절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점차 심화되었다.기사2 또한 토론에서도 상대후보가 표절에 대해서 지적하자 "그럼 제가 지금 여기서 강의를 할까요?"라고 대응해서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당선 후에는 아예 표절 따위가 아니라 대필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기사 4 결국 국민대는 논문이 표절이라는 판정을 내렸고, 문대성 후보는 탈당하겠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여론은 국회의원직 사퇴와 더불어 IOC 위원직까지 사퇴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국민대 조사에 의하면 표절이 맞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기사.
- 안산시 상록갑의 후보자 토론회에서 새누리당 박선희 후보가 사회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머뭇거리더니 토론 중 갑자기 퇴장했다. 방송에서는 편집없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이밖에도 새누리당의 몇몇 후보들은 토론을 불리한 질문이 있어서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은 등 토론기피 사례가 있어 비판을 받았다.기사1동영상 기사2
- 4월 3일자 100분 토론에서 야권 인사가 당시 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를 거론하자, 새누리당 대표로 나선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 "우리도 참여정부에서 불법사찰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하자 당시 천호선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죠"라고 물었고 이에 조 본부장이 "저는 모르죠"(...)라는 답변을 내놔 누리꾼들의 조롱섞인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발언을 오히려 광고에 써먹었다.
7.4.1. 특이인물
-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에 출마한 자유선진당 이인제 후보는 6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매번 소속 정당이 바뀌었지만, 매번 당선되었다. 그리고 19대 총선에도 당선되었다. 저번과 같이 최저득표 당선과 같은 안습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소속 정당이 또 바뀌었다.
-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유아인 분)의 어머니로 열연한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로서 이자스민 의원은 헌정사상 첫 외국계 국회의원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하지만 총선 직전에 수원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해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극심해졌고, 여기에 이자스민 본인의 과거 학력 허위 주장 논란과 총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에 대한 반대파들의 반감까지 겹쳐져서[78] 이자스민 의원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엔 공약도 못거는 비례대표한테 온갖 외국인 우대 공약을 걸었다는 둥 날조 선동도 꽤 횡행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이자스민 의원이 위안부 기림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또 논란이 일었으나, 인터뷰를 통해 반대가 아닌 유보 의견이었으며 "국회 안에 짓지 말고 좀 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짓자는 것이었다"고 해명하였다.# 이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 공원 조성 결의안을 공동발의하였다.# 학력 허위 논란 등 본인의 실수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필요 이상의 과도한 비난을 받은 감이 있는건 사실. 동료의원들 사이에선 일 잘하는 의원이라고 칭찬도 받았다고 하나, 결국 20대 총선에선 공천받지 못했다.[79]
- 헌정사상 최초의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도 탄생하였는데,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출신인 조명철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4번으로 당선되었다.
- 서울 중구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는 아버지 정대철, 할아버지 정일형 의원에 이어 3대째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는 헌정 이래 처음으로 3대 연속 국회의원 경력을 지낸 집안이 탄생한 것이다.
- 윤민호 후보가 첫 출마를 한 선거였다. 당시 윤민호는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광주 북구 을에 출마했는데, 18.45%를 득표하여 3위로 낙선했지만, 득표율 15%를 넘어 선거비용 보존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총선, 지선 합해서 3번 더 선거에 출마했지만, 다 낙선했고 모두 득표율 10%대를 못넘었다.
7.5. 투표/개표 관련 사건/통계
- 19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 명부에 나오는 당은 총 20개로, 투표용지가 31.2cm나 된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는 대부분의 전자개표기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지역구 개표 결과는 대개 당일 자정 전에 마무리 된 반면, 비례대표 개표 결과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익일인 4월 12일 오전 2시에야 완료되었다.#
- 새로 도입한 재외국민투표에서 투표율이 50%를 밑돌았다. 유럽이 57.04%로 가장 높았고, 아프리카 56.79%, 중동 50.85%, 아메리카 46.03%, 아시아 41.07% 이다. 주요 국가별로는 미국 42.57%, 중국 32.88%, 일본 52.57%이다.기사 재외선거 투표가 시간이 워낙 많이 걸리다 보니 고속버스(애틀랜타와 마이애미 간)를 타고 40시간 가량을 이동해 투표를 하고 온 미국 거주 여성의 투표 인증이 힛갤에 올라가기도 했다. 해당글
- 동작구 상도동의 상도제4투표소의 위치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MBC 라디오의 '시선 집중' 프로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유권자가 투표소를 찾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동작구 상도동 뿐만 아니라 수원시 권선1동제16투표소 역시 투표소 안내물과 실제 위치가 달라 논란이 되었다.
- 선거 공보물 관련하여 부실 발송 논란이 있었다. 특정 후보의 공보물만 빠진채로 배송이 되어버려 해당 후보가 항의한 경우도 있었고, 배송된 공보물에 투표소 위치 안내서가 빠진 채로 배송된 사례도 상당했다고 한다.
- 부경대학교#s-6,5에서는 모 학과 학생회장이 학과 학생들의 명의를 도용해 그들의 투표권을 없애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해당 학생회장은 학과 학생들의 핸드폰으로 죄송하다는 식의 문자를 보내고 잠적했다.
- 트위터를 중심으로, 서울 강남을 선거구의 투표함이 밀봉이 안된 채로, 혹은 밀봉에 날인이 찍히지 않은 상태인 것이 밝혀졌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결국 선관위에서 강남을 선거구의 투표함 5개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런 투표함이 강남 뿐 아니라 구로구에서도 발견되었다.기사 선관위에서는 이를 문제 없다며 개표하려고 하고 있고, 야당 후보들은 격렬히 항의하고 있는 상황. 이것을 처음 알린 사람은 민주통합당 정동영 후보측 비서인 황유정. 지금까지 봉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채 온 투표함은 18개. 강남을의 투표함이 총 55개다. 그러나 대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봉인이 꼭 지켜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즉, 봉인이 되어있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그 투표함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그 투표함이 무효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 다만 봉합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경우에는 따져봐야 한다고.# 기사 # 다행히(?) 봉인 도장이 없는 투표함은 선거인명부와 일일이 대조하면서 수동 개표를 진행했다고. 이 사태에 대해 경향신문는 # 부정선거 가능성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를 하였다. 반면 한겨레에선 # 참관인이 자신이 보았던 봉인과 달라져있다는 증언이 나왔다며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했다. 정동영은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제도의 훼손이 안타깝다며 선관위에 해명을 요구했다. 선관위 측에선 직원의 실수이며 이송 도중에 각 참관인 외 경찰관까지 대동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통합당은 검찰에 문제가 되는 선거구의 투표함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였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증거 보전을 위해 문제의 투표함을 수거하여 보관하였다. 민주통합당에서 결국 소송을 냈는데, 2013년 4월 11일 대법원에서 유효한 선거로 최종 판결했다. 기사.
- 선거 후 선거법 위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었는데, 선거사범은 총 1096명이 입건되고 이 중 30명이 구속되었다고 한다. 당선자 중에서도 79명이 입건, 그 중 1명이 기소된 상태. 지난 18대 총선에 비해 대폭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관련기사.
- 최종 전국 평균 투표율은 54.2%로, 18대 총선의 46.1%에 비해선 올랐다. 지역별 투표율로는 세종특별자치시가 59.2%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경상남도(57.2%), 전라남도(56.8%)였다. 투표율이 가장 낮은 곳은 인천광역시(51.4%)였다. 하위 선관위[80] 단위로 가면 경상남도 하동군이 71.4%의 투표율로 1위였고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가 47.0%로 꼴찌였다.
- 18대 총선에서 최다득표율(88.73%)로 당선된 박주선 의원은 19대 총선에서는 최소득표율(31.55%)로 당선되는 아스트랄한 기록을 세웠다. 지역구는 광주광역시 동구이다. 모바일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려다가 빚어진 선거보조원의 자살로 빚어진 낙천 때문. 무소속 출마와 앞선 자살 사건으로 민심이 많이 등을 돌렸다고. 아이러니 한 건 박주선 의원 본인은 어차피 경선에서 압승 거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 무주공산이 된 지역구 내에서 충성경쟁으로 벌어진 참극이었다고 한다.(...) 이 작은 나비효과는 18대 대선까지 이어지는데, 박주선 의원이 복당을 하지 못하면서 박근혜 후보측에서 박주선 의원에게 연대 의사를 보였기 때문. 박주선 의원은 본인의 소신과 박지원 원내대표의 간곡한 설득으로 합류하지 않았지만 두고두고 민주통합당에게는 불편한 기억으로 남았다.
- 이번 선거에서의 1·2위간 최소 득표차 당선 지역은 경기 고양 갑으로 1위 심상정 후보(통진)와 2위 손범규 후보(새)간의 표차가 170표차밖에 나지 않았다.[81]
7.6. 개표 방송 - SBS의 와신상담
SBS의 선거방송인 국민의 선택은 약을 빤 방송을 선보였다. 참고로 SBS는 8개월 후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에서 약을 한 번 더 빨았다.
개표방송은 MBC와 KBS가 파업 사태로 주요 스태프들이 빠짐에 따라 심심했던 반면, SBS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s-4.1때의 MBC를 뛰어넘는 퀄리티의 예능 개표방송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본격 스포츠, 예능보다 재미있는 총선 중계.''' 드라마와 예능 예산을 이쪽에 다 퍼부은게 아니냐는 농담도 돌 정도였다. 결국 8.3%의 시청률로 KBS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KBS에서는 투표 진행 도중 방송사고를 일으켰다. '투표율'을 '개표율'로 오기하고, '서울 종로구 새누리당 홍사덕 당선'이라는 자막을 '''투표 진행 중에''' 내보냈다. 원인은 전산 시스템의 오류. 사고 후 KBS는 바로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파업 사태와 개표 시작 전 방송사고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고 심층 있는 총선 보도로 13.3%를 기록, 1위를 차지하였다.
반면 MBC는 파업 사태에 더불어 진행자를 사장 김재철의 수하로 불리우는 권재홍, 황헌 두 보도국 간부가 맡았고, 역시 KBS처럼 출구조사 때 데이터 오류로 그래프가 뒤바뀌어버리는 방송사고를 저지르면서 부진하였다. MBC도 나름 대항마로 새로 도입한 각 후보들의 3D 아바타를 내놓았지만... 오히려 역효과.# SBS의 옛 타이틀 호러 방송을 계승하며(...) 결국 4.4% 시청률로 지상파 중 꼴찌로 하락하였다. 가히 불쾌한 골짜기 효과가 극대화되는 안습한 클레이필의 아바타였다고 한다.
8. 여담
- 선관위는 총선 하루 전날인 4월10일 밤 10시 27분부터 11시 1분까지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1년 10월 26일 선관위 공격사건 관련 논란 때문에 의혹을 보내는 시선들도 많았다.
- 기획재정부가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복지공약 비판TF를 한 것에 대해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기획재정부에서 계속 진행하겠다고 해 논란이 되었다.#
- 한나라당이[82] 과연 (이름 바뀐줄 모르고 투표하는 일부 유권자들 표로) 1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꽤 관심을 모았다. 성공한다면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주워먹기. 하지만 개표 결과 득표율 0.85%로 실패했다.
-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비례대표 11번이었으며,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는 비례대표 15번이었다.#
- 모 시사평론가는 투표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의식있는 젊은이(?)라는 취지의 트위터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평론가는 얼마 안가 트윗을 삭제했으나 이미 RT된 상태라 내용은 퍼진 다음이었다.
- 진보 성향의 소설가로 알려져있던 이외수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새누리당 지역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런데 이에 일부 진보 성향 네티즌들이 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냐며 이외수 SNS에 몰려들어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선거 직후엔 이외수가 강원도에 살다보니 강원도를 새누리당이 접수한 것과 연관된 항의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이외수 본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 인물이 괜찮아 지지했을 뿐 당을 보고 지지한건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나는 그렇다치더라도 강원도를 붉은색으로 물들인건 다른 누구들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 선거 결과가 보수진영의 승으로 윤곽이 잡히자, 일부 격분한 진보 성향 네티즌들 사이에선 20대 여성 투표율 8%, 20대 투표율 20%[83] 같은 진원지 불명의 악성 루머가 유포되어 다시 한 번 20대 개새끼론이 점화되기도 했다. 선거 다음날에 이르러서는 자정작용으로 사그라든 상태지만 3사 출구조사를 통한 투표율 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20대 투표율이 30대보다 높아서 몇몇 싸이트에서 20대 개새끼론의 역풍으로 30대 개새끼론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서울의 20대 투표율은 전체 투표율 평균보다 높았다.[84] 이와 연관되어 새누리당 찍은 부모님 용돈을 줄여버리겠다는 웃픈 얘기가 한동안 나돌기도 했다.
8.1. 투표 독려 운동
- 투표율을 높이자는 취지로 MBC예능 '나는 가수다' 출연멤버들 중 16명이 모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 투표 독려를 위해 유명인들의 이색 공약이 이어졌다. 소설가 이외수는 투표율 70%가 넘으면 삭발을 하겠다고 선언하였고, 공지영은 아이유 코스프레를, 나꼼수의 공연기획자인 탁현민 교수와 출연 멤버 주진우 기자는 각각 김어준 총수와 딥키스/누드 화보(...) 촬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한 통합진보당 노회찬 후보와 진중권 교수는 광화문 광장에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나타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개그우먼 김미화 씨는 1주일간 일자눈썹, 명진 스님은 빨간 가발을 쓰고 눈썹을 밀고 힙합바지를 입고 개다리춤을 내걸었다. 배우 엄다혜도 투표율 60%를 넘기면[85] 알몸으로 기념촬영을 하기로 했다. 당시 안철수 현상을 타고 대권출마설이 돌던 안철수 교수도 투표율 70%를 넘기면 미니스커트 복장에 춤추고 노래하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투표율 54.2%를 기록하면서 많은 공약들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8.2. 통합진보당 관악을 선거경선 부정개입 파문
3월 23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측 선거본부에서 3월 17~18일 치러진 야권연대 서울 관악을 선거구 경선에 부정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론조사 참여자에게 나이를 속여서 답변하라고 문자메시지로 지시한 것. 이정희 대표는 재경선을 제안했으나 민주통합당 김희철 후보는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정희 대표는 사퇴를 거절하고 완주하기로 결정했다.[86]
문재인 고문의 중재 끝에 결국 이정희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 문제가 된 지역구를 무공천한 것과 달리 통합진보당은 과거 경기동부연합 출신의 이상규를 바로 공천했다. 게다가 이상규는 관악구 거주민이 아니었다.[87] 기사1기사2기사3기사4
8.3. 손수조 후보 선거법 위반 논란
- 부산 사상구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에 대항해 출마한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는 2월 6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선관위의 경고와 함께 각서를 쓰게 되었다. 이어 3월 13일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함께 차량유세를 하면서, 또 다시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88]#
- 손 후보는 3월 30일에도 또 선거법 위반 여부로 주목을 받게 됐다. "선거비로 3,000만원만 쓰겠다"고 한 발언을 철회한 것과 "선거비 3,000만원을 전세보증금으로 마련하겠다"는 발언이 허위로 드러난 것. 이에 공직선거법 250조 허위사실공표에 관련한 내용의 위반 여부를 선관위에서 조사를 했지만 또 한번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선관위측에서 조사한 내용으로는 손수조 후보의 처음 해명이었던 새로운 입주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던 내용과는 달리 원룸을 내놓은 일 자체가 없다고 한다.
- 이에 다시 원룸이 위치한 용산구지역은 전세 평균가가 반지하나 옥탑방도 3,000만원이 넘는다며 동일평형의 전세가는 8,000만원에서 1억 가까이 된다며 다운 계약서 작성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 같은 날 부산 사상구 선거관리위원회는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에게 과태료 120만원을 부과했다. 손 후보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위반했다.#
- 손수조 후보는 새누리당 텃밭에서 43.8%로 낙선했으나, 그래도 나름 석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권을 노리는 거물을 상대로 인지도 약한 젊은이가 저정도 득표했으면 낙선하긴 했지만 '저격공천' 측면에선 나름 성공했다는 평. 그러나 손수조 후보는 4년 뒤 20대 총선에서 재출마했지만 3자 구도 속에서 3위로 낙선했다.
9. 관련 문서
[1] 의석 수 발표 순간 숫자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움직임이 반복된다. 방송사고로 추정.[2]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3] 2008년까지는 친박으로 분류될 수 있었으나, 2009년 당시 이명박이 세종시 수정안(=행정도시 취소안)을 추진할 때 이에 찬성하였고, 2010년에는 친이계가 제시한 한나라당 원내대표 자리를 수락하면서 박근혜와 사이가 멀어져 19대 총선 당시에는 친박이 아니었다. 이후엔 알다시피 화해와 갈등을 반복하다 결국엔 비박계의 수장이 된다.[4] 세종시장과 세종시 교육감 등을 선출했다. 세종시의원은 일시적으로 연기군 의원이 대행하다가, 2014년 지방선거부턴 정식으로 세종특별자치시의회 의원을 선출했다.[5] 다만 이때만 해도 공직자선거법 조항은 그대로 299명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국회의원 300명 정원은 부칙에 명시되어 19대 국회에만 효력이 있는 한시규정이었으나,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3일자로 개정되어 이후 정식으로 300명이 되었다.[6] 여기서 재외국민이란, 해외에 거주하고 있으나 국적이 한국인 사람을 가리킨다. 즉, 거주 국가의 영주권을 취득한 한국 국적인은 선거권이 있지만, 그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등의 사유로 한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은 재외동포로 분류되고 선거권이 없는 것. 국내 국적법에서는 재외국민이 재외 공관(대사관 및 영사관 등)에 등록을 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그나마 재외국민 파악은 쉬운 편이다.[7] 대사관, 영사관 등.[8] 이 때문에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의 대표는 외교통상부에서 임명함에도 불구하고 외교관이 아니라 민간인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9] 출구조사는 지상파 3사 모두 같이 했으나,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예측 분석은 각 방송사마다 따로 했기 때문에 예상 의석도 조금씩 다르게 나왔다.[10] 다만 후술되어있듯 애초에 이때 여당인 새누리당의 당권 자체가 친이에서 (여당내 야당을 자처하던) 친박계로 넘어간 선거라, MB정부 입장에서는 딱히 여대야소라고 보기도 어려운 정국이긴 했다.[11] 순서대로 신한국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한나라당.[12] 여담으로 20대는 당시 여당, 21대는 당시 야당 과잉 예측이 나왔다. 그래도 2013년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이후, 사전투표는 현행법상 출구조사를 못하기에 더 분석이 까다로워졌음을 감안하면, 정확도 자체는 예전보단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방향에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13] 문대성 의원은 4년 뒤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돌연 김무성 대표의 요구로 인천 남동구 갑에 출마했다.[14] 출구조사에서는 3위로 예측되었다.[15] 한곳은 무소속끼리 접전으로 결과가 바뀌었다.[16] 17대 총선 역시 서울에서 한나라당 16석, 열린우리당 32석을 가져갔다.[17] 16대 총선에서는 DJP연합의 범여권이 범야권(한나라당)을 앞선 적은 있지만, 자민련 같은 보수계 정당의 힘을 보태입은거라, 민주당이나 진보세력만을 따져서 제일 잘나온 선거는 2004년 17대 총선이었다. 당시 총선은 탄핵 역풍에 힘입어 열린우리당 1당만으로 단독과반을 넘겼고, 분열하긴 했지만 새천년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무소속까지 포함한 범진보의석은 172석에 이르렀다. 물론 이 선거 이후 진보진영의 세력 확장이 이뤄지긴 한다.[18] 재외선거 포함[19] 재외국민 투표 및 부재자 투표 포함[20] 부재자 투표수 합산 시작. 부재자 투표수는 누적 투표수에 포함됨.[21] 부재자 포함한 숫자이다. 재외국민 투표 중 국외부재자는 각 시도 본수에 포함되어있으나 재외국민 투표만의 투표율은 별도로 표기한다.[22] 투표 하지 않은 사람[23] 국외부재자는 이미 상술한 시도 본수에 포함되어 있으나 투표율 계산을 위해 별도 표기하였다.[24] 선거 기준에 따라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둘째 자리까지.[25] 이 시기에 해산된 녹색당, 진보신당, 청년당 등을 중심으로 이 부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26] 외국인 선거인 수가 빠져서 세종시장이나 교육감 선거에 비해 선거인 수가 약간 적다.[27] 직전 연기군수 [28] 전 충청남도 연기군교육지원청 교육장 [29] 새누리당은 2석 차이로 과반을 지켜냈지만, 제수 성폭행 의혹을 갖고 있는 김형태 당선인과 논문 표절 의혹을 갖고 있는 문대성 당선인이 여론이 좋지 않자 출당성 탈당을 하면서 개원도 하기 전에 과반이 무너지게 되었다. 다만, 이후 선진통일당과 합당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한표 의원이 입당하면서 과반을 다시 확보했다.[30] 안철수는 이후 2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좀 더 우클릭해 중도 입장에서 새누리당의 후신인 미래통합당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노선을 중도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4대강 정책을 옹호하는 등 일부 보수주의자나 진중권 등도 하지 않는 짓을 할 정도로 노선이 완전 바뀌었다.[31] 서울 16, 경기 21, 인천 6.[32] 서울 30, 경기 29, 인천 6.[33] 서울 2, 경기 2.[A] A B C D E F G 범여권+범야권의 득표율 합이 100%가 아닌 이유는 여기 언급되지 않은 군소 정당들, 그리고 무효표가 있기 때문이다.[34] 대전 3, 충북 5, 충남 4.[35] 충남 3.[36] 대전 3, 충북 3, 충남 3, 세종 1.[37] 대전 6석 중 5석, 충남 10석 중 8석을 얻었고 정당 득표율도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을 넘어섰다. 다만 충북은 애초부터 지역색이 약하기도 했고, 당시 통합민주당이 세종시 바람을 타면서 8석 중 무려 6석을 석권했다.[38] 천안 을 박완주, 공주시 박수현.[39] 공천 인물 경쟁력이 떨어진 점도 제법 컸던 것으로 보이는데, 청주시 상당에 공천된 민주당 홍재형 후보의 경우 국회 부의장까지 지냈을 정도로 연륜이 있는 인물이었으나, 정작 지역주민들에겐 "맨날 보던 인간이 또 나왔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홍 후보를 제치면서 당선된 새누리당 정우택 전 지사는 지방선거 패배 2년만에 재기하게 된다.[40] 이해찬 후보는 4년 후 20대 총선 또한 이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승리하여 7선 의원이 되어 민주당에 복당한다. 참여정부 당시 세종시를 설계한 장본인이니 지역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41] 실제 새누리당과 선진당이 합당한 20대 총선에서도 충청권은 의외로 박빙 양상을 보인다.[42] 광주 6, 전북 9, 전남 10.[43] 광주 1, 전북 1, 전남 1.[44] 무소속 포함. 진보 성향 무소속 의원이 2명(전북,광주 각각 1명) 당선되었다.[45]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호남은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몰린 지역도 아니라 (민주당계 정당과 구분하여) 진보정당은 큰 기반이 없다. 과거사와 지역 감정 등이 겹쳐져 현 보수 계열 정당이 아닌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것이다.[46] 참고로 이정현 후보는 2년 후 전남 순천 지역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역주의를 돌파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4년 후 20대 총선에선 재선까지 성공해 그 기세로 새누리당 대표도 된다.[47] 대구 12석, 경북 15석.[48] 부산 16석, 울산 6석, 경남 14석.[49] 부산 2석, 경남 1석.[50] 무소속 포함. 중도보수 성향 무소속 김한표 후보가 경남 거제에서 당선되었다.[51] 결과론적으론 이게 가장 뼈아픈 민주당의 선거 전략 실패였다.[52] 부산 북구-강서구 갑/을, 부산 사하 갑/을, 부산 사상, 경남 김해 갑/을, 경남 양산[53] 당시 초선 의원이었다.[54] 다만 조경태는 20대 총선 직전에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관련 배경에 관해서는 조경태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하자면 당내 비주류였다.[55] 4번째 낙선이었다. 18대 총선을 제외하면 모두 적은 표차로 낙선한 것이었다. 그리고 김경수, 김영춘, 전재수 등 상당수 PK에서 낙선한 민주당 후보들이 다음 총선에서 설욕하는 와중에 송인배 후보는 또 석패한다.[56] 이때의 친분으로 김구라가 김용민 응원 영상 비슷한 것을 보내기도 했었다. 다만 김구라는 원랜 황봉알, 노숙자랑 같이 정치보단 주로 연예계 같은 쪽에 험담을 하는 막말러였고, 김용민과 자주 엮이는 관계는 아니었다. 김구라가 말하기를 당시엔 자신들도 절대 공중파나 양지에 진출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기에 진짜 말도 안되는 거 알면서 돈(분유값) 벌려고 매니아들 상대로 더 쎈 발언을 하면서 허세를 부렸다고 한다. 허나 이는 결국 모두에게 족쇄가 되었고, 김구라도 방송계 진출 후 과거 자신이 욕했던 연예인(문희준, 이효리 등)들에게 틈만 나면 싹싹 빌고 다녔다.[57] 다만 이때 총선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졌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58] 예를 들어 이해찬. 이해찬의 경우엔 당대표 선출 당시 다른 나꼼수측 멤버가 이해찬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것과 달리 별 언급이 없었다.[59] 김진표, 이인영. 김진표에 대해선 당대표 선출 당시 자유한국당으로 가버리라며 비난했으며, 이인영에 대해선 2019년 원내대표 선출 당시 과거 자신을 씹었다며 대놓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60] 트위터에서 한동안 나돈 김용민 후보 선거사무실에 어버이연합이 무단침입하고 사무실 여성에게 폭언을 가했다는 멘션은 사실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하고 난입하려던 것은 사실이나 경찰에 저지당했다. 그리고 이런 루머를 퍼트린 유저는 "헷갈린거다. 니들은 그걸 믿냐?"라며 정신승리했다.[61] 사실 이런 식의 막말 파문은 선거 당락의 3요소라는 구도, 인물, 이슈 중 이슈 측면에서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에 선거 막판 갈수록 그 위력이 커지기 마련인데,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나 21대 총선 당시 김대호,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 막말 파문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강성 지지층은 이들을 옹호했지만 되레 중도표는 떨어져나가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측면에서 과정이나 결과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62] 즉, 총 유권자수 - 총투표수 = 기권표.[63] 2006년 ~ 2010년 노원구청장을 역임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한다.[64] 성동구, 광진구, 동대문구, 중랑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에 걸려있던 총 17석 중 노원갑 1석만 새누리당의 승리였다.[65] 당선자는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정치 활동을 한 고용진 후보다. 이처럼 선거에서 지역 연고는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김용민 이전에 이 지역에 민주당계의 깃발을 들고 출마해 당선되었던 인물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피선거권을 상실한 정봉주 전 의원이 유일했는데, 탄핵 열풍도 있었지만 정봉주 의원의 출신지가 노원갑(공릉동)이었던 것도 당선에 일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66] 이런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선거 공략은 이후 대권 국면에서도 유용하게 먹혔고 결국 대권도 차지했으나, 문젠 박근혜 정부 들어서며 이런 경제민주화 공약들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인지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민주화 사령탑 역할을 하던 김종인 전 의원도 나중엔 되레 박근혜 심판론을 외치며 20대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에 비대위원장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2020년에는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외치며 다시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을 맡게 된다.(...) --[67] 일단은 정통 야당의 계승과 함께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표어로 내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결국 한화갑의 평화민주당 시즌 2.(...) 이후 정통민주당 출신 상당수 동교동계 인사들은 앙금을 풀지 못하고 2012년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 대신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만다. 이후 몇은 다시 탈당하기도 한다만 어쨌든 이때 민주통합당이 탈당을 추스르지 못한 것은 선거에 두고두고 독이 되었다.[68] 권영길의 지역구인 창원시 을 선거구와 동일한 구역이다.[69] 물론 심상정, 노회찬, 천호선 등 NL과 거리를 둔 PD 성향의 인사들도 다수를 구성하는 정당이긴 했다. 허나 결국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선거 이후 찢어져 PD 인사들은 진보정의당(이후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기게 된다.[70] 이 둘은 각각 대통령, 국무총리직도 경험하며 한국 여야 정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도 했다. [71] 이들 지역 중 일부는 다음 총선 때 기어코 주인이 바뀐다.[72] 김부겸 후보는 경기도 군포시 3선 의원이었고, 이정현 의원은 당 사무처 출신의 비례대표 1선 의원이었다.[73] 정운천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북도지사로 출마해 약 18%의 득표를 한 적이 있다. 결국 4년 뒤인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3자 구도 속에서 당선을 이루어냈다.[74] 무소속이기는 했지만 보수 성향의 후보로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모종의 사건 때문에 탈락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였다.[75] 그러나 두 후보는 이후 지역구를 떠났고, 연고지인 호남으로 돌아가 국민의당 후보로 20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76] 그리고 강남구 을과 송파구 을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당선되게 된다. [77] 논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사람의 이론, 주장, 자료를 인용할 때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부터가 표절이다.[78] 다만 진보정당이나 당원들 사이에선 새누리당이 잘한 유일한 (혹은 후술된 조명철까지 포함해 유이한) 공천(...)이란 말도 나왔었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이자스민 의원의 법안 발의를 도와주기도 했고. 근데 더 웃긴건 대다수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그녀에게 반감을 가졌다는 것.(...) 사실 외국인들의 인식에 관한 해외 여론조사 같은 것을 봐도 기본적으로 좌파보단 우파에서 훨씬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79] 2019년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고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80] 기초자치단체 밑에 일반구가 있으면 일반구대로 선관위가 새로 생긴다.[81] 다만 리턴 매치가 벌어진 20대 총선에서는 두 후보간 격차가 많이 벌어져 심상정 후보가 여유있게 당선된다.[82]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뒤에 이름을 한나라당으로 바꾼 정당.[83] 연령별 투표율 등을 집계하는 데는 시간이 며칠 정도 걸리기 때문에 절대 투표 마감 직후에 나올 수가 없다.[84] 실제 선거 성별 및 연령대별 투표율은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주석이 달린 내용에 관련된 투표율은 남(19세50.6%, 20대 전반 50.0%, 20대 후반 36.3%, 30대 전반 39.9%, 30대 후반 47.4%) 여(19세 43.4%, 20대 전반 40.4%, 20대 후반 39.5%, 30대 전반 43.7%, 30대 후반 50.8%)로 20대 후반 남성의 투표율이 제일 낮았다.[85] 원래는 투표율 70%를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에 목표치를 낮췄다.[86] 김희철 후보도 여론조작 문자를 보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문자메시지 조작에 대해 알기 전에 경선에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미리 했었다.[87] 2010년 하반기 재보궐은 물론이고, 해당 19대 총선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에서 모두 은평을 지역에서 나왔다.[88] 공직선거법상 선거유세가 가능한 차량은 따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지정된 차량은 예비기간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