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1. 개요
七星派
부산광역시를 기반으로 하는 대형 폭력 조직. 현재 대한민국 폭력조직 가운데 상당히 유명한 조직이다. 조직원은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어림잡아 핵심조직원이 150명, 전체조직원은 약 500명이라고 한다. 기사
2. 두목
신동아 기사
1950년대 세븐스타라는 피난민 건달들에서 시작된 칠성파는 부산의 칠성다방 주변에서 거점을 삼아 칠성파란 이름이 붙었다고 알려져 있으며[1] 세븐스타의 초대 두목이었던 황홍이 2대 두목 이경섭에게 물려주고 다시 그 이경섭이 세븐스타를 확대개편해서 칠성파를 창건하게 된다. 초대 두목 이경섭[2] 은 70년대 초에 후대 두목 이강환에게 조직을 물려주고[3] 2011년경 3대 두목 한홍신이 두목이 됐는데 칠성파 정통이 아니라 조직 내에 갈등이 있다고 한다. 이후 한 씨가 구속되자 권모씨가 실질적인 두목으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2020년에 한모 씨가 출소했다.
3. 여담
80년대 말 이강환과 오사카의 재일교포 야쿠자 사카우메구미의 가네야마 고사부로가 교다이 사카즈키(형재배)를 맺었다. 근데 이 가네야마가 축하금 명목으로 준 1억엔을 조직을 위해 쓰지 않고 유용하는 바람에 불만이 쌓인 부두목급 김영찬이 신칠성파를,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만들어 칠성파에서 갈라져나오게 된다. 이후 영도파는 독자생존하는데 성공했지만 신칠성파는 조직원들이 다시 칠성파의 회유로 원대복귀하거나 뿔뿔히 흩어지자 결국 칠성파로 다시 합치기로 결의, 1999년경 칠성파로 다시 흡수되었다. 김영찬은 거리에서 칼까지 맞고 전치 12주의 중상을 당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결국 이강환하고 화해하고 은퇴했다.
이후 부산에서 칠성파 및 그 계열 조직들과 반칠성파의 갈등이 심각해 종종 전쟁이 터졌다. 2006년 벌어진 부산영락공원 난동 사태도 그 일환이다.기사
2007년경 이강환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공모씨가 내시경 검사를 하다가 의료사고로 사망하였다. 기사 이 때문에 칠성파 후계구도가 복잡해졌다고 한다.
2009년경 범서방파와 서울에서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경찰의 개입으로 무산되었다. 기사
부산의 군소 조직을 흡수해 조직을 프랜차이즈화 해서 구역별로 온천장 칠성, 서동 칠성, 기장 칠성 등으로 부르며 지부 조직을 만든다고 한다. 조직의 규모를 키우면서도 한꺼번에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완월동 칠성파가 일명 본가 칠성으로 불리는 핵심 조직이다.
2015년 11월 3일 행동대장 권 모씨가 서울 송파구의 잠실의 롯데호텔 월드에서 일부 유명 연예인들을 포함, 1,000여명의 하객을 초대해 놓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칠성파가 NAVER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결혼식 현장에서는 경찰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식이 진행중인 호텔을 230여명이 둘러싸고 대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경찰은 식 도중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으며 조직원들은 식이 끝난 후 아무 일 없이 부산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엄청나게 유명하긴 하지만, 실제 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조폭들은 같은 조직이 아니라도 안면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비슷한 지역에 있는 경우, 적대관계가 아닌 이상 주요 행사에서는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연대를 한다. 칠성파의 경우 정작 조직의 주요 수뇌부들이 공권력의 집중견제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면서 세가 죽었지만, 칠성파 출신의 곁가지들 + 부산 지역의 조폭들이 칠성파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해 칠성파로 사칭한다고.
영화 친구가 부산 칠성파와 20세기파의 실제 구도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져서 더 유명해젔다.
2018년 7월 16일에는 칠성파 조직원이 OCN의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의 촬영 현장을 급습하여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